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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티미디어시대의 클래식 캐릭터 18

자아를 찾는 여성, 마녀가 되다

메두사 vs 메데이아

  • 정여울│문학평론가 suburbs@hanmail.net

자아를 찾는 여성, 마녀가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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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손: 나를 포기해라, 당신은 나의 삶의 재앙이야! …… 당신이 빼앗아갔던 것을 다시 내게 돌려주시오. 나 이아손에게 돌려다오. 사악한 여인이여!

메데이아: 당신은 이아손으로 돌아가길 원하는가? 여기 있소! 그를 가져라! 그러나 누가 나 메데이아에게 줄 것인가? 누가 나를 되돌려줄 것인가!

-프란츠 그릴파처, ‘황금모피(Das goldene Vliess)’ 중에서

메데이아를 재해석하려는 다양한 시도가 있었지만 메데이아의 원초적인 마성을 그 자체로 긍정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프리드리히 클링거의 ‘카우카소스에서의 메데이아’는 메데이아의 마력을 빼앗고 자살에까지 이르게 함으로써 그녀를 마녀에서 인간으로 길들이고 있다.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자살하는 그녀의 모습을 숭고하게 묘사해 전 생애를 ‘부정’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자살을 통해 속죄 받는 메데이아는 그리스 신화에서 어떤 망설임이나 죄의식 없이 폭주하던 메데이아의 캐릭터와는 아주 상반된다. 잃어버린 이아손의 정체성은 그가 메데이아를 버림으로써 쟁취될지 모르지만 잃어버린 메데이아 자신, 그녀 자신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이제 어디로 갈 것인가. 내가 살 수 있는 세계, 이 시대가 어딘가에 있을까. 물어볼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이것이 대답이다.”(크리스타 볼프, ‘메데이아, 목소리들’ 중에서) 그녀가 가고 수천 년이 지났지만 아직 ‘마녀’들을 위한 자리는 이 세상에 없는 것이 아닐까.

내가 덧붙이고 싶은 것은 메두사의 신화 속에 암시된 것이 ‘어머니의 생식기’라는 사실이다. 자신의 갑옷에 메두사의 머리를 달고 온 아테나는 나중에 어느 누구도 접근할 수 없는 여자가 되었다. 어느 남자든 그녀를 보기만 해도 성적인 모든 욕구가 다 사라졌던 것이다.



-프로이트, ‘성욕에 관한 세 편의 에세이’, 열린책들, 1996, 381쪽.

프로이트는 남자들이 여성의 성기 앞에서 ‘거세(去勢) 콤플렉스’를 느낀다고 주장하면서 메두사야말로 남성의 성적 욕망 자체를 마비시키는 두려운 존재라고 말한다. 메두사를 ‘본래의’ 아름다운 존재로 그린 화가나 작가는 찾아보기 어렵다. 너무 끔찍하고 잔인해 눈을 질끈 감게 만드는 메두사 그림들. 그러나 메두사의 ‘진심’은 어쩌면 페르세우스에게 살해당한 후 피투성이로 잘린 그녀의 머릿속에서 태어난 아름다운 천마(天馬) 페가수스를 가장 닮지 않았을까. 자신에게 걸린 저주를 끝까지 풀지 못하고 신의 증오 속에서 생을 마감해야 했던 메두사는 밤하늘의 별자리 페가수스로 다시 태어난 것이 아닐까. 흥미롭게도 메두사의 ‘진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은 메두사의 머리를 자른 살인자 페르세우스다.

메두사는 한때 아름답기로 소문난 처녀였답니다. 수많은 구혼자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다니까요. 다른 부분도 아름다웠지만 그중에서도 머리카락은 특히 아름다웠던 모양이지요? 나는 이 시절에 메두사의 머리카락을 직접 보았다는 사람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바다의 지배자(해신 포세이돈)가 이 메두사를 미네르바 여신의 신전으로 데려가 사랑을 했다는 이야기를 합디다. 이 유피테르의 따님(미네르바)으로서는 방패로 얼굴을 가려야 할 만큼 무안당하셨던 거지요. 그래서 미네르바 여신은 이 죄 값을 물어 메두사의 머리카락을 뱀으로 만들어버리신 것이지요. 요즈음도 여신께서는 당신께서 만드신 이 뱀을 흉갑에다 달고 다니시면서, 적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으신답니다.

-오비디우스, 이윤기 옮김, ‘변신 이야기1’, 민음사, 20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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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여울│문학평론가 suburb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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