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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술꾼’ 윈스턴 처칠과 ‘샴페인 금발미녀’오데트의 로맨스

폴-로저 샴페인과 처칠 마티니

  • 김원곤| 서울대 의대 교수·흉부외과 wongon@plaza.snu.ac.kr

‘위대한 술꾼’ 윈스턴 처칠과 ‘샴페인 금발미녀’오데트의 로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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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 경지의 드라이 마티니 ‘처칠 칵테일’

이런 ‘위대한 술꾼’에게 술에 대한 크고 작은 에피소드가 없을 수 없을 터. 그중 하나가 이른바 ‘처칠 마티니’(Churchill Martini)라고 하는 칵테일 레시피다. 그는 대단한 ‘드라이 마티니’ 애호가로, 마티니를 주문할 때는 혹시 바텐더가 몰래 베르무트(Vermouth)를 타지 않을까 염려해 자기가 볼 수 있도록 베르무트 병을 바에 세워놓고 진(Gin)만을 가지고 만들게 했다고 한다. 이것이 바로 처칠 마티니로, 오늘날은 이 칵테일(사실은 진을 그냥 마시는 것과 다를 바 없다)을 마시면서 베르무트 병을 한번 쓱 보는 것으로 베르무트를 탄 것으로 대신하는, 최고 경지의 드라이 마티니 레시피로 소개된다. 그러나 처칠의 술에 얽힌 수많은 일화 중에서도 가장 아름답고 낭만적인 것은 역시 유명한 샴페인 회사 폴 로저(Pol-Roger)의 마담 오데트와의 만남일 것이다.

오데트 폴 로저(Odette Pol-Roger·1911~2000) 프랑스 파리에서 명문가의 딸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프랑스의 이름난 장군이었다. 1933년 오데트는 부친이 파리 동쪽에 있는 작은 도시 에페르네에 근무하고 있을 때, 그곳에 본사를 둔 유명 샴페인 회사 폴-로저(Pol Roger)의 창업주 손자인 자크 폴-로저(Jacques Pol-Roger)를 만나 결혼한다. 이후 폴-로저사의 샴페인 마케팅에 적극 참여한 그녀는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남편 가문과 함께 독일군에 대항하는 레지스탕스 운동을 후원했다. 비단 재정적인 지원뿐만 아니라 오데트 자신이 자전거를 타고 12시간 걸리는 파리까지 비밀 메시지를 전달하는 등 적극적인 역할을 했다. 이 과정에서 한번은 독일 게슈타포에 붙잡혀 취조를 당하기도 했다.

1964년 남편 자크 폴-로저가 사망한 이후에도 오데트는 폴-로저사의 경영에 계속 참여했으나 점점 원예 등의 취미 생활에 심취하면서 안온한 노년을 보냈다. 그녀는 이지적이었을 뿐만 아니라 젊은 시절부터 대단한 미모를 자랑했는데, 그녀의 별칭인 ‘샴페인 금발미녀’(Champagne Blonde)가 이런 면모를 여실히 보여준다.

오데트가 처칠을 처음 만난 것은 1944년 연합군의 파리 수복 후 영국대사관에서 열린 한 파티에서였다. 당시 주(駐)프랑스 영국대사 쿠퍼(Alfred Duff Cooper·1890~1954)로부터 처칠을 소개받은 오데트는 그의 정중한 매너와 사려 깊은 태도에 큰 감명을 받았다. 처칠 역시 젊고 매력이 넘치는 미모의 프랑스 여인에게 호감이 갔다. 사실 처칠은 이전부터 폴-로저 샴페인을 즐겨 마셨는데, 이날 제공된 1928년산 폴-로저 샴페인은 모임의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켰다. 이날부터 당시 70세의 처칠과 33세의 오데트는 도버해협을 사이에 둔 우정을 이어갔다. 처칠로서는 건강 등의 이유로 우울했을 만년에 일약 생기를 불어넣어준 소중한 인연이 아닐 수 없었다.



처칠과 오데트의 역사적 향기가 담긴 샴페인 ‘윈스턴 처칠’

파티 이후 파리를 떠날 때 다음에 파리에 올 기회가 있으면 반드시 오데트를 저녁 만찬에 초대하라고 주위에 지시할 정도로 오데트에 대한 처칠의 호감은 대단했다. 오데트 역시 처칠의 생일 때마다 샴페인을 선물로 보내주었다. 빈티지는 그가 좋아했던 1928년산이었는데, 1953년에는 재고가 떨어지자 다른 빈티지(1934년)를 보내는 등 처칠이 사망할 때까지 최상급 샴페인을 보냈다. 처칠은 이에 대한 답례로 그의 사인이 들어 있는 회고록을 보내기도 하고, 한번은 ‘나를 에페르네로 초대하면 직접 발로 포도를 밟아 으깨어보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처칠은 아쉽게도 에페르네로 갈 기회는 없었지만 자신이 아끼는 경주마의 이름을 오데트 폴-로저로 붙일 정도로 오데트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1965년 처칠 사망 후 성 바울 성당에서 거행된 성대한 국장에 처칠의 개인 친구 자격으로 초청받은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가 오데트였다. 처칠의 사후 폴-로저사는 영국으로 수출하는 샴페인 상표에 검은 선을 둘러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그리고 1984년에는 회사의 최고급 제품에 ‘윈스턴 처칠’이라는 이름을 붙이기로 결정했다. 1975년 빈티지로 시작된 이 제품은 피노 누아를 주품종으로 만들었는데, 처음에는 처칠가(家)와 영국 황실에만 공급됐다. 감칠맛이 돌면서 숙성된 이 샴페인의 맛은 처칠이 살아생전 좋아하던 바로 그 맛이었다.

오늘날 윈스턴 처칠 샴페인은 국내에서도 구할 수 있다. 기회가 되면 한번 맛을 보면서 처칠과 오데트에 얽힌 역사적 향기에 취해보는 것도 또 하나의 낭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신동아 2011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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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곤| 서울대 의대 교수·흉부외과 wongon@plaza.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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