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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발굴

30년 넘게 유해 찾아 헤매는 한묘숙씨, 그 기구한 삶

“내가 이중스파이라고요? ‘미스테이크’예요”

  • 배수강│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bsk@donga.com

30년 넘게 유해 찾아 헤매는 한묘숙씨, 그 기구한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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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트컴 장군과의 결혼은 그에게 재혼이었다. 전 남편과 이혼한 후 미국 유학을 떠나려고 했지만 유학 정보가 없었다. 그 때 도움을 청한 인물이 장군이었다. 장군은 평소 그의 고아원을 찾아 전쟁고아들에게 선물을 나눠주는 등 고아원 운영을 도왔다. 결혼 이후 친정 가족들과는 생이별했다. 당시로는 생소한 이혼에, 더구나 외국인과의 재혼으로 가족들은 그와의 연락을 끊었다. 가족들은 ‘노랑대가리 나온다’며 반강제로 그를 병원으로 데리고 가 자궁적출수술을 받게 했다.

베트남전쟁 당시 미군 고문으로 사이공으로 간 장군을 따라 그곳에서 몇 해를 보냈다. 어느 날 장군은 불쑥 “홍콩에 한번 다녀오라”고 했다. 거기서 중국에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 알아보라는 뜻을 살짝 내비쳤다.

“유해를 가져오려면 북한에 가야 하고, 그러려면 중국을 경유해야 하니 그때로서는 홍콩에서 방법을 알아봐야 했다.”

그의 표현대로 홍콩, 대만을 100번도 넘게 드나들었다. 그곳에선 주로 중국이나 북한 소식을 듣고 중국에 들어가는 방법을 찾았다.

지도 들고 중국行



기회를 엿보던 중 홍콩에서 알게 된 사업가의 초청으로 1979년 중국 진입에 성공했다. 그제야 장군은 아내에게 “6·25전쟁 때 죽어간 미군 병사 유해를 고향으로 돌려보내야 한다”며 구체적인 ‘지령’을 내렸다. 장군이 왜 중국 비자를 발급받으려고 그토록 애를 썼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가 중국으로 갈 때면 장군은 지도 한 장과 만날 사람 리스트, 미국대사관 위치를 알려줬다. 장군은 주(駐)프랑스 미국대사관에서 무관으로 일한 적이 있어 그때 사귄 중국 고위층을 잘 알았고 있었다.

“이름을 밝히면 국제적으로 힘들어진다”며 그는 중국 고위층 인사에 대해 말을 아꼈지만, 기자의 재촉에 다음과 같이 짧게 힌트를 줬다.

“중국 톈진(天津)의 갑부 왕광잉(王光英)씨는 영국에서, 동생 광메이(光美)씨는 미국에서 공부했죠?”

왕광잉씨는 중국의 전 국가주석 류사오치(劉少奇·1898~1969)의 처남. 두 살 아래 동생 광메이씨는 류 전 주석의 아내다. 문화대혁명 시기에 8년간 옥살이를 하다 복권돼 톈진시 부시장과 국제신탁투자공사 부이사장을 지냈다. 한씨가 왕씨와 친분을 쌓을 즈음인 1983년에 왕씨는 홍콩에서 ‘광대보업공사’를 설립했다. 중국 경제발전에 필요한 첨단 기술과 외자 유치를 위한 중국 정부의 전략적 기업이었다. 저우언라이(周恩來) 전 총리는 그에게 ‘붉은 자본가’라는 명칭을 붙여줬다. 한씨가 만난 사람들이 어떤 ‘그룹’인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베이징 서우두(首都)공항에 내리면 마중 나온 사람이 ‘홍치’(紅旗·중국 자동차 상표)를 끌고와 나를 에스코트했어요. 장군이 다 연락을 해놓았는지 그대로 따라가면 됐어요.”

수십 차례 한국과 중국을 오가다 그는 아예 중국에 눌러앉았다. 주로 베이징(北京)호텔과 젠궈(建國)호텔에 투숙했는데, 젠궈호텔 810호에서는 8년간 거주했다. 1982년 위트컴 장군이 서울 용산 미8군 내자호텔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할 때도 그는 중국에 있었다.

“돌아가실 때도 ‘북한에 묻힌 유해를 제발 미국으로 보내달라’는 말씀을 남겼대요. 얼마나 가슴 아프던지…. 그래서 이 일을 그만둘 수가 없었어요. 미혼이던 그가 구태여 나와 결혼한 건, 자신이 죽어도 이 일을 할 사람이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퇴역 미군 출신인 김계현 위트컴 희망재단 이사의 생각도 비슷했다.

“미군 대령이나 장군들은 진급을 위해 현지 여성과는 결혼하지 않는다. 출세를 다 버리고 한 이사장과 결혼한 것은 그 이유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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