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6월호

매혹적인 얼굴 뒤에 숨은 심연과 고독 신성일

도시 뒷골목을 누비던 청춘, 처진 어깨 무력한 눈빛의 사내가 되다

  • 오승욱│영화감독 dookb@naver.com

    입력2011-05-19 16:3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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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혹적인 얼굴 뒤에 숨은 심연과 고독 신성일

    젊은 시절 잘생긴 외모로 승부를 건 신성일은 연기 경력을 쌓아가며 차차 원숙한 배우로 성장했다.

    ‘프랑스에 알랭 들롱이 있다면 한국에는 신성일이 있다.’ 한국 영화계에서 영화배우 신성일을 한마디로 표현할 때 쓰는 말이다. 20여 년 전 이 말을 영화계 선배들에게서 들었을 때 나는 1960년대를 풍미한 프랑스 최고 미남 배우에 빗대어 ‘같은 시대를 풍미한 한국 최고의 미남 배우는 신성일’이라고 표현한 것으로 생각했다. ‘최무룡도 신성일에 뒤지지 않는 미남인데 왜 알랭 들롱에 맞서는 인물로 이야기되지는 않지?’ 하는 생각도 했다. 알랭 들롱이 출연한 영화 중 인상 깊은 영화가 거의 모두 범죄 스릴러 영화였던 데 비해 신성일은 멜로 영화에 많이 출연한 배우라는 인상을 갖고 있어서 두 배우의 비교가 납득이 가지 않았다.

    내가 가진 신성일에 대한 기억은 두 가지다. 하나는 초등학교 5학년 무렵 동네 극장에서 본편 시작 전에 상영한, 신성일 주연의 제목이 기억 안 나는 영화 예고편이다. 인기 가수가 노래하는 주제가가 나오면서 예고편이 시작되면, 당시 꿈에서나 볼 것 같은 빨간 스포츠카를 운전하는 신성일의 모습이 등장한다. 큼지막한 영화 제목이 화면 위에 뜨고, 고개 숙인 신성일의 수심이 가득한 얼굴 위로 눈물인지 빗물인지 줄줄 흐르고, 그 반대편에 선 여자도 비를 맞으며 울고 있다. 제목이 사라지고 뒤이어 두꺼운 붓으로 힘차게 휘갈겨 쓴 ‘사랑’이라는 글자가 뜨면, 여자와 신성일은 뚝섬의 아름드리 나무 사이를 달린다. 강 건너 잠실의 하늘에 떠 있는 태양이 눈부신 역광으로 연인들을 비추고, 연인들은 나무를 사이에 두고 마주 서서 서로의 눈을 바라보다 키스를 하고는 껴안고 뒤엉켜 풀밭 위를 뒹군다. ‘사랑’이란 글자가 사라지면 ‘갈등’이란 글자가 휘몰아치듯 화면 위로 뜨고 신성일과 또 다른 잘생긴 남자 배우, 남궁원이라든지, 이대엽 같은 배우가 서로 마주서서 노려보고 있다. 그러고는 곧 뒤엉켜 주먹을 교환한다. 그들이 싸우는 장면의 배경은 해변의 모래밭이거나 갯벌이고, 수평선 너머로 석양이 물들고 있다. 두 남자가 엉켜서 한 번씩 주먹을 주고받으며 넘어지기를 반복하다 다시 새로운 글자가 뜬다. ‘이별.’ 여자가 눈물을 흘리고 비가 내린다.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삼키던 신성일이 여자를 남겨두고 천천히 돌아서서 걷는다. 그리고 뜨는 글자. ‘기대하시라 개봉박두.’ 어린 나에게 인상적이었던 것은 사랑 갈등 이별이라는 자막이 영화의 전체 스토리를 가늠하게 해주는 것과 여자를 홀로 두고 떠나는 수심이 가득한 신성일의 얼굴이었다.

    여자들만 흠모하는

    두 번째 기억은 1970년대 중반, 당시 소년들의 마음을 들뜨게 했던 미녀 여배우들이 나오는 영화에 항상 나오던 중년의 화가·대학교수 또는 시인, 신성일이다. 장미희 정윤희 유지인 안인숙. 그들이 출연하는 멜로 영화를 보는 것은 또래의 아이들은 모르는 비밀스러운 어른의 세계를 엿본 것 같은 자부심을 느끼게 했다. 학교 지도부 선생들과 극장 안에 기생하는 양아치들의 무서운 눈길을 피해 보았던 ‘별들의 고향’ ‘속(續) 별들의 고향’ ‘겨울 여자’ 모두에서 신성일은 아름다운 여배우의 상대역으로 나왔다. 그는 ‘겨울 여자’에서 젊고 아름다운 장미희와 연애를 하는 중년 남자였고, ‘별들의 고향’에서는 역시 젊고 아름다운 안인숙과 사랑을 하는 중년 화가였다. 1970년대의 멜로 영화에서 신성일은, 젊고 싱그럽지만 자신의 욕망과 현실 사이에서 병들어가는 여자들을 위로하거나 그들의 몰락을 무기력하게 지켜보는 중년 남자였다. 내 어린 시절의 기억 속에 신성일은 울고 있는 여자를 두고 돌아서서 심각한 얼굴로 떠나가는 젊은 남자이거나, 젊고 아름다운 여배우들의 상대역으로 나오는, 김추련이나 백일섭같이 그녀들을 몰락시키는 악마 같은 남자들에 비해 양심적이기는 하지만 무기력한 중년의 지식인 남자였던 셈이다.

    나는 그가 사내다운 매력을 물씬 풍기는 액션 영화배우라고는 생각지 않았고, 신성일은 여자들이 좋아하고 흠모하는, 한마디로 남자들은 보지 않는 영화에 나오는 배우라고 생각했다. 그 당시 내게 한국 남자 영화배우는 장동휘 박노식 이대근 같은 투박하기 짝이 없는 액션 배우들이 전부였다. 멜로 배우인 신성일에게는 관심도 없고 그가 출연하는 영화를 본 것도 거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제3부두 고슴도치’(이혁수 감독, 1977)라는 영화를 보게 됐다. 어린 시절 저녁 때면 나와 동생들을 라디오에 귀 기울이게 만든, TBC 라디오의 인기 연속극 ‘목격자 시리즈’ 중 한 에피소드를 영화로 만든 것이고, 당시 ‘김두한 시리즈’로 최고 인기를 구가하던 신세대 액션 배우 이대근이 주연을 맡았다. 박노식과 장동휘의 시대가 가면서 떠오른 새로운 액션 스타 이대근은 1974년 ‘김두한’(김효천 감독)으로 등장한 액션 영화의 새로운 바람이었다. 그의 팬이었던 나는 개봉관 스카라극장으로 달려갔다.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이대근은 걸쭉한 부산 사투리를 쉴 새 없이 지껄이며 천방지축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주먹을 휘둘러대기 시작했는데, 고슴도치라는 별명을 지닌 이대근 앞에 나타난 살모사라는 정체불명의 사내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여자를 울리고 심각한 얼굴로 돌아서던 남자, 신성일이었다.

    매혹적인 얼굴 뒤에 숨은 심연과 고독 신성일

    1979년 작 ‘도시의 사냥꾼’에서 신성일은 미녀 배우 정윤희와 짝을 이뤄 무기력한 중년 지식인 남자의 모습을 보여줬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나는 이상한 감정에 휩싸였는데, 주인공인 고슴도치 이대근보다 나쁜 놈임이 분명한 신성일에게 빠져드는 것이었다. 살모사 신성일은 성질 급하고 투박한 부산 제3부두의 전설적인 주먹 고슴도치 이대근을 요리조리 따돌리고 깐죽거리고 놀려먹으며, 능청스럽고 뻔뻔하게 나대는 악당 역을 너무나 멋지게 해냈다. 알랭 들롱과 장 폴 벨몽도가 엎치락뒤치락 경쟁하며 사나이의 의리를 진하게 느끼게 해준 영화 ‘볼사리노’(자크 드레이 감독, 1970)의 한국판을 본 느낌이었다. 그 뒤 나는 신성일이 주연으로 나오는 액션 영화를 기대했으나 ‘제3부두 고슴도치’의 살모사 역에 비교하면 기억나는 장면이 하나도 없는 재미도 없고 새롭지도 않았던 ‘협객 시라소니’(이혁수 감독, 1980) 이후, 그는 나의 기대를 충족해주는 액션 영화에 출연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제3부두 고슴도치’로 신성일이 여자를 울리고 심각한 얼굴로 도망치는 그런 역만 하는 배우가 아니라 액션 영화에서도 멋진 역을 한다는 소중한 사실을 깨우치게 됐다. 그 후 배우 신성일의 진가를 알게 된 영화들을 만났다. 이두용 감독의 ‘장남’(1984)과 임권택 감독의 ‘길소뜸’(1985)이다.

    청춘이 떠난 뒤 얻게 된 것

    영화 ‘장남’에서 신성일은 고향이 수몰돼 서울의 아들을 찾아온 황정순의 큰 아들로 나온다. 40대 초반의 신성일은 어머니와 아버지를 모시고 싶지만 쉬운 일이 아니다. 빠듯한 살림살이와 중산층이 되기를 열망하기에 불만이 가득한 아내와 아이들, 아파트 생활이 불편한 노모. 그 사이에서 신성일은 무기력한 대한민국 중년 남성의 슬픔을 진하게 표현한다. 자신의 일과 가정 때문에 늙은 어머니와 아버지를 동생들한테 떠맡기기 위해 무더운 서울의 거리를 걷는 피곤한 얼굴의 신성일을 잊을 수 없다. 어머니의 ‘걱정 말라’는 배려와 미안해하는 마음, 끊임없이 ‘네가 장남인데’ 하는 장남 타령이 그의 심사를 뒤틀리게 만들고, 그래서 화가 나고, 동생들의 ‘딱한 처지를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머니를 맡을 수 없다’는 거절의 말과 함께 ‘큰형이면 큰형답게 알아서 하라’는 듯한 무언의 질책에 화가 난다. 늙은 어머니를 끌고 땀을 뻘뻘 흘리며 이리저리 걷는 자신에게 화가 난다. 어머니의 말에 화를 내고 소리치려다 참고, 자신의 무기력에 화가 치밀어 오르다 참는 그의 연기는 너무나 설득력이 있었다. 그것은 과장된 몸짓이나 표정 연기가 아니었고, 얼굴의 모든 근육을 아주 최소한으로만 움직여 주인공의 고통을 표현하는 것이었다.

    그 이듬해 상영된 ‘길소뜸’에서 신성일은 그의 최고의 연기를 보여준다. 역시 무더운 여름. 한눈에 보기에도 고단하고 가난한, 서울 생활에 지치고 지친 중년의 40대가 분명한 신성일이 여의도의 한 방송국 광장에 서 있다. 광장에는 지난 30여 년간 헤어져 살았던 혈육, 또는 친구들을 찾기 위해 쓴 게시물이 빽빽하게 붙어 있다. 신성일은 쏟아지는 땀을 닦으며 길소뜸에서 전쟁 때문에 헤어진 여자와 아들을 찾고 있다. 그리고 그녀를 만난다. 이미 중년의 여인이 된 김지미다. 그 서먹한 순간. 그 당시 수많은 만남이 있었겠지만, 모두가 눈물을 자아내는 감동적인 만남은 아니었을 것이다. 김지미는 과거의 상처를 딛고 일어나 제법 성공했지만, 신성일은 과거를 잊지 못하고 죄책감에 사로잡혀 그의 가정을 가난하고 어둡게 만든 장본인이다. 그의 행동을 답답해하고 힘들어하는 아내 오미연의 푸념과 질책에 신성일은 잠자리에서 일어나 아내에게서 등을 돌리고 담배를 피운다. 어두운 방 안에 피어오르는 담배 연기. 신성일이 피우는 담배를 보면서 나는 세상에서 저렇게 쓴 담배는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김지미와 신성일은 그들의 아들 한지일을 찾아간다. 시골 어느 변두리의 개장수가 돼 가난에 찌든 험한 인생을 살아온, 천하고 상스럽게 되어버린, 이제 서로의 간격을 결코 좁힐 수 없게 된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어머니. 한지일과 신성일은 집 뒤편 음지에서 5m 간격을 두고 서로 바라본다. 그들 사이로 매미가 청승맞게 울어댄다. 저 사람이 내 아들이라니, 도저히 인정하기 힘들다. 험한 인생을 살며 망가진 저 사람이 내 아들이라는 게 슬프기도 하지만 전쟁 탓으로만 돌리기엔 자신의 죄가 크다. 하지만 아들 한지일을 밑바닥 삶에서 구해내기에 신성일은 너무나 무기력하고 생활고에 찌들어 있다. 수십 년 만에 처음 만났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래서 차라리 모르는 편이 나았을 아버지의 고통을 축 처진 어깨와 얼굴에 흘러내리는 땀을 닦는 더러운 손수건으로 표현한다. 한때 싱그럽고 사랑의 열정으로 환하게 빛나던 소년이 세월을 겪으면서 몰락하고 몰락해 여기까지 왔다. 주름살이 진 그의 얼굴과 슬쩍 치켜뜨는 눈. 그렇게 그립고 안타까워 찾아 헤맸지만, 신성일은 아무것도 해낸 것이 없다.

    한국의 알랭 들롱

    매혹적인 얼굴 뒤에 숨은 심연과 고독 신성일

    갓 서른 된 신성일이 문희의 상대역으로 젊은 매력을 선보인 1967년 작 ‘밀월’의 한 장면.

    액션과 대사에만 의지해 자신의 캐릭터를 표현해서는 최고의 배우가 될 수 없다. 최고의 배우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카메라 앞에만 서 있어도 영화 속 캐릭터를 표현하는 마술사 같은 존재다. 아들 한지일을 만나고 돌아서는 길, 한때 미칠 듯 사랑했던 김지미를 보내고 매미가 우는 들판에 홀로 남아 서 있는 남자. 그는 역사의 질곡을 겪으며 몰락한 비극적인 남자 그 자체였다. 이 두 편의 영화로 나는 신성일이 얼마나 대단한 배우인지 알게 됐다. 그의 1960~70년대 영화의 목소리는 모두 성우의 입을 빌린 발성이었다. 나는 ‘길소뜸’에서 비로소 신성일의 본래 목소리를 들으며 거짓의 장막을 걷어낸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신성일이 중년이 돼 뿜어내는 원숙한 연기에 찬탄했지만, 그가 1960년대 최고의 배우이고 알랭 들롱에 비교된다는 것에 공감할 수는 없었다. 그러다 2000년대 초반, 신성일 주연 이만희 감독의 ‘원점’(1967)을 보게 됐다.

    영화가 시작되면 적막하고 어두운 밤거리에 발자국 소리를 울리며 신성일이 나타난다. 굵고 진한 눈썹 밑으로 세상 어떤 것도 믿지 못하는 눈을 굴리며 주변을 살피고, 아무도 없는 빌딩으로 침입한 그는 금고에서 기밀 서류를 훔쳐낸다. 성공이다. 이제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사라지기만 하면 되는데, 어디서 실수를 했는지 비상벨이 울리고 경비원이 나타난다. 적막한 빌딩 안. 신성일과 경비원이 격투를 벌인다. 계단에서 계단으로 굴러 떨어지며 엎치락뒤치락. 영화가 시작되고 지금까지 신성일의 입에서 나오는 것은 거친 숨소리와 신음뿐. 안간힘을 쓰며 달려드는 경비원의 집요함에 두려움을 느낀 것일까? 그는 필요 이상으로 잔혹하게, 셔터 사이에 경비원의 목을 끼우고 눌러 죽인다. 산업 스파이 신성일은 처음으로 사람을 죽였다. 그리고 자신의 죄 때문에 괴로워하며 이 짓을 그만두기로 한다. 그러나 조직은 그를 내버려두지 않는다. 이미 너무 많은 비밀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조직은 신성일을 제거하기 위해 그의 도피를 돕는 척하며 감시역으로 창녀 문희를 붙인다. 신성일은 조직이 자신을 배신해 킬러를 보낸 것도 모르고, 문희와 신혼부부로 가장해 설악산으로 도피한다. 가짜 신혼부부는 서로의 정체에 대해 아무 말 않고 한방에서 지낸다. 살인자 신성일과 창녀 문희. 먼저 정체가 드러난 것은 창녀 문희다. 신혼부부들 사이에서 문희를 알아본 남자가 그녀가 창녀임을 소문낸 것. 문희는 신성일에게 자신이 창녀라는 것과 감시자라는 것을 고백한다. 자신이 조직에 배신당했고, 누군가 죽이러 온다는 것을 알아차린 신성일. 하지만 신성일은 끝까지 문희에게 자신의 정체를 고백하지 않고 스스로를 봉인하며 고독 속에 칩거하는 길을 택한다. 두 사람의 절망적인 고통은 서서히 서로에게 감염되며 사랑으로 변화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하늘은 과거를 지닌 두 사람을 결코 행복하게 놓아두지 않는다. 킬러가 다가오고, 설악산의 가파른 절벽에 아슬아슬하게 걸쳐 있는 계단에서 신성일과 킬러는 최후의 대결을 펼친다. 자신을 죽이려는 킬러가 가파른 계단을 올라오자, 신성일은 혁대를 꺼내 자신의 손목과 계단의 난간을 묶는다. 더 이상 도망치지도 않고 여기서 싸우다 죽겠다는 자포자기한 자의 결의다. 결투가 시작된다. 영화의 첫 장면에서 빌딩의 가파른 계단을 구르면서 싸웠듯 이번에는 더욱 가파른 설악산의 절벽 계단에서 격투를 벌이는 것이다. 신성일에게 남은 것은 추락이 아니면 또 한 번의 살인을 저지르는 것뿐. 산 정상으로 도망쳐봐야 아무짝에도 소용없다. 절망적인 고통과 그 누구에게도 자신의 처지를 설명할 수 없는 고독. 자신의 세계에 가장 가까운 사람은 킬러와 자신을 감시하기 위해 부부로 가장한 창녀뿐. 내가 1960년대 한국 영화 속에서 처음 신성일의 아름다움을 발견한 순간이다.

    매혹적인 절대 고독

    그의 연기가 가장 매혹적일 때는 그가 자신의 속내를 절대로 드러내지 않고 스스로를 세상에서 고립시켜 고독할 때였다. 대한민국의 남자 배우 중 그만큼 고독한 남자의 모습을 잘 표현하는 배우가 있던가? 그의 고독에는 원죄가 후광처럼 둘러쳐져 있고, 그 원죄를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으려 애쓰는 곳에서 매혹적인 모습이 드러난다.

    1950년 6월25일. 북한의 탱크들이 굉음을 내며 38선을 넘어 돌진해온다. 탱크는 괴물이다. 괴물은 나무와 집, 사람 가리지 않고 자신의 앞을 막는 모든 것을 씹어 삼키며 앞만 향해 돌진한다. 탱크라는 무섭고 기괴한 물성은 그것을 막아보려 애쓰는 인간들의 인간성을 너무나 초라하게 만들어버린다. 돌진해오는 탱크를 당해내지 못하고 후퇴하는 국군의 행렬 속에서 걷던 중대장 신성일이 걸음을 멈춘다. 그러고는 자신과 함께 후퇴하던 병사에게 말한다. 군인의 임무는 적의 침략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는 것. 그런데 우리는 지금 군인의 임무를 저버리는 죄를 저질렀다. 어디서부터 잘못인지는 모르겠지만, 적보다 약해서 적을 물리치지 못하고 패배해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 군인의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배신자가 해야 할 일은 죽는 것뿐. 이때부터 대위 신성일은 자신이 죽을 자리를 찾아 전장을 헤매는 고독한 존재가 된다. 하지만 그는 죗값을 쉽게 치르지 못한다. 사랑하는 동료들만이 죽어가고, 신성일이 죽으려고 애쓰면 애쓸수록 그는 살아남는다. 영화 ‘들국화는 피었는데’(이만희 감독, 1974)의 한 장면이다.

    매혹적인 얼굴 뒤에 숨은 심연과 고독 신성일

    신성일은 1964년 작 영화 ‘맨발의 청춘’에서 부잣집 딸내미 엄앵란에게 위악적인 허세를 부리는 두수 역을 연기하며 스타덤에 올랐다.

    영화는 검열에 의해 갈기갈기 찢겼지만, 죄의식을 등에 지고 죽을 곳을 찾아 헤매는 신성일의 빛나는 연기만큼은 조금도 훼손되지 않았다. 주먹을 잘 휘두르고 마초적인 열기만 발산한다고 액션 영화의 멋진 남자 주인공이 되는 것은 아니다. 주인공의 어두운 심연과 고독을 표현하는 신성일이라는 배우 때문에 한국 영화는 범죄 액션 영화와 전쟁 영화에서 새로운 캐릭터를 얻게 된 것이다.

    배우가 되기 위해 서울로 올라온 대구 출신 신성일은 당시 영화 제국 신필름에 입사했고, 첫 출연작은 ‘로맨스 빠빠’(신상옥 감독, 1960)였다. “저는 로맨스 빠빠의 둘째아들 고등학생 바른이입니다. 어이쿠, 학교에 늦겠습니다”라며 영화 속에서 자기소개를 했던 신성일은 신필름에서 기회를 잡지 못하고 단역에만 머물다가 1964년 작‘맨발의 청춘’(김기덕 감독)으로 1960년대 최고의 남자 스타가 된다.

    ‘태양은 가득히’(르네 클레망 감독, 1960)의 알랭 들롱은 궁핍하고 굴욕적인 삶을 사는 사기꾼 청년 리플리를 연기한다. 그는 부잣집 아들인 필립에게 기생하며 온갖 수모를 당하지만, 필립의 애인과 필립의 천대에 대한 복수를 악마적으로 실행해나간다. 알랭 들롱이 필립의 방에 들어가 옷장을 열어 그의 옷과 신발을 신고 거울에 자신을 비춰보는 장면이 있다. 남의 것을 손에 넣은 천진한 악당 같은 미소를 짓다가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고는 곧 우울해지는 알랭 들롱의 얼굴은 열등감과 욕망 때문에 생긴 사악한 심성을 고스란히 내보인다.

    4년 뒤 만들어진 ‘맨발의 청춘’에서 신성일은 털 달린 깃을 세운 가죽 점퍼에 청바지를 입고 짙은 눈썹 아래 세상에 대해 적의를 가진 눈을 번뜩이며 부잣집 딸내미 엄앵란을 희롱한다. 그가 엄앵란을 대하는 태도는 신분상승을 하려는 것도 멋진 연애를 하려는 것도 아니다. 그냥 자신의 천하고 상스러운 처지에서 우러나온 위악적인 행동일 뿐이다. 남산으로 올라가는 길, 신성일이 하얀 입김을 내뿜으며 서 있다. 스포츠머리에 아직은 앳된 하얀 얼굴. 엄앵란이 신성일 앞에 와서 부잣집 딸내미답게 당돌하고 세상모르는 소리로 대시한다. 이 때 신성일의 행동은 하늘을 올려다보고 눈이 부시다는 듯 눈을 치켜뜨고 담배 연기를 뿜어내며 엄앵란을 짐짓 외면하는 것이다. 개그 프로그램에서 지금도 패러디가 되곤 하는, 성우의 목소리를 빌린 그의 젠체하는 대사는 익숙지 않은 부류의 여자 앞에서 가난한 신분과 고독을 감추려는 위악적인 허세일 뿐이다.

    위악적인 청춘에서 비루한 중년까지

    2011년까지 주연으로 출연한 영화만 500여 편에 달하는 신성일은 1967년 한 해 동안 우리나라에서 제작된 총 185편의 영화 가운데 51편의 주연이었다. 한 해 동안 51편의 영화에 출연하다니! 한 달에 4편꼴로 영화를 찍은 셈이다. 이런 경우 빈정대는 말이 있다. 영화를 무슨 연탄 찍어내듯이 찍나? 하지만 1967년 그가 출연한 ‘안개’ ‘원점’ ‘까치소리’ ‘밀월’ ‘역마’ 같은 영화들이 한국 영화사의 걸작이고, 그도 빛나는 연기를 보여주었으니 할 말이 없다. 아마도 이때 신성일은 시간 단위로 스케줄을 소화하고, 잠도 제대로 못자며 하루 두세 편의 영화 현장을 오가는 초인적인 힘을 발휘했을 것이다. 이런 시기가 1964년부터 72년까지 이어진다. 한 해 평균 30편 이상을 찍어야 했던 시기다. 입에 담기도 힘든 막치기 영화에도 출연하고, 어떤 영화에서는 스케줄이 바쁜 신성일만 따로 세워놓고 상대 배우 없이 찍어버린 뒤, 나중에 상대 배우가 와서 그의 대사에 답을 하는 것이 분명히 느껴지는 조잡한 장면들도 발견된다.

    신성일이 기네스북에 오를 만큼 많은 영화에 출연했다는 사실 때문에 그의 영화 경력을 의심하는 이들도 있다. 그가 워낙 인기 있는 스타 배우였기 때문에 1960년대 그의 연기가 상대적으로 조명을 받지 못하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더구나 신성일의 국회의원 출마와 낙선, 그리고 본명과 예명의 다름으로 인해 낙선했다며 강신성일이란 이름으로 다시 출마한 사건은 그를 정치판으로 뛰어들어 오점을 남긴 ‘한때 스타 배우’들 중 하나로 비웃어버릴 수밖에 없도록 만들기도 했다. 그럼에도 신성일은 영화를 찍으면 찍을수록 원숙해진, 한국 영화사에서 보기 드믄 배우였다.

    매혹적인 얼굴 뒤에 숨은 심연과 고독 신성일
    오승욱

    1963년 서울생

    서울대 조소학 학사

    영화 ‘킬리만자로’ 각본 및 연출

    1999년 제36회 대종상 영화제 각본상


    생각해 보면 한때 세상 부러울 것 없는 최고의 미남 스타로 인기를 누렸던 배우가 이 세상에 하나 둘인가? 그들의 배우 수명은 기껏 해야 20년이다. 하지만 신성일은 30여 년의 배우 생활로 나이를 먹으면서 스타 배우로서 한없이 가벼울 수밖에 없는 운명을 이겨냈다. 알랭 들롱이 1960년대 말까지 최고의 영화를 찍으며 정점을 기록했지만, 70년대에 들어서면서 말도 안 되는 영화를 직접 제작해 팬들의 뇌리에서 사라지고 90년대에 들어서는 이상한 정치적인 행동까지 해 팬들의 혐오를 샀던 것에 비하면 신성일은 젊은 시절 고독하고 위악적인 청춘에서부터 인생의 고통을 설득력 있게 표현해내는 중년에 이르기까지 소중한 필모그래피를 보유하게 된 축복받은 배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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