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6월호

‘트루맛쇼’로 지상파 3사에 선전포고한 ‘람보’ 김재환 감독

“그동안 나쁜 짓하며 살지 않았다. 겁날 거 없으니 다 덤벼라”

  • 송화선│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pring@donga.com

    입력2011-05-20 13:4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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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루맛쇼’로 지상파 3사에 선전포고한 ‘람보’ 김재환 감독
    “저는 원래 보수우익 날라리예요. 맛있는 거 먹으러 다니고 여의도공원 산책하는 걸 좋아하는.”

    김재환(42) 감독의 자기소개다.

    “저널리스트도, 투사도 아니에요. 아무도 안 다룬 주제 중에 하고 싶은 걸 했을 뿐입니다.”

    인터뷰 내내 이 말도 참 여러 번 했다. 그는 사람들이 자신을 ‘정의의 수호자’ 쯤으로 보는 게 영 부담스럽다고 했다. 하지만 당분간은 그런 ‘오해’를 감수해야 할 것 같다. 5월 초 전주국제영화제 장편경쟁부문 관객상을 받은 영화 ‘트루맛쇼’ 때문이다.

    “나는 TV에 나오는 맛집이 왜 맛이 없는지 알고 있다”라는 내레이션으로 시작하는 이 영화는 우리나라 TV 음식 프로그램이 어떻게 제작되는지 파헤친 고발 다큐멘터리다. 김 감독은 경기도 일산에 분식집을 하나 차렸다. 거울 뒤마다 카메라를 설치한 ‘몰카 친화형’ 레스토랑. 식당이면서 동시에 거대한 다큐멘터리 세트장인 이곳에서 그는 평범한 식당이 TV 맛집으로 변신하는 전 과정을 촬영했다. 브로커가 등장하고, 홍보대행사가 오고 가고, 외주제작사와 방송사 제작진도 주요 배역을 맡아 열연한다. 브로커는 방송을 위한 가짜 메뉴를 만들고, 홍보대행사는 식당에 뒷돈을 요구하고, 가짜 손님은 한 숟가락 떠먹을 때마다 몸을 부르르 떨며 엄지손가락을 치켜 올리는 식이다. 식당 주인은 이들에게 이리저리 돈을 건넨다. 그리고 마침내 방송 성공!



    김 감독의 분식집은 지난 1월 SBS ‘생방송 투데이’에 ‘맛집’으로 등장했다. 1000만원이 들었다. ‘트루맛쇼’에 따르면 지상파 3사의 주요 맛집 프로그램에는 공정 가격이 있다. MBC ‘찾아라! 맛있는 TV’ 중 ‘스타맛집’ 코너는 900만원, ‘맛객’은 600만원이란다. 누구나 짐작했지만 정말 그러랴 생각했던 ‘맛집 방송’을 둘러싼 추악한 커넥션이 드러나는 순간, 김 감독의 카메라는 지상파 방송사를 정조준한다.

    “현장에서 방송 조작하고 뇌물 받는 PD와 제작사를 그냥 나쁜 놈이라고 한다면 방송사는 T.O.P(더 나쁜 놈의 은유적 표현)다. 세상 온갖 나쁜 일은 다 시켜놓고 혼자 고고한 척 저널리즘과 공영성을 논하는 방송사가 미디어계 타락의 몸통이다.”

    무소불위의 권력 미디어, 그중에서도 핵심에 위치한 지상파 방송 3사를 상대로 동시에 칼을 겨누다니 이 사람 제정신인가 싶다.

    “세금 다 냈거든요. 살면서 손해 본 적은 있어도 누구한테 상처 주거나 재정적으로 큰 손해 입힌 적 없고, 쓰레기를 주우면 주웠지 버린 적도 없는 것 같아요. 아, 좀 재수 없게 들리겠다.”

    “1000만원만 내시면…”

    ‘트루맛쇼’로 지상파 3사에 선전포고한 ‘람보’ 김재환 감독
    진지하게 말하다 말고 웃어버린다. 하긴, 그 정도 자신감도 없이 이런 일을 벌였을까 싶다.

    김 감독은 ‘트루맛쇼’ 연출자면서 동시에 이 영화를 제작한 B2E프로덕션 대표다. MBC PD로 방송 일을 시작한 뒤 2002년 퇴사해 창업했다. 그러니까 ‘트루맛쇼’는 외주제작사 대표가 지상파 방송사를 향해 보낸 선전포고이면서, 동시에 전직 PD가 고향을 향해 날린 카운터펀치가 되겠다. 그는 “뇌물 주고받는 식당과 제작사·파워블로거, 그들을 이어주는 홍보대행사와 브로커, 돈으로 업계 사람들을 타락시켜온 프랜차이즈, 조작하는 PD와 작가…. 누군가는 이 뇌물과 타락의 악순환을 끊어야 하지 않은가”라며 “스스로 자신의 부조리와 위선을 고발할 용기가 없는 방송사를 위해 내가 맞춤 포탄을 준비했다”고 했다. 그러니까 이 영화의 주인공은 ‘맛집’이 아니라 ‘미디어’다.

    ▼ 왜 이런 영화 만들 생각을 하셨나요?

    “대학 졸업하고 금융회사 다니다가 뒤늦게 PD를 시작했어요. 우리 사회에서 미디어가 가진 파워, 권력을 그때 알았어요. 내가 하는 일은 방송을 만드는 것인데, 사람들은 그걸 통해 세상을 봐요. 방송 프로그램이 세상에 미치는 영향은 생각보다 엄청난데, 미디어는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그걸 이용하죠. 정색하고 미디어 문제를 제기하면 ‘그것이 알고 싶다’가 되겠지만, 나는 사람들이 좀 더 쉽고 재미있게 느끼게 되길 바랐어요. 맛집은 이 딱딱한 주제를 말랑말랑하게 보여주기에 가장 좋은 소재죠.”

    ‘트루맛쇼’로 지상파 3사에 선전포고한 ‘람보’ 김재환 감독

    지상파 방송사의 맛집 프로그램 제작 관행을 고발한 ‘트루맛쇼’의 한 장면.

    김 감독에 따르면 밥 산업은 비탄력적인 시장이다. 인구는 줄고 있고 세 끼 먹는 사람이 갑자기 하루에 여섯 끼씩 먹어대는 기적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런데 식당은 계속 늘고 있다. 2010년 국세청 통계는 우리나라에 하루 515개의 식당이 새로 문을 열고 있음을 보여준다. 동시에 474개 식당은 문을 닫는다. 이 피 튀기는 서바이벌 전쟁터에서 방송 출연만큼 든든한 동아줄도 없다. 방송사 입장에서도 수많은 식당 가운데 이왕이면 협찬비를 제공하는 곳을 골라 출연시키는 게 그렇게 나쁜 짓이냐 반문할지 모른다. 과연 그럴까.

    “문제는 거짓말과 조작입니다. 시청자 눈길을 끌기 위해 평소에는 팔지도 않는 메뉴를 만들고 가짜 손님 동원해서 쇼를 벌이지요. 그렇게 업자랑 짜고 TV 광고 찍으면 당장 그 집에 손님이 몰려요. 근처 상권에서 비슷한 아이템으로 장사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됩니까. 이제 그들도 같이 양심을 팔기 시작합니다. 질 낮은 재료에 조미료 범벅을 해서 손님 입속에 넣거나, 돈 좀 있는 식당이면 홍보대행사에 전화해 똑같이 ‘마케팅’ 작업에 들어가겠지요. 600만~1500만원 내고 TV에 출연해 TV 맛집 사진과 플래카드 내걸고, 300만~700만원 내고 파워블로거 동원해 구라 포스팅 날리면 손님은 늘어납니다. 그러면 또 다른 식당은 또 망합니다. 이 악순환의 책임을 누가 져야 합니까. 처음 좌판을 깔아준 방송사 아니에요?”

    조작과 거짓

    ‘트루맛쇼’를 보자. 거짓말과 조작의 양상이 생생히 드러난다. 자칭 ‘메뉴개발자’이자 음식점 방송 출연 브로커인 임모씨는 ‘트루맛쇼’ 카메라 앞에서 ‘캐비어 삼겹살’이라는 정체불명의 요리를 소개한다.

    “TV 화면에 맛이 보여? 냄새가 나? 일단 특이해야 돼. 삼겹살 위에 캐비어를 얹어 구우니까 얼마나 폼 나?”

    실제 캐비어는 차갑게 먹어야 한다는 상식 따위는 ‘특이한 걸 좋아하는’ 방송사 카메라 앞에서는 아무 의미가 없다. 이 삼겹살 위에 놓인 ‘캐비어’가 실은 ‘캐비어’라는 이름만 붙인 ‘럼피시알’인 것도 상관없다. 이 요리는 수십 개의 TV 프로그램에 ‘맛집’ 메뉴로 소개되며 한때 화제를 모았다. 임씨는 삼겹살에 인삼을 얹은 ‘심봤다 삼겹살’, 아구찜과 초밥을 결합한 ‘아초’도 개발한 전문가다. 물론 이것들은 평소 어느 식당에서도 팔지 않는, 오직 방송 출연을 위해 개발된 가짜 메뉴일 뿐이다.

    그럼 이 음식을 미친 듯이 먹어대는, 일주일에 한 번씩은 꼭 이 식당에 와서 팔지도 않는 음식을 먹었다고 주장하는 손님들은 어떻게 된 걸까. ‘트루맛쇼’ 카메라는 인터넷 ‘손님 동원’ 카페에서 만나 그날 순식간에 가족이 되고 연인이 되는 ‘가짜 손님’들의 모습도 생생히 보여준다. 식당에 들어서면 PD와 작가는 각각의 손님에게 대사를 불러주고 연습을 시킨다. 호박해물찜을 앞에 놓고 작가로 보이는 여성이 말한다.

    “사실 여기 호박 정말 맛없어요. 아무 맛도 안 나요. 하지만 달콤하다고 해야 해요. ‘너무너무 달콤하다.’ 자, 해봅시다. 큐!”

    ‘트루맛쇼’에 따르면 포털사이트 ‘다음’의 한 카페는 300번 넘게 가짜 손님을 동원했다. 이들의 모습을 촬영하기 위해 제작진 또한 가짜 손님으로 맛집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뜨겁지도 않은 음식을 뜨겁다며 호호 불어가면서 먹고, 난생처음 간 식당에서 “스트레스 받을 때마다 오는 곳”이라고 ‘사기’를 친다.

    이런 조작이 개별 맛집에서만 이뤄지면 차라리 괜찮다. 프로그램에 프랜차이즈 업소가 등장할 경우 해악은 더 커진다. 김 감독은 지금은 막을 내린 한 프로그램에 대해 “드라큘라 같고 악마 같은 방송”이라며 치를 떨었다. 100회 넘게 방송된 이 프로그램은 ‘대박’ 프랜차이즈 식당을 연이어 소개했다. 방송이 끝나면 가맹점이 훌쩍 늘었다. 그리고 지금은? 대다수가 문을 닫았다.

    “그게 100회 넘게 방송됐거든요. 제가 지방까지 취재를 다녔는데, 정말 아직 남아 있는 가게가 거의 없어요. 본점이 망한 것도 부지기수고요. 일일이 촬영을 하다 너무 감성적으로 흐르는 것 같아 영화에서는 다 뺐어요. 그분들은 당신들이 왜 망했는지도 모를 거예요. 상권 계산을 잘못했나보다, 서비스가 부족했나보다, 당신들 탓을 하겠죠. 하지만 그 모든 악의 근원은 누군가 홍보대행업자 끼고 방송사에 로비해서 결코 ‘대박’집이 아닌 프랜차이즈를 ‘대박’이라고 그 프로그램에 심었기 때문인 거예요.”

    ‘트루맛쇼’로 지상파 3사에 선전포고한 ‘람보’ 김재환 감독

    ‘창업 공감 다큐’ 트루맛쇼 연출자 김재환 감독.

    시청자는 방송에 등장하는 식당이라면 그래도 최소한의 검증을 거쳤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김 감독은 “결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그렇다 보니 종종 헛발질도 나온다. KBS ‘좋은 나라 운동본부’에서 위생 상태 형편없는 식당으로 단속된 식당이 얼마 뒤 ‘생방송 투데이’에선 대박 맛집으로 소개됐다. 한 설렁탕집은 KBS ‘생방송 세상의 아침’ MBC ‘찾아라! 맛있는 TV’ ‘생방송 화제 집중’ 등 여러 프로그램에서 양질의 한우만 쓰는 맛집이라고 소개됐지만, KBS ‘좋은 나라 운동본부’와 MBC ‘불만제로’에는 가짜 한우로 설렁탕을 끓이는 집으로 등장했다. ‘트루맛쇼’의 촘촘한 취재를 통해 밝혀진 거짓과 조작의 실체를 보며 관객은 웃다가, 분노하다가, 결국은 씁쓸해진다.

    김 감독에 따르면 2010년 3월 셋째 주 지상파 TV에 나온 식당은 177개에 달한다. 1년으로 환산하면 무려 9229개의 식당이 ‘맛집’으로 방송을 타는 셈이다. 사실 방송에 등장하는 맛집이 다 맛집은 아닐 거라는 생각, 한번쯤 안 해본 사람 없을 게다. 하지만 카메라 들이대고 실제 상황을 찍는 건 전혀 다른 문제다. 김 감독은 “대한민국에서 미디어는 권력이고 성역이다. 방송을 공격하는 게 결국 우리 회사 문을 닫게 할 무모한 도전일지 모르지만 이것저것 고민하지 않기로 했다. 온갖 십자포화 다 맞아보겠다”고 했다.

    양심 수호 라이선스

    ▼ 자칭 ‘날라리’가 왜 그런 비장한 각오를 하게 되신 건가요?

    “비장한 것까지는 아니에요. 제대로 싸우면 제가 질 거라는 생각 안 하니까. 이런 프로그램은 방송사 내부에서 이미 나왔어야 해요. 그런데 아무도 안 하니 어쩔 수 없었어요.”

    지상파 PD 출신 외주제작사 대표라는 흔치 않은 경험도 영화 제작에 이유가 됐다. 사실 지상파 PD들은 맛집 프로그램을 제작하지 않는다. 그들은 좀 더 폼나고 조작과 거짓이 필요 없는, 나아가 우리 사회의 조작과 거짓을 고발하는 프로그램을 만든다. 대신 이런 프로그램은 외주제작사 PD들에게 넘긴다. 방송사는 제작비 필요 금액의 절반 수준만 주고 저작권은 모두 가져간다.

    한 해 지상파 방송 3사가 선발하는 PD는 20명 남짓. 이들은 방송 일을 하면서도 생계를 위해 양심을 팔지 않아도 되는 라이선스를 얻는다. 그 외 외주 제작사 PD들은 수시로 현장에서 생계와 양심 사이의 줄다리기를 할 수밖에 없다. 김 감독은 “지방대 신방과 학생이 이번 영화 촬영을 도와줬는데 어느 날 나를 보고 ‘제가 아주 잘 풀리면 나중에 저렇게 현장에서 방송 조작하는 PD가 되겠군요’ 하더라. 그런 외주제작 업계 현실은 외면하고 안온한 공간에서 방송사 밖의 비리에만 칼날을 세우는 지상파 PD들은 그 학생이 받은 충격에 대해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고 했다.

    ‘트루맛쇼’라는 제목은 영화 ‘트루먼쇼’에서 따온 것이다. 온통 거짓으로 둘러싸인 가상의 세계에서 트루먼(짐 캐리)이 진짜 세상을 향해 걸어 나갈 때 크리스토퍼 PD(에드 해리스)는 이렇게 말한다.

    “어차피 세상은 속고 속이는 거야. 거기서 나간다고 해서 달라지는 게 있을 것 같나?”

    김 감독은 “‘트루맛쇼’를 만들던 내게 그 목소리는 ‘왜 쓸데없는 것 만드는 데 시간과 돈을 낭비하나? 계란으로 바위 친다고 미디어가 바뀔 것 같은가? 어차피 방송은 그런 거야. 시청자와 제작자 모두 진짜 리얼한 건 불편해하지. 네가 뭘 만들어도 세상은 달라지지 않을 걸. 왜 이래? 아마추어같이’라고 말하는 걸로 들렸다”고 했다.

    역지사지 퍼포먼스

    그래도 그는 영화를 찍었다. 미디어, 곧 카메라를 든 권력자들을 향해 누군가는 당신에게도 카메라를 들이댈 수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 다큐멘터리의 콘셉트는 ‘그들의 방식대로 그들을 촬영하기’. 그래서 그는 ‘트루맛쇼’에 ‘역지사지 퍼포먼스’라는 설명을 붙였다.

    “‘트루맛쇼’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일들은 감시와 감독이 없기 때문에 벌어지는 거예요. 우리 영화에서는 맛집 프로그램 방송 제작진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에게 찍혀버리죠.”

    ▼ 방송사들은 ‘몰카를 통해 지나치게 자극적으로 상황을 만들었다’며 비판하던데요.

    “이 프로젝트의 의미를 몰라서 하는 비판입니다. 몰카는 그분들이 주로 사용하는 방식이에요.”

    ‘트루맛쇼’로 지상파 3사에 선전포고한 ‘람보’ 김재환 감독

    2010년 3월 한 주 동안에만 177개의 식당이 지상파 맛집 프로그램에 등장했다.

    김 감독의 설명을 들어보자. 소비자 고발 프로그램 장르에 새 지평을 연 MBC ‘불만제로’의 경우 설렁탕집을 취재하려면 먼저 제작진이 설렁탕집을 낸다고 속이고 유명 설렁탕집 근무 경험이 있는 요리사들을 면접하는 과정을 몰카로 촬영한다. 그들이 그동안 설렁탕에 뭘 넣어왔는지 고백하게 하는 것이다. KBS ‘소비자 고발’도 마찬가지다. 김 감독은 “나는 미디어 산업에 종사하시는 분들을 주인공으로 해서 그분들의 방식 그대로 촬영해 그분들께 보여 드리기 위해 한 몸 불살라 이 영화를 만들었다”고 했다.

    사실 그는 원래 이런 고발 다큐를 만든 적 없는 인물이다. MBC에 있던 시절 ‘와 e 멋진세상’과 ‘타임머신’ 등의 프로그램을 했다. “‘PD수첩’에 보내면 머리를 하늘색으로 염색하겠다”고 하고 다녔을 정도다. 방송 경력 10여 년 동안 한 번도 송사에 휘말린 적이 없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다르다.

    “방송사는 저작권을, 연예인은 초상권을 걸고넘어질 거고 … 맛집 방송 제작진들은 ‘트루맛쇼’에서 촬영한 프로그램들만 조작된 건데 다 그런 것처럼 보이게 했다는 이유로 명예훼손이라 펄쩍 뛸 거고, 방송 브로커 수첩에 적힌 수십 명의 작가들은 ‘우린 그 브로커 몰라요~’ 소리칠 거고… 방송사들은 자신들이 충분한 제작비를 지급하고 있는데 무식한 제작사가 돈 더 벌겠다고 오버해서 영업 뛴 거라고 다 뒤집어씌울 거고, 외주제작국 회의실에 모든 제작사 대표 불러 모아서 ‘이러다 공멸한다’ 협박하고 말 맞춘 다음에 역사적으로 늘 착취와 증오의 관계인 갑과 을, 방송사와 제작사들은 대동단결해서 나와 ‘트루맛쇼’를 물어뜯을 거다. 아~ 큰일 났다.”

    전문가들 각오하라

    김 감독이 블로그에 올린 글이다. 코믹하지만 영화 개봉 후 자신에게 불어닥칠 후폭풍을 정확히 예견하고 있다.

    “이미 제 예상대로 흘러가고 있어요. 기자들이 영화 보고 외주제작사에 확인 취재를 하면 한결같이 제작비를 충분히 받고 있다고 하는 거예요. 이거 찍느라 3년이 걸렸는데, 그럼 난 지난 3년간 뭘 한 거지? 내 청춘 3년과 잃어버린 머리카락은 어떻게 된 거지? 혼자 가끔 생각해요. 그래도 어떡합니까. 이렇게 코믹하고 황당한 상황을 나 혼자만 알고 있을 수 없으니 영화를 찍을 수밖에요.”

    오히려 최근 벌어지는 상황을 보며 그는 다시 한 번 전의를 가다듬고 있다. 한 번의 뇌물이 우리 사회에 끼치는 악영향이 얼마나 큰지 더 선명하고 파괴력 있게 보여주겠다는 다짐이다. 그는 ‘트루맛쇼’를 시작으로 미디어 3부작을 촬영할 계획이다. 2탄 주제는 ‘나는 자격이 없습니다’로 정했다.

    “미디어에 등장하는 ‘전문가’라는 존재가 실제 전문가가 아니라는 것, 전문성보다는 이미지나 방송능력 덕분에 소비되고 있는 거라는 걸 보여줄 겁니다. 방송사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 있어요. 프로그램 제작하며 그 많은 사람을 어떻게 일일이 검증하냐. 맞는 얘기죠. 하지만 사회 전체적으로 보면 미디어가 전문가라는 권위를 제대로 부여해주는 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왜냐면 그게 그 사회의 전범이 돼버리니까요.”

    그는 의료계를 예로 들었다. 한 의사가 홍보대행사를 통해 유명 프로그램에 등장했다. 큰 인기를 끌었고, 결국 병원 환자 수가 폭증했고, 강남에 건물을 지었다. 그럼 젊은 의사들이 어떤 길을 선택할까. 또다시 홍보대행사를 찾고, PD의 눈치를 보고, 방송용 멘트를 개발하고, 빌딩을 짓지 않을까.

    “처음엔 미디어가 누군가에게 전문가라는 지위를 부여하지만, 그런 일이 반복되면 나중엔 미디어가 그 업계를 더 이상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 전개돼요. 정말 문제 아닙니까. 우리나라에서 미디어가 부여한 권위를 가진 전문가가 과연 전문가일까. 단연코 얘기하는데 전문성 없는 전문가가 더 많습니다. 그런데 미디어가 권위를 부여하기만 하면 다 돈을 벌어요. 제가 ‘미디어의 권위’라는 게 얼마나 껍데기일 뿐인지 파헤치면 사람들이 조금은 객관적으로 전문가를 대하지 않을까, 미디어라는 우상을 또 한 번 깰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 겁니다.”

    그는 우리 사회에서 최고 권력자는 미디어와 종교라고 생각한다.

    “우리 사실 대통령도 막 까잖아요. 검찰도 까잖아요. 그런데 언론끼리는 너무 친하게 지내고 있어요. 제가 하고 싶은 말은 그겁니다. 우리 서로 물어뜯자. 이 회사는 저 회사 물어뜯고, 저 회사는 이 회사 비리 고발하고. 사실 이 동네가 이렇게 평화로우면 안 되잖아요.”

    서로 물어뜯자

    ▼ 그게 김 감독의 저널리즘인가요?

    “저는 저널리즘이 뭔지 몰라요. 경영학과 나왔고, 저널리즘에 대한 책 한 권 읽어본 적 없어요. 그저 경험적으로 제가 생각하는 저널리즘은, 뭔가 분노해야 할 때는 앞뒤 재지 말고 분노 표현하고, 소송이 들어오거나 그렇게 피해 보는 거는 알아서 혼자 감당하는 것 같아요. 이거 좀 무식한 얘기죠? 근데 제 생각이에요. 하고 싶으니까 했고, 혼자 뒷감당할 거예요.”

    ▼ 회사 직원들은 어떻게 하고요.

    “영화 다 촬영한 뒤 직원들한테 얘기했어요. ‘앞으로 직업안정성에 심각한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 회사 문 닫아도 너희 다 일 잘하니까 딴 데 가서 월급 더 받고 일할 수 있을 거다.’ 내심 불안하겠지만 겉으로는 뭐라 안 해요. 이 얘기는 하고 싶어요. 회사가 생존하기 위한 기본 조건이 있어요. 우리 회사 정도면 매출액 어느 정도 나와야 하고, 그걸 보장해주는 게 방송사예요. 물론 서울시 홍보물도 만들고, 선거철이면 관련 영상도 찍지만 기본적으로는 지상파 방송사가 우리의 존립기반이죠. 그런데 거기다가 칼을 들이댄 거거든요. 저는 이걸 방송사 PD들이 잘 봤으면 좋겠어요. 그들이 있어야 내가 살지만 그래도 비판할 거 있으면 한다는 거.”

    김 감독은 특히 자신의 ‘고향’인 MBC 후배 PD들이 자신의 ‘역지사지 퍼포먼스’를 이해해주기를 바란다고 했다. 이건 배신이 아니라, 그들에게 온몸으로 전하는 절절한 조언이라는 것이다.

    “방송사도 눈치 봐야 할 대상이 있어요. 대기업 광고 받아야 회사가 유지되겠죠. 그래도 할 말은 하자. 비판할 거 있으면 칼 들고 비판하자. 그것 때문에 문제 생기면 꿋꿋하게 감수하자. 저를 미워할 선후배 PD들에게 이런 말을 하고 싶어요.”

    그는 줄소송과 선후배의 비판 정도는 충분히 감수할 수 있다고 했다. 특히 소송은 30개쯤 걸릴 것으로 예상하고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나에게서 최악의 상황은 오히려 아무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 겁니다. 사실 3년 동안 마음고생하고 2년간 식당 운영하면서 많이 힘들었어요. 식당 창업비용까지 포함해서 5억원 들었습니다. 사람들이 미디어에 관심 없을까봐 이렇게 딱딱한 주제를 말랑말랑하게 녹여놨는데 아무 변화도 없다면 그게 가장 슬플 것 같습니다.”

    그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물었다. 의외로 “웬만하면 식당은 하지 마시라”는 답이 돌아왔다.

    “밥은 누구나 할 수 있으니까 쉽다고 생각하는데 아니에요. 너무너무 힘들어요. 양심 지키면서 돈까지 벌 수 있는 식당은 정말 환상이에요. 제가 이번에 식당 해봤잖아요. 식자재를 주문하면 좋은 것과 나쁜 것 구별이 안 가요. 그런데 싼 거는 향이 안 나요. 표시 안 나게끔 눈속임해서 갖다 주지만 분명히 우리 몸에 좋을 건 아닐 거예요. 그런데 이걸로 가족 부양해야 하잖아요. 어쩌겠어요. 식당은 사실 전쟁터거든요. 누구나 마지막에 몰리면 선택하는 게 식당인데, 정말 웬만하면 식당은 하지 마시라고 권하고 싶어요.”

    ‘창업 공갈 다큐멘터리’, 보고 나면 식당은 절대 하지 말아야겠다고 깨닫게 되는 영화 ‘트루맛쇼’는 5월 말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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