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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진 기자의 藝人 탐구 ⑦

영화배우 변희봉

“난 지금 기다리고 있습니다 진한 살 냄새 나는 영화를, 내 인생 마지막 작품을…”

  • 한상진│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greenfish@donga.com

영화배우 변희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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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년 고생이 심하셨네요.

“한 2~3년, 난 그 시간이 특별히 오래갔어요. 그러다 연극하시던 차범석 선생님이 ‘산하’라는 극단에서 연극을 하는데 누가 펑크를 내니까 나더러 ‘해보겠냐’고 해서 연극을 시작했죠. 그분이 목포 사람입니다. 그땐 내가 별로 희망도 없고, 그래도 묻어는 가야겠고, 뭔가를 하기는 해야겠는데, 술이나 먹고 다니던 시절…, 참 질서가 없었습니다, 그때는.”

▼ 성우로는 성공을 못하신 거네요, 쉽게 말하면.

“연극을 하면서 슬슬 묻어가는 정도가 됐죠. 그러다 ‘법창야화’라는 라디오 드라마가 시작됐는데, 그걸로 좀 대열에 끼죠. 강진 갈갈이 사건, 이종대-문도석 칼빈총 강도사건, 무등산 연쇄살인사건 같은 걸 드라마로 만든 것인데, 다 전라도 사람이 주인공이었거든요. 그래서 내가 맡은 거죠. 그때부터 묻어가는 것을 벗어나서 조금은 동참하는 식이 됐다고 할까. 하하하.”

이 손 안에 있소이다



실제 변희봉은 1970~80년대 TV에서 주로 악역을 맡으며 활약했다. 인기 드라마였던 ‘수사반장’에서도 사이비 교주, 사기꾼, 잡범을 오래했고, 자리를 잡았다.

▼ 생활은 어떠셨어요? 형편은 괜찮았나요.

“형편이랄 것도 없었어요. 성우를 하면서 3000원인가 월급을 받았는데, 그때 하숙비가 2700원인가 했으니까. 하숙집에서 수도 없이 쫓겨나고 그랬죠.”

▼ 많이 어려웠겠네요.

“내가 그래도 고향에서는 밥은 먹고 사는 집 자식인데, 고향을 떠나는 순간 상상도 못하는 일이 벌어진 거죠. 부친이 아주 강직하신 분이었습니다. 몇 번이나 자식을 이런 계통에 나오지 못하게 정말로 달래도 보고, 참~ 여러 가지 방법을 썼으나, 결국 미친 나는 그걸 받아들이지 못했지요.”

▼ ‘딴따라’라고 집안에서 반대했군요.

“그렇죠. 오랜 세월 그랬습니다. 들어가도 받아주지 않고, 문 딱 걸어 잠그시고, 자식 아니라고 그러셨고. 1967년에 돌아가셨는데, 이제 나이가 들어서 보니까 ‘아~ 아버지의 뜻을 받들었어야 하는데’ 하는 생각이 듭니다. 막내아들인 내가, 아버님이 돌아가실 때 아버지 옆에 와 있었는데, 유언이 ‘서울 가지 마라’였어요. 어머니는 나 때문에 아주 모진 세월을 살아야 했고, 하여간 나 때문에 사방팔방이 시끄러웠습니다.”

▼ 아버님이 바라던 삶은 어떤 것이었나요.

“법조인이 됐으면 하셨죠. 하다못해 농사짓기를 바라셨고요. 그런데 난 법조인이 될 능력은 애초에 없었습니다.”(웃음)

변희봉은 좋은 집안에서 나고 자랐다. 조부와 부친이 모두 고향에서 면장을 지냈다. 마을의 큰일은 모두 그의 집에서 결정됐다. 요즘 말로 하면 지역유지다. 변희봉의 모친은 6년이나 절에 가서 공을 드린 뒤에야 막내아들인 변희봉을 얻었다. 그러나 변희봉이 배우라는 직업을, 그것도 주로 범죄자 같은 역을 맡기 시작하면서 산통이 깨져버렸다.

▼ 하여간 ‘연기자 생활은 그만두라’는 거였네요.

“지켜라, 고향을 지켜라. 근데 도저히 그건 안 되겠어서 서울로 올라왔죠.”

▼ 1967년이면 사투리 때문에 성우로서 별로 비전이 없었을 땐데, 그냥 고향에서 농사나 짓지 그러셨어요.

“아무것도 모르고 시작했지만, 방송을 하면서 내가 이 바닥에 매력을 느껴버린 겁니다. 고향에 있어보니까, 도저히 안 되겠는 것이죠. 좀이 쑤시고.”

▼ 묻어가는 인생이지만 한번은 꽃이 핀다, 그런 생각?

“아니, 뭐 그렇게 거창한 생각까지 할 머리도 없었는데, 뭔가는 할 수 있다는 생각은 있었어요. 뭔가가 오면 나도 할 수 있다는. 그리고 정말 열심히 했거든요.”

▼ 그래서 기회가 왔나요?

“왔죠. ‘법창야화’도 기회였고. 한참 뒤 얘기지만 ‘안국동 아씨’라는 드라마나 ‘조선왕조 500년’에서 유자광 역을 맡은 것도 기회였죠.”

1979년 방영된 드라마 ‘안국동 아씨’에서 변희봉은 점쟁이 역을 맡았다. 배역도 안 들어오고 생활이 고단해 2년이나 고향에 내려가 있다가 맡은 역이었다. 이승만 전 대통령 목소리를 흉내 내 맛깔 나는 연기를 선보였는데 인기가 대단했다. ‘조선왕조 500년 설중매’는 그의 출세작이 됐다. 지금도 많은 사람이 기억하는 명대사 ‘(세상이 다) 이 손안에 있소이다’가 이때 나왔다. 이 작품으로 백상예술대상 인기상을 받았고 음료수 CF도 찍었다. 좋은 시절이었지만, 오래가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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