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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진 기자의 藝人 탐구 ⑧

임권택

“칸에서 작품상 기대했다가 감독상 받고 맥 빠졌지”

  • 한상진 기자│greenfish@donga.com

임권택

3/10
영화는 나이만큼 나온다

임 감독 영화 속 주인공들은 대부분 세상을 떠돈다. 자기 거처를 찾지 못하고 시간과 공간을 헤맨다. 서편제의 판소리꾼들이 그랬고, 취화선의 주인공 장승업, 장군의 아들, 하류인생의 건달들도 마찬가지였다. 한지에 미친, 영화 ‘달빛 길어올리기’의 주인공도 비슷하다. 문득 이들이 모두 일찍이 집을 떠나 타향을 떠돌며 살아온 임 감독의 인생과 닮아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 역시 영화에 미쳐 한평생을 떠돈 사람이 아니던가.

▼ 영화 속 인물들의 삶이 감독님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듣고 보니 또 그렇네요. 내가 이렇게 얘기하면 설명이 될는지 모르겠는데…, 내 영화를 상당히 깊이 분석한 어떤 영화평론가가 그래요. ‘임권택 감독한테는 동심이 없다, 아니면 애써 동심을 외면하고 돌아보지 않는다’고 말이지. 그래서 영화가 그렇다고.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어요. 진짜 그렇다 싶더라고요. 내가 국민학교 3학년 때 해방이 됐단 말이에요. 그전까지는 일제 치하에서 창씨개명이니 노력동원이니 하는 것에 불려 다니고, 해방되고 나서도 우리 집은 좀살만 했는데, 바로 좌익이니 우익이니 하는 엄청스러운 것들이 들어오고, 빨치산 전투가 있었고, 빨치산을 잡아다가 국민학교 바로 옆 냇가에다 놓고 공개처형을 시키면서 애들 와서 구경하라고 그러고, 이런 거를 보면서 자랐어요.”

▼ 사람 죽이는 걸 직접 보셨어요?



“봤죠. 그때는 다 봤지. 기억에 남아 있다고.”

▼ 가족 중에 좌익활동을 한 사람이 있었나봐요.

“저희 부친이 산생활(빨치산)을 하시고.”

▼ 힘든 일이 많았겠네요.

“자고 있으면 형사들이 잡으러 오고, 형사들이 집에 막 들어와 가지고, 지금은 상상도 안 되는 일이죠. 형사들이 권총이 아니라 이렇게 긴 일본도를 차고 구둣발로 막 이 방 저 방 뒤지고 다니는데, 이불속에서 보면 일본도의 칼날이 눈앞에서 번쩍번쩍하고, 코앞을 왔다갔다하고…. 그런 환경에서 자랐단 말이지요. 그 다음엔 6·25전쟁에 휘말려 들어갔고, 부산에서 객지생활을 했는데, 그러니 나한테 동심은커녕 뭐 아무것도 없는 거지.”

▼ 마음을 둘 곳이 없었겠네요.

“이를테면 그 어린 나이에 나는 이미 떠돌이였지, 어디 가정에 정착해 가지고 뭐 무슨 변화를 기대할 게 없는 그런 인생인 거지. 이제 감독으로 오래 살고, 결혼해서 애들도 낳아 기르면서 많이 없어졌지만 여전히 정신적으로는 떠돌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게 다 영화에 나오는 거겠죠.”

▼ 지금도 정신이 떠돌고 있다고 느끼세요?

“떠돈다는 게, 이제 옛날만큼 심한 것은 아니지만, 좌익도 우익도 아닌 인생이, 하늘에 둥 떠버린 어떤 인생을, 어디에도 소신을 가지고 소속되지 못하고 살아온 그런 것들이 있었죠. 그러니 자연히 야성이 강했다고 할까. 그래서 나는 무슨 생각을 하냐면, 영화라는 것도 그래요. 제아무리 장난을 치고 뭘 해도 결국은 나이 먹은 만큼 나오는 거죠. 드러나는 거예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큰 도시로 가자

▼ 어디선가 보니까 18세에 고향을 떠나 부산으로 갔다고 되어 있던데. 고향은 왜 떠나신 거예요.

참고로, 임 감독의 고향은 전남 장성이다.

“고향을 지킬 수가 없는 거예요. 나는 좌익 가족이었는데 우익이 세상을 주도하니까, 좌익들은 숨도 못 쉬고 있는데, 나는 물론 좌익운동을 한 사람은 아니지만, 너무 어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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