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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나는 조선의 벨린스키가 되고 싶었다”

‘빨치산 시인’ 이기형

  • 이소리│ 시인, 문학in 대표 lsr21@naver.com

“나는 조선의 벨린스키가 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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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운형, “뒤에서 부추기는 사람은 지도자 아니다”

▼ 몽양 선생은 어떤 사람이었나요?

“몽양 선생이 나를 처음 만나 한 말은 ‘진정한 지도자는 앞에 서서 대중을 끌고 가는 사람이다. 뒤에서 부추기는 것이 아니다’라고 했어요. 그때 몽양 선생이 대단한 투사라는 사실을 알았죠. 만해 선생과 몽양 선생 차이점은 몽양 선생은 철저한 전투적 지도자, 즉 투사요, 만해 선생은 고요한 지도자라 할 수 있어요. 당시 문학청년이었던 저는 몽양 선생과 만해 선생을 몹시 존경했어요. 몽양 선생은 자주 만났고, 만해 선생은 가끔 만났어요. 사람들이 그 때문에 나더러 몽양 여운형 선생 비서를 잠시 했다고 그러는데, 그건 사실과 달라요.”

‘몽양 여운형 평전’을 쓰고 몽양 선생과 자주 교유했다는 이유로 많은 언론에서 그를 ‘여운형의 비서’로 소개하지만, 그는 “전혀 아니다”라고 재차 강조했다.

▼ 박헌영은 어땠나요?



“박헌영과도 몇 번 만났죠. 그는 이승만을 조선인민공화국 주석으로 내세운 인물이었어요. (1955년) 북한 재판소 판결문을 보니까 미국의 앞잡이가 틀림없더라고요.”

이 시인은 박헌영에 대해서는 주로 판결문을 회고하면서 그를 기억했다. 하지만 판결문에 대한 해석은 다양하다. 정진석 한국외국어대학교 언론정보학부 명예교수는 ‘신동아’ 2010년 2월호 ‘정진석의 언론과 현대사 산책’을 통해 다음과 같이 썼다.

“1955년 12월15일 열린 박헌영의 재판은 박헌영이 자신의 경력과 범죄사실을 자백하는 순서부터 시작되었다. 박헌영은 자신의 경력을 진술하면서 피소 사실을 모두 시인했다. 1919년 3월 경성고보(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에 여성계몽잡지 ‘여자시론’의 편집원으로 근무할 때에 언더우드를 만나면서 미국을 숭배하는 사상을 품게 되었다고 말했다. 미국에 의존하지 않고는 조선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세계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월북 후에는 강동학원과 해주제일인쇄소를 이용하여 (미군정) 하지가 지령한 대로 남북대립과 불신임, 분열사상을 조성하는 것과 북한 당내에 세력을 부식하고 확장하는 범죄행동을 감행했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이에 대해 “당시는 김일성을 향한 어떤 세력의 어떤 도전도 허용되지 않던, 김일성이 절대적 권위를 지닌 신성한 존재였던 때였다”며 “박헌영 일파의 공판기록을 ‘미제국주의 고용간첩 박헌영 리승엽 도당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정권 전복음모와 간첩사건 공판문헌’(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재판소 편, 국립출판사, 1956)이라는 제목으로 발행했다. 공판기록은 북한이 남로당을 숙청하면서 대외 선전과 함께 대내적으로는 반대파에게 심리적 공포심을 불러일으키고 남아있는 동조 세력을 완전 무력화하는 동시에 무자비한 숙청사실을 정당화하는 선전 목적으로 공개한 것”이라고 분석한다. 다시 인터뷰로 돌아가자.

이념 대립 잠시 접고 합작 이끌어내야 통일

▼ 좌우익 혹은 진보와 보수의 대립은 6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한데요.

“나는 조선의 벨린스키가 되고 싶었다”

손녀와 다정한 한때를 보내는 이기형 시인.

“좌우가 너무 팽팽하게 갈라서면 남북통일은 더욱 멀어진다고 봐요. 좌니 우니, 진보니 보수니 따지지 말고 합작을 해서 그 힘으로 통일운동을 이끌어 통일국가를 세워야 합니다. 이념 대립은 잠시 접어두고 단일민족, 단일국가를 세우기 위해서는 힘을 합쳐야 해요. 이것이 곧 몽양철학이자 내 철학입니다. 지금도 내 이론의 중심에는 이 철학이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있어요.”

▼ 통일을 가로막는 가장 큰 걸림돌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좌우익’ ‘진보 보수’ ‘빨갱이’ ‘공산당’ ‘친일보수’ ‘수구’ 같은 말들이 통일을 가로막는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봐요. 이제 이런 말을 쓰면 안 돼요. 분열될 뿐이니까요. 이 말은 우리에게 전혀 맞지 않아요. 이런 말을 자꾸 쓰는 사람은 과거에 저지른 잘못을 숨기기 위해 분열시키려는 의도예요. 지금은 서로 잘잘못을 뉘우치면서 같이 손잡고 나아가야 할 때입니다. 진보적인 사람도 상대방을 친일분자라고 무조건 몰아세우지 말고 양보하면서 다독여야 해요. 분단 60여 년, 참 부끄럽지 않아요? 결국은 진보든 보수든 상대방 약점을 들추지 말고 장점을 내세워 함께 나아가면 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분단은 영원히 해결되지 않아요. 그런 시대는 낡아빠진 유물이 되어야 하지 않겠어요?”

▼ 그렇게 되면 곧 통일이 될까요?

“오늘 이 자리에서 94세 이기형이 젊은 이소리 시인을 만나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 그 자체가 아주 중요한 순간이에요. 분단이 수많은 천재를 죽였죠. 임화도 휴전 직후인 1953년 8월 남로당 중심인물들과 함께 북한정권의 최고재판소 군사재판부에서 ‘미제간첩’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고 처형당했잖아요? 오장환도 월북한 뒤 병사했고. 참 가슴 아픈 일이죠. 남북통일은 언제 올지 아무도 몰라요. 광복 전날까지 누가 다음 날 해방될지 알았나요? 남북통일도 그러해요. 내일 당장 될 수도 있고…. 통일을 앞당기기 위해서는 남북이 자꾸 만나야 해요. 민간인이든 정치인이든 예술인이든 자꾸 만나야죠. 백두산도 중국을 통하든 어쨌든 자주 가야 합니다. 북한에 도와줄 게 있다면 도와야죠. 그래야 통일이 앞당겨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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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리│ 시인, 문학in 대표 lsr2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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