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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지도자와 술 ⑬

여제 살린 ‘리가 블랙’ 황제도 감탄한 ‘우니쿰’

  • 김원곤| 서울대 의대 교수·흉부외과 wongon@plaza.snu.ac.kr

여제 살린 ‘리가 블랙’ 황제도 감탄한 ‘우니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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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제 살린 ‘리가 블랙’ 황제도 감탄한 ‘우니쿰’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요제프 2세.

마리아 테레지아는 그의 아버지 카를 6세(Karl VI·1685~1740, 재위기간 1711~1740)가 아들 없이 사망하자 합스부르크가의 유일한 합법적 후계자가 되었다. 하지만 당시 남자만 황제가 될 수 있다는 법에 의해 합스부르크가의 권리였던 신성로마제국 황제는 되지 못하고 남편이 황제가 되면서 그는 황후 자리에 만족해야 했다. 그러나 마리아 테레지아는 합스부르크가의 영토를 거의 모두 상속받은 상태에서 탁월한 통치력을 발휘해 그 후 신성로마제국 정국을 실질적으로 주도한다.

이 때문에 요제프 2세는 어머니 생전에는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었다. 그러던 중 1780년 11월 29일 어머니 마리아 테레지아가 사망하자 그는 평소 정치철학인 계몽 전제군주로서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본격적인 개혁에 나섰다. 마리아 테레지아 역시 생전에 당시 유럽을 휩쓸던 계몽주의 사상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지만 아무래도 이전의 전통적 관념이 강한 통치자였다.

요제프 2세는 철저한 중앙집권체제를 바탕으로 농노제 폐지, 교육 기회 확대, 독일어 공용화 등 개혁 정책을 시행해나갔다. 그중에서도 특히 로마교황의 국내 정책 간섭 배제, 수도원의 해산, 성직자 수 제한 등은 당시로는 매우 획기적이었다. 당시 그의 개혁적 계몽주의 사상을 ‘요제프주의’로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1788년부터 요제프 2세의 건강은 눈에 띄게 나빠지기 시작했고, 1789년에 들어서는 매우 힘든 상태에 이르렀다. 이 와중에 프랑스 혁명으로 그의 누이 마리 앙투아네트가 비참하게 실각했고, 한편으로는 신성로마제국의 전 영토에 걸쳐 반란이 일어나는 등 어수선한 정국이 계속됐다. 게다가 그의 개혁에 지친 주위 사람들도 등을 돌리자, 그는 세상에 홀로 버려진 느낌을 갖게 된다.

결국 1790년 1월 30일 당시 합스부르크가에 소속돼 있던 헝가리에서 모든 개혁 정책을 공식적으로 취소하고 그 다음 달인 2월 20일 사망하고 만다. 그는 죽기 전 유언에서 다음과 같은 비명(碑銘)을 부탁했다.



“하려고 했던 모든 일에서 실패했던 요제프 2세가 여기 묻히다(Here lies Joseph II, who failed in all he undertook).”

후사가 없었던 그의 뒤는 동생 레오폴드 2세(Leopold II·1747~1792, 재위기간 1790~1792)가 잇는다.

“이 술은 정말 독특하다”

그런데 요제프 2세의 건강이 결정적으로 악화된 1790년 초의 일이다. 당시 황실 주치의인 헝가리 출신 의사 즈박(Dr Jo?zsef Zwack)은 사경을 헤매는 황제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자신이 직접 심혈을 기울여 제조한 약술 하나를 요제프 2세에게 소개했다. 요제프 2세는 이 술을 맛보고는 “이 술은 정말 독특하다(Das ist ein Unkum, This is unique)”라고 감탄했다. 물론 당시 황제의 병은 약술 몇 잔으로 해결될 상태는 아니었지만, 그 독특한 맛의 약술을 마시고 상당한 심리적 위안을 받았을 것으로 짐작해볼 수 있다.

40여 종의 약초와 향신료를 재료로 해 만들어진 이 술은 그 후 황제와의 인연을 기려 술 이름 자체를 ‘우니쿰(Unicum)’으로 정하고 술병에도 마치 약방을 연상시키듯 붉은 바탕에 옅은 색의 십자마크를 그려 넣었다.

그 후 우니쿰은 즈박 가문의 자손들을 통해 본격적으로 상품화되면서 헝가리의 대표적인 국민주가 됐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와중에 공장이 완전히 파괴되고 공산 치하에서는 회사가 국유화되는 시련을 겪기도 한다. 이 기간 즈박의 자손들은 비방으로 전해오는 제조법을 들고 미국으로 도피했고 그곳에서 제품 생산을 계속했다. 그러다가 1988년 공산체제 전복 1년 전에 헝가리로 되돌아온 즈박 가문은 현재 6대째 선조의 가업을 잇고 있다.

지금까지 소개한 유럽의 대표적인 약주 두 종류를 보면 새삼 ‘약주(藥酒)’라는 말이 흥미롭다. 우리나라에서는 과거 전통적으로 술을 담글 때 용수로 거른 비교적 맑은 술을 귀하게 여겨 먼저 따로 보관하고 나머지 술로 막걸리를 만들어 마셨다. 이 때문에 맑은 술을 가리켜 몸에 보신이 되는 술, 즉 약이 되는 술이라고 해 약주로 칭한 것으로 전해진다. 일부 술에서는 다양한 종류의 약초들을 혼합해 마셨기 때문에 약술의 의미를 더한다.

우리가 건강검진을 받을 때도 약술의 의미를 알 수 있다. 약간은 흥미 위주로 성행하고 있는 건강점수표는 대개 15~25개의 문항을 주고 응답에 따라 점수를 부여해 건강 상태를 평가한다. 예를 들면 규칙적으로 운동을 하는 사람은 3점, 가끔 하는 사람은 1점, 그리고 전혀 하지 않는 사람은 0점을 준다. 이러한 건강점수 항목에는 응답자의 집안 병력이라든지 비만 여부 등을 묻는 상식적인 내용들이 당연히 포함돼 있다. 그리고 ‘담배를 전혀 피우지 않는다’라는 응답은 그렇지 않은 경우에 비해 어김없이 가장 좋은 점수로 채점된다.

그런데 술에 관해서는 묘한 부분이 있다. 일반적인 예상과는 달리(?) 술은 전혀 마시지 않는 쪽이 가장 좋은 점수를 받는 것이 아니라 적당히 마시는 사람에게 오히려 높은 점수를 주는 건강점수표가 많다. 흔히 ‘술, 담배를 하지 않는다’라는 것을 건강 수칙의 중요한 원칙으로 간주하는 사람이 적지 않지만, 사실 술과 담배는 건강 측면에서 볼 때 차이가 있다. 백해무익이라고 표현될 정도로 건강에 해로운 담배에 비해 적당한 술은 혈액순환 개선이나 스트레스 해소 등 여러 가지 면에서 좋은 효과를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른바 약주의 개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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