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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명장 ⑦

한산모시 짜기 장인 방연옥

“찜통 같은 열기 속에서 태어나는 시원함이 모시의 매력이죠”

  • 한경심│한국문화평론가 icecreamhan@empas.com

한산모시 짜기 장인 방연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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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필 분량을 째는데 침이 석 되 들어간다는 말이 있어요. 실제로 째보면 저녁때는 배가 몹시 고프답니다.”

그를 따라 째어보니 물에 적신 태모시도 꺼칠꺼칠하기만 하다. 이것을 침으로 녹이면서 입술로 굵기를 가늠해가며 이와 혓바닥을 놀려 째는 과정이 쉽지 않다. 이렇게 ‘입으로’ 실을 만든다는 게 참 신기한데, 얼마나 가늘게 째느냐에 따라 모시의 질이 정해진다. ‘쨈’이 좋아 가늘게 짼 실은 세저(細苧), 중간치는 중저, 이보다 굵게 짼 것은 막저로 분류한다.

“째는 데 침이 많이 들어가니 침이 모자란 할머니들은 가늘게 째기가 힘듭니다. 남자 옷이나 나이 든 사람들 옷은 좀 굵게 째도 괜찮고, 젊은 사람이 입을 세모시를 만들려면 가늘게 째야 하죠.”

다 짼 모시는 모시풀 줄기 길이인 1~2m 사이다. 이 토막 난 모시 올을 길게 이어 실로 만드는 과정이 모시삼기인데, 삼기에도 역시 침이 들어간다. 모시 올을 버팀목(쩐지)에 걸어놓고 두 올씩 가져다 침을 묻혀 맨 허벅지에다 대고 밀어 잇는다.

“일본 모시는 손으로 잇는데 우리보다 일은 더디지만 가늘고 예쁩디다. 그렇지만 우리 모시가 더 매끄럽게 이어지고, 다 짜고 나면 더 뻣뻣하긴 해도 일단 베로 짠 뒤엔 신기하게 더 부드러워져요.”



다른 공예품도 그렇지만 모시 만드는 과정 역시 우리 것은 태양과 바람, 사람의 침, 입과 허벅지 등을 사용해 자연의 힘과 인간의 노고가 더 많이 들어간다. 그만큼 시간이 많이 걸리지만 나중에는 빨수록 더 빛이 고와지고 하얘지며, 내구성이나 시원함은 어떤 섬유에도 댈 게 아니다.

이렇게 삼은 실을 일정한 분량이 되도록 한 덩어리씩 모아 열십자로 묶는다. 이것이 모시 굿이다. 한 필을 짜는 데 모시 굿이 스무 개 필요하다. 씨실로 열 굿, 날실로 열 굿이 들어가는데 북에 들어갈 씨실은 좀 더 고운 올로 골라 꾸리에 감으면 열여덟 내지 스무 꾸리가 된다. 모시 굿까지 완성하면 모시 날기를 해야 한다. 날기는 날실을 계량하는 방법으로, 날실을 몇 올 쓸지 결정하는 일이다(새수 정하기). 정해진 폭 30㎝ 안에 날실이 많이 들어갈수록 고운 모시가 된다. 한산세모시는 9새나 10새인데, 720올에서 800올 사이다. 마당에 젖을대(조슬대)를 세워두고 그 젖을대에 난 구멍 사이로 실을 빼서 양쪽 날틀을 오가며 한 필 길이에 맞추어 날실 올수를 맞춘다.

비단보다 고운 보름새 모시를 이제 못 짜는 이유

한산모시 짜기 장인 방연옥

첫 수확을 앞둔 모시풀 앞에서. 모시는 시원하지만, 모시풀은 추위에 몹시 약하다.

날기가 끝나면 실을 바디에 일일이 끼워야 한다. 새수에 따라 바디 종류도 달라진다. 예전에는 보름새(15새)까지 짰다고 하는데, 1000올이 넘는 날실이 들어가는 보름새 모시는 비단보다 고와 잠자리 날개 같았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9새, 10새(금속바디로는 8승6모~8승9모)면 최고 세모시다.

“개량베틀의 금속바디로는 그 정도가 한계입니다. 보름새를 짜려면 적어도 살이 500개 이상짜리 바디가 있어야 하는데, 무형문화재 바디장이 돌아가신 뒤로 보름새 바디를 구할 수가 없어요. 예전에 쓰던 바디가 굴러다니면 사람들은 그냥 버리거나 태워버렸지요.”

집에서 베를 더는 짜지 않게 되면서 베틀이 사라졌고, 베틀의 부속품인 바디 역시 그렇게 사라져갔다.

“돌아가신 바디장 선생님한테 바디 만드는 법을 배운 후계자가 있긴 한데, 한창 가정을 이끌 나이에 좋은 데 취직도 됐다니까 월급 100만 원에 일만 많은 명예직인 문화재가 되려고 할지 모르겠어요. 본인도 고민하는가봐요.”

새수에 따라 바디에 실을 끼울 때는 바디 살 하나에 두 올을 끼운다. 바디살마다 낀 두 올 실이 나중에 바디째 베틀에 올라가면 잉앗대에 의해 잉아올과 사올로 아래위로 갈라지고, 북에서 나온 씨줄이 그 사이를 오가며 서로 엉겨 직조된다. 세 자루 잉앗대는 예부터 시인의 상상력을 자극했는지 시에 자주 등장하는데, 베틀노래에도 나온다고 한다.

“잉앗대는 삼형제요, 이 내 몸은 홀로 앉아 얼크렁덜크렁….”

그러나 바디에 끼운 날실을 베틀에 끼우기 전 마지막으로 해야 할 일이 있다. 바로 매기(또는 ‘메기’)다. 실이 매끈해지도록 풀을 먹이는 것인데, 짤 때 실이 엉키는 것을 막는 사전처리 작업이다. 바디에 걸린 실을 팽팽히 당기고 아래로는 왕겻불을 피워 말려가면서 날콩가루와 소금을 갠 풋닛가루(풋짓가루)를 바르는 매기작업은 방연옥에게 가장 어려운 과정이다.

“불 조절을 조금만 잘못하거나 날씨가 건조해도 바디는 안 내려가고 이은 부분은 끊어지고, 얼마나 까다로운지 그에 대면 짜기는 일도 아닙니다.”

귀한 옷감, 조선시대 루머까지 나돌아

이렇게 준비된 실로 한 필 짜는 데 걸리는 시간은 새수에 따라 다르지만 10새는 보름이 걸린다. 수확부터 치면 서너 달이 걸리는 셈이다. 적삼과 치마 한 벌에 남자 윗도리 한 벌이 나오는 모시 한 필의 가격은 고운 세저는 150만 원, 중저는 100만 원, 막저는 그보다 훨씬 싸다.

“처음에는 비싸다고 하시는 분들도 만드는 과정을 보시면 비싸지 않다고 해요. 아토피를 전혀 일으키지 않는 천연섬유요, 모시를 완성하기까지 손길이 4000번이나 들어가는 명품입니다.”

요즘은 할머니들이 만들어온 모시 굿을 사서 방연옥 장인은 날고 매고 짜기만 한다. 모시 굿 가격이 만만치 않아 한 필 분량이 50만 원이다. 한때 우리나라에 중국 모시가 대거 들어와 문제가 된 적이 있는데, 한산모시는 안전할까?

“한산모시는 오로지 서천군 태모시만 씁니다. 저는 할머니들이 어느 밭의 모시풀로 이 작업을 하시는지 죄다 알고 있으니까요. 저야 중국 태모시가 어떻게 생겼는지 본 적도 없지만 중국 모시로 짠 것은 땀에 젖으면 축축 처지고 달라붙는다고 해요. 우리 모시는 좀처럼 살에 붙질 않고, 처지는 대신 위로 말려 올라갑니다.”

땀이 차도 바람 한번 불면 다시 까슬까슬해져 며칠을 입어도 상쾌하고, 아무리 낡은 모시도 깨끗이 빨아 풀해 입으면 날아갈 듯 새뜻하다.

“모시는 빨 때 조리로 건져 올릴 정도로 해진 거라도 말려 풀하면 새것처럼 입을 수 있다는 말이 있어요. 기워 입어도 괜찮고, 살짝 구겨져도 멋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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