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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서 민중봉기 일으키겠다 내 방식 주체사상 포기 안 해”

북한 민주화운동하다 中안전부서 고문 김영환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북한서 민중봉기 일으키겠다 내 방식 주체사상 포기 안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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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부 요원들이 그의 얼굴에 복면을 씌웠다. 모든 것이 캄캄했다. 이튿날 오전 단둥(丹東) 안전국으로 이송됐다. 안전국 요원들은 처음엔 그가 ‘강철’이라는 사실을 몰랐다. 고문은 체포 사흘째부터 시작됐다. 의자에 앉힌 뒤 손을 뒤로 하게 해 수갑을 꽉 조였다. 한 달 동안 손을 제대로 쓸 수 없었다. “알고 있는 모든 사실을 얘기하라!”고 윽박질렀다. 그는 묵비권을 행사했다. “변호사, 영사 접견이 이뤄진 후 진술하겠다”고 맞섰다.

6일간 잠 안 재우기 고문

4월 10일부터 6일간 잠을 못 자게 했다. 악명 높은 ‘잠 안 재우기’ 고문이 시작된 것이다. 6일 동안 2, 3초를 졸은 게 수면의 전부인 것 같다.

“잠이 들려는 찰나마다 수사관들이 뭔가를 두드려 굉음을 내거나 목덜미를 때렸다.”

▼ 사람이 6일 동안 자지 않고 살 수 있나.



“넋이 나가지는 않는다. 멍해진다.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는다.”

▼ 살려달라고 읍소하지는 않았나.

“나는 읍소 같은 것 못하는 성격이다.”

어느 날은 오후 7시부터 다음 날 아침 6시까지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하고 서 있어야 했다. 높이가 25㎝가량인 의자에 40시간 넘게 앉아 있은 적도 있다. 다리가 끊어지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4월 15일 수사관이 그의 얼굴에 복면을 씌웠다. 심전도 검사, 혈압 검사를 했다. 그날 오후부터 구타가 시작됐다. 얼굴을 주로 때렸다. 50㎝ 길이의 전기막대가 들어왔다. 고문한 자의 얼굴이 몽타주를 그릴 수 있을 만큼 지금도 또렷하다.

“괴력의 남자가 있었다. 엄청난 힘으로 나를 때렸다. 석고상처럼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초저녁부터 시작한 전기고문은 이튿날 새벽까지 이어졌다. 전기막대를 옷 속으로 집어넣어 등과 가슴에 연거푸 갖다 댔다. 어떤 말로도 나타낼 수 없는 고통이 밀려왔다. 얼굴 구타와 전기 고문을 번갈아 했다.

▼ 전기막대로 몸을 지질 때 느낌은.

“고통스러워 어떤 생각도 들지 않는다.”

4월 16일 묵비권을 포기하자 고문은 중단됐다. 조사를 받은 한 달 동안 수갑을 찬 채 의자에 앉아 잠을 자야 했다. 살갗에 벌레가 기어 다니는 것 같았다. 500군데 가까이 화상을 입었다. 몸에서는 토할 것 같은 냄새가 났다. 30일 동안 이를 닦지 못했다. 머리칼도 몇 가닥씩 엉겨붙었다. 4월 29일 단둥구치소로 이감되고 나서야 머리를 감았다.

“북한서 민중봉기 일으키겠다 내 방식 주체사상 포기 안 해”

북한 민주화운동가 김영환 씨가 중국에 억류된 지 114일 만인 7월 20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했다.

▼ 중국 안전부가 왜 고문했다고 보나.

“우리 조직을 낱낱이 들춰내려고 한 것 아니었겠나. 여하튼 미스터리다. 단둥이 변경(邊境)이다 보니 세상 물정 모르고 그랬다는 얘기도 있으나 베이징과 어떤 교감이 있지 않았을까 싶다. 중국 당국은 전화 감청, 인터넷 감청, 미행을 통해 우리 조직과 관련해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함께 잡힌 3명의 진술을 통해 파악한 것도 적지 않다. 나에 대한 조사는 감청, 미행, 취조를 통해 얻은 정보를 확인하는 수준이었다.”

중국 당국이 지목한 죄목은 둘이다. 첫째는 중국인을 이용해 북한 정권 전복 활동을 했다는 것이다. 여기서 중국인은 조선족, 북한에 거주하는 중국 화교를 아우르는 말이다. 둘째는 중국 영토에서 우방인 북한을 상대로 정보수집 활동을 했다는 것이다.

“고문하면서 요구한 것은, 두 가지다. 묵비권을 철회하는 것, 두 가지 죄목을 모두 인정하는 것이었다.”

“26년 전 안기부 떠올라”

▼ 중국 및 북한 내 조직과 관련해 진술하라는 게 아니라 죄를 인정하라는 게 고문의 주목적이었나.

“안전부가 상당히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나한테는 조직망과 관련해서는 구체적으로 묻지 않았다.”

그는 전기막대 고문을 당하면서 26년 전 안기부에서 고문당할 때가 떠올라 만감이 교차했다고 한다.

“나는 고문에 이력이 나 있다. 고통만 따지면 안전부의 고문이 안기부의 그것보다 훨씬 고통스러웠다. 고문 기술도 더 능숙했고.”

안기부는 1987년 구국학생연맹(구학련)의 서울대 법대생 김영환·하영옥·박○○군을 체포했다. 그는 안기부에서 47일 동안 고문을 당했다. 수사관들이 처음 20일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몽둥이질을 했다. 몸이 푸석푸석해졌다. 팔, 다리를 손가락으로 누르면 푹 들어갔는데, 손가락을 떼어도 피부가 원상 복구되지 않았다. 175㎝, 55㎏의 말라깽이 시절이었는데 부어오른 데를 연거푸 때려 겉으로는 뚱보처럼 보였다. 원산폭격 같은 기합을 받을 때는 공포가 밀려오지 않아 편했을 만큼 고문은 가혹했다. 안기부 수사관은 강철서신을 두고 “23세 대학생이 쓴 글이 아니다. 배후를 대라”고 윽박질렀다 그는 “내가 강철서신을 썼다”고 자백했지만 “믿을 수 없다”며 고문을 계속했다. 준(準)혁명조직을 표방했으나 지하 서클 수준이던 구학련은 이후 반제청년동맹을 거쳐 북한과 직접 연계된 민혁당으로 치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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