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interview

“조국 위해 두 번 死線 넘어…돌아온 건 이중간첩 굴레”

前 북파 민간공작원 김소웅 ‘침묵서약’ 50년 만에 입 열다

  • 최호열 기자 │honeypapa@donga.com

“조국 위해 두 번 死線 넘어…돌아온 건 이중간첩 굴레”

4/5
군부대 인근에 도착한 두 사람은 하루 동안 동태를 살핀 후 그날 밤 철조망을 끊고 잠입했다. 미리 파악해둔 대로 사무실로 쓰이는 막사에 접근해 한 명은 망을 보고 다른 사람이 들어가 서류를 탈취했다.

▼ 기밀서류인지는 어떻게 알 수 있나.

“그걸 어떻게 일일이 확인해. 그냥 손에 잡히는 대로 배낭에 쑤셔넣고 나오는 거지.”

군부대를 빠져나와 북방한계선까지 오는 데는 하루밖에 안 걸렸다. 뛰고 또 뛰었다. 한겨울인데도 땀이 흥건하게 흘렀다.

▼ 탈취한 서류엔 어떤 내용들이 있었나.



“배낭째 ‘선생’에게 넘겼어. 뭐였는지 얘길 안 해주더라고. ‘고생했다, 쉬어라’ 그걸로 끝이야. 보름인가 있다가 피로 풀러 가자며 문산 시내 한번 데리고 나가고.”

포로가 되다

첫 침투작전에 성공한 지 한 달쯤 지났을까. 산악훈련을 하느라 며칠 하숙집을 비웠다가 돌아와보니 난리가 나 있었다. 그 사이에 집주인 남자(이름이 김영준이었고, 해군 출신이라고 했다)가 목이 잘린 채 살해된 것이다.

“우리가 거기 산다는 걸 북한군이 알았던 거야. 주인집 남자를 우리로 알고 목을 따간 거지. 그 얼마 전에도 전방의 한 분대가 북한군에게 전멸당한 사건이 있었어.”

2월경, 두 번째 작전 지시가 떨어졌다. 이번엔 요인 납치·암살이었다. 민족보위성(현재의 인민무력부) 소속의 상좌(대령)였는데, 그가 개성으로 시찰을 나온다는 것이었다. 그의 사진을 보여주며 얼굴을 익히게 하고는 며칠 몇 시경에 어디, 그다음엔 어디에 나타난다는 동선을 암기하게 했다.

“실패하면 평양까지 가서라도 잡아오든지 죽이든지 하라고 하더군. 그런데 시도도 못하고 잡혔어.”

아직도 작전 실패에 대한 부끄러움이 남아 있는 것일까, 그는 이 임무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하기를 꺼렸다.

“1차 침투 때와 같은 루트로 북한에 침투했는데, 진눈깨비가 내리는 몹시 추운 날이었어. 갈대밭에 숨어 있는데 속옷까지 다 젖어 얼어 죽을 것 같더라고. 이현방이 ‘얼어 죽어도 죽고 잡혀 죽어도 죽으니까, 불이나 쬐고 죽자’고 하는 거야. 나도 너무 추워서 그러자고 했지. 고형연료로 갈대를 태우는데 눈에 젖었는데도 불길이 확 올라오더라고. 불 옆에서 이현방은 자고, 나는 보초를 섰지.”

졸음이 몰려왔다. 꿈결에 갈대 스치는 소리가 났다. 바람에 스치는 소리와 동물이 지나가는 소리, 사람이 지나가는 소리는 다 다르다. 번쩍 정신이 들었다. 이내 갈대 스치는 소리가 사방에서 촤악 하고 퍼졌다. 올 게 왔구나 싶었다. 마른침을 삼키며 가만히 총을 들려는 순간, 뒤통수에서 ‘찰칵’ 노리쇠 장전 소리가 들렸다. “동무, 움직이지 말라요.”

눈을 가린 채 끌려갔다. 돼지 울음소리가 나는 곳을 지나 진흙이 푹푹 빠지는 곳을 지나 끌려간 곳은 어느 창고. 이현방은 다른 곳에 감금됐다.

“단발머리 여군이 심문을 하더군. ‘동무, 솔직하게 말하면 김일성대학도 보내줄 수 있고, 영웅칭호도 받을 수 있다’며 숨김없이 말하라고 회유하는 거야. 좋은 음식도 주고. 난 그냥 남조선이 싫어서 이곳에 온 거라고 버텼어. 이름을 쓰라고 하면 글씨를 몰라서 못 쓴다고 하고. 그런데 이틀인가 있다가 조사관이 내 앞에 지도를 펼쳐놓는데, 보니까 내가 태어난 동네야. ‘동무 이곳이 어딘지 잘 알지?’ 하며 손가락으로 가리키는데 내가 태어난 집이야. 깜짝 놀랐어. 다 알고 있으니까 숨김없이 말하라는 거지. 그래도 계속 오리발을 내밀었어.”

계속 진술을 거부하자 고문이 시작됐다. 잠을 안 재우고, 구타가 이어졌다. 잠을 못 자는 게 맞는 것보다 더 고통스러웠다.

“며칠 고문을 하더니 큰 부대로 이송을 하더라고. 그런데 우리 둘을 이송하는 데 3명밖에 안 따라오는 거야. 포승에 묶인 채 차를 타고 가다 꾀를 내 배탈이 나서 죽을 것 같다고 연기를 했지. 처음엔 그냥 바지에 싸라고 하다가 하도 급해 죽겠다고 난리를 피우니까 마지못해 차를 세워. 손으로 바지를 내릴 수 있어야 할 것 아니냐고 하니까 한 명이 포승을 느슨하게 해주려고 가까이 오더라고. 그때 이현방과 눈짓을 주고받고는 단숨에 목을 꺾어버리고, 나머지 둘을 한 명씩 맡아 공격했지. 걔들이 기절했는지 죽었는지도 몰라. 곧장 현방이와 서로 반대쪽으로 튀었으니까.”

4/5
최호열 기자 │honeypapa@donga.com
목록 닫기

“조국 위해 두 번 死線 넘어…돌아온 건 이중간첩 굴레”

댓글 창 닫기

2021/12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