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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해군 함정 이름에 ‘서산(西山)’도 넣어야”

서산대사 재조명운동 벌이는 범각 스님(대흥사 주지)

  • 김진수 기자 │jockey@donga.com

“해군 함정 이름에 ‘서산(西山)’도 넣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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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서 소외된 의승군

▼ 조계종 불교사회연구소가 6월 27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서산대제의 국가제향 복원을 위한 학술세미나’를 열었는데, 어떤 논의가 오갔습니까.

“조선시대 전란사에서 의승군의 위상과 역할, 단절된 표충사 서산대사 춘추(春秋)제향의 역사와 의의, 현재적 복원 방향에 대한 논의가 있었습니다. 발제자와 토론자들은 현행 제도 아래서 서산대제를 국가제향으로 복원할 수 있는 방법은 가칭 ‘호국 의승군의 날’을 국가기념일로 지정해 국가제향을 봉행하고 역사 속에 묻힌 의승군을 추모하는 것이라 결론지었습니다. 이를 추진하기 위해 대흥사 차원에서 1996년 발족한 (사)서산대사 호국정신 선양회를 비롯해 조계종 불교사회연구소, 국회 정각회(회장 정갑윤 의원) 등의 적극적인 노력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불교계는 물론 타 종교계와 각계각층의 추진위원회를 범국가적으로 구성하고 정부와 국회에 대한 청원, 서명운동과 여론 홍보 등 후속작업을 벌일 예정입니다.”

▼ 그렇다 해도 서산대사에 대한 국가적 재조명까지는 걸림돌이 적지 않을 텐데요.

“정부가 역사적 위인들에 대한 연구 및 홍보 사업에 지원을 아끼지 않는 것으로 압니다. 그러나 교육적 측면에서 볼 때 고등학교 검정 한국사교과서 6종 중 단 1종에서만 겨우 의승장 이름을 거명하는 수준입니다. 엄존했던 역사적 사실을 누락한 겁니다. 이런 현실은 우리 역사교육 및 인식의 퇴보를 불러오고 서산대사 국가제향에 대한 재조명까지 어렵게 만듭니다. 서산대사와 의승군에 대한 연구, 홍보사업도 정부 주도로 이뤄져야 자랑스러운 우리 역사를 회복해 교훈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해군 함정 이름에 ‘서산(西山)’도 넣어야”

대흥사 전경. 조선 정조 때 대흥사 안에 건립된 서산대사의 유교식 사당인 표충사(작은 사진).

北에서도 제향 단절

▼ 종단 차원에선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까.

“많은 노력을 해왔어요. 최근의 성과는 8월 18~19일 조계종 민족공동체추진본부(본부장 지홍 스님)와 북한의 조선불교도련맹 중앙위원회(위원장 강수린, 이하 조불련)가 중국 선양(瀋陽)에서 개최한 회의에서 11월 19~22일 북한 묘향산 보현사 내 서산대사 사당인 수충사에서 서산대사 제향을 공동으로 봉행하는 데 합의한 것입니다. 이는 서산대사 국가제향의 온전한 복원과 남북한 호국 역사의 전통을 공동 계승하기 위한 것으로, 문화체육관광부의 예산 지원과 통일부의 승인 절차를 통해 진행될 겁니다. 현재 북한에서도 서산대사 제향은 단절된 상태입니다.”

▼ 묘향산 수충사를 방문한 적이 있나요.

“소설 ‘서산’ 집필에 필요한 자료를 수집하기 위해 수충사에 직접 가볼 필요가 있었습니다. 김대중 정부 이후 자료 수집 및 현장 방문차 통일부 승인을 얻어 4차례 다녀왔어요. 당시 보현사 주지스님과 조불련 위원장은 제가 서산대사를 모신 대흥사의 주지라고 하니 매우 반갑게 맞아줬습니다. 서산대사에 대한 존경심이 대단했어요. 김일성 주석도 서산대사를 민족을 구한 영웅으로 존경하고 수충사를 보존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하지만 북한의 관점에선 나름 수충사가 보존됐을지 몰라도 제가 보기엔 문화재 보수를 해야 할 것이 많았어요. 남북 공동 제향이 성사돼 정례화하면 지원을 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 현재 의승군의 충의정신을 기리는 제향이 대흥사의 서산대제, 경남 밀양 표충사의 사명대사 추모대제, 충남 공주 갑사의 영규대사 대제 등 연고가 있는 개별 사찰 단위로 이뤄지고 있는데요.

“사찰별 추모 제향은 해당 지역민과 오래전부터 역사적 근거를 바탕으로 거행돼 왔기에 앞으로도 존중되고 지속돼야 합니다. 다만 ‘호국 의승군의 날’이 국가기념일로 지정되면 서산대사 국가제향, 무명 의승군 위령대제와 더불어 합동 배향을 사찰별 추모제와는 별도로 거행해도 무방하리라 봅니다. 정부와 조계종의 종합적 판단이 필요한 부분이지만 사명, 영규 대사 두 분 모두 서산대사의 제자이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의병은 있되 의승병은 없다

▼ 일반 의병과 달리 의승군에 대한 국가적 예우가 ‘방치’ 수준이라는 말씀인데….

“전국 어느 지방을 가더라도 시골마을 구석구석까지 의병들의 사당, 위령비, 의병장 생가 등이 훌륭하게 지어져 있어요. 그런데 ‘조헌과 칠백의총’을 예로 들면 그곳 안내문엔 의승병도 함께 순국했다고 기록돼 있어요. 1592년 1만5000명의 왜군을 막아낸 금산성 연곤평 전투인데, 조헌 선생 휘하의 유생 출신 의병 700명뿐 아니라 영규 대사가 이끈 승병 800명도 같이 싸우다 전사했지만, 의병의 역사만 존재하고 승군의 역사는 전해지지 않습니다. 칠백의총만 국가에서 제향을 모시고 성역화했지, 의승병을 위한 사당이나 비석은 없습니다. 물론 제사도 모시지 않고요.

임란 때 수락산, 노원평 등의 전투에서 보듯, 일반 의병이 싸우기 꺼린 불리하고 험난한 전투는 무명 의승군이 거의 도맡아 묵묵히 싸워 승리했어요. 의승수군(義僧水軍)도 이순신 장군이 조정에 3차례나 상소를 올려 그들에게 표창을 내리라고 건의할 정도로 열심히 싸웠습니다. 정부가 무명 의승군 역사에 대한 연구, 명예회복 및 위령시설 건립을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답설야중거 불수호란행…’

▼ 서산대사 국가제향 복원 외에 또 다른 계획이 있습니까.

“향후 새롭게 도입할 대한민국 해군 함정의 명명(命名)에 서산, 사명, 처영 대사의 명칭을 부여해달라고 조계종과 군종교구를 통해 국방부에 정식으로 청원할 겁니다. 연평해전 당시 전사한 해군 장병들을 기리는 영화 제작을 지원하는 바자회에 지난 6월 참석했는데, 해군 3함대사령관이 감사의 표시로 참석자들을 선상 연회에 초대했어요. 해군의 새로운 함정 진수식 때 역사적 영웅의 이름을 붙인다는 걸 그때 알았습니다.

그간 진수된 이지스함과 구축함 중에 ‘율곡 이이함’ ‘서애 류성룡함’이 있다는 사실에 놀랐어요. 유성룡, 이이 같은 분은 임란 당시 전투 경험이 없던 문신(文臣)인데, 용맹한 기상을 뽐내야 할 함정 명칭에 선조와 함께 피난길에 올랐던 이들의 이름을 붙인 건 어울리지 않습니다. 학자의 이름은 연구사업이나 책 제목에 붙이는 게 더 어울리지 않을까요.

반면 그들과 동시대에 나라와 백성을 구하려고 목숨 걸고 싸운 서산, 사명, 처영 대사 등 호국 의승장들의 이름이 명명 과정에서 후보로조차 거론되지 않는 건 불공평한 처사입니다. 저는 그분들의 종교적 덕망을 기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국가로부터 공식적으로 군권을 부여받아 구국의 공을 세운 기상을 이어받자는 의미에서 제안하는 겁니다.”

‘답설야중거 불수호란행(踏雪野中去 不須胡亂行·눈 덮인 들판을 걸어갈제, 발걸음 하나라도 어지럽게 걷지 말라), 금일아행적 수작후인정(今日我行跡 遂作後人程·오늘 내가 걸어간 발자국이 뒷사람의 이정표가 될 것이다).’

절대 부끄럽지 않은 길을 가겠다는 신념을 담은 서산대사의 선시 ‘답설야중거’에서 그의 진면목이 엿보인다. 이 시구처럼, 가려진 역사의 진실을 바로잡는 것도 부끄럽지 않은 길을 걷는 일 아닐까. 박근혜 대통령은 새누리당 대통령후보이던 지난해 12월 6일 대전 유성관광호텔에서 열린 ‘대한민국 지키기 불교도총연합’ 주최 ‘임진난 금산전투 승군 역사 재조명’ 세미나에 다음과 같은 내용의 축전을 보냈다.

‘잊힌 역사 복원도 대한민국을 반석 위에 올려놓는 일로, 행사를 축하한다.’

신동아 2013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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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수 기자 │jock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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