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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식으로 만들었더니 ‘과학적으로 최고’ 라네요”

고려紙 재현에 평생 바친 김삼식 한지장(韓紙匠)

  • 한경심 │한국문화평론가 icecreamhan@empas.com

“옛날식으로 만들었더니 ‘과학적으로 최고’ 라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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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식으로 만들었더니 ‘과학적으로 최고’ 라네요”

2012년 밀라노 디자인 비엔날레에 선보인 디자이너 김연진의 작품. 김삼식 장인의 한지로 만들었다.

만약 그때 완주공장 사장이 화학제품을 가르쳐줬다면, 젊은 삼식 씨는 그 약품을 썼을까. 아마 썼을 것이다. 그가 전통방법을 고수한 것은 무슨 민족의식이나 전통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몰라서, 돈이 들어서 못했을 뿐이다. 전통이나 역사를 지키는 것은 때로 역설적이다. 지금 김삼식 장인은 “돈을 수백억 원 준다고 해도 이 일과 맞바꾸지 않을 것”이라며 자부심과 보람을 느끼고 있지만, 이렇게 되기까지 그가 견뎌온 세월은 만만치 않았다.

오늘날 ‘지식’이라고 하면 책과 함께 정보를 담은 컴퓨터를 떠올리겠지만, 과거 지식은 모두 종이책에 있었다. 그리고 그 지식은 정보보다는 ‘지혜’나 ‘진리’에 가까웠다. 그래서 불세출의 시인으로 꼽히는 고려의 이규보는 대장경을 ‘부처의 금구옥설(金口玉說)을 담은 그릇’이라고 했다. 지식 또는 지혜를 담는 그릇을 만드는 기술, 즉 종이 제작과 인쇄기술은 고대 사회에서 문화의 척도였다. 20세기 초까지 동양에서 대장경 제작은 지식과 문화의 총화로서, 그 사업은 중국을 거쳐 고려, 그리고 일본이 주도권을 잡게 된다.

백번 손질한 종이

묘하게도 종이의 역사 또한 같은 궤적을 그린다. 신라시대 희고 얇은 종이에 먹으로 필사한 ‘백지묵서(白紙墨書) 화엄경’은 향수를 뿌려가며 키운 닥나무로 만든 뛰어난 종이 제작 기술을 그대로 보여주며, 문화가 꽃핀 고려시대에 이르면 ‘고려지’의 명성이 동양 전체에 뜨르르했다.

중국에서 고려지를 누에고치 ‘견(繭)’자를 쓴 ‘견지’라고 부른 것은, 고려지가 비단처럼 곱고 질겼기 때문이다. 실제로 중국 사람들은 명 황제의 스승이자 조선에 사신으로 왔던 동월(董越)이 고려지를 태워 식물섬유로 만든 것임을 확인할 때까지 고려지는 누에고치 솜을 넣어 만든 걸로 믿었다.



고려지의 명성이 얼마나 뿌리 깊었는지, 조선시대까지 이어져 조선 종이도 고려지 또는 견지로 계속 불렸다. 그랬기에 명나라의 뛰어난 문인이자 서화가인 동기창(董其昌)은 조선의 고려지인 경면전(鏡面閻·거울처럼 반들거리는 종이)에 작품을 남겼고, 청나라 시대에 나온 ‘문방사고도설’에는 “도연명이 쓴 ‘난정서’에 누에고치 종이를 사용했는데, 지금 도읍에서 쓰는 고려지다”라고 했다. 난정서의 원본이 이미 사라진 시대에 이런 글을 적은 것은 그만큼 고려지를 귀하게 여겨서일 것이다.

고려지가 이토록 전설적인 명성을 갖게 된 것은 뛰어난 제작기술 때문이었다. 중국이나 일본과 달리 참닥나무를 원료로 외발뜨기해서 내구성이 좋은 데다 종이를 만든 다음 하는 도침(두들겨 다듬는 작업) 과정은 신라시대부터 매우 발달해 우리 종이를 특별히 ‘백추지(白?紙)’라고 불렀다. 백추지란 ‘두드린 하얀 종이’라는 뜻인데, 한지장들은 흰 백(白)자 대신 일백 백(百)자를 써서 백 번 손질한 종이라는 뜻으로 쓰기도 한다. 그만큼 종이를 만드는 데 손길과 공력이 많이 든다는 뜻이리라. 김삼식 장인도 찹쌀풀을 뿌려가며 쉰 번씩 두들기는 도침 과정을 거쳐 표면이 고운 종이를 만들어낸다.

종이의 질은 문화의 성격도 결정한다. 얇아서 먹이 잘 번지는 중국 그림은 발묵법(潑墨法)이 유행했고, 우리 그림은 적절한 발묵과 사실적인 선이 함께 발달했다. 임진왜란 후 종이 제작 기술이 쇠퇴했음에도 청 황제의 조서용 종이를 조선이 공물로 바친 것은 중국에서는 먹이 쉬 번지지 않아 중후한 맛을 내는 우리 종이를 오히려 격조 높은 종이로 쳤기 때문이다.

대학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하고 다시 충북대 목재종이학과를 나온 춘호 씨는 “얇은 종이를 못 만드는 것이 아니라, 수요가 없었을 뿐”이라고 한다. 실제로 초조대장경과 조선왕조실록을 복원하는 데 들어가는 종이를 만들 때 주문대로 종이 두께와 평량(종이 무게를 재는 단위)을 조절하고 있다. 초조대장경 복원사업을 주관하는 대장경연구소에서 일본에서 가져온 대장경 원본을 본 김삼식 장인은 탄성을 터뜨렸다.

“1000년 이상 됐다는데, 금방 찍은 것처럼 먹빛이 살아 있어요. 1000년을 견뎌온 종이라니 얼마나 기특합니까. 저의 종이도 1000년을 갈 것이라 생각하니 이보다 더한 영광은 없지요.”

신동아 2014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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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심 │한국문화평론가 icecreamhan@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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