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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 한국의 명장

불 속에서 피어난 꽃 꽃처럼 아름다운 뿔

화각장 이재만

  • 한경심 │한국문화평론가 icecreamhan@empas.com

불 속에서 피어난 꽃 꽃처럼 아름다운 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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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 속에서 피어난 꽃 꽃처럼 아름다운 뿔
스승 수발하며 배운 기술

1966년 그가 스승 음일천 선생 밑으로 들어갔을 때 음 선생은 이미 60대였다. 음일천은 일제강점기에 급속히 사라져가는 화각공예의 맥을 이은 거의 유일한 존재로, 현재 세 명밖에 안 되는 화각장이 모두 그의 제자다.

“음 선생님 외 다른 화각장은 들어본 바 없지만, 지금 남아 있는 그 시대 화각 작품을 보면 선생님 말고 두어 명 더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음 선생님처럼 활동하고 제자를 키워낸 장인은 없지요.”

서울 태생인 음일천 선생은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쇠뼈를 다듬는 각질장이자 거북 등딱지에 채색하는 대모공예 장인이었다고 한다. 그의 아버지는 고종 때 대모로 만든 관자(망건에 다는 고리로 옥이나 금, 뿔 등으로 만들었다)나 안경테 등을 왕실에 납품하고 일본에 수출도 한 이름난 장인이었다. 음일천은 서울 배재학당과 간도 영신학교에서 공부하고 가업을 이어받아 일제강점기 일본 민속학자들과 함께 조선 공예를 조사하러 다니기도 했다.

조선시대 후기 크게 발달한 화각공예 장인들은 일제강점기 들어 몇몇 일본 상인이나 예술가들의 하도급업자로 전락했고, 일본인들은 다듬기 어렵고 공정도 복잡한 화각 대신 셀룰로이드와 유리에다 그림을 그리게 함으로써 화각공예는 전멸하다시피 했다. 이때 음일천은 오히려 각질장에서 화각장이 되기를 자처하고 화각공예의 맥을 이은 것이다.



광복 후 혼란기에 음일천은 화각 대신 백동 수저를 제작하거나 고무신 원료 공장을 운영하기도 했고, 한때는 정치활동에 나선 적도 있다. 6·25전쟁 이후 다시 화각을 잡아 자본가와 손잡고 수출까지 한 적도 있지만 파산한 뒤 집에서 작업하게 됐다. 이재만이 음일천 선생을 만난 것은 음 선생이 아내도 잃고 홀로 셋집에서 일하던 노년기였다.

불 속에서 피어난 꽃 꽃처럼 아름다운 뿔

거친 수소의 뿔이 아름다운 화각으로 완성되기까지 적어도 서른다섯 과정이 필요하다. 투명한 각지로 다듬어낼 수 있는 뿔은 세상에 우리 수소, 그것도 2~3년생의 뿔밖에 없다. 그래서 화각공예는 우리나라에서만 발달하게 됐다.

“그때 저의 집은 성동구 성수동이고 선생님 댁은 화양동에 있었는데, 이듬해 고덕(하일동)으로 공방을 옮겨가면서 집과 멀어졌지요. 그때만 해도 고덕은 버스가 하루 두세 번밖에 안 다닐 정도로 외딴곳이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그는 공방에서 숙식하며 선생님을 모셨다. 공예는 대개 도제로 들어가 스승을 수발하며 기술을 배운다지만 화각장 수업은 일도 어렵거니와 혼자 스승을 모셔야 하는 고된 길이었다.

“밥을 해드려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때로 쌀이 떨어지면 남의 밭에서 일해주고 쌀을 얻어 와야 했습니다. 어쩌다 제사나 명절 때 집에 들러도 하룻밤을 자고 갈 수가 없었습니다. 어머니는 ‘선생님 굶으시겠다’며 반찬을 싸서 곧장 돌려보내곤 하셨어요.”

기록에 등장하는 음일천의 노년은 마음 내키면 작업하고, 돈 떨어지면 굶고, 누가 작품을 달라면 가져가라는 식으로 살았다고 하니 옛 시대의 장인다운 풍모임에 틀림없다. 이재만이 기억하는 스승은 가끔 시내로 나갈 때면 두루마기 입고 지팡이를 짚고 가는 풍채 좋은 어른의 모습이다. 오늘날도 그렇지만 그때는 더욱 화각을 알아주는 이가 드물었고 따라서 수요도 극히 적었다. 하지만 가끔 인사동에서 작품이 팔릴 때면 약주를 걸치고 돌아오곤 했다. 화려한 지난날의 명성에 비하면 쓸쓸하기 짝이 없다고 하겠으나 어쩌면 스승의 기술을 전수받기에는 최고의 조건이었는지도 모른다.

“성격이 강하고 불같이 무서운 분이셨지만 정도 깊고 가르치실 땐 매우 꼼꼼하게 지도해주셨어요.”

얼마 남아 있지 않은 음일천의 작품은 유독 화사하고 곱다. 장인은 작품으로 이름을 남기기도 하지만 제자로 이름을 이어가는 존재이기도 하다. 그는 이재만의 정성 어린 시봉(侍奉)을 받으며 귀한 기술을 물려주었으니 장인으로서는 천명을 다한 셈이다.

화각장은 우선 재료인 쇠뿔을 처리하고 다듬을 줄 알아야 한다. 쇠뿔을 삶아 뿔 속의 뼈를 빼고 껍질을 쓰는데, 이 휜 뿔 껍질의 한쪽을 갈라(박타기) 펴서 종이처럼 얇게 다듬은 것이 각지(角紙)다. 투명한 각지에 그림을 그린 다음 진채 안료로 칠하고 이를 뒤집어[복채伏彩)] 장식하고자 하는 기물에 붙인다. 화각을 완성하려면 이렇게 쇠뿔 처리부터 화각을 붙이지 않은 부분 옻칠하기, 경첩이나 장석으로 마무리까지 여러 과정을 거친다. 예전에는 쇠뿔을 다루는 각질장이 따로 있었지만 이재만이 스승에게 배울 때는 농도 직접 짜고 목기도 죄다 손수 만들었다.

“장석도 철판을 사서 직접 두드려 만들었으니 두석장 일도 한 거지요. 이제 가구와 장석은 다른 사람 것을 쓰지만 그래도 화각을 완성하기까지 서른다섯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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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심 │한국문화평론가 icecreamhan@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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