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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가 사랑한 사군자 칼 삿됨을 물리치고 자신을 닦다

낙죽장도장 한상봉

  • 한경심 │한국문화평론가 icecreamhan@empas.com

선비가 사랑한 사군자 칼 삿됨을 물리치고 자신을 닦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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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봉 장인은 일본 국보로 지정된 백제의 칠지도(七支刀)도 낙죽장도의 먼 조상으로 삼고 싶어 한다.

“칠지도 명문에 백제에서 만든 것이라고 나와 있지만, 옛 백제 땅에서도 품질이 우수한 철이 나던 이곳 곡성 부근에서 만든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설성경 연세대 국문과 교수 말에 따르면 심청전에 등장하는 중국 상인이 철을 사러 이곳에 왔을 거라고 하는군요.”

심청의 고향을 황해도 해주로 보는 기존 학설과 달리 심청이 살던 곳은 곡성이고 인당수는 변산반도 앞 임수도(옛 이름 인수도)로 보는 설이 제기됨에 따라 곡성군에서는 심청 축제를 열고 있다. 심청전을 통해 철 생산지 곡성과 칠지도는 이렇게 연결된다. 사실 여부야 어떻든 곡성이 좋은 철 생산지였으니 칼 제작 기술이 발달했을 것은 당연하다. 실제로 중요무형문화재 은장도장 박용기 장인은 광양 사람이고, 낙죽장 김기찬(중요무형문화재)이 낙 하는 기술을 배운 곳도 전라도 송광사니 칼과 대나무, 낙죽 기술이 한자리에 모인 곳이 전라도 땅인 것만은 확실하다.

매난국죽을 구현하는 사군자 칼

그럼 낙죽장도에 새기는 글은 어떤 글인가? 물론 제한이 없다. 만드는 사람이나 칼 주인이 좋아하는 문장을 새기면 된다. 그러나 전체 일곱 마디 또는 아홉 마디 길이의 대나무에 들어갈 수 있는 글자에는 한계가 있다. 자주 새기는 글은 송나라 왕원지의 ‘황주죽루기’와 백거이의 ‘양죽기’, 진종황제 권학문, 그리고 굴원의 초사(楚辭) 등이다.



“아버지와 제가 가장 많이 쓰는 글은 대나무가 많이 나는 황주에서 대나무로 누각을 세우는 이야기를 담은 ‘황주죽루기’인데 총 368자로 길이가 적당하고, ‘양죽기’는 그보다 자수가 조금 많고, 권학문은 짧습니다.”

‘황주죽루기’에는 “학창의를 걸치고 화양건을 쓰고 손에는 ‘주역’ 한 권을 들고 향을 피우고 말없이 앉으면 세상 근심이 사라진다. 강산 저편 바람 타는 돛단배와 모래톱에 날아드는 물새와 연기처럼 피어나는 구름과 대나무 숲만 보일 뿐이다. 술기운 가시고 차 끓이는 연기가 사라지길 기다려 서산으로 지는 해를 보내고 떠오르는 맑은 달을 맞으니 이 또한 귀양살이하며 머무는 뛰어난 흥취다”라는 내용이 나온다.

대나무와 군자를 빗댄 ‘양죽기(養竹記)’에는 “대나무의 성질은 곧으니 곧음으로써 몸을 세운다. 군자는 그 성질을 보며 곧 의지하지 않고 중립할 것을 생각한다. 대나무 속은 비어서 그 비움으로 도를 체현한다. 군자는 그 속을 보며 (자신의 마음을) 비워 남을 받아들이는 방법을 생각한다”는 뜻깊은 구절이 등장한다. 한편 굴원의 유명한 초사에는 세속의 더러움에 차마 물들지 못하는 주인공에게 어부가 일러주는 “창랑의 물이 맑거든 내 갓끈을 씻고, 창랑의 물이 흐리거든 내 발을 씻으리라”는 탁영탁족(濯纓濯足)도 나온다. 모두 빼어난 문장이요, 군자의 곧은 마음과 세속을 멀리하는 즐거움,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와 철학이 담겼다.

“서양의 훌륭한 검에도 더러 좋은 명구가 새겨진 것이 있지만, 이렇게 작품 전체가 들어가는 경우는 없어요. 옛사람들은 다독보다 한 편의 글을 정독하고 숙독하는 편이었다지요. 낙죽 하면서 이 글을 늘 가까이 보고 외며 심신을 다독였을 선비들을 떠올립니다.”

또한 칼날에도 금은으로 입사하는 글이 있는데, ‘뿌리 없이 서지 못하고, 학문 없이 행하지 못한다(無本而不立, 無文而不行)’ ‘일편심(一片心)’ 같은 말이다. 특별히 사인검 같은 삿된 것을 물리치는 벽사용 칼날에는 북두칠성을 새기기도 한다. 이런 특징을 살려 낙죽장도에 ‘일편도’니 경인일에 만들었다고 ‘경인도’, 또는 ‘칠성죽장검’ 같은 이름을 붙이는데, 그 백미는 ‘사군자도’가 아닐까 한다. 칼 한 자루에 매화 난초 국화 대나무를 모두 표현한 것이 사군자도다.

“우선 대나무를 쓰고, 글자 한 자 한 자를 매화 꽃잎 무늬 속에 새기며, 칼집 고리에 다는 끈은 양피나 녹피를 초록으로 입혀 난초 잎 모양으로 늘어뜨리며 고리에 조개껍데기를 갈아 국화 모양으로 만들어 달면 매난국죽 사군자가 완성됩니다.”

이 정도면 선비가 누릴 수 있는 최대의 호사라 할 것이다. 비록 드러난 사치는 아니지만 정신적으로는 가장 풍부한 내용을 담은 낙죽장도가 사군자도다.

날을 안 벼리는 사인검과 사진검

선비들이 좋아하는 칼 중에는 인검(寅劍)과 진검(辰劍)이 있다. 즉 호랑이(寅)와 용(辰)을 상징하는 칼이다. 특히 호랑이해 인월의 인일 인시에 만든 칼은 사인검, 용해의 진월 진일 진시에 만든 사진검은 귀신도 벨 수 있는 위력을 가진 칼이다.

“귀신은 음의 기운인데, 양 기운이 모인 사인검이나 사진검은 모든 삿된 기운을 막아주지요. 사인검이나 사진검을 만들 수 있는 시기는 60년에 한 번밖에 안 돌아옵니다. 기술이 있다고 다 만들 수 있는 건 아니지요.”

그런데 한상봉 장인은 무슨 복인지, 사인검과 사진검을 다 만들었다. 부친 한병문도 사인검은 못 만들고 60일에 한 번씩 돌아오는 경인일에 경인도만 만들었을 뿐이다. 이미 이수자로 인정받은 그의 아들 역시 50년 가까이 기다려야 기회가 온다.

선비가 사랑한 사군자 칼 삿됨을 물리치고 자신을 닦다

이미 낙죽장도 이수자로 인정받은 아들 한준혁과 함께. 아들은 산업디자인 전공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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