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문열은 건축물과 문화재 일도 많이 한다. 조계사 탑의 상륜부 철물을 만들었고, 부여 정림사지 황동철물, 통도사 금강계단, 불갑사 대웅전 등의 철물을 복원하고 보수했다. 자신의 공방에서.
7단 자물쇠란 열쇠를 집어넣어 열기까지 일곱 단계를 거치는 자물쇠를 말한다. 대개 자물쇠는 서양식이든 동양식이든 열쇠를 집어넣고 돌리면 바로 열리지만, 7단 자물쇠는 열쇠를 넣는 구멍조차 찾기 힘들어 흔히 ‘비밀자물쇠’라 불린다. 그는 이 비밀자물쇠를 찾아 경남 진주 태정민속박물관의 김창문 관장(2003년 별세)을 만났다. 김 관장은 1950년대부터 장석과 자물쇠를 수집해온 이였다.
“박물관 전시실을 둘러보아도 특별한 것이 보이지 않았어요. 그래서 제가 중요한 게 있으면 좀 보여달라고 부탁을 드리니 처음에는 없다고 하더군요. 그분이 담배를 태우시기에, 나가서 담배를 몇 갑 사가지고 다시 찾았지요. 그러자 비로소 안으로 들어가시더니 조심스럽게 꺼내오셨어요.”
그러나 실측은 물론이고 스케치도 하지 못하게 했다. 그저 눈으로 볼 수밖에 없었다.
“수집가에게는 작품의 희소성이 제일 중요하니까 제게 허락하지 않은 것이 당연하지요. 외국인이 거금을 주고 사겠다는 것도 거절했을 정도로 귀하게 여겼으니까요.”
열쇠로 여는 방식만 잠깐 보고 온 그는 고속버스터미널에서 스케치를 하고 서울로 올라와서는 바로 공방으로 직행했다.
7단 자물쇠의 비밀을 풀다
“공방 문을 열며 이 자물쇠의 비밀을 풀 때까지 집에 안 들어가겠다고 결심했습니다. 머릿속에 담아둔 기억을 떠올리며 그 작동 원리를 아는 데까지 꼬박 닷새가 걸렸는데, 때가 한겨울이어서 추위에 고생깨나 했지요.”
그가 보여주는 7단 자물쇠는 장식처럼 보이는 광두정(대갈못)을 살짝 밀어야 열쇠구멍이 나타난다. 그리고 열쇠를 집어넣고 다시 각도와 방향을 바꾸어가며 밀고 돌리고, 이렇게 일곱 단계를 거쳐야 비로소 열린다. 처음 접한 사람은 열쇠가 있어도 열 수 없을 정도다. 하물며 이를 만드는 데는 얼마나 비상한 머리가 필요할 것인가.
“자물쇠 내부에 여러 비밀 장치가 있는데, 특히 각도를 45도로 꺾어둔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 때문에 애를 먹었지만 제가 처음 공방에 들어왔을 때부터 워낙 자물쇠를 많이 다루어봐서 웬만한 자물쇠는 자신이 있었지요.”
두석장은 장석만 만드는 것이 아니다. 반닫이나 함, 책장, 뒤주까지 자물쇠를 채워두는 가구가 많아 두석장은 자물쇠를 많이 만들게 된다. 또 자물쇠가 고장 나거나 열쇠를 잃어버리는 사람도 많아 자주 새로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그의 비상한 머리와 솜씨, 그리고 숱한 경험과 집념이 아니라면 7단 자물쇠의 비밀을 풀 수 없었을 것이다.
그는 이 7단 자물쇠를 비롯해 비밀 자물쇠를 유형별로 열 몇 가지 만들어 1993년 전승공예대전에 출품해 문화체육부장관상을 거머쥐었다.
“작품을 제출하고 나서 한번은 애들을 데리고 북한산에 올라갔는데 개울가에서 깜빡 잠이 들었어요. 그런데 꿈에 똥이 어마어마하게 많이 나타나는 겁니다. 정말이지 그렇게 많은 황금 똥은 처음 봤다니까요.”
길몽이라는 황금똥 꿈을 꾼 이튿날 전통공예관에서 전화가 왔다. “석 장짜리가 됐습니다”라는 소식이었다. 그때 1등은 상금이 500만 원, 2등은 400만 원, 3등은 300만 원이었는데 3등에 해당하는 문화체육부장관상을 받았다는 뜻이었다. 그의 나이 마흔다섯. 비로소 자신의 이름 석 자를 세상에 당당하게 내보이게 됐을 때, 그 감격은 어떠했을까.
“공방 문을 잠그고 나가 정처 없이 마냥 걸었습니다. 나중에 한 소목이 장석 맞추러 왔다가 공방 문이 닫힌 걸 보고 뭔 일이 있구나 하고 생각했답니다.”
이 7단 자물쇠는 독창성이 뛰어날 뿐 아니라 우리 겨레의 뛰어난 과학 수준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우리나라 자물쇠는 외양도 다양하고 아름답지만, 개폐 방식이 매우 정교하고 과학적입니다.”
실제로 그의 비밀자물쇠 기사를 접한 대전 국립중앙과학관 측에서는 그에게 자물쇠 제작을 의뢰했다. 자물쇠의 내부와 부속을 단계적으로 보여줄 수 있도록 만든 10여 점이 과학관에 전시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