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1월호

“아세안 신흥국과 힘 합쳐 중국·일본 견제해야”

김우중 前 대우그룹 회장

  • 하노이=구자홍 기자 | jhkoo@donga.com

    입력2014-10-22 17: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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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세안 신흥국과 힘 합쳐 중국·일본 견제해야”
    김우중 전 회장과는 9월 26일부터 29일까지 모두 세 차례 만났다. 김 전 회장의 건강은 양호해 보였다. 발음이 약간 불분명해진 것을 제외하곤 큰 문제가 없어 보였다. 이른 새벽 한 시간씩 산책하는 것으로 건강을 유지한다고 했다. 9월 26일 첫 만남에서는 전날(9월 25일) 있었던 경남 거제상공회의소 초청 강연과 지난 8월 말 발간된 ‘김우중과의 대화’(북스코프) 등이 화제에 올랐다.

    ▼ 책(‘김우중과의 대화’)을 읽고 대우 해체를 다시 보게 됐다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래요….”

    김 전 회장은 과거 일에 얽매이기보다는 현재 하는 일과 미래에 대한 계획에 더 많은 관심을 보였다. ‘신동아’와 세 차례 인터뷰하는 동안 대우그룹 해체 등 과거 문제에 대한 질문에는 침묵하거나 간단한 답변만 하고 넘어갔다. 그는 ‘김우중과의 대화’를 통해 과거 문제에 대한 자신의 생각은 충분히 밝혔다고 생각하는 듯 했다.

    ▼ 거제를 오랜만에 다녀오셨다고요.



    “상공회의소 초청으로 출판기념회를 열었어요. 대우조선이 있는 곳인데 인연이 참 깊은 곳이에요.”

    김우중 전 회장에게 거제는 각별한 곳이다. 부실덩어리 옥포조선소(현 대우조선해양)를 인수해 과감한 투자로 흑자 기업으로 탈바꿈시켰고, 노사분규가 거셌던 1980년대 후반에는 2년 가까이 상주하며 노동자를 설득해 회사를 정상화했다. 그가 거제에 머물며 펴낸 책이 그 유명한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1989·김영사)다. 거제는 ‘김우중 세계경영’의 모태인 셈이다.

    ▼ 다시 ‘세계경영’을 강조합니다.

    “청년은 우리의 미래죠. 미래 주역들이 청년실업이다 뭐다 해서 어깨가 처진 모습이 안타까워요. 눈을 세계로 돌리면 더 많은 기회가 열릴 수 있다는 것을 얘기해주고 싶어요.”

    ▼ 해외 청년사업가(GYBM) 육성 프로그램을 운영하는데….

    “좋은 얘기도 말로만 해서는 믿기 어렵잖아요. 조그만 것이라도 성공한 사례를 만들어보자고 시작했어요. 1, 2기를 거치면서 자신감이 생겼어요. 그래서 앞으로 해외 진출에 대한 도전의식을 가진, 마음과 생각이 굳센 인재를 더 많이 길러내려고 해요.”

    청년들 이야기를 꺼낼 때는 회장의 표정이 밝아지고 말에 힘이 실렸다. 자신이 창업하던 바로 그 시절로 돌아간 듯 ‘청년’처럼 힘이 솟고 생기가 넘쳤다.

    글로벌 YBM

    2010년 3월 22일. 서울 힐튼호텔에서 열린 대우 창립 43주년 기념식. 폐회를 선언하려는 순간 김우중 전 회장이 마이크를 잡았다.

    “올해가 43주년이니까, 창립 50주년(2017년)까지 7년 남았어요. 50주년 행사 때는 우리(대우인)뿐 아니라 가족과 자녀까지 함께하는 행사를 가집시다. 그리고 그때까지, 지금 사회문제가 되는 청년실업을 해결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을 우리 대우인들이 찾아봅시다. 과거 경험을 살려 젊은이들이 해외에서 자리 잡고 성공할 수 있도록 도웁시다.”

    ‘해외 청년사업가’ 육성을 위한 GYBM (Global Young Business Manager) 프로그램은 이날 김 전 회장의 제안을 계기로 2011년 시작됐다. 2012년 1기 33명이 졸업했고, 지난해엔 2기 34명이 졸업했다. 9월 27일에는 3기 66명의 졸업식이 열렸다. 3기까지 이어오는 동안 GYBM은 졸업과 동시에 전원 취업이라는 놀라운 기록을 수립했다.

    9월 27일 하노이 문화대학에서 열린 3기 졸업식에는 김우중 전 회장을 비롯해 브엉 뚜이 비엔 베트남 문화체육관광부 차관, 전대주 주베트남 한국대사 등이 참석했다. 이어진 만찬에는 호앙 투엉 아잉 베트남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참석해 졸업생을 격려했다. GYBM 졸업식 다음날(9월 28일) 김우중 전 회장을 다시 만나 1시간 30분 동안 인터뷰를 했다. 장병주 대우세계경영연구회장과 김준기 GYBM 원장 등이 자리를 함께했다.

    다음 날인 29일, 베트남의 무더운 날씨를 뒤로하고 귀국을 준비할 때 김 회장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에 식사라도 함께 하자”고 했다. 뜻밖의 세 번째 인터뷰는 이렇게 성사됐다.

    ▼ 글로벌 YBM 연수생을 만나보니, 눈빛이 다들 살아 있더군요.

    “선배들의 성공 스토리에 자극 받아 그런지 3기생부터 눈빛이 확실히 달라졌어요. 세계 어느 나라 청년과 비교해도 우리 젊은이들이 참 우수해요. 우리 청년들이 해외로 많이 나가야 나라에 보탬이 돼요. 작은 울타리 안에서 우리끼리 경쟁해서는 성장에 한계가 있죠.”

    ▼ 1, 2기는 물론 3기 졸업생까지 모두 취업에 성공했다고요.

    “어학과 실무 능력을 갖춘 우리 졸업생을 찾는 기업이 많아요. 앞선 기수들이 취업한 회사에 잘 적응한 결과죠. 1, 2기 연수생들이 회사에서 크게 인정을 받아요. 1년 만에 대리로 승진하고 2년 만에 과장까지 승진한 사례도 나왔어요. 연봉도 평균 2만5000달러에서 3만 달러 받아요. 많이 받는 사람은 5만 달러도 받고. 선배들이 연수를 마치고 어디에 취업하고 어떻게 지내는지 후배 연수생에게 많이 들려주도록 하고 있어요.”

    ▼ 회장께서 연수생도 직접 지도합니까.

    “틈나는 대로 연수생을 만나요. 앞으로 하려는 일이 뭔지, 그 일을 하려고 어떤 준비를 하고 계획은 어떻게 세워놨는지 묻고 조언해줘요. (연수생을) 직접 만나 얘기를 나눠보면 우리 젊은이들이 너무 위축돼 있어요. ‘잘될 수 있을지’ 걱정을 많이 해요. 그래서 비전과 자신감을 심어주는 얘기를 들려줍니다. ‘어렵다, 힘들다’고 부정적으로 생각할 시간에 작은 일부터 도전해서 해보라고요. 자신감이라는 게 처음부터 생기는 게 아니에요. 작은 일에 도전해서 해내면 거기서 자신감이 생기고, 그 자신감으로 더 큰 일에 도전하고, 거기서 성공하면 자신감도 함께 커지는 법이에요.”

    교육생들의 ‘왕멘토’

    하노이문화대학에서 만난 글로벌 YBM 3기 연수생들은 “(김우중) 회장님으로부터 ‘정신교육’을 많이 받았다”고 입을 모았다. 3기 윤다솔(25·여) 씨는 “회장님은 ‘어떻게 일할 것인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해 말씀해주셨다”고 했고, 유병선(30) 씨는 “‘동남아 국가에서 화교들의 파워가 센데, 우리도 그렇게 될 수 있다’ ‘해외에 진출해 터를 잡고 일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국가에 이바지하는 길이다’라는 말씀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GYBM의 성공에 힘입어 김 전 회장은 한국에 있는 더 많은 청년에게 ‘세계경영’을 역설한다. 9월 16일 아주대 강연을 시작으로 9월 25일 아주자동차대학, 10월 2일 연세대, 10월 7일 경상대, 10월 8일 부경대와 부산대, 10월 14일 전북대, 10월 22일 서울대 등에서 강연했고, 앞으로 더 많은 대학에서 강연을 계획하고 있다. 김 전 회장은 대학 특강에서 “자신감을 갖고 세계를 품어야 더 큰 기회를 잡을 수 있다”고 역설한다.

    김 전 회장이 젊은이들에게 ‘세계경영’을 주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5년 전인 1989년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는 책을 펴내 청년들에게 세계로 눈을 돌릴 것을 독려한 바 있다. 세대가 바뀌었지만 그의 ‘세계경영’은 여전히 유효한 셈이다.

    젊은이여,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

    그러나 늘 가던 길만 가려는 사람, 손에 익은 일만 하려는 사람에게는 그렇지가 않다. 그의 세계는 그가 알고 있는 길만큼 좁고, 그가 할 일은 손에 익은 것 말고는 없을 것이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 아무도 아직은 해내지 못한 일을 추구하는 진취적이고 도전적인 개척자에게만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

    김우중 전 회장은 “(GYBM을) 3기까지 운영하면서 자신감이 붙었다”며 “4기부터 인원도 더 늘리고 베트남에 이어 미얀마로 연수 대상국도 넓혔다”고 말했다.

    ▼ 왜 미얀마입니까.

    “미얀마는 아직 한국 기업의 진출이 미미해요. 그렇지만 발전 가능성은 매우 커요. 미국의 제재가 풀려가고 있으니, 성장에 탄력을 받으면 발전 속도가 매우 빠를 것으로 봐요. 그렇게 되면 한국 기업에 많은 기회가 찾아올 겁니다.”

    “지역경제 통합 대비해야”

    김 전 회장은 베트남에 주로 머물며 한국을 오가지만, 미얀마 사정에도 정통했다. 그는 일찍이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으로부터 사업 파트너를 소개받아 미얀마(당시 버마)에서 가스 사업을 추진한 일이 있다. 당시 미얀마의 권력서열 1, 2, 3인자를 모두 만난 인연도 있다(‘김우중과의 대화’ 322~323쪽).

    “미얀마는 자원과 인구가 많아 발전 가능성이 높아요. 또 미얀마어는 어순이 한국어와 비슷해서 베트남어보다 좀 더 배우기 쉽다고 해요. 미얀마가 지금 민정 이양으로 민주화가 됐다고는 하는데, 아직 군부 영향력이 세요. 헌법상 국회의원의 25%가 별을 달고 있으니까요. 이번(4기)에 처음 (미얀마 과정을) 시작했는데, 자리를 잡으면 다음 단계로 인도네시아 연수도 시작할 생각이에요.”

    “아세안 신흥국과 힘 합쳐 중국·일본 견제해야”

    9월 27일 하노이문화대학에서 열린 GYBM 졸업식에 참석한 김우중 전 회장, 전대주 주베트남 한국대사. 장병주 대우세계경영연구회장.(왼쪽부터)



    김 전 회장은 베트남에서 시작한 GYBM 프로그램을 미얀마, 인도네시아, 필리핀, 태국 등 동남아시아 국가 전체로 확장할 계획을 갖고 있다. 그는 “우리 청년들이 동남아시아 여러 국가에 진출해 이들 국가에 뿌리를 내리고 함께 성장하는 것이 대한민국의 이익을 지키는 길”이라고 했다.

    “중국이 커지고 일본이 저만큼 앞선 상황에서 우리나라가 고립돼 있으면 더는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우리와 함께 성장할 수 있는 파트너(국가)를 많이 만드는 것이 중요하죠. 세계경제는 지역경제로 통합될 가능성이 큽니다. 아시아가 유럽처럼 하나의 지역경제 단위로 묶일 것에 대비해 아세안 국가들과 힘을 합하는 것이 중요해요. 우리는 조그만 나라지만 아세안 국가와 힘을 합하면 큰 규모가 돼요. 남과 북을 합해 인구 7000만 명이 넘고, 인도네시아가 2억4000만 명, 베트남이 9000만 명, 태국, 말레이시아, 미얀마, 필리핀까지 합하면 엄청난 규모예요.

    아세안 국가와 힘을 합하면 중국, 일본을 견제하면서 우리가 아시아를 크게 3등분할 수 있습니다. 아세안 신흥국 가운데 중국의 지배를 받았거나 일본의 침략을 받아 혼이 난 나라가 많아요. 그래서 중국이나 일본이 커지는 것을 대부분 두려워하죠. 그런데 우리에 대해서는 자신들과 비슷한 경험을 갖고 있다며 따뜻하게 대해 주고 함께하는 것을 다들 좋아해요.”

    ‘세계를 경영한 민족주의자’

    이제 나는 나이가 들고 직접 할 수 없으니까 우리 젊은이들이 나 대신 세계에서 사업할 수 있도록 키우는 데에 내 여생을 바치려고 해요. 그 친구들 성공하는 모습 볼 수 있도록 나도 내 건강을 더 노력해서 지키려고 하고요. 내가 살아 있는 동안 시스템을 잘 만들어놓아야지요. 시스템을 잘 만들어놓으면 내가 죽은 후에도 시스템으로 계속 가는 거니까요.

    -‘김우중과의 대화’

    ▼ 베트남에 오랫동안 머무르는데, 이 나라와 특별한 인연이 있습니까.

    “프랑스 식민지를 지낸 국가들끼리 돌아가면서 (프랑스어권) 정상회담을 해요. 처음 베트남에 왔을 때 도 무어이 당시 공산당 서기장이 정상회담을 할 마땅한 호텔이 없다고 해서 하노이에 5성급 호텔(대우하노이호텔)을 지어준 인연이 있어요. 난 장사꾼이지만 어느 나라에 가든 그 나라 국가지도자들이 겪는 어려움을 해결해주려고 노력했어요. 그러면 사업 기회는 자연스럽게 찾아옵니다.”

    ▼ 남북특사로 활동한 것도….

    “노태우 대통령 때 특사 임명을 받아 활동했죠. 그때 남북기본합의서 세부 문안 작성에까지 직접 관여했어요. 그리고 사람들이 88서울올림픽 유치를 정주영 회장이 혼자 다한 것으로 알고 있죠? 사실은 그때도 내가 일을 많이 했어요. 내가 공치사를 안 해서 그렇지….”

    ‘김우중과의 대화’(100~109쪽)에는 김 전 회장이 남북을 오가며 대북특사로 중재한 내용이 자세히 나와 있다. 책을 펴낸 신장섭 싱가포르국립대 교수는 세계를 무대로 기업을 경영하면서 국익을 먼저 생각하고 남북을 오가며 중재자 노릇까지 한 김 전 회장을 ‘세계를 경영한 민족주의자’로 일컫기도 했다.

    88서울올림픽 유치 당시 김 전 회장의 활약상은 그동안 부각되지 않았다. 김 전 회장을 가까이서 보좌한 한 인사는 “당시는 북한이 자신들과 수교한 사회주의 국가들을 상대로 한국의 올림픽 유치를 반대하는 활동을 펼치던 상황이었다”며 “김 회장은 자신과 친분이 깊은 동유럽과 아프리카 국가 지도자에게 우리나라의 올림픽 유치 지지를 열심히 호소했다”고 귀띔했다.

    GYBM의 성공적 운영에 자신감을 얻은 김 전 회장은 현역에서 물러난 은퇴자를 위한 해외 연수 프로그램도 구상 중이다. GYBM을 모티프로 응용하자면 GVBM(Global Veteran Business Manager)쯤 되겠다.

    ▼ 은퇴자를 위한 해외 재취업 연수 프로그램도 준비하고 있다고요.

    “기회가 되면 꼭 해보고 싶어요. 지금은 수명이 늘고 건강관리를 잘해서 60세가 넘은 사람도 10년은 더 거뜬하게 일할 수 있어요. 자기 분야에서 30년 넘게 일한 사람은 기업을 키울 능력을 가졌다고 봐요. 60세가 넘은 사람 10여 명을 뽑아 베트남 현지 업체에 연결해주려고 해요.”

    ▼ 어느 분야 경력을 가진 사람이 좋을까요.

    “베트남에 진출한 우리 기업이 빨리 성장하는 데는 마케팅이나 제품 개발에 경력 있는 사람이 도움이 돼요. 또 생산이나 회계 쪽 관리 경험이 많은 사람도 필요하고요.”

    글로벌 YBM 프로그램은…

    고강도 어학·실무교육으로 해외 맞춤형 명품인재 육성


    GYBM 연수는 철저하게 합숙교육으로 실시한다. 국내에서는 경기도 용인에 위치한 대우글로벌인재양성센터에서, 베트남에서는 하노이문화대학교에서 연수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교육은 현지어(베트남어)와 영어능력 배양, 회사생활에 꼭 필요한 실무와 직무교육 등에 초점이 맞춰졌다.

    베트남에서의 연수는 김준기 원장, 이덕모 부원장, 성강민 교육팀장이 책임을 맡았다. 모두 대우 출신으로 이덕모 부원장은 한국과 베트남이 수교하기 이전인 1991년 베트남에 파견돼 일찌감치 근무한 인연이 있다. 성강민 팀장은 GYBM 교육을 위해 부인과 자녀는 한국에 놔둔 채 혈혈단신으로 베트남에 건너와 연수생과 숙식을 함께하며 동고동락한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1년 365일 늘 연수생과 함께하는 성 팀장은 연수생들 사이에서 ‘사감’으로 통한다.

    연수생의 일과는 매일 아침 5시 30분 기숙사 앞마당에 모여 아침 점호를 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아침식사 후에는 베트남어 교육이 진행된다. 베트남어 교육은 초급 3개월, 중급 3개월, 고급 4개월 과정으로 구성됐다. GYBM에 참가한 학생 대부분은 연수 이전까지 베트남어를 전혀 접해보지 못한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교육은 연수 첫날부터 철저하게 이뤄진다.

    3기 성은경(26) 씨는 “읽을 줄도, 쓸 줄도 모르는 베트남어 단어 50개를 영어로 배우고, 그날 저녁에 베트남어로 일기를 써야 했다”며 연수 첫날을 회고했다. 3기 연수생에게 베트남어를 가르친 호앙 킴 느억 하노이문화대 교수는 “처음에는 (연수생과) 대화를 할 수 없어 슬펐지만, 3개월이 지난 뒤에는 더 이상 슬프지 않았다”며 “연수생들의 학습능력이 매우 뛰어나다”고 말했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채용”

    “아세안 신흥국과 힘 합쳐 중국·일본 견제해야”

    GYBM 3기 연수생들이 베트남어 교육을 받고 있다.

    베트남어 교육은 언어뿐 아니라 베트남의 역사와 문화, 상법과 노동법 등 베트남 사회 전반에 대해 광범위하게 이뤄진다. 성 팀장은 “연수생들은 졸업 후 베트남 기업에 취업해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베트남 사회가 어떻게 운영되는지 법과 제도에 대한 교육도 함께 실시한다”고 말했다. 토요일에는 연수생 전체를 대상으로 비즈니스 영어 교육을 실시하고, 상대적으로 영어 능력이 뛰어난 연수생들이 강사로 나서 1주일에 3회(월수금) 1시간씩 별도로 자체 영어 강의도 진행한다. 연수생들은 자신이 배운 어학 능력을 주기적으로 테스트받는다. 1년 동안 총 30여 회 시험을 통과해야 졸업할 수 있다.

    연수생들은 또 직장생활에 꼭 필요한 다양한 직무교육을 받는다. 직무교육은 GYBM 멘토로 등록된 대우 출신 인사들이 베트남에 직접 찾아와 특강 형식으로 진행한다. 3기 염재경(24) 씨는 “특강을 통해 이론과 실제가 어떻게 다른지, 회사 생활에서 어떤 것이 필요한지 더 잘 알게 된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직무교육은 강의식 교육보다 연수생이 직접 사업계획을 짜고 시장조사를 한 뒤 보고서를 제출하는 등 철저하게 실무 능력을 키우는 데 초점을 맞춰 진행된다. GYBM 졸업생이 졸업과 동시에 전원 현지 취업에 성공한 것은 연수 과정을 통해 어학 능력과 실무 능력을 겸비했기 때문이다.

    ‘꿈을 현실로(Make a Dream of Actuality)’라는 뜻을 가진 MDA건설은 베트남에서 건설과 토목, 석산 개발을 하는 중견 기업이다. GYBM 출신을 고용한 송인수 MDA 대표는 “GYBM 출신이라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채용한다”고 말했다. 그가 말하는 GYBM 출신의 장점.

    “베트남 직원들과 현지어로 대화할 수 있다는 게 큰 장점이죠. 통역을 거치지 않고 의사소통이 가능하기 때문에 업무효율이 훨씬 높아요. 어학과 실무 능력도 뛰어나지만, 직장생활에 꼭 필요한 매너를 갖춘 것도 장점입니다.”


    “영토 확장 시대도 아닌데…”

    ▼ 베트남의 발전 가능성을 어떻게 전망합니까.

    “베트남 사람들이 경공업을 배워 서서히 기업을 직접 경영하는 쪽으로 옮겨가는 추세에 있어요. 단순 가공에서 이제는 원부자재 생산 분야로 확대하고, 수출 비중도 계속 늘어요. 내 예측으로 베트남이 앞으로 15∼20년 안에 아세안 국가 가운데 싱가포르와 홍콩을 제외하고 최고 위치에 오를 수 있을 것으로 봐요. 중국 다음가는 나라로도 성장할 수 있죠. 지금 베트남에 나와 있는 우리 기업이 3700개 정도 있는데, 앞으로 더 늘어날 것으로 봐요. 베트남 발전 과정에 우리 젊은이들이 일자리 기회를 많이 찾아 다양하게 협력하는 것이 중요해요. 그래야 우리나라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어요.”

    ▼ 중국이 G2로 성장한 것이 우리 앞날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그래요? 왜 불리하다는 거죠?”

    ▼ 한 국가가 커지면 자국에 유리하도록 주변국을 억압해온 과거 역사 때문 아닐까요.

    “로마 시대 이후 제국주의 시대까지 줄곧 영토 확장 싸움을 해왔으니, 주변국이 커지는 것을 위협으로 받아들였죠. 그런데 지금은 그런 영토 확장 싸움을 하는 것이 쉽지 않은 시대예요. 유엔도 있고.”

    ▼ 중국과 일본이 댜오위다오(일본명 센카쿠)를 놓고 긴장관계를 형성하는 등 아시아에서는 섬을 둘러싼 영유권을 놓고 크고 작은 갈등이 생겼습니다.

    “일본, 베트남, 필리핀 등이 모두 중국과 섬을 둘러싸고 말이 많죠. 그런데 그것은 영토 확장을 위한 것이라기보다 바다 속 자원 때문에 빚어진 문제로 보는 것이 옳아요. 자원을 선점하기 위한 것인데, 아무리 큰 나라라도 작은 나라를 강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봐요. 결국 공동 개발하는 쪽으로 가지 않을까요.”

    세계 정세를 바라보는 시각에서도 김 전 회장의 분석은 긍정적이고 도전적이었다. ‘가능성을 향한 도전’과 ‘개척 정신’으로 무장해 세계시장을 개척한 그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 남북관계가 오랫동안 경색돼 있습니다. 어떻게 푸는 것이 좋을까요.

    “그건….”

    ▼ 박근혜 대통령이 주창한 ‘통일대박론’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

    ▼ 과거 대북특사로 활동한 경험도 갖고 계신데….

    “…”

    연수생 A/S까지

    “아세안 신흥국과 힘 합쳐 중국·일본 견제해야”

    글로벌 YBM 3기 졸업생들이 김우중 전 회장과 기념촬영을 했다. 가운데가 김 전 회장.

    김 전 회장은 자신의 관심 분야에 대해서는 어떤 질문에도 거침없이 얘기했지만,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에는 말을 아끼거나 아예 침묵했다. 김 전 회장이 머뭇하자 인터뷰에 배석한 장병주 회장이 거들었다.

    “회장께서는 남북한은 물론 중국까지 함께하는 ‘동북아 협력사업’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오래전부터 해왔습니다.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김 전 회장이 구상한 ‘동북아 협력사업’은 중국이 동북3성에 있는 땅을 내고, 남한은 기술과 자본을, 북한은 인력을 제공해 공단을 함께 운영하자는 획기적인 제안이었다. 대북특사로 활동하던 시절 김 전 회장은 김일성 당시 북한 주석에게 이 안을 설명하고 ‘실험적으로 북한 인력 2만 명을 동북3성에 보내자’고 제안하기도 했다고 밝혔다(‘김우중과의 대화’ 391쪽). 그러나 이 구상은 남북 정상회담이 불발되면서 현실화하지 못했다.

    화제는 다시 김 전 회장의 주된 관심사인 ‘청년’으로 돌아왔다.

    ▼ 진로를 놓고 고민하는 연수생에게 어떤 조언을 해줍니까. 가령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의 일을 할 수 있는 회사와 이름이 알려진 회사 가운데 선택을 고민하는 경우라면….

    “하고 싶고 잘하는 일을 찾는 것이 우선이죠. 자신감이 부족한 상황에서는 작은 것에서부터 성공의 경험을 쌓아가며 자신감을 키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해요. 그런 점에서 우리 젊은이들이 한창 성장해가는 베트남을 포함한 동남아에 진출한 한국 제조회사에서 업무를 배우는 것이 큰 의미가 있어요. 이름이 알려진 회사는 주어진 업무 중심으로 일하게 되기 때문에 스스로 존재감을 느낄 기회가 부족하죠.”

    베트남에서 지켜본 김우중 전 회장의 일상

    방식은 달라도 본업은 여전히 ‘세계경영’


    김우중-정희자 부부는 올해 결혼 50주년을 맞았다. 김 전 회장의 자녀들은 부모에게 금혼(金婚)을 기념해 해외여행을 보내줬다.

    “4월에 아이들 초청으로 영국에 다녀왔어요. ‘일’하러 다닐 때는 몰랐는데, 런던도 그렇고 영국이란 나라가 볼거리가 꽤 많더라고요. 참 좋았어요.”

    김 전 회장은 ‘관광하러 영국에 간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수줍게 웃었다. 지난해에는 부부가 함께 일본으로 온천여행도 다녀왔단다. 그룹 해체는 그가 30년 넘게 키워온 자식을 잃는 것과 같은 일이었을 터. 그러나 역설적이게 회사를 돌보느라 잊고 살았던 ‘가족’의 의미를 되새기는 계기가 됐다. 그렇다고 그가 ‘사는 재미’에 빠져 일을 손에서 놓을 것 같지는 않다.

    78세의 김 전 회장은 앞으로 10년 이상 더 일할 계획을 세워두고 있었다. 그는 매일 아침 5시에 일어나 1시간 정도 산책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신문 읽기는 필수.

    “동아, 조선, 중앙. 매일경제. 이 네 신문을 꼭 챙겨 봐요. 신문을 봐야 세상 돌아가는 흐름을 이해할 수 있죠.”

    그는 대우그룹 회장으로 세계를 무대로 활동할 때에도 신문을 빼놓지 않고 읽었다고 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 미국 뉴욕타임스, 니혼게이자이(일본경제신문)는 꼭 찾아 봤어요. 국제 기사를 종합적으로 많이 보도하거든요. 모두 자기 나라를 위해 보도하는 것이지만, 그 나라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돼요.”

    김 전 회장은 “좁은 생각에 갇혀 있으면 큰 것을 놓치게 된다”며 ‘TV토론 같은 데 나와서 우리끼리 싸움 붙이는 얘기만 늘어놓는’ 일부 학자나 전문가들을 못마땅해 했다.

    “조그만 나라에서 우리끼리 싸움만 해서는 미래가 없어요. 세상을 크게 보고 밖으로 눈을 돌려야 하는데….”

    베트남에 머무는 동안 김 전 회장은 대부분의 시간을 사람을 만나는 데 쓴다. 연수 중인 GYBM 연수생도 수시로 찾아가 만나고, 때때로 졸업한 뒤 취업한 학생들과도 만난다. 또 GYBM 졸업생을 뽑아준 회사 CEO나 법인장과도 정기적으로 만난다. 평소에는 베트남에 진출한 기업인이나 진출하려는 기업인이 면담을 요청해오면 그들을 만나 조언해주는 일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대우그룹 해체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지만, 미래에 세계경영에 나설 주역을 길러내고, 해외에 진출한 기업인을 돕는 그는 여전히 ‘세계경영자’였다.


    “아세안 신흥국과 힘 합쳐 중국·일본 견제해야”

    베트남에 체류하는 동안 김우중 전 회장은 글로벌 YBM 프로그램에 대부분의 시간을 쏟아 붓는다.

    ▼ 높은 연봉, 회사의 대외 지명도, 맡게 될 업무 가운데 선택의 우선순위를 둔다면 어떤 순으로 선택하는 게 좋다고 보세요.

    “일이 중요하죠. 지명도나 연봉은 기본 수준만 되면 크게 문제 될 것이 없어요. 본인이 입사해서 성과를 내고 회사를 발전시켜 그 공로로 인센티브를 받으면 얼마나 신 나겠어요. 회사는 지명도도 중요하지만 발전 가능성이 더 중요해요. 젊은 사람일수록 길게 내다봐야 합니다. 돈과 명예는 한 분야에서 성과를 내면 당연히 따라오는 것이지, 그것을 의도적으로 추구한다고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에요.”

    베트남에 체류하는 동안 김우중 전 회장은 글로벌 YBM 프로그램에 대부분의 시간을 쏟아 붓는다. 한 달에 두 번꼴로 하노이는 물론 베트남 남부 호치민에까지 직접 찾아가 글로벌 YBM 출신 취업자를 만나 잘 적응하는지, 어려움은 없는지 직접 듣고 조언해준다. 일종의 ‘연수 A/S’를 김 전 회장이 도맡아 하는 것이다.

    “열심히 일할 것을 당부하고, 어려움이 있으면 같이 의논하죠. 또 한 달에 두 번꼴로 우리 연수생을 뽑아준 회사 CEO나 법인장과 식사를 하거나 환담을 해요. 잘 적응시켜 열심히 일할 수 있도록 관심을 가져주길 부탁하죠. 다음 연수 과정에 보완할 점에 대한 의견도 듣고요.”

    낯선 타국에서 취업을 희망하는 사람에게 이만한 조력자나 후원자가 있을까. 회장이 졸업생들에게 더없이 든든한 ‘빽’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지금 한국에는 창업을 준비하는 청년이 부쩍 늘었습니다. 예비 창업자에게 어떤 말씀을 해주시겠습니까.

    “취업이 어렵다고 너무 조급하게 (창업을) 서두르는 것 같아요. 우선은 작은 회사에라도 들어가서 조직과 일, 마케팅 등을 배운 다음에 창업하는 것이 좋아요. 우리 베트남 연수생들도 일단 취업을 하고, 빠르면 5년, 혹은 10년 정도 일을 배우고 난 다음에 창업하라고 권하는 편이에요. 취업이 어렵다고 창업을 탈출구로 삼는 것은 위험해요. 그래도 정 창업하겠다면 우선 마음가짐부터 남다르게 가져야죠. 업무에 누구보다 정통해야 하고 시간이나 일에 들이는 노력의 정도도 보통 각오로는 안돼요. 솔선수범하고 희생하려는 각오가 돼 있고 실천이 뒤따라야 창업해서 성공할 수 있어요.”

    선택과 집중

    ▼ 청년실업 문제를 해결하려면 정부 차원에서 어떤 정책적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봅니까.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봐요. 기업하는 사람에게 신바람 나는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것이 필요해요. 열심히 일을 하다보면 실패할 수도, 성공할 수도 있어요. 작은 실패에 움츠러들게 하지 말고 더 크게 격려해주는 것이 중요하죠. 국가에서 여러 가지 노력을 다하는데, 그동안 해온 것을 잘 분석해보면 잘될 가능성이 있는 것과 잘되지 않을 것을 추릴 수 있을 겁니다. 그래서 좀 더 선택과 집중을 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어요.”

    젊은이여, 개척자가 되라.

    참된 인생은 개척의 길이다. 세계는 지구촌이라고 불릴 정도로 좁아졌지만 아직 가보지 않은 길이 있고 이 땅에는 숱한 사람들이 온갖 일을 하며 살고 있지만 아직 아무도 해내지 못한 일이 있다. 우주를 생각하고 큰일을 꾸며보라.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라. 물론 개척자는 외롭다. 그러나 여러분의 미래는 여러분 스스로 개척해가야 한다.

    그것이 인생이다.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

    그는 아직도 청년들에게 같은 얘기를 한다. 무작정 청년들을 다그치지 않는다. 그는 청년들의 실질적인 조력자이자 조언자를 자처한다. 반신반의하는 이들을 위해 ‘이렇게 준비해서 해외로 나가면 성공할 수 있다’는 검증된 성공사례(GYBM)까지 제시한다. 그는 GYBM 연수생의 ‘왕멘토’에 머물지 않고, 대한민국 청년 모두의 ‘왕멘토’로 나섰다. 그는 다시 대한민국 청년들에게 호소한다.

    “자신감을 갖고 세계를 품자.”

    “자신만만하게 세계로 뻗어 나가자.”

    ‘김우중 추징금’의 진실은?

    “재산 국외 도피 아니다”


    1990년대 후반까지, 김우중 전 회장은 단돈 500만 원으로 창업해 30여 년 만에 수십조 원 규모의 글로벌 대기업을 키워낸 ‘샐러리맨 신화’의 주인공이었다. 그러나 1999년 대우그룹 해체 이후 그는 ‘부실경영’ ‘무리한 차입경영’에 따른 실패자로 낙인찍혔다. 더욱이 2006년 재판에서 그에게 17조 원이 넘는 추징금이 부과되면서 ‘김우중’ 하면 ‘추징금’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아졌다.

    김 전 회장을 세 차례 만나 인터뷰하면서 ‘추징금’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그는 자신에게 부과된 ‘추징금’이 부당하다고 생각한다. 세계를 무대로 활발히 사업을 확장하느라 해외에서 차입한 돈과 그 차입금에 대한 이자를 갚는 데 쓴 돈을 모두 합해 ‘추징금’이란 이름으로 부과했다는 인식이다.

    추징금 23조 원은 액수도 그렇고, ‘재산 도피’라고 본 것도 그렇고…. 수긍하기 어려운 면이 많아요. 국내자금을 해외법인으로 보낼 때 신고하지 않은 것, 해외 현지법인 차입금 신고하지 않은 것 등을 전부 합산해 개인들이 외화를 불법 반출한 걸로 잡아서 추징금을 매겼으니까요. 해외 현지법인 차입금은 상환하고 다시 차입하며 롤오버(roll-over)를 했는데 차입금만 단순 합산했어요. 도박판에서 판돈 계산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한 거지요.

    -‘김우중과의 대화’

    대우그룹 해체 이후 대우 임직원에게 부과된 추징금은 김 전 회장이 17조9000억 원, 이상훈 당시 전무 23조 원, 이동원 부사장 21조2000억 원, 성기동 이사 21조2000억 원 등이다. 언론 등에서 추징금 얘기를 다루면서 김 전 회장을 거론하며 사상 최고 추징금이라고 하지만, 원화를 기준으로 하면 김 전 회장은 네 번째 규모다.

    그러나 이는 환율에 따른 착시일 뿐, 추징금을 달러로 환산하면 김 전 회장과 이 전 전무의 추징금 액수가 같다. 추징금 판결 시점의 환율을 적용했기 때문에 이런 차이가 난다. 더욱이 이 전 전무에게 부과한 추징금을 김 전 회장에게 다시 부과했다. 같은 사안을 놓고 이중 처벌했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대우 임직원에 대한 추징금 판결은 ‘무리한 차입 경영에 따른 부실 경영으로 대우그룹을 해체할 수밖에 없었다’는 시각이 우세한 시기에 나왔다. 추징금을 부과 받은 대우 임직원들은 ‘재산 국외도피자’로 보는 세간의 시선을 가장 억울해 한다. 회사 돈을 개인이 빼돌린 것이 아닌데도, 해외에서 차입한 원금과 이자를 갚기 위해 국내에서 돈을 송금한 것을 ‘재산 국외도피’로 보고 추징금을 부과했다는 생각에서다. 추징금을 선고받은 대우 임직원들은 헌법소원을 준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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