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Interview

“담 허물면 천하가 내 집 대통령은 유방에게 배워야”

‘간 큰 대사’ 권철현의 苦言

  • 배수강 기자 | bsk@donga.com

“담 허물면 천하가 내 집 대통령은 유방에게 배워야”

2/5
“담 허물면 천하가 내 집 대통령은 유방에게 배워야”

2008년 5월 일본이 독도 영유권 주장을 담은 새 학습지도요령 해설서를 발표하자 이에 항의하는 뜻으로 일시 귀국한 권철현 당시 주일대사.

“劉邦이 병사 지휘해서야…”

▼ 인적 쇄신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여권 내에서도 나온다.

“거듭된 실패에도 친박(친박근혜) 일부가 대통령을 감싸고도는 한 국민은 등을 돌린다. 그런데도 실패한 사람에게 다시 인사를 맡긴다. 공과 사가 엄정함을 잃고 친소(親疎) 관계에 좌우될 때 기강이 설 자리는 없다. 그 연장선에서 청와대 문건 유출 파문과 권력의 사유화, 암투, 측근 일탈행위가 일어나는 거다. 인사가 바로 서지 않는데 정책인들 온전하겠나. 대통령은 이런 징조를 바로 읽고 깨달아야 한다. 때를 놓치면 반드시 ‘비용청구서’가 날아든다. 이는 역사의 교훈이다. 나라 전체에서 인재를 구하고, 과감하게 일을 맡겨야 한다. 그래야 국민이 감동하고 대통령과 국민이 하나 되어 ‘위기의 강’을 건널 수 있다.”

잠시 천장을 응시하던 권 전 대사는 사기(史記) 회음후열전(淮陰侯列傳)에 나오는 한고조 유방(劉邦)과 한신(韓信)에 관한 고사를 꺼냈다.

유방이 “과인과 같은 사람은 얼마나 많은 군대의 장수가 될 수 있겠는가” 하고 묻자 한신은 “폐하께선 한 10만쯤 거느릴 수 있는 장수에 불과합니다”라고 했다. 그러자 유방이 “그렇다면 그대는 어떠한가”라고 물었고 한신은 “신은 많으면 많을수록 더욱 좋습니다”라고 했다. 유방이 다시 “그렇다면 그대는 어찌하여 10만의 장수감에 불과한 과인의 포로가 됐는가”라고 묻자 한신은 이렇게 답했다. “폐하께서는 병사를 거느리는 장수는 될 수 없으나 장수들의 우두머리는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신이 폐하의 포로가 된 이유입니다.” 권 전 대사가 얘기를 이어갔다.



“통치권자인 유방은 자기보다 유능한 장수를 선발해 ‘장수를 부리는 일’에 집중하고, 장수는 오로지 ‘병사를 지휘하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 유방이 직접 병사를 지휘하려들면 장수가 많은들 무슨 소용이며 어떻게 전쟁에 이길 수 있나. (박 대통령의) ‘만기친람(萬機親覽)’ 소리가 더는 나오지 않아야 한다.”

▼ 박 대통령이 모든 정사를 챙긴다지만 소통은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불치하문(不恥下問)이라 했다. 국민의 소리를 듣고 배우는 걸 부끄러워해선 안 된다. 정보화 사회에서 국민은 거의 실시간으로 세상 온갖 정보를 공유하고, 전문가들의 견해도 쉽게 접한다. 똑똑하고 현명하다. 지도자가 나라를 독단 경영하는 시대가 아니다. 따라서 국민의 요구를 정확히 수렴하고, 이를 즉각 정치와 정책에 반영하는 ‘살아 있는 정치’를 해나가야 한다. 지도자가 어려움에 봉착하면 ‘내 탓이로소이다’ 하는 정신과 자세로 자신을 살피고,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됐는지 찾아 이를 바꾸는 것이 우선이다.”

왕과 제사장 겸직

▼ 잘된 인사는 없나.

“세월호 참사 때 진도 팽목항에 가서 유가족을 위로하고 격려한 적이 있는데, 그때 보니 (이주영 전) 해양수산부 장관이 현장에서 유가족들과 숙식하며 구조활동을 지휘하더라. 국민과 함께할 수 있는 인사를 다수 발탁해 자리를 맡기고, 일단 맡겼으면 그의 책임 아래 일을 추진하도록 전권을 주면 된다. 대통령은 결과에 대한 평가를 하고 신상필벌하면 되고.”

▼ 청와대 문건 유출 파문으로 여권 내에서도 청와대 인적 쇄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컸다.

“대통령은 옛날 왕과 제사장의 임무를 겸한다. 나라를 다스리는 행정수반이면서, 동시에 백성의 원망을 대신해 제사를 드리는 제사장이다.”

▼ 갑자기 제사장은 왜….

“비가 오지 않거나 역병이 창궐하면, 왕은 목욕재계하고 희생을 바치며 제사를 지냈다. 이때 희생은 죄가 없고 순결한 대상을 택했다. 대(大)를 위한 소(小)의 희생이었다. 국가지도자에게도 죄 없는 ‘소’를 희생의 제물로 바쳐야 하는 선택의 순간이 온다. 이때 사(私)를 뒤로하는 것이 공(公)이고, 지도자의 숙명이다. 죄가 없더라도, 아끼고 사랑하는 측근을 제물로 바칠 수 있을 때, 하늘과 사람이 감동한다. 순도 높은 자기희생과 헌신을 목도하기 때문이다.”

▼ ‘제사장’을 가장 가까이에서 모시는 비서실장은 어떠해야 하나.

“비서실장은 대통령을 편하게 모시려 하다가 대통령을 실패로 이끄는 우(愚)를 범하지 않도록 늘 경계해야 한다. 조언하고 설득하는 참모 노릇을 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선 더 멀리 보고, 더 높게 보고, 외부와도 끊임없이 소통해야 한다. 대통령이 듣기 싫어하는 말을 기분 나쁘지 않게 전달하고 설득하는 ‘아주 특별한 능력’도 있어야 한다.

2/5
이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목록 닫기

“담 허물면 천하가 내 집 대통령은 유방에게 배워야”

댓글 창 닫기

2019/12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