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Interview

“나는 왜 자꾸 짤리나 그게 궁금했다”

리얼해서 슬픈 게임 ‘내 꿈은 정규직’ 대박 이진포 퀵터틀 대표

  • 강지남 기자 | layra@donga.com

“나는 왜 자꾸 짤리나 그게 궁금했다”

2/2
# 비타500은 건들지 말아요

“일을 재빨리 받아오는 게 능사가 아니에요. 상대가 간절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받아와야죠. 성실하면 다인가요, 눈치가 있어야지.”

이 게임은 현실 세계의 문법을 녹여 갖가지 퇴직 사유를 만들었다. 서류에 0 하나 잘못 기입하면(업무미숙), 졸고 있는 부하직원을 방치하면(관리소홀), ‘알바’ 하다 걸리면(겸업금지), 정규직 전환에 두 번 미끄러지면(‘최장 2년’의 비정규직법에서 영감 받은 설정)…‘짤린다’. 회사 임원이 주말에 다 같이 등산 가자는데, 부하직원이 ‘등산 가기 싫으니 빼달라’고 하면 어떻게 처신해야 할까. ‘내가 책임지겠다’며 빼주면 승진확률이 떨어진다. ‘네 책임이다’ 혹은 ‘체력 기르는 셈 치자’고 하면 승진 확률이 올라간다.

상사로부터 ‘돼지를 한번에 굽는 방법이 뭔지 아나? 돼지코에 플러그를 꽂으면 된다네, 하하하’ 류의 ‘핵노잼’ 농담을 들었다면? 정색은 금물. 억지로라도 웃어야 한다. 사장이 ‘땅콩 좀 가져오라’고 할 땐 접시에 담아가는 게 좋다. 봉지째 가져가면 ‘이게 어느 나라 매뉴얼인가!’ 하는 호통을 듣고 짐을 싸야 한다.

이씨는 얼마 전 TV 뉴스가 ‘비타500’ 상자 얘기로 도배가 된 날, 비타500 패치를 추가했다. 사무실에 비타500 한 상자가 놓인 것을 봤다. 마침 목마르던 참이라며 상자를 열어도 될까. 열면 퇴사당한다. 이씨는 “뉴스만 틀면 매번 새로운 얘기가 나오니까 추가 소재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다”며 웃었다.



“나는 왜 자꾸 짤리나 그게 궁금했다”

갖가지 사유로 수도 없이 권고사직 당해야만 인턴에서 계약직, 정규직 순으로 승진할 수 있다.



# “도대체 왜?!”가 듣고 싶다

이씨는 이 게임을 기획하면서 또래 직장인 10여 명을 찾아가 회사 생활에 대해 인터뷰하고 그 내용을 게임에 녹였다. 게임 플레이어는 사표 낼 자유가 없다. 그렇게 설계한 이유에 대해 이씨는 “내가 그랬으니까”라고 했다.

“게임 주인공이 ‘더 이상 면접 보러가기 싫은데 학자금 대출 보면 의지가 생긴다’란 말을 해요. 제 또래들이 딱 그렇거든요. 회사를 관두고 싶어서 관두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저는 학자금 대출은 없었지만, 처음 서울 올라올 때 신협에서 500만 원을 대출해 월세 보증금을 마련했어요. 초봉이 월 150만 원이었거든요. ‘1년 안에 500만 원 갚으려면 절대 짤려선 안 된다’ 싶었죠. 덜컥 겁이 나더라고요.”

하지만 직장인들의 이야기를 들을수록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왜 다들 “회사라는 게 원래 다 그런 것”이라고 하는 걸까.

“‘원래 그렇다’는 말이 무서웠어요. 다들 회사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타의로 회사를 나가게 돼도 체념하더라고요. 아무런 의심 없이 불합리함을 받아들이는 거잖아요.”

게임에 각종 황당한 퇴직 사유를 집어넣고 숱하게 권고사직 당하도록 설계한 의도에 대해 이씨는 “‘도대체 왜 또 짤린 건데?!’라는 플레이어들의 소리를 듣고 싶어서”라고 했다.

“게임 유저가 세 부류더라고요. 직장인, 취업준비생, 그리고 그 부모들. 여러 세대가 이 게임을 하면서 청년 실업과 직장 생활에 대해 얘기하다보면 문제가 조금이라도 나아지지 않을까요.”

# 여전한 ‘未生’…그래도 天職 찾았다

세계 모바일게임 시장은 올해 303억 달러 규모로 성장할 전망이다. 매년 성장세는 가파르지만 경쟁이 치열한 탓에 성공을 거두기가 쉽지 않다. 하루에도 수십 개 게임이 새롭게 쏟아지고, 거의 대부분이 빛도 못 보고 사라진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다운로드한 게임을 한 달 이상 즐기는 국내 이용자가 전체 이용자 중 5.5%에 불과하다. 이제 겨우 한 달. 다른 무료 게임처럼 광고 노출과 아이템 판매로 매출을 올리는 ‘내 꿈은 정규직’은 이씨에게 지속 가능한 밥줄이 돼줄까. 그는 “처음 목표가 ‘다음 게임을 만들 수 있을 만큼 벌자’였는데, 다행히 한 달 만에 그만큼은 번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유저들로부터 ‘내 꿈은 결혼’ ‘내 꿈은 육아’ 등을 만들어달라는 주문이 들어온다”며 “조만간 ‘내 꿈은 정규직’을 아시아 국가들에 론칭하고, 여름에는 새로운 게임을 개발할 것”이라고도 했다.

이제 막 독립 게임개발자로 나선 이씨의 ‘직급’은 인턴과 사장 사이 어디쯤일까.

“아직 인턴이고 미생(未生)이죠. 요즘엔 3개월만 인기를 유지해도 롱런했다고 할 정도거든요. 제 꿈은 계속 새로운 게임을 만들면서 사는 건데, 앞으로 잘 안 되면 다시 알바 뛰어야 할지도 몰라요. 그래도 이번에 정말 신나게 일했어요. 게임 개발이야말로 제 천직(天職)이란 걸 알게 됐죠. 이 정도면 꽤 많이 남은 거 아닐까요?(웃음).”

신동아 2015년 6월호

2/2
이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목록 닫기

“나는 왜 자꾸 짤리나 그게 궁금했다”

댓글 창 닫기

2019/10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