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교육의 빛과 그늘
김호기 우리 사회 10대의 교육경쟁력은 세계 최고인 것 같아요. 그런데 이들이 20대가 되면 그 경쟁력은 적잖이 떨어지는 것 같습니다. 우리 교육을 어떻게 보는지요.
신기욱 요즘 한국 아이들은 박스 안에서만 키워지는 것 같아요. 높은 점수와 훌륭한 스펙을 가진 똑같은 인재가 만들어지는 셈인데, 이런 부분을 미국 명문대에 진학하는 한국 고교생에게서 봐요. 이들은 SAT와 같은 시험은 굉장히 높은 점수를 받지만 막상 에세이를 쓰는 데는 약해요. 주어진 것은 잘 수행하는데 창의력은 약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대학에 가면 지쳐요. 이런 식의 표준화된 교육이 산업화 시대에는 좋을 수 있었겠지요.
누군가 제게 한국에서 이노베이션이 가능하냐고 물은 적이 있어요. 저는 ‘한국 고등교육이 바뀌지 않는 한 이노베이션은 불가능하다’고 답했어요. ‘발 빠른 추격자(fast follower)’가 될 수 있었지만 이노베이션은 불가능해 보이는 게 문제의 핵심이라고 생각해요.
김호기 발전사회학에선 한국 산업화를 ‘모방에 의한 산업화’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어요. 모방에서 혁신으로 가야 하는데, 그게 잘 안 되는 셈이지요.
신기욱 제 질문은 21세기 동아시아 모델이 미국의 실리콘밸리 모델이나 제조업이 강한 독일의 모델과 어떻게 경쟁할 수 있는지에 있어요. 20세기 후반 동아시아 모델은 상당한 성공을 거뒀습니다. 그 리더가 일본인데 지금 주저앉았어요. 아베노믹스도 일본 정부가 경기부양을 한 것이지 새로운 이노베이션을 한 것은 아니에요. 제가 보기에 한국도 돌파구를 찾지 못해요. 창조경제를 제시했지만 잘 안 되고 사회적 기반도 취약한 것으로 보입니다.
김호기 한미관계 70년을 돌아보면, 20세기 후반 한국에 미국처럼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국가는 없어요. 한미관계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요.
신기욱 지난 70년 동안 한국이 이룬 성취에서 미국의 도움을 인정할 필요가 있어요. 박정희 시대가 공과 과가 있듯, 미국도 공과 과가 있습니다. 저는 7대 3 정도로 공이 더 크다고 봐요. 미국 원조도 있었고, 한국 인재가 미국에 가서 교육받고 왔어요. 미국은 제국의 면모도 있습니다. 전쟁도 많이 하고, 독재정권도 지원했어요. 하지만 6·25전쟁 때 많은 피를 흘렸어요. 그런 면에서 미국의 공을 인정해줘야 한다고 봐요.
김호기 현재 한미관계에 문제점이 있다면 어떤 것인가요.
신기욱 최근 한미관계는 비교적 좋은데, 미중관계에 많이 좌우되는 면이 있어요. 하지만 ‘한국이 미국과 중국의 러브콜을 동시에 받는 것은 축복’이라는 윤병세 외교부 장관의 발언처럼 한미관계와 한중관계를 같은 것으로 보는 시각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한국 안보의 중심축은 한미동맹이고, 그 안에서 동반자 관계로 한중관계를 보는 게 바람직하지, 두 관계를 동등한 수준에서 보는 것은 위험해요.
김호기 한미관계의 과제는 무엇이고 어떻게 풀어야 할까요.
신기욱 MB 정권 때 한미관계가 가장 좋았다고들 해요. 바깥에서는 한중관계가 최근 급격히 가까워진 것에 대해 우려합니다.
앞뒤 안 맞는 ‘통일대박’
김호기 박근혜 대통령이 중국 군열병식에 참석한 것은 어떻게 봤습니까.
신기욱 개인적으로 대통령이 중국에 가는 것은 괜찮은데, 열병식에까지 참석할 필요가 있었겠느냐 하는 생각을 했어요. 독일 메르켈 총리는 러시아에 가서 참석은 하되 열병식에는 가지 않았어요. 한중관계가 중요하긴 하지만 6·25전쟁 때 중국의 참전으로 본 피해와 희생을 고려하면, 중국의 군사 퍼레이드에 참석한 게 적절했는지는 의문입니다.
김호기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문제는 어떻게 보는지요.
신기욱 사드 문제도 다른 차원의 해법이 필요하다고 봐요. 북한의 위협이 있는 게 사실이기 때문에 그 문제에 대해 중국을 설득할 필요가 있어요. 사드를 포기하는 대신 중국이 북한 문제를 해결하도록 요청하는, 나름의 원칙을 가지고 협상에 나서면 좋을 텐데 너무 눈치를 보는 것 같아요.
김호기 북-중관계에 변화가 있는 건가요.
신기욱 북-중관계가 예전 같지 않은 게 분명하지만, 저는 북한이 갖는 전략적 가치를 중국이 포기할 준비가 돼 있지 않다고 봅니다. 이 점에서 한국은 좀 더 냉정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어요. 중국과의 관계가 경제적으로 중요 하지만 한반도의 미래를 생각하면 아직은 한미관계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김호기 남북관계는 어떻게 보는지요. 우리 사회에서 대북정책을 어떻게 추진할 것인지는 보수와 진보를 나누는 중요한 기준이에요. 진보적 포용정책과 보수적 강압정책 모두 불만족스럽다는 게 적지 않은 국민의 생각인 것 같습니다.
신기욱 MB 정부가 일종의 ‘배드 캅’ 역할을 한 셈이에요. 북한으로 하여금 남한이 자신들에게 항상 호의적이지 않으리라는 생각을 갖게 했을 거예요. 그런 맥락에서 박근혜 정부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정책은 방향을 잘 잡았다고 봅니다. 김대중 정부나 노무현 정부의 문제는 정경분리 원칙이죠. 북한을 지원하면서 핵 문제는 무시한 것이지요. MB 정부 때는 핵을 포기하지 않으면 지원을 안 하겠다고 둘을 연결한 것이고요.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는 핵 문제도 중요시하지만 인도주의적 지원은 계속하겠다는 것으로 볼 수 있어요. 과거 두 정책을 절충한 셈이지요. 그런데 문제는 이 정책을 추진할 것처럼 하다가 갑자기 ‘통일대박론’을 들고나왔다는 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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