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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이 굽실거리면 야구가 죽는다”

전격 해임된 김성근 전 LG트윈스 감독 심경 토로

  • 글: 안승호 굿데이 야구부 기자 winho@hot.co.kr

“감독이 굽실거리면 야구가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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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감독은 포스트시즌에서 LG트윈스가 전력의 열세를 딛고 강팀을 꺾어나간 플레이를 ‘옳은 야구’ 또는 ‘바른 야구’라고 부른다. 선수들이 필요 이상의 스타의식을 버리고 자기에 대한 책임감과 동료의식을 갖고 뛰었기 때문에 팀 전력이 강해졌다는 설명이다.

“처음 LG에 와보니 코치들이 오히려 간판선수들에게 끌려다니는 형국이었어요. 이것부터 바로잡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2001년 6월 무렵 SK전에서 근 10점차로 지고 있었는데 중견수 이병규가 좌중간으로 빠진 볼을 천천히 쫓아갑디다. 그래서 선수들이 모두 모인 곳에서 불러 세워놓고 큰소리로 혼을 냈습니다. 그날 밤 병규가 찾아와서 사과를 하더군요. 그 일이 병규와 가까워지는 계기가 됐지요. 다른 구단에서는 간판선수가 호되게 혼나는 경우가 있지만 LG에서는 드물었던 모양이에요. 아마 스타급 선수들 중에서는 병규가 후배들 앞에서 제대로 혼이 난 첫 번째 경우였을 겁니다.”

실제로 LG 선수들은 지난 2년 동안 많이 달라졌다. 인기팀 스타선수들이 휩싸이기 쉬운 ‘거품’이 거의 사라졌다는 것이 그간 LG를 지켜본 많은 야구인들의 중론. 이는 김감독이 스타선수뿐만 아니라 무명선수에게도 충분히 기회를 줬기 때문이다. 2002시즌 LG의 주역인 최동수 권용관을 비롯해 주로 2군에 있던 선수들이 팀의 한 부분을 차지한 것도 ‘이름값’으로 선수들을 차별하지 않은 결과다.

“현장 책임자는 구단이 아니라 감독”

김감독이 구사하는 이 ‘적극적인 용병술’의 위력은 이미 정평이 나 있다. 김감독은 1988년 OB를 떠난 뒤 1989년부터 2년 동안 현대의 전신인 태평양에서, 1996년부터 4년 동안은 SK 전신인 쌍방울에서 감독을 맡으며 약팀을 강팀으로 탈바꿈시키는 ‘마이더스의 손’으로 인정받았다.



-스타선수가 별로 없던 태평양이나 쌍방울 감독 시절과 비교하면 어땠습니까.

“태평양이나 쌍방울도 처음 팀을 맡았을 때 갑갑하기는 마찬가지였어요. 선수들이 대체로 단체의식이 없었고 여기저기 틈이 많이 보였어요. 1989년 태평양 감독직을 수락한 뒤 인천구장에서 선수들을 처음 봤을 때는, 계약만 하지 않았다면 도로 물리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훈련하는 모습이 어찌나 한심한지 서울로 돌아오면서 고민이 많았습니다.

대신 일단 해보겠다고 마음먹은 뒤에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죠. LG 때도 그랬듯이 선수들에게 ‘우리는 한팀이고, 이겨야 한다’는 생각을 심어주려 노력했고 선수들을 강하게 이끌었습니다. 그때는 지난해 LG에서보다 훈련을 더 많이 했어요. 이후 최창호, 정명원, 박정현 등 좋은 투수들이 나오면서 팀이 강해졌습니다.

1996년 쌍방울 간판선수는 김기태였죠. 11월 마무리훈련을 하고 소감을 적어내라고 했더니 김기태가 ‘지금 훈련하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고 하더라고요. 다음 시즌이 아직 한참 남았는데 일찍 무리해서 무슨 소용이 있겠냐는 항의였죠. 그런데 정확하게 1년 뒤 같은 방식으로 적어낸 소감에는 ‘이 시기에 훈련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썼더군요. 하나씩 고비를 넘기다보니 팀이 바뀐 거죠.”

-태평양과 쌍방울 시절에도 구단 고위층과 관계가 좋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굽실거리지 못해서가 아니라 그러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라운드에서 선수들을 이끄는 것은 감독입니다. 감독에게 힘이 없으면 선수들이 따라오지 않고, 그만큼 팀 전력은 새기 마련이에요. 그렇게 되면 정작 그 팀이 구사해야 할 플레이 컬러가 바랩니다. 그래서 구단 사장에게 필요 이상의 행동을 하지 않았던 거죠. 이번에도 위에서 어떻게 생각하든 내년 시즌을 위해 적임자라 생각한 코치를 구단에 요청했던 겁니다. 결국 구단에서 끝까지 거부해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는데, 그 다음날 바로 해임되고 말았습니다.”

김감독의 좌우명은 일구이무(一球二無). 김감독의 팬클럽 이름 역시 ‘일구이무’다. ‘공 하나에 두 가지 생각이 있을 수 없다’는 뜻이라는 이 말에는 자기가 선택한 행동에는 반드시 책임을 진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김감독이 구단에 필요한 코치를 요구한 것도 ‘다음 시즌 성적을 책임지는 것은 다름 아닌 감독’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구단 책임자와 팀 감독은 역할이 분명히 다릅니다. 종합병원 경영진과 전문의의 관계를 예로 들어 생각해 봅시다. 의사가 환자를 치료하는데, 병원 경영진이 나서 ‘이런 약을 써라, 저런 약을 써라’ 하고 간섭하면 제대로 의술을 발휘할 수 없을 겁니다. 야구 감독도 마찬가지죠. 팀을 운영하고 선수를 관리하는 것은 감독에게 전적으로 맡기는 것이 옳다고 봅니다. 누가 뭐래도 현장 책임자는 감독이니까요.”

-이번 시즌 동안 김감독 또한 많이 변했다고들 말합니다. 한국시리즈에서 삼성 김응룡 감독이 초조한 모습을 보였던 것과 달리 김감독은 여유가 넘쳤다고도 이야기하고요. 경기에 진 뒤에도 인터뷰실에서 차분히 패인을 설명할 만큼 담담해 보였는데요.

“글쎄요, 프로 감독 20년 만의 깨달음이라고 할까요. 그동안은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백승(百戰百勝)이라는 말을 알고도 실행하지 못했습니다. 새벽까지 상대팀 분석하고 우리팀 선수들 컨디션 파악하는 일을 반복했지만 경기장에 나가면 이기려는 마음이 앞서 둘 중에 하나는 보지 못했어요. 그런데 이번에는 ‘제3자 입장’에서 덕아웃에 앉아 있으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아무리 급박한 상황이라도 우리팀과 상대팀 돌아가는 게 보이더군요. 경기를 즐기며 상황에 따라 필요한 작전을 쓸 수 있게 됐고요.”

삼성 김응룡 감독은 6차전에서 9회말 극적인 역전승을 거두고 한국시리즈 우승을 확정지은 뒤 “‘야구의 신(神)’과 싸우는 것 같았다. 김성근 감독의 투수 교체와 대타 기용이 기가 막혔다”고 털어놓았다. 김감독의 용병술을 ‘적장’인 김응룡 감독이 인정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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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안승호 굿데이 야구부 기자 winho@h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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