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야구사의 ‘거장’들이지만 두 감독은 그리 살가운 사이가 아니다. 몇 년 전 기자가 김인식 감독과 함께 두 감독을 한자리에 불러놓고 대담을 진행하려다 서로 ‘그 감독 나오면 절대 안 나간다’라고 하는 바람에 무산된 적이 있다. 그처럼 평소 가깝게 지내지 않던 김응용 감독을 꿈에서 봤다는 김성근 감독의 얘기가 신기했다.
김성근 감독은 10개 팀 감독 중 가장 극단적으로 찬반 양론의 중심에 있는 인물이다. ‘지옥훈련’으로 불리는 스프링캠프 동안 김 감독의 훈련 방법을 지지하는 쪽과 반대하는 쪽이 인터넷 공간에서 설전을 벌일 정도다. 선수들도 헷갈릴 지경이다. 일본 고치 전지훈련에서 만난 한화 선수들은 ‘이렇게 죽을 둥 살 둥 훈련한다고 과연 우리 팀이 정말로 달라질 수 있을까’란 의문을 갖고 있었다. 김 감독도 그걸 모르지 않았다.
“고민이 많았어. 사람들이 ‘김성근’이란 이름에 어떤 기대를 하는지 잘 알아. 연일 ‘지옥훈련’이란 제목 아래 한화 캠프에 대한 기사가 나오면서 반발세력이 생기는 것도 느꼈고. 김성근이 한화를 아마추어로 만들고 있다느니, 프로답지 못한 훈련 방식이니 하며 비난하는 소리도 들리지. 그들에게, 한화란 팀이 나를 왜 데려왔는지 묻고 싶어. 욕먹는 게 두려워서, 비난받는 게 싫어서 내가 지켜온 가치와 신념을 바꿔야 한다면 내가 여기 있을 필요가 없지. 감독들이 다 똑같은 방법으로 야구를 하면 얼마나 재미없겠어. 난 나대로, 다른 감독들은 그들 방식대로 해가면 돼. 그리고 이겨야 하는 것이고. SK 때도 이런 얘길 했지. 이기지 못하는데, 우승도 못하는데 재미있는 야구가 가능하냐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알아서 생각해줘.”
보이지 않는 힘, 恨
김성근 감독은 누구보다 자신에게 쏠리는 극단적 시선을 잘 파악하고 있었다. 그렇다보니 간혹 이렇게 감정을 드러내기도 한다.
“야구계에선 올 시즌 한화가 좋은 성적을 내면 큰일이라고 한다면서? 그렇게 되면 다른 팀들도 강도 높은 훈련을 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하던데…(기자도 그런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나한테 형식은 중요하지 않아. 선수들이 훈련을 하면서 마음속에 무엇을 담아가는지가 중요하지. 다른 건 몰라도 한화 선수들의 의식이 지난 시즌에 비해 변화가 있는 건 분명해. 문제는 아직 몸이 따라주지 않는 건데, 이것 또한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나아질 것이라고 봐. 시즌은 길잖아. 좀 차분하게 지켜봐주면 안 될까? 뭐가 그리 조급한지 참.”
시즌 개막 전 프로야구 미디어데이 때의 일이다. 10개 구단 감독이 돌아가면서 올 시즌에 대한 각오를 발표했다. 지난 시즌 우승팀 삼성 라이온즈의 류중일 감독이 제일 먼저 마이크를 잡았고, 김성근 감독은 지난 시즌 꼴찌팀 감독이었지만, 신생팀 kt 위즈 덕분에 끝에서 두 번째로 말할 기회를 잡았다. 김 감독의 얘기 중 인상적인 대목이 “내년 시즌에는 (미디어데이 때) 끝에서 두 번째가 아니라 앞에서 두 번째로 들어오겠다”는 것이었다. 김 감독의 얘기를 듣던 다른 팀 감독들은 묘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나중에 김 감독을 만났을 때 그 얘기를 한 까닭을 물었다.
“선수들에게 이런 얘기를 자주 해. 야구에는 ‘보이는 힘’과 ‘보이지 않는 힘’이 있는데 보이는 힘(전력)으로 봤을 땐 우리가 삼성, 두산, LG한테 뒤지지만 보이지 않는 힘에서는 그들에 비해 떨어지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힘이 뭔지 알아? 바로 선수들의 ‘한(恨)’이야. 한화 선수들은 한이 맺혀 있어. 이걸 잃지 않고 승부를 내면 난 승산이 있다고 봐. 그래서 미디어데이 때 다음 시즌 때는 앞에서 두 번째로 들어오겠다고 말한 거야. 그게 그냥 ‘뻥’이 아니었다고, 허허.”
그가 한화 부임 후 가장 신경을 쓴 부분이 마운드다. 지난 시즌 한화의 팀 평균 자책점은 6.35. 프로야구 역대 최악의 기록이다. 김 감독은 한화 마운드 재건을 위해 일본에서 니시모토 다카시 코치를 영입했다. 그는 5명의 한화 일본인 코치 중 경력이 가장 화려하다.
니시모토 코치는 1975년 요미우리 자이언츠에 드래프트 번외로 입단해 1977년 1군 주전투수가 됐고, 1980~1985년 6년 연속 두 자릿수 승리를 달성했다. 1981년 18승을 올려 팀의 센트럴리그 우승을 이끌었고, 같은 해 일본시리즈 2차전에서 매 이닝 탈삼진의 진기록을 달성했으며, 두 차례 완투승으로 시리즈 MVP에 뽑혔다. 그는 요미우리, 주니치, 오릭스에서 뛴 18시즌 동안 504경기에 등판해 165승 128패 17세이브, 평균자책점 3.20, 1239탈삼진을 기록했다. 은퇴 후 한신 타이거즈, 지바 롯데 마린스, 오릭스 버팔로스 등에서 1군 투수코치를 맡았고, 2014년에는 오릭스 2군 육성 총괄을 담당했다. 2010년 지바 롯데 김태균, 2013년 오릭스 이대호 등 한국인 선수들과도 인연을 맺었다. 김태균과는 2010년 지바 롯데 일본시리즈 우승의 소중한 추억을 공유한다.
니시모토 코치 모신 까닭
니시모토 코치는 김성근 감독과 별다른 인연이 없다. 한화 코치로 부임하기 전까지 김 감독을 만난 적도 없다. 그런 그가 잘나가던 일본 코치 생활을 뒤로하고 낯선 땅에 발을 디딘 이유는 김 감독 때문이다. 그는 “김 감독의 명성은 일본에서도 매우 높다. 일본 지도자들은 그의 남다른 지도법에 관심을 갖고 있다. 일본 야구인을 통해 코치직 제안을 받았을 때 망설임 없이 결정한 것도 김 감독의 지도법을 가까이에서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일본 전지훈련 동안 김 감독과 동고동락하면서 한 가지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김 감독은 야구 외에는 도통 아무것에도 관심이 없는 분”이라는.
이런 얘기를 전해 들은 김성근 감독은 니시모토 코치에게 고마움을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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