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10월호

죽음의 전도사 ‘오사마 빈 라덴’

  • 경진민 < 자유기고가 >

    입력2005-01-04 1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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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세기를 통틀어 대표적인 테러리스트를 꼽으라면 주저 없이 본명이 일리치 라미레스 산체스(Illich Ramirez Sanchez)인 소위 카를로스 ‘자칼’일 것이다. 베네수엘라 출신이면서 1970~1980년대 주로 유럽무대에서 활동한 그는, 1994년 8월 수단에서 체포될 때까지 국제테러 수배자 제1호로 악명을 떨친 전설적 테러리스트였다.

    ‘21세기의 자칼’은 최근 세계무역센터에 대한 항공기 자살테러의 배후자로 지목되고 있는 라덴이라는 데 누구도 이견을 달지 않을 것이다. 그는 사우디아라비아 출신이면서 1990년대 직·간접적으로 반(反)사우디 및 반미 테러를 재정 후원해 왔고, 미 FBI 지명수배 제1호로 지목돼 현재 아프간에 망명중이다.

    라덴이 세계적 테러리스트로 악명을 떨치면서 세계인의 주목을 받게 된 최초의 사건은 1998년 8월 아프리카 케냐 및 탄자니아 주재 미국대사관에 대한 폭탄테러였다. 이 사건을 계기로 FBI는 그의 체포에 결정적 정보를 제공하는 사람에게 FBI 역사상 최대액수인 500만달러의 현상금을 걸었다.

    아프간에 대한 미국의 대규모 보복공습에서 미국이 그를 사살하거나 체포하지 못하고 전쟁이 장기화될 경우 현상금은 1000만 달러 이상으로 폭등할지도 모른다. 누가 알겠는가, 막대한 현상금에 눈 먼 일부 테러조직이나 범죄조직이 그의 목을 노리면서 추적할는지.

    21세기의 ‘자칼





    도대체 라덴은 어떤 인물인가. 누가 그를 아무 죄도 없는 민간인에 무차별 살상을 자행하는 극단적 반미주의자로 만들었는가. 그리고 현재 미국과의 전쟁도 불사하면서 그를 보호하고 있는 아프간의 탈레반은 또 어떤 조직인가. 이런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과거로의 탐구여행이 필요하다.

    FBI 자료에 의하면 라덴은 1957년 사우디아라비아 대부호의 집에서 출생했다. 1m93cm~1m98cm 사이의 신장과 73kg 정도의 몸무게, 머리카락과 눈동자 색깔은 갈색이며 피부는 올리브색이다. 지팡이를 짚고 다니며 아랍어로 ‘베이스(The Base; 근원지)’라는 뜻을 지닌 테러 조직 ‘알-카에다(Al-Qaeda)’를 이끌고 있다.

    적게 먹고 적게 자며, 대화할 때는 조용하고 공손하게 경청하는 편이나, 일단 입을 열면 유창하게 열변을 토한다고 전해진다. 그는 또한 많은 별명(Usama Bin Muhammad Bin Ladin, Shaykh Usama Bin Ladin, the Prince, the Emir, Abu Abdallah, Mujahid Shaykh, Haji, the Director)을 가지고 있다.

    라덴은 1998년 테러사건 이후 가족과 함께 사우디 정부로부터 추방당해 무국적 상태의 망명자가 됐다. 라덴의 성장 과정과, 그가 왜 백만장자 후계자로서의 안락한 삶을 버리고 극단적 이슬람 전사로 다시 태어났는지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려져 있지 않다. 이슬람 율법이자 토지를 신성시하는 ‘샤리아(sharia)’에 대한 극단적 해석이 그를 이슬람 근본주의자로 몰아갔으리라는 추정만 있을 뿐이다.

    아마도 20대 초반시절 청년 라덴의 눈에는 이슬람의 발상지이며 신성한 영토인 조국 사우디에 외국군대가 주둔하고, 또한 신성한 토지로부터 생산되는 원유를 외국에 파는 세속적이고 부패한 사우디 왕조에 끓어오르는 분노를 느꼈을 것이다. 또한 사우디 왕조가 외국 세력과의 유대를 통해 부패를 더욱 공고히 하고 있다는 판단을 내렸을 수 있다. 자기 가족의 부(富) 또한 부패한 왕조와 유착한 결과라는 판단에 그는 참담함을 느꼈을 수 있을 것이다.

    이렇듯 방황하던 22세 청년 라덴에게 1979년 이슬람 국가인 아프간에 대한 소련군의 무력 침공은 커다란 전환점이 됐다. 그의 인생에 새로운 돌파구를 제공한 것이다. 막대한 가족의 부를 배경으로 그는 아랍용병을 모으기 시작하였다. 이들 아랍용병은 라덴의 철저한 이슬람 근본주의 교육을 받은 후 아프간 전장에 투입됐다. 라덴은 이들에게 “죽음은 곧 끝이 아니요 천국으로 가는 길”임을 주입하였다.

    ‘죽음 = 천국’의 이야기는 이슬람 역사에서 수백 년 전부터 내려오는, 암살자(assassin)를 위한 ‘천국같은 하룻밤’에서 유래한다. 암살자는 환각제인 해시시(hashish)를 흡입하며 명령자가 제공하는 화려한 궁전에서 미녀와 꿈 같은 하룻밤을 보낸다. 임무 수행 후 죽더라도 천국에서 다시 그처럼 화려한 생활을 영유할 수 있다는 것이 구전의 내용이다.

    아프간은 라덴이 주도하는 과격 이슬람 테러의 근원지다. 라덴 테러의 출발점도 1979년 아프간의 친소(親蘇)정권에 의한 쿠데타에서 시작된다. 소련의 아프간에 대한 무력침공은 친소정권을 지원하기 위한 것이었다. 당시 라덴은 아프간의 반소(反蘇)저항군으로 활동하던 학생 중심 조직 탈레반과 함께 투쟁에 참가한다. 라덴은 아랍계 용병을 모집하고 훈련시키면서 아프간 반소투쟁을 이슬람 성전으로 간주하였다.

    결국 1989년 소련은 1만5000명의 희생자를 남기고 아프간에서 철수한다. 극단적인 이슬람 근본주의로 무장한 라덴의 조직과 탈레반은 10년 가까이 반소투쟁을 벌이며 형제 이상의 관계로 발전한다. 이것은 탈레반이 미국의 보복공격 위협에도 불구하고 라덴을 미국에 인도하지 않고 ‘성전’을 외치며 결사항전을 준비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불행히도 소련군의 철수는 아프간에 두 마리의 ‘괴물’을 남겼다. 소련이 후원하던 아프간 친소정권(Najibullah)과 미국·파키스탄이 후원하던 탈레반 반군이었다. 강대국들이 개입한 아프간내 권력투쟁은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결국 1991년 소련이 붕괴되기까지 아프간은 미국과 소련의 대리 전쟁터가 됐다. 결국 탈레반이 소련 괴뢰정부와의 내전에서 승리했다.

    이후 탈레반은 다시 다수파인 극단파와 소수파인 온건파로 분열됐다. 다수파는 라덴의 극단적 이슬람주의를 선호했다. 다수파 탈레반은 아프간 북부지역 일부를 제외한 영토의 90% 이상을 점령해 실질적인 지배자로 군림하고 있다.

    아이러니컬한 건 현 부시 대통령의 아버지인 부시 전대통령이 30억달러를 쏟아부어 만든 ‘괴물’ 탈레반이 대미(對美) 테러의 후원자가 돼 그 아들에게 직격탄을 쏘았다는 사실이다. 아프간 내전 동안 미국과 사우디는 파키스탄 정보기관을 통해 탈레반에 군수물자를 지원했다. 특히 소련군 철수 직전 미국은 미국제 스팅거 미사일 2000여개를 탈레반에 제공했다. 그 스팅거 미사일이 현재 미국의 아프간 공습에 최대 장애요인으로 떠오른 점 또한 역설적이다.

    소련군 철수 2년 전 라덴은 친구들에게 “이제 부패하고 세속적인 중동의 이슬람 정권과 그들을 후원하는 서방 강대국들을 끝장 낼 글로벌 지하드(聖戰)의 시기가 왔다”는 비전을 처음 밝혔다. 청년 시절 가슴 속 깊이 품었던 꿈을 30대에 이르러 실천키로 마음먹은 것이다.

    알-카에다는 바로 이 글로벌 성전을 위해 조직된 라덴의 친위조직으로, 세계적 네트워크를 갖고 있다. 이슬람계 말레이시아인·알제리아인·필리핀인·팔레스타인인·이집트인, 그리고 미국인들까지….

    라덴은 조직을 건설하면서 운동의 방해요소인 원리적·인종적·지리적 차이를 극복하려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이슬람 원리의 해석에 따라서는 다수파인 수니파와 소수파인 시아파가 존재한다. 알-카에다의 경우 이란이 후원하는 레바논 시아파 테러조직 ‘헤즈볼라(신의 당)’에서 훈련을 받았다. 라덴은 이슬람 원리주의 운동내 두 과격파가 협조하도록 만든 최초의 인물이다.

    라덴은 아프간에서의 친소정권에 대한 투쟁, 그리고 탈레반 내부 투쟁 과정을 거치면서 이슬람 지하드 운동을 발전시켜 갔다. 1991년 걸프전은 이러한 라덴의 글로벌 지하드 운동을 중동은 물론 세계로 확산시킨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이 과정에서 라덴은 글로벌 지하드 운동을 위한 일종의 테러교본을 만들었는데, 현재 다양한 언어로 번역돼 유통되고 있다. 라덴의 테러교본은 간단한 폭탄제조법은 물론 화학가스, 독극물, 마약 등을 사용한 살상법까지 비교적 상세히 적고 있다.

    이것은 가히 1969년 브라질 출신 좌파 테러리스트 카를로스 마리겔라가 저술한 ‘도시게릴라에 대한 소책자(Minimanuel of the Urban Guerrilla)’에 버금가는 책이다. 마리겔라의 테러교본이 1970년대 좌파 도시 게릴라들의 이데올로기적 기본 교본이 되었다면, 라덴의 책은 1990년대 이슬람 테러의 교과서가 됐다. 전직 CIA 요원에 따르면 ‘불행히도’ CIA는 1999년이 되어서야 이 교본의 복사본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고 한다.

    걸프전 당시 미군은 사우디에 주둔했다. 라덴은 자신의 조국이자 이슬람 세계에서 가장 신성시하는 땅에 외국 군대가 주둔하도록 결정한 사우디 국왕에게 큰 분노를 느꼈다. 라덴의 적개심은 이후 사우디 정부와 미국을 테러 대상으로 삼을 것임을 맹세하도록 만들었다.

    걸프전이 종식되면서 라덴은 다시 아프간으로 떠난다. 그러나 아프간에서의 거주는 수개월을 넘지 못했다. 사우디 정부가 라덴을 암살하기 위해 파키스탄 정보기관을 매수했다는 첩보을 입수했기 때문이다. 암살설에 따라 라덴은 1991년 그의 거처를 호전적 이슬람 정부가 권력을 장악한 수단으로 옮긴다. 이곳에서 라덴은 5년 동안 글로벌 지하드 운동을 위한 위장 합법 비즈니스를 했다. 그의 조직 알-카에다 또한 이 곳에서 본격적인 훈련을 시작한다.

    1993년 6명의 사망자와 1000여명의 부상자를 낸 세계무역센터 테러는 글로벌 지하드의 전주곡이었다. 상당한 시일이 지나서야 FBI는 이 테러의 재정적 지원자로 라덴을 지목할 수 있었다. 다시 말해 FBI는 1993년 세계무역센터 테러사건과 관련, 1996년이 돼서야 비로소 라덴과 그의 조직 알-카에다를 수사하기 시작한 것이다.

    FBI와 CIA는 1996년 사우디 주둔 미국에 대한 테러사건으로 인해 비로소 수단에서의 라덴의 활동에 주목하게 되었다. 미 첩보기관은 수단에 머무는 동안 라덴이 테러행위를 직·간접적으로 후원하기 위해 약 2억7000천만 달러를 지출했음을 밝혀냈다.

    미국은 즉각적으로, 당시 테러지원국 명단에 올라 있던 수단 정부에 라덴을 추방하도록 외교적 압력을 가했다. 결국 라덴은 1996년 탈레반이 장악하고 있는 아프간으로 망명길에 올랐다. 물론 탈레반은 그를 열렬히 환영하였다. 탈레반은 다시 라덴의 글로벌 이슬람 테러 행위의 전초기지가 된 것이다.

    아프간에 도착한 후 라덴은 대도시인 칸다하르에서 유유자적한 생활을 향유한 것으로 전해진다. 남쪽의 파키스탄, 북쪽의 러시아를 통해 유입되는 밀수 물품으로 풍족한 생활을 즐겼다. 그가 마지막 모습을 드러낸 것은 금년 1월, 칸다하르에서 있었던 아들의 결혼식에서였다.

    라덴은 파키스탄 주둔 CIA 작전국 요원들의 체포작전이 시작됐다는 느낌이 들 때마다 국제형법조차 미치지 못하는 아프간 내부산악지대로 쏜살같이 몸을 피하곤 했다. 검은 창으로 위장한 네 대의 4륜구동 지프와 중무장한 전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밤에만 이동한다.

    라덴은 18세기나 19세기 통신수단을 이용한다. 그의 위성전화가 CIA에 의해 감청될 수 있음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라덴이 중요한 테러를 수행하기 위해 주로 쓰는 통신수단은 암호화된 플로피 디스켓이다. 디스켓은 ‘포니 익스프레스(Pony Express)’라 불리는 짐꾼을 통해 전달한다.

    아프간에 정착한 라덴은 2년 후인 1998년 2월 아프간의 동부지역에 위치한 코스트(Khost)에서 공개적으로 새 조직의 설립을 선언했다. ‘유대인과 기독교인에 대항하는 성전을 위한 국제이슬람전선(International Islamic Front for Jihad against Jews and Crusaders)’. 그의 조직인 알-카에다는 물론 세계 도처의 이슬람계 조직들이 이 전선에 동참하였다. 전선은 다음과 같은 선언문을 채택하였다.

    “세계 어느 곳에서든, 시민이건 군인이건 구별할 것 없이, 모든 미국인과 그 동맹군을 살해하는 것은 이슬람의 개인적 의무다.”

    선언에 따라 그해 8월 라덴은 미국 정부에 하나의 경고를 발송했고 수 시간 후 케냐와 탄자니아의 미국 대사관에 폭탄테러를 감행했다.

    그러나 이 공격은 알-카에다 조직에 치명타를 날렸다. 2주일도 못돼 미국의 클린턴 행정부는 수단과 아프간에 수십 대의 토머호크 미사일 공격을 했다. 더구나 테러사건 후 2년 동안 20개국 이상에서 라덴과 연계된 100여 명의 이슬람 테러리스트들이 체포되었다.

    그럼에도 라덴은 테러를 계속했다. 특히 2001년 초에는 예멘항구에 정박중인 미전함 콜호에 대한 자살공격으로 17명의 미해군 장병을 살해했다. 그리고 2001년 9월, 초유의 항공기 자살테러라는 방법으로 세계무역센터를 잿가루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이 사건은 아마 테러리즘 역사상 최대의 인명피해를 야기한 재앙으로 기록될 것이다.

    금년 5월 UN의 한 보고서는 현재 100개 이상의 테러조직이 핵무기 획득에 열을 올리고 있음을 경고했다. 1993년 소련 붕괴 후 약 550건의 핵 물질 밀매사건이 발생했으며 대부분은 구소련에서 유출된 것이었다. 주고객은 물론 테러조직들이다.

    서방 첩보기관들은 라덴이 이끄는 알-카에다 조직이 최소한 2개의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라덴은 아프간에 12개 테러캠프를 설치하면서 약 5000여 명의 전사들에게 신경가스 훈련을 시키고 있다. 또 세계 50여 개국에 세포조직을 뿌려 놓았다. 이 조직원들 역시 화학무기를 다룰 수 있도록 훈련 받았다.

    한때 라덴을 위해 일했지만 현재는 미국정부에 귀순한 한 목격자는, 라덴은 테러목표가 정해지면 테러리스트를 목표 지역에 파견해 수개월 혹은 수년 동안 일상적인 생활을 하도록 지시한다고 했다. 이는 결국 미국이 아프간 공습을 통해 라덴을 사살하거나 체포한다 하더라도 제2, 제3의 라덴이 등장할 수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다음의 테러는 미국 내 곳곳에서 자살테러나, 아니면 핵무기·생물학무기·화학무기와 같은 대량살상무기를 이용한 슈퍼테러가 될 가능성이 있다. 라덴의 섬뜻한 말은 암울한 미래를 암시한다.

    “테러행위는 정치의 또 다른 수단이 아니다. 나는 협상을 원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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