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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9월 11일 그날 이후

문명충돌론과 이슬람 근본주의 두 허상을 버려라

‘깐수’정수일 박사의 시각

  • 정수일 < 동서교류사 전문가 >

문명충돌론과 이슬람 근본주의 두 허상을 버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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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일어난 테러 참상의 동인을 놓고 떠도는 또 하나의 허상은 소위 ‘이슬람근본주의’다. 아랍-이슬람과 관련이 있다고 확증 아닌 심증을 굳혀가고 있는 이번 사건을 비롯해 이슬람세계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모든 외향적(外向的)인 ‘이변’들을 싸잡아 이슬람근본주의(혹은 원리주의)로 몰아붙이는 것이 작금의 언론계나 학계의 중론이다. 그 진원이나 근거가 어디에 있는지는 분명치 않으나, 용어에서부터 개념이나 내용에 이르기까지 허상을 실상인 양 사변화(思辨化)하고 있는 것이 안타까운 현실이다.

이슬람근본주의를 하나의 허상이라고 하는 이유는, 우선 용어와 개념의 괴리에 있다. 소위 근본주의는 영어 단어 ‘fundamentalism’의 번역어다. 원래 근본주의는 미국의 한 개신교 교파 내에서 일어난 보수주의 종교운동이다. 18세기 전반 미국에서 성행한 ‘천년왕국운동’에 뿌리를 둔 이 운동의 가담자들은 1902년에 ‘미국성서연맹’을 결성하고 1910년부터 1912년 사이에 ‘근본적인 것, 진리의 증언’이란 제하의 소책자 12권을 시리즈 형식으로 발간해 자기들의 반모더니즘적 주장을 전파했다.

여기에 연유되어 그들의 주의주장을 ‘근본주의’라고 명명했다. 19세기 기독교의 근본교리를 부정하는 ‘성서비판학’(역사적 예수와 신앙의 예수 분리론)이 대두되어 기독교의 세속화와 자유화가 심화하자 성서의 무오류(無誤謬)와 축자적(逐字的) 해석, 예수의 신성과 동정녀 탄생, 그리스도의 재림 등 기독교의 근본교리를 지키기 위한 명분으로 출현한 것이 바로 기독교의 근본주의다. 이와 같이 기독교의 근본주의는 근본을 살리기 위한 운동(사상)이라는 점에서 용어와 개념이 서로 일치한다.

그러나 이슬람의 경우는 사정이 전혀 다르다. 1400여 년간의 이슬람역사에서 근본교리나 ‘6신(信)5주(柱)’(여섯 가지 믿음과 다섯 가지 종교 의무)를 비롯한 ‘근본적인 것’이 도전받거나 거부되어 그것을 회복하거나 지키기 위해 근본주의 같은 것이 필요한 적은 한번도 없었다. 이슬람에서 경전 ‘꾸르안’은 누구에게나 절대적이어서 비판의 여지란 있을 수 없고, 또한 이슬람 자체가 근본이요 원리이기 때문에 따로 어떤 근본주의 같은 것이 이슬람과 병존한다고 상상할 수도 없다. 따라서 근본을 강조할 필요가 없는 이슬람근본주의란 분명한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그런데도 왜 오늘날 이처럼 아귀가 맞지 않는 낱말이 버젓이 인구에 회자되고 있는가? 원래 이슬람에 없는 개념이라서 이슬람의 경전 언어인 아랍어에는 근본주의란 단어가 없다. 근간에 이슬람권 외부에서 왈가왈부하기에 ‘우수릿야’(근본적인, 근본주의)라는 조어(造語)가 생기기는 했으나 정통 이슬람학자들은 이를 무시한다.



이슬람근본주의란 낱말은 유럽인들이 처음 썼다. 영국에서 이슬람 연구의 태두라고 하는 와트는 1988년에 쓴 책 ‘이슬람근본주의와 모더니즘’에서 이슬람의 전통적 세계관을 수용하고 그대로 실현하려는 자들을 이슬람근본주의자로, 전통적 세계관을 몇 가지 측면에서 수정하려고 하는 자들을 자유주의자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미국 시카고대학에서 펴낸 ‘세계종교 부흥 관련 연구논문’에는 “다른 적절한 대체어가 없지만 이슬람과 기독교 근본주의 사이에는 ‘전투성’이란 유사성이 있기 때문에 그대로 이슬람근본주의란 말을 채택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들의 견해를 종합하면 이른바 이슬람근본주의는 전통 고수의 보수주의이며, 그 용어는 전투성 때문에 차용했다는 것이다.

보수를 근본주의로 보는 것은 기독교적인 개념이다. 이 개념대로라면 이슬람근본주의에는 의당 보수적인 사상이 가미돼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슬람근본주의 주창자들은 보수주의 뿐만 아니라, ‘개혁운동에 뿌리를 두고 있는 행동주의’, 즉 혁신주의마저 이에 포함시키고 있다. 이러한 오류와 혼탁은 연구의 가설이나 분석의 방편에 불과한 ‘차용어(借用語)’가 ‘본래의 것’으로 착각되어 용어와 개념이 불일치 내지 괴리된 데서 비롯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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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일 < 동서교류사 전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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