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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한미동맹 50주년, 흔들리는 한미 관계

이제 미국은 없다?

崇美에서 反美까지… 한국인의 복잡한 심리 분석

  • 글: 김호기 연세대 교수·사회학 kimhoki@yonsei.ac.kr

이제 미국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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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대학생들의 이런 대미의식은 일반 국민들의 대미의식과는 큰 차이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주목할 것은 학생들의 이런 문제 제기가 그동안 보여왔던 숭미에 가까웠던 일방적인 친미 의식에 서서히 제동을 걸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이 시기를 전후로 미국이 자유민주주의의 수호자라기보다는 오히려 독재정권을 옹호해 오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이 일반 국민들 사이에서도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더불어 1980년대 이후 미국의 대외 경제정책 또한 친미의식에 큰 영향을 끼쳤다. 미국은 만성적인 무역적자를 해소하기 위해서 선별적인 수입규제 조치를 취하는 동시에 수입시장 개방 압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미국의 이런 경제 조치들은 한국인들에게 미국이 영원한 친구가 아니라는 점을 깨닫게 했다. 국제사회에서 어느 나라건 자국의 이익을 최우선시하며 미국 또한 예외가 아니라는 사실은 일방적인 친미의식에 의문을 갖게 했다. 이와 관련해 미국의 고압적인 통상 압력은 서서히 반미의식을 싹트게 만들었다.

여기에 주목할 것은 친미의식과 반미의식의 이런 변화는 미국과의 관계에서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1980년대를 경유하면서 산업화와 민주화를 어느 정도 달성한 우리 국민들이 갖기 시작한 일종의 민족적 자긍심은 이제까지 종속적인 관계를 암묵적으로 당연시해 온 대미의식을 변화시키는 데 일조했다. 미국을 적대시하거나 추종한다기보다도 미국은 미국이며 우리는 우리라는 의식이 나타났다. 이런 의식은 특히 1988년 올림픽 개최를 통해, 그리고 이후 민주화 과정에 서서히 강화했다. 이런 대미의식의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이제는 우리 국민들이 가장 좋아하는 나라가 더 이상 미국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렇다면 1980년대 반미와 1990년대 반미는 어떤 차이를 보이는 것일까. 먼저 1980년대 반미의식은 학생운동 내지 사회운동의 ‘이념적 반미’ 성격이 두드러진다. 이념적 반미란 반자본주의라는 이념의 프리즘으로 한미 관계를 새롭게 파악함으로써 미국을 거부하려 했던 것을 말한다. 이 이념적 반미는 미국의 또 다른 실체를 발견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없지 않았지만, 극단적인 반미의식을 고취했다는 점에서 문제점도 갖고 있었다. 당시 학생운동 세대가 가졌던 이런 반미의식은 그들이 사회에 진입하면서 다소 약화되기는 했지만, 그 기조는 계속 이어져왔다.

1980년대 반미의식과 비교해 1990년대 반미의식은 ‘논리적 반미’와 ‘정서적 반미’가 결합돼 있다. 여기서 ‘논리적 반미’가 한미 관계에서 미국이 자국의 이익을 우선시한다는 것을 인식하게 됨으로써 갖게 되는 의식을 말한다면, ‘정서적 반미’란 제도와 문화를 포함한 ‘미국적인 것’을 정서적으로 거부하려는 것을 가리킨다.



미국의 물질적 지배에 저항

후자의 ‘정서적 반미’는 비단 우리 사회뿐만 아니라 오늘날 비 서구사회에서 광범위하게 관찰되는 것으로, 미국의 물질적 지배가 강화되면 될수록 이에 비례해 의식적 측면에서 ‘미국적인 것’을 거부하는 경향이 강화돼 왔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물질적인 지배에 대응하여 정신적인 우월을 강조하는 경향이 두드러진 나라들로는 흔히 이슬람 국가들이 꼽히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는 이런 경향이 1990년대 이후 강화돼 왔다고 볼 수 있다.

2002년 2월 갤럽이 전국을 대상으로 조사한 주요 국가 선호도는 반미의식의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준다. 먼저 조사 결과를 세대별로 보면, 30대의 경우 미국이 ‘아주 좋다’와 ‘약간 좋다’는 사람은 각각 2.2%, 19.0%인 반면에, ‘약간 싫다’와 ‘매우 싫다’는 38.4%, 35.6%였다. 20대의 경우에는 미국이 ‘아주 좋다’와 ‘약간 좋다’는 사람은 4.8%, 18.3%인 반면에 ‘약간 싫다’와 ‘매우 싫다’는 사람은 28.8%와 41.4%였다. 40대의 경우에는 미국이 ‘아주 좋다’와 ‘약간 좋다’는 사람은 11.1%, 29.8%인 반면에 ‘약간 싫다’와 ‘매우 싫다’는 사람은 26.0%와 29.4%였다. 그리고 50대 이상에서는 미국이 ‘아주 좋다’와 ‘약간 좋다’는 사람이 18.6%, 31.4%인 반면에 ‘약간 싫다’와 ‘매우 싫다’는 사람은 22.5%와 16.9%였다.

세대 구분에 따른 이 조사는 1980년대에 대학을 다닌 이른바 386세대가 상대적으로 높은 반미의식을 갖고 있음을 보여준다. 386세대를 예외로 한다면 나이가 많을수록 반미의식이 감소된다고 볼 수 있다. 여기에 각 세대가 겪은 개인적 경험들이 반영돼 있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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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호기 연세대 교수·사회학 kimhoki@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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