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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특집

수능 치른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 편지

“조르바에서 장길산까지… ‘手不釋卷’을 가슴에 새겨라”

  • 최영록 성균관대 홍보전문위원 goodjob48@hanmail.net

수능 치른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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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는 너도 이미 읽었지. 어른을 위한 동화, 이 책이 얼마나 마음에 들던지, 원문(原文)으로 보려고 프랑스어를 배워 어설프게나마 읽은 적도 있다. 한울아,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어딘가 우물이 숨어 있기 때문”이란다. 여우가 왕자를 사귈 때 한 말을 기억하니? 관계가 깊어진다는 것은 서로가 서로에게 어느 정도씩 길들여져야(tame) 하는 거라는. 가슴 조이며 만남을 기다리는 여우, 코끼리를 삼켜 중절모같이 보이는 보아뱀, 발코니에 제라늄꽃이 활짝 핀 광경, 철새들의 다리에 끈을 묶어 저 B-612라는 소혹성에서 날아온 어린 왕자의 앙증맞은 여행. 별나라에 홀로 두고 온 장미와 인간들의 여러 유형.

아버지는 그 무렵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이라는 책을 발견했다. 얼마나 심취했던지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 서울로 오자마자 청계천 헌 책방을 뒤져, 지금도 서가에 소중하게 꽂혀 있는 포켓북 원서를 구했다. 그때가 1976년이니 벌써 30년이 다 됐구나.

최근 몇 년 사이에 ‘월든’과 ‘소로’ 바람이 부는 것을 보고 나의 ‘책 볼 줄 아는 눈’이 떠올랐구나. ‘소로의 월든과 장자(莊子) 사상의 연관관계’에 대한 졸업논문을 쓰려다 중도에 그만둔 것이 지금도 몹시 아쉽구나. 그때부터 지금까지 소로만 파고들었다면 대한민국에서 2등 가라면 서운한 전문가가 됐을 터인데.

함석헌 선생과의 만남

수능 치른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 편지

월간지 ‘씨알의 소리’를 펴낸 함석헌 선생.

그 다음에 눈에 띈 책이 ‘영원한 들사람(野人)’ 함석헌 선생의 ‘뜻으로 본 한국역사’였다. 지금도 나는 그 책을 발견한 것은 로또 당첨 같은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흥안령 마루턱에 우뚝 선 부리부리하고 활 잘 쏘는 우리 배달민족의 원조 할아버지들, 만주벌판을 향해 사자후를 내지르고 말을 타고 달리던 모습을 상상해보라. 최근 중국이 벌이는 동북공정(東北工程)이 웬 말이냐. 그 장면은 민족의 시원(始原)을 말할 때, 지금도 어디서고 인용하는 ‘절창(絶唱)’이다. 그때는 그 구절을 욀 정도였으니, 아버지의 말만 믿고 그 장면만이라도 꼭 찾아 읽도록 하려무나. 반만년 역사의 우리 민족이 왜 이렇게 뒤틀린 역사를 지니게 됐는지를 한눈에 알 수 있다.



민족의 맏형 고구려의 어이없는 멸망, 외세 당나라와 결탁한 좀생이 신라의 통일 청사진, 김부식의 사대주의, 묘청의 용틀임 등 고난의 역사가, 수난을 당한 여왕이 드러내고자 하는 뜻을 읽어내도록 해라.

그때는 함석헌 선생이 내는 ‘씨의 소리’라는 얄팍한 월간지를 받아보는 게 얼마나 큰 기쁨이었는지, 너는 상상도 못할 것이다. 졸시(拙詩)를 투고해 게재되는 환희도 맛봤구나. 동시대에 이런 훌륭한 분이 또 계실까 싶었다. 꼭 서울로 진학해 선생에게 세상을 배우고 싶었단다. 그 욕심으로 그나마 공부를 좀 해서 소원을 풀었구나.

처음 선생님 강의(노자 도덕경)를 듣는데 어찌나 마음이 떨리던지. 지금도 생각난다. 명동의 전진상교육관, 서대문의 선교원, 이대 후문 독지가의 집. 이후 선생님의 팬이 되었단다. 흩어진 그 잡지를 거의 다 구하고 그분의 저작이라면 다 사 모았다. 용케도 1960년대에 나온 ‘수평선처럼’이라는 유일한 시집까지 갖게 됐으니.

그때 아버지는 이기백 교수의 ‘한국사 신론’이라는 한자투성이의 엄청 두꺼운 책을 독파했다. 보기만 하면 머릿속에 스캔한 것처럼 쏙쏙 입력이 될 때니까 국사시험은 늘 100점이었다. 통사(通史) 성격으로 돼 있는데,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어 좋았구나. 시간이 되면 고전이 된 이 책도 봤으면 좋겠다. 최근 일조각에서 이 책을 재편집해 발간했더라. 이기백 선생의 아버지께서 아들 둘을 앉혀놓고 유언을 했단다. “국가와 민족을 위한 일을 하며 살라”고. 하여 이기문 선생은 평생 국어에 천착해 학문의 일가를 이뤘고, 이기백 선생은 역사공부를 하여 대가가 되었다는구나. 훌륭한 집안이다.

감수성이 한창 예민할 이때, 대하소설을 읽도록 하자. 가장 먼저 읽을 책은 역시 조정래의 ‘아리랑’(12권)과 ‘한강’(10권), ‘태백산맥’(10권) 3질(帙)이다. 자, ‘민속의 백과사전’으로 불리는 최명희의 ‘혼불’(10권)은 또 어떠냐. ‘민족의 대서사시’ 박경리의 ‘토지’(17권)는 이미 고전이 됐다. ‘우리말의 보고’ 홍명희의 ‘임꺽정’(10권)도 봐야 한다. 황석영의 ‘장길산’(10권)은 지난번에 읽었지? 이것만 해도 50권이 훌쩍 넘는다.

이 시대 ‘왕구라’ 황석영은 실천하는 지식인이다. 통일을 위해 옥살이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분의 소설집 중엔 좋은 게 많다. ‘오래된 정원’ ‘손님’ ‘무기의 그늘’도 눈여겨봐야 한다. 1970년대 말, 1980년대 초 청바지 문화를 이끈 작가 최인호가 있다. 지금은 스님이 되고 싶다며 엄살을 피우는데, 집에 있는 ‘길 없는 길’(4권)도 읽도록 해라. 불교, 유교도 소설을 통해 우선 얼개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아리랑-태백산맥-한강

김지하 선생의 생명사상이나 동학연구가 어려우면 다음에 읽어도 된다. 단지 시 1만편이 무슨 대수냐는 고은 시인의 ‘만인보’ 같은 것은 심심풀이로 읽어라. 그러니 놀 틈이 언제 있겠냐. 날밤을 여러 날 새워도 힘든 일이다. 그렇지만 반드시 읽어야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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