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전역의 전력·천연가스·석유산업을 다루는 연방정부 에너지위원회(FERC) 사라 메킨지 대외담당관은 캘리포니아의 사례를 ‘재앙’으로 표현했다.
“캘리포니아에선 전기요금 급등이 재앙으로 불거졌다. 소매시장 자유화는 각 주가 결정할 일이지만 위험하다는 게 우리의 판단이다.”
미국 의회를 감시하는 시민단체 퍼플릭시티즌의 타이슨 슬러콤 국장은 이렇게 말했다.
“전기는 상품으로서 거래가 어렵다는 걸 보여준 값비싼 실험이었다. 성과를 꼽는다면 사람들이 전기의 소중함을 알았다는 점이다.”
영국의 전문가들도 의견이 비슷했다.
“영국 모델을 확산시킨 건 글로벌 컨설팅 회사들이다. 전력시장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신자유주의 이념에 따라 잘못된 모델을 퍼뜨렸다. 영국의 전력산업 구조개편은 비극으로 종료했다. 공공재엔 완전경쟁 모델이 들어맞지 않는다. 공공재는 대체재가 존재하지 않고 수요가 탄력적이지 않아서다. 공공재의 경우엔 규제독점이 경쟁시장보다 안정적, 효율적이라는 게 현재까지의 평가다.”(스티븐 토머스, 영국 그리니치대 교수)
“얼토당토않은 안(案)”
이명박 정부는 규제 철폐, 공기업 민영화를 공약으로 내걸고 집권했다. 글로벌 경제위기를 거치면서 세계 각국은 국가의 역할을 강조하는 쪽으로 움직였다. 이명박 정부도 비슷했다.
이명박 정부는 2008년 6월 당·정·청 합의로 전기 수도 가스 민영화를 임기 중 추진하지 않기로 결정·발표했다.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은 대통령국정기획수석비서관으로 일할 때 발전·송전·배전의 수직통합으로 되돌아가야 한다고 제안했다.
국회 의견도 비슷했다. 지난해 정기국회 때 지식경제위원회 소속 다수 의원이 전력산업 대통합을 주문했다. 지경부가 KDI에 용역연구를 의뢰한 것도 이 같은 의원들의 요구를 반영해 이뤄진 것이다.
KDI가 과거로 되돌아가자는 안을 채택할 것으로 예상한 이가 많았다. 한전 경영진도 그렇게 여겼다는 후문이다. 그런데 결과는 정반대였다. KDI가 당초의 예상과 다르게 시장화를 강조한 보고서를 내놓은 것이다. 영국식 모델이 부활한 셈이었다.
지경부 고위 관계자의 설명이다.
“기획재정부와 협의해서 민영화는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구조개편 논의가 다시 불거진 건 국회에서 한전을 재통합해야 한다고 주장해서다. 김쌍수 한전 사장도 연료를 통합 구매하는 게 이득이라고 했다. 그래서 매킨지 이런 데 말고 아직 의견을 내지 않은 기관(KDI)에 맡긴 것이다.”
KDI 연구진 구성은 중립적이지 않았다. 용역연구에 참여한 인사의 대다수가 오래 전부터 시장화, 자유화가 해법이라고 주장해온 이들이다. 게다가 연구진 중 전력산업에 천착해온 인사는 이수일 박사가 거의 유일했다.
KDI 안(案)은 기형적이다. 시장화, 민영화로 가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과거로 되돌아가는 것도 아니다. KDI는 발전·배전은 지금처럼 어정쩡하게 둔 채 판매 경쟁을 대안으로 내세웠다. KDI의 용역연구에 참여하지 않은 한 전력산업 전문가는 “KDI가 얼토당토않은 안을 내놓았다”면서 연구결과를 깎아내렸다.
외국 전문가들의 의견도 비슷하다.
“중간에 멈춰서 있는 건 어색하다. 시장화가 어렵다면 과거처럼 일원화 체제로 가는 게 차라리 낫다. 나라별 사정에 따라 판단할 문제지만 소매시장 경쟁체제를 도입하는 건 성공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에릭 트라네, 북유럽 전력시장 노드풀 C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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