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심층취재|지하경제의 브레인 금융부티크

M&A·주가관리·외자유치… ‘돈 불리기’ 귀재들

  • 이나리·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A·주가관리·외자유치… ‘돈 불리기’ 귀재들

2/4
“성공한 부티크 사장 중에는 현장에서 10년 이상 근무한 30대 후반~40대 초반 간부 출신이 많다. 그 정도는 돼야 굵직한 전주를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부티크 업무라는 것이 믿음 없이는 할 수 없는 일들이다. 오랜 거래로 탄탄한 신뢰관계를 구축한 사람들끼리만 제대로 된 팀워크를 발휘할 수 있다. 전주와의 관계나 동업자들끼리나 다 마찬가지다. 그래서 우리는 ‘혈맹’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K투자컨설팅 이수달씨(가명)의 말이다. 이씨도 몸담고 있던 증권사에서 5년 넘게 거래해온 수천억 원 자산가의 권유로 부티크를 시작했다.

전주는 대개 기업가다. 1000억 원 이상의 자금을 보유한 재산가일 땐 더욱 그렇다. 개중에는 기관이나 기업체도 있다. 이들이 운용이나 컨설팅을 요구해 오는 자금, 혹은 사업 규모는 5000억 원 이상인 경우도 적지 않다. 사채업자나 재벌 그룹 후계자도 끼어 있다.

사채업자들의 경우, 과거에는 자신의 돈은 직접 관리하는 것이 상례였다. 그러나 금융 기법이 다양해지고, 특히 해외거래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전문성에 한계를 느끼기 시작했다. 벤처 투자는 더욱 어렵다. ‘될성부른 나무’를 알아보는 안목부터 코스닥 등록까지의 주가 관리, 회계 관리, 경영 컨설팅 등을 책임져줄 ‘일꾼’이 필요해진 것이다.

증시 활황이 이어지던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에는 주식 투자 대행을 원하는 사채업자가 부쩍 늘어났다. 얼마 전, K증권과 계약을 맺고 활동중인 모 증권영업팀에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자신을 모 신용금고 사장이라 밝힌 그는 “삼성전자 주식 500억 원어치, SK텔레콤 주식 500억 원어치가 있는데 이를 맡아두었다 다음해 초 내게 되팔아줄 수 있느냐”는 제안을 해왔다. 연말이면 기업별 주주명부가 작성되고 거기 이름이 올라갈 경우 기업이나 세무서 등으로부터 주목받게 되므로 ‘위험기간’ 동안만 주식을 위탁했다 되찾아가겠다는 뜻이다.



세무사 경력 20년의 소프트뱅크웹인스티튜트 문일보 이사는 “전주들은 이름이 알려지는 것을 무엇보다 두려워한다. 한푼이라도 더 쥐기 위해 탈세를 일삼을 것 같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사건이 터졌는데 세금 20억, 30억 원 내서 무마될 상황일 때엔 군소리 없이 돈을 내놓는다”고 설명한다. 하물며 대리인을 내세워 소리소문 없이 거액을 쥘 수 있다면 전주들로서는 마다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재벌가(家)의 사정은 또 다르다. 이전에는 그룹 내 비서실, 기획조정실 등에 속한 각 분야 전문가들이 나서 자산 관리 및 운용, 상속 문제 등을 관장했다. 그러나 외환 위기 후 사정이 달라졌다. 우선 보안 문제가 제기됐다. 내부 인사들의 움직임은 아무래도 날로 날카로워지고 있는 감시자들의 눈에 포착될 위험이 크다. 또 뭔가 ‘증거’를 남기게 돼 세무조사라도 들어오는 날엔 상당한 곤란을 겪을 수도 있다. 금융 통제가 심하던 시절에는 문제가 생겨도 정치권과 물밑 접촉을 통한 해결이 가능했다. 그러나 경제 환경이 점차 투명해지면서 이 또한 장담할 수 없는 일이 돼버렸다.

재벌 3세와 부티크

재벌 2, 3세들이 경영 전면에 나서거나 재계의 주목을 받게 된 것도 큰 변화다. 이들은 아버지, 할아버지 대의 ‘가신’들보다 젊고 마음 잘 통하는 해외파 금융전문가들과 일하기를 즐긴다. 사고방식이 비슷한데다 실적도 훌륭하기 때문. 급변하는 국제 금융 동향을 파악해 신속하고 과감한 베팅을 하기엔 탄탄한 해외 인맥과 월가 근무 경험을 가진 30대 전문가가 유용하다.

비슷한 시기에 미국 유수 대학에서 학위를 취득한 까닭에 네트워크 형성도 잘 돼 있는 편이다. 현재 재벌 3세끼리의 정기 모임이 2~3개 가동중이며, 여기에는 해외금융통인 Y사의 K사장, M·A 전문가인 M사 K사장 등 젊은 금융전문가와 최근 급부상한 벤처기업가들이 여럿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상황이 이런 만큼 증권가에는 몇몇 그룹의 주목할 만한 거래에 부티크가 관여했다는 소문이 심심찮게 들려오고 있다. 지난해 정보통신업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LG그룹의 데이콤 주식 위장매입도 모 부티크가 주도했다는 설이다.

최근 문제가 된 S그룹 재산상속 건에도 그 2세와 친분이 있는 금융전문가 모씨가 깊숙이 관련돼 있다고 한다. 2세는 계열사 해외주식 매각을 통해 큰 시세차익을 거뒀는데, 그 돈이 다른 재벌 해외법인을 통해 국내로 유입됐다고 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누군가 나서 그룹간의 ‘딜’을 이끌어냈다는 소문이다. 방송사를 소유한 모 재벌 사주 아들의 주가조작설, 역시 2세인 모 언론사 사주의 위장 해외자금 도입 건에도 특정 부티크의 이름이 오르내린다.

부티크 중에는 아예 재벌가 자제들이 직접 운영에 참여하는 곳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H그룹 J씨, K그룹 L씨, S그룹 L씨 등이다. 베어링증권 출신 J사장이 1990년대 중반 설립한 O캐피털의 경우 J그룹 전담 컨설팅사로 유명하다.

대다수 부티크는 법인 형태로 운영된다. 자본금은 5000만원부터 수십억 원까지 매우 다양하다. 캐피털, 컨설팅, 투자자문, 파이낸스, 인큐베이팅, 인베스트먼트 등 ‘금융기관’ 냄새를 풍기는 수식어들을 달고 있다. 그러나 사업자등록법 상으로는 ‘기타 법인’일 뿐. 간혹 업종란에 ‘금융거래’라는 글씨가 적혀 있는 경우도 있긴 하다.

부티크는 동업 형식이 많다. 자본금 확보에 유리하고 이윤을 적절히 나눌 수 있는데다, 동료간 신뢰형성에도 좋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세 사람이 5억 원씩 출자한 회사라면 각기 5억 원의 담보를 제출한 것과 마찬가지여서 일 하던 중 혹시 돈 욕심이 나더라도 섣불리 횡령하거나 잠적할 생각을 하지 못하게 된다. 공동출자라도 특정인이 대주주가 되는 경우가 많다. 30억 원짜리 회사면 대주주가 10억 원, 나머지 넷이 5억 원씩 분담하는 식이다. 부티크 이름이 ‘OO파트너스’로 돼 있다면 동일한 지분을 가진 두 사람이 함께 운영하는 곳이다.

각자 다른 직장에 다니면서 밤이나 주말에만 모여 일을 하는 경우도 있다. 이때에는 변호사, 회계사, 펀드매니저, 증권사 애널리스트 등 ‘현직’만이 누릴 수 있는 각종 권한을 총동원, 사업 성공률을 극대화한다.

회사에 따라서는 전주가 직접 사장을 맡는 경우도 있다. 자기 돈의 흐름을 완벽하게 파악할 수 있고, 다른 자산가들 돈까지 끌어 모아 ‘크게 치고 빠지는’ 전술을 구사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전주를 찾아 헤매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일하는 사람과도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다.

“돈 되는 일은 다 한다”

법인 등록비 5000만 원이면 될 일을 왜 수억에서 수십억 원씩 자본금을 투여하는지 의아할 것이다. 부티크 역시 금융을 업으로 하니만큼 고객들의 신뢰를 얻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자본 규모가 크고, 요지에 좋은 사무실을 갖고 있는 쪽이 아무래도 유리하다. 직원 채용, 기본 설비 등에도 적지 않은 돈이 들어간다. 여유자금이 있으면 고객 돈을 운용할 때 살짝 묻어 함께 굴린다. 그 자체로도 훌륭한 수입원이 된다.

부티크의 영업 범위는 대단히 넓다. “돈 되는 일은 다 한다”는 말을 거리낌없이 할 정도다. 물론 어떤 일을 어떤 방식으로 추진하느냐에 따라 ‘질’과 ‘급’이 달라진다.

신뢰 제일과 철저한 보안의식, 이윤 극대화가 원칙. 도덕적 비난을 면키 어려운 일이라도 합법적인 길을 찾아내 완수한다. 만일 불법 외에는 방법이 없을 경우, 대부분의 부티크는 일을 포기하고 만다. ‘하루 이틀 하고 말 장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비제도권에서 자금 공급자와 수요자를 연결하는 것이 주업무다.

탄탄한 신뢰로 맺어진 관계니만큼 전주와 부티크, 혹은 동업자들 사이에는 계약서 없이 일이 진행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일의 성격상 이면계약서를 많이 쓰는데, 이에 대해 업계에선 “인베스트먼트 뱅킹에서 이면계약은 흠이 아니다. 외국에선 일반화된 현상이다. 우리가 너무 나이브한 것”이라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한다.

일단 일이 시작되면 실패 가능성을 최소화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강구한다. 이때 꼭 필요한 사람들이 변호사, 회계사, 변리사 등 분야별 전문 인력. 사안에 따라 외부의 믿을 만한 사람을 끌어들여 함께 움직이기도 한다. 일이 잘 성사되면 성공보수, 즉 수수료를 받는다. 대개 현금이나 주식이다.

거액의 자금과 우수한 두뇌가 만나 벌이는 일이어서 실패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혹시 손해를 본다 해도 부티크 쪽에는 책임을 묻지 않는 것이 상례다. 손해가 일정 수준에 이르면 그 상태에서 아예 일을 접어버린다. 높은 수익(high return)을 거두기 위해선 큰 위험(high risk)을 감수할 줄도 알아야 한다는 것이 이 세계의 불문율이다.

그러나 손실의 책임이 명백하게 부티크쪽에 있을 때엔 재기가 불가능할 수도 있다. 문제는 신뢰. 실수한 투자전문가에게 누가 돈을 맡기겠는가.

사업을 파탄으로 몰고 가는 또 한가지 위험요소는 동업자 간의 불화다. 대개 수익금 배분이 불씨가 되는데, 분쟁이 법정으로까지 비화된 사례도 있다.

2/4
이나리·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목록 닫기

M&A·주가관리·외자유치… ‘돈 불리기’ 귀재들

댓글 창 닫기

2021/10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