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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 분석

인간인가, 살인도구인가…병사들이 겪는 전쟁심리학

자살률 높아지고 60일 이상 전투 땐 98%가 정신적 상처

  • 글: 김재명 분쟁지역 전문기자 kimsphoto@yahoo.com

인간인가, 살인도구인가…병사들이 겪는 전쟁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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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분석학의 원조라 할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이론은 전투상황에 놓인 병사의 긴장된 마음을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널리 알려져 있듯, 프로이트는 인간의 마음의 장치(또는 인격구조)를 이드(id, 원초적 본능)와 자아(ego), 초자아(superego)로 나누었다. ‘이드’는 인간이 의식적으로 제어할 수 없는 알 수 없는 힘 또는 타고난 충동, 본능적 에너지의 원천을 뜻한다. 이와 대조적으로 ‘초자아’는 상위자아(上位自我)라고도 하며 ‘이드’의 본능적 충동을 누르는 양심과 죄악감의 영역을 뜻한다. 프로이트는 또한 인간의 의식을 ‘죽음에의 본능(Thanatos)’과 ‘삶의 본능(Eros)’으로 풀이했다. 그에 따르면 ‘죽음에의 본능’은 인간의 생명활동이 결국 원시적 상태(죽음)로 돌아가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는 뜻이고, ‘삶의 본능’은 인간의 성본능이 말하듯 생명과 개체의 보존을 뜻한다.

마셜보고서, “15∼20%만 방아쇠 당겼다”

데이브 그로스먼(미 아칸소주립대 교수)의 ‘살해론’(1995년판)은 “실제 전투에서 극도로 긴장한 병사들은 삶의 본능과 죽음에의 본능 사이에서 이드, 자아, 초자아가 혼란스럽게 뒤엉켜 갈등하게 된다”고 풀이한다. ‘이드’는 병사에게 원시인이 무기로 쓰던 몽둥이나 돌멩이로 경쟁자를 쳐죽이듯, 적군을 죽이라고 ‘자아’에게 명령한다. 한편으로 ‘초자아’는 병사가 훈련소에서 들은 대로 ‘적군을 죽이는 것은 국가안보를 위해 필요한 일’이라고 ‘자아’에게 일러준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병사의 ‘초자아’는 ‘만난 적도 없고 서로 다툰 적도 없는 상대편 젊은이를 죽여야 하는가’를 생각해보도록 만든다.

프로이트의 이론대로라면, 1994년 르완다를 휩쓸었던 후투족의 투치족 인종청소(80만명 피살)나 1992∼95년 보스니아와 1998∼99년 코소보에서 벌어졌던 학살극은 ‘초자아’가 마비된 채 ‘이드’만이 ‘자아’를 지배한 사건이었을 것이다.

전쟁이란 본질적으로 적을 죽여야 하는 살상행위다. 병사들은 한 국가의 구성원으로서 총을 들고 적대세력과 싸울 권리를 지닌다. 전투병으로서 전쟁터에서 적을 죽이거나 부상을 입힐 권리다. 이는 범죄행위로서의 살인(murder)이 아니다. 군사작전의 필요에 따라서는 적의 재산을 파괴할 권리도 지닌다. 전시상황이 아니라면, 그리고 그 같은 살상행위와 파괴행위가 전투원에 의해 저질러지지 않았다면, 이는 당연히 범죄가 되고 형사처벌감이다. 전쟁상황에서 병사는 제네바협정을 비롯한 국제법을 어기지 않는 한 살상행위에 대해 면죄부를 갖는다. 뿐만 아니라 전투에서 적을 많이 죽였을 경우엔 국가에 의해 제도적 포상(훈장, 승진, 휴가)을 받는다. ‘영웅’으로 찬사와 부러움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실제 전쟁에서 병사들은 심리적 갈등을 느낀다고 전쟁연구자들은 지적한다. 여러 연구결과에 따르면, 병사들은 일반적으로 총 쏘기를 망설인다. 전쟁의 공포도 공포려니와 인간의 본성은 살인을 즐기지 못한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중 S.L.A. 마셜 육군 준장은 펜타곤의 지시를 받아 미군 병사들의 전투심리에 관한 광범한 조사를 벌였다. 미군 역사가인 마셜 준장이 이끄는 조사팀은 태평양전선과 유럽전선에서 전투중이던 400개가 넘는 보병중대 소속 병사 수천 명을 개별 면담했다. 이 같은 조사를 바탕으로 나온 책이 마셜 준장의 ‘총 쏘길 거부하는 사람들’(Men Against Fire, 1946년판)이다.

필자는 뉴욕시립도서관에서 색이 바랜 이 책을 찾아냈다. 200쪽이 조금 넘는 이 책에 따르면, 제2차 세계대전에서 적과 맞닥뜨렸을 때 한 방이라도 제대로 적을 향해 총을 쏜 미군 병사는 단지 15∼20%에 지나지 않았다. 나머지 80∼85%는 일부러 총알을 다른 곳으로 쏘거나 아예 방아쇠를 당기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일부 병사들은 너무 긴장한 나머지 방아쇠를 당길 수 없었다고 털어놨다. 마셜 준장이 내린 결론은 “인간은 천성적으로 킬러가 아니다(Human beings are not, by nature, killers)”는 것이다.

훈련프로그램 바꿔 사격률 높여

일부 연구자들은 이러한 마셜의 조사결과에 비판적이었다. 이를테면 해럴드 레인보는 그의 책 ‘K중대의 사나이들’(1986년판)에서 “제2차 세계대전에서의 사격률은 마셜 장군이 발표한 것보다 훨씬 높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다른 여러 연구 작업들, 이를테면 패디 그리피스의 미 남북전쟁 당시 사격률이 매우 낮았다는 연구(‘미 남북전쟁에서의 전술’ 1989년판), 미 연방수사국이 실시한 1950년대와 1960년대 총살형 집행관들의 발포율 조사자료, 이름난 전사(戰史) 연구자 존 키건의 여러 저작 등은 마셜 준장이 밝힌 통계수치와 결론을 재확인해주었다.

마셜 준장의 보고서에 충격받은 미 육군 당국은 실전에서의 조준 사격률 90%를 목표로 삼고 훈련프로그램을 개발해왔다. 이를테면, 사격 조준판을 동그라미 모양이 아닌 실제 사람처럼 만들어 급작스레 나타나도록 작동시키고 그것을 총알로 맞히면 넘어지게 바꿨다. 적군 병사를 ‘숨쉬는 인간, 사랑하는 가족이 후방에서 기다리고 있는 인간’으로 보지 않도록, 그래서 그를 향해 거리낌없이 방아쇠를 당길 수 있도록 하는 훈련이다. 그런 사격훈련의 결과 그 뒤 여러 전쟁에 참전했던 미군의 조준사격률이 크게 높아졌다(한국전쟁 55%, 베트남전쟁 90∼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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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재명 분쟁지역 전문기자 kimsphoto@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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