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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 분석

인간인가, 살인도구인가…병사들이 겪는 전쟁심리학

자살률 높아지고 60일 이상 전투 땐 98%가 정신적 상처

  • 글: 김재명 분쟁지역 전문기자 kimsphoto@yahoo.com

인간인가, 살인도구인가…병사들이 겪는 전쟁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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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인가, 살인도구인가…병사들이 겪는 전쟁심리학

이집트의 사막에서 사격훈련중인 미국 병사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적에게 제대로 총을 쏜 미군 병사는 15~20%에 불과했다.

영국의 전쟁연구사가 존 키건은 저서 ‘전투의 얼굴’(1977년판)에서 고전적인 전쟁과 현대전쟁의 차이를 이렇게 설명했다. “1815년 워털루전쟁에서 일진일퇴하면서 양쪽 군대는 지난번에 싸웠던 적의 얼굴을 알아봤다. 그러나 1916년 제1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 솜전투는 산업화시대의 전쟁이었다. 대포를 비롯한 장거리 파괴도구를 작동하는 병사들 손에 상대편 병사들이 죽어갔다. 양쪽 병사들은 서로 얼굴을 맞대지 않고 상대를 죽이는 전투를 벌였다.”

키건이 말하는 ‘얼굴 없는(faceless)’ 전투의 극단적 사례는 미군 공습일 것이다. 전폭기 조종사는 아득히 높은 곳에서 폭탄을 떨어뜨리고 그다지 큰 괴로움 없이 기지로 돌아온다. 자신이 숱한 시민들을 불더미 속으로 몰아넣었다는 괴로움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그들과 얼굴을 맞대지 않은 탓이다. 미군 특수부대에서 정신훈련 교관을 지낸 리처드 헤클러는 저서 ‘전사(戰士) 정신을 찾아서’(2002년판)에서 공격거리가 멀수록 ‘내가 사람을 죽였다’는 의식을 강하게 느끼지 않는다는 점을 이렇게 풀이했다.

“옛날의 전사들은 적의 살이 찢기고 뼈가 부서지는 것을 눈으로 보면서 전쟁을 치렀다. 그는 자신의 칼에 맞아 두개골이 부서지면서 죽는 적의 처참한 눈길을 기억하며 살아야 했다. 그러나 오늘날의 전사들은 아침에 2만피트 상공에서 폭탄을 내리퍼붓고는 수백마일 떨어진 기지로 돌아와 태연히 햄버거를 먹는다.”

언어학자 노엄 촘스키(MIT대 교수)와 더불어 반전 이론가로 이름난 하워드 진은 2차대전 때 공군조종사로서 독일군과 시민을 겨냥해 폭격에 나섰던 전력을 지녔다. 그는 얼마 전 미 공영방송 PBS의 한 대담프로그램에서 이렇게 털어놨다.

“만일 당신이 공중폭격에 나선다면, 9000m 상공에서 폭탄을 떨어뜨린다. 당신은 밑에 있는 사람들을 보지 못한다. 그들이 지르는 비명을 듣지 못한다. 사지가 어떻게 잘려나가는가 알지 못한다. 그래서 별다른 거리낌없이 다음날 또 폭격에 나선다. 그리고 또 다른 사람들이 죽어간다. 1945년 일본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을 떨어뜨린 조종사도 밑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보지 못했을 것이다. 전쟁이 끝난 뒤에야 나는 독일 드레스덴에 대한 영미 공군기의 무차별 공습으로 죽은 수많은 민간인들의 희생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게 됐다”(1945년 2월, 독일의 패색이 짙은 상황에서 이뤄졌던 드레스덴 폭격은 2차대전 중 연합군이 저지른 만행으로 일컬어진다. 당시 13만명의 시민이 사망했다).



전폭기 조종사가 자신이 떨어뜨린 폭탄으로 말미암아 민간인들의 피해가 엄청나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고 후회하는 사례는 많다. 영국의 역사가 폴 푸셀은 그의 책 ‘전시’(Wartime, 1990년판)에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전폭기를 몰고 베를린을 폭격했던 조종사가 20년쯤 뒤 다시 베를린을 찾았을 때 이렇게 한탄했음을 전한다. “전쟁 당시 내가 (베를린에) 떨어뜨린 폭탄들이 얼마나 많은 끔찍한 죽음을 가져왔는지를 나는 머릿속에 그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아무런 죄의식을 느끼지 않았다.”

아무런 사적 원한이 없는 생사람을 죽였다는 꺼림칙한 생각은 거리에 반비례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라크 주둔 지상군은 바로 코앞의 적과 맞닥뜨려 싸워야 하는 스트레스를 견뎌내야 한다.

삶과 죽음 엇갈리는 초긴장 극한상황

미군은 전산화된 첨단무기로 무장한 세계 최강의 군대다. 21세기 전쟁에서 미군은 전쟁을 리모컨을 만지작거리며 치른다. 실제로 전쟁은 하고 있지만, 전장에 나가서 적군의 얼굴을 바라보며 치르는 전쟁이 아니다. 영국 저널리스트 마이클 이그나티프는 그의 책 ‘가상의 전쟁’(2000년판)에서 그 같은 미국의 전쟁을 책 제목대로 ‘가상의 전쟁(virtual war)’이라 이름지었다. 공습으로 불바다를 이룬 코소보나 세르비아 지역 사람들은 전쟁을 실감하지만, 그러한 장면을 전하는 CNN 뉴스를 안방 TV로 보는 지구촌 사람들에게 그 전쟁은 어디까지나 ‘가상의 전쟁’이다.

이그나티프는 그 책에서 ‘가상의 전쟁’을 통해 쉽게 적국을 제압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미국이 21세기에 오로지 힘으로 다른 나라들을 밀어붙이지나 않을까 걱정했다. 그 같은 걱정은 이미 아프간과 이라크에서 현실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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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재명 분쟁지역 전문기자 kimsphoto@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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