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0월호

한-칠레 FTA 6개월, 불안한 農心

포도농가 4곳 중 한 곳 “농사 그만 짓겠다”

  • 입력2004-09-22 14:3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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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칠레 FTA 6개월, 불안한 農心

    칠레산 포도가 낮은 관세로 국내시장에 들어올 경우 ‘사 먹겠다’고 응답한 사람이 80%에 이르러 국내 포도농가에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칠레’가 우리나라 언론에 자주 오르내린 것은 극히 최근의 일이다.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지난 2월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의 국회 비준에 반대하는 성난 농민들이 국회 앞으로 몰려들면서부터다.

    국회는 비준안을 세 차례 무산시킨 끝에 여론의 집중포화를 맞고 나서야 마지못해 통과시켰다. 신문과 방송은 온통 한-칠레 FTA 관련 뉴스로 뒤덮였다. 비로소 칠레는 우리와 상당히 밀접한 국가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그간 한국과는 정치, 경제 어느 분야에서도 협력관계가 많지 않았던 지구 반대편의 나라 칠레가 한국인의 안방에 들어앉은 것이다.

    효과는 이내 나타났다. 한-칠레 FTA 협상 과정에서 칠레가 세계적인 포도 강국임이 국내 언론을 통해 대대적으로 알려지면서 칠레산 와인이 선풍적인 인기를 끈 것이다. FTA 체결 이후 칠레산 레드 와인 수입이 3배 이상 늘어났다. 칠레산 와인 수입이 양적으로 늘어난 것은 그렇다치고 이해하기 힘든 것은 칠레산 와인이 ‘와인을 좀 아는’ 사람들에게 필수적인 기호품인 것처럼 인식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제 칼리나 카베르네 쇼비뇽이나 칼리나 카르메네르 같은 칠레산 와인 이름 한두 개쯤 외지 못하면 와인 애호가 축에도 끼지 못하는 형편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정작 동네 삼겹살집에서 구워먹는 냉동 삼겹살이나 호프집 과일 안주에 들어있는 붉은색 포도가 칠레산이라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최근 들어서는 대형 할인점 수산물 코너마다 ‘칠레산 홍어’ 매장이 들어서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다.

    물론 칠레산 농수산물이 국내 소비자의 냉장고에 들어찬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또 상호 관세 철폐를 기본으로 하는 FTA의 영향이 칠레산 저가 농산물의 수입 증가만으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FTA의 직접적인 효과는 관세 즉시철폐의 혜택을 본 국산 자동차, 휴대전화 등 주요 공산품의 대칠레 수출 증가로 나타났다.



    대칠레 수출 품목 중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자동차의 경우 지난해 16만대를 수출한 데 이어 올해 7월까지 이미 12만5000대를 수출해 지난해에 비해 50%가 넘는 증가율을 기록하고 있다. FTA 체결 이전에는 2003년 초부터 무관세를 적용받은 유럽연합(EU)과 2002년 말부터 무관세를 적용받은 아르헨티나산 제품때문에 한국산이 밀리는 양상이 나타났으나 이제는 이들 제품에 맞서 치열한 시장 쟁탈전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수출 감소세를 벗어나지 못하던 무선전화기는 한-칠레 FTA가 발효된 4월 이후 수출량이 2배 이상 뛰었고 컬러TV도 7월까지 이미 7100여대를 수출해 2003년 한 해 수출 물량에 육박하는 실적을 거뒀다. 전자제품 전체의 올해 대칠레 수출 실적은 지난해보다 90% 이상 증가한 1억5000만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 같은 주요 수출기업은 이번 FTA를 중남미 시장 비중을 확대할 절호의 기회로 보고 현지 시장점유율을 획기적으로 높일 전략 마련에 분주하다.

    무역적자 심화는 원자재 가격 탓

    그런데도 FTA 발효 이후 대칠레 무역적자가 큰 폭으로 늘어났다. FTA가 발효된 4월1일부터 8월말까지 5개월간 대칠레 수출은 2억5400만달러, 수입은 7억8200만달러를 기록해 무역수지 적자가 5억2800만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1년간 대칠레 수출이 5억1700만달러, 수입 10억5800만달러로 5억4100만달러의 적자를 기록한 것과 비교하면 FTA 체결 후 5개월간의 적자규모가 지난해 1년치 적자에 이미 육박한 셈이다. 언론에서 한-칠레 FTA 체결 후 한국이 ‘밑지는 장사’를 했다고 지적한 것도 과언은 아니다.

    그러나 대칠레 무역적자의 내용을 꼼꼼히 들여다보면 이 ‘밑지는 장사’의 원인을 FTA에서 찾는 것은 무리라는 게 분명해진다. 최근 대칠레 무역적자의 가장 큰 원인은 다름 아닌 칠레산 구리에 있다. 동괴(銅塊), 동광 등 칠레산 구리 제품은 대칠레 수입의 76%를 차지하는 최대 수입 품목. FTA가 발효된 지난 4월 이후 7월까지 칠레산 동괴의 수입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21% 늘어났지만 금액 기준으로는 무려 113%나 증가했다. 동광의 경우는 4~7월 수입이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3% 줄어들었지만 수입금액은 오히려 60% 가까이 늘어났다. 세계적인 원자재 수급난으로 인한 구리 제품의 가격 상승이 대칠레 무역적자의 가장 큰 원인이었다는 말이다.

    애초 한-칠레 FTA가 체결되면 국내산 과일이 가장 타격을 받을 것으로 예상됐다. 특히 포도 복숭아 키위 등 칠레의 수출 경쟁력이 큰 품목의 경우 정부가 아예 폐업을 신청받아 과수농가에게 보상금을 주기로 해 칠레산 과일의 수입이 얼마나 증가할 것인지에 초미의 관심이 모아졌다.

    특히 칠레의 최대 생산 품목인 포도는 미국계 다국적기업들의 선진화된 유통망을 배경으로 막강한 경쟁력을 가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국내 포도 농가들이 한-칠레 FTA 발효 이후 칠레산 포도 수입 추이에 촉각을 곤두세운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런데 정작 FTA 발효 이후인 4~7월까지 칠레산 포도 수입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오히려 9.1%나 줄어들었다. FTA 발효 이후 관세가 인하되면 포도 수입 물량이 늘어나리라는 예측이 빗나간 것이다.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한 것일까. 농협중앙회 양치대 과수팀장은 “국내 소비 침체가 장기화하고 있는 데다 FTA 비준 과정에서 칠레산 과일로 인해 우리 농민들이 피해를 본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소비자들이 수입 과일 소비를 자제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또 칠레산 포도의 출하 시기가 11∼4월에 집중되어 있어 계절관세를 적용, 겨울에 수입되는 포도에 한해 관세를 점진적으로 철폐하기로 한 것도 당장 포도 수입이 늘지 않는 요인 중의 하나이다. 한-칠레 FTA 발효에 따른 피해가 구체적으로 얼마나 될지는 올 겨울을 지나봐야 알 것이라는 말이다.

    칠레산 저가 과일 수입량이 늘어난다고 하더라도 국내 소비자의 입맛을 만족시킬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는 시각도 있다. 수출용 칠레산 포도는 주로 우리나라의 청포도와 비슷한 톰슨 시드리스(Thompson Seedless)나 붉은색이 도는 레드 글로브(Red Globe) 품종이다. 이들 품종은 우리나라 소비자가 선호하는 캠벨 포도와는 맛이나 품질 면에서 다소 차이가 난다.

    “수입 과일 사먹겠다…80%”

    복숭아도 사정은 비슷하다. 칠레는 딱딱한 천도 복숭아만을 수출할 수 있는 형편이지만 국내 소비자들은 백도나 황도를 선호하기 때문에 국내 농가에 미치는 영향이 그리 크지 않을 것이라는 게 농협측의 분석이다. 국내에서는 복숭아가 6∼10월에 유통되는 데 비해 칠레산은 11∼3월중 수확해 12∼5월중 판매된다. 이 점도 국내 농가의 피해를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보는 대목이다.

    따라서 관심의 초점은 칠레산을 비롯 수입산 포도가 낮은 관세로 국내시장에 수입돼 들어올 경우 실제로 소비자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가에 모아진다. 국산 포도에 비해 맛이 떨어지는 데다 잔류 농약이나 안전성에 대한 의구심 때문에 시장에서 도태된다면 국산 농가의 피해는 예상만큼 크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지난해말 전국 5대 광역시에 거주하는 20∼59세 주부 8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 결과는 흥미롭다. 이 조사에 따르면 수입산 포도를 먹어본 사람들 중 앞으로도 구매 의향이 있다고 응답한 사람은 전체 응답자의 56%인 데 비해 수입산 포도를 먹어보지 않은 사람들 중 구매 의향이 있다고 한 사람은 5.7%에 그쳤다. 비록 품종은 다르지만 한번 먹어본 사람은 수입산 포도를 구입할 가능성이 크다는 이야기이다.

    특히 수입산 포도를 먹어본 사람들 중에는 만약 지금보다 10∼20% 가량 가격이 떨어질 경우 ‘수입산을 구입하겠다’고 응답한 사람이 80%를 넘어섰다. 사실상 수입 과일에 대한 거부감이 거의 없어졌다는 말이다.

    정부는 칠레산 과일의 국내 시장 잠식에 대비해 이미 FTA지원특별법을 제정, 한-칠레 FTA 발효 직후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현행 FTA 지원특별법에는 과수농가가 과수원을 폐쇄할 경우 보상금 명목으로 3년간 순수입액을 일시금으로 지급하도록 하고 있다. 시설포도의 경우 3000평당 1억300만원, 복숭아의 경우에는 3000평당 3400만원의 폐업 보상금을 받을 수 있다. 따라서 이번 기회에 품종이나 업종 전환을 꾀하거나 아예 과수농사를 포기하는 농민이 많을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FTA지원특별법에 따라 지난 6∼7월 두 달 동안 과수 농가의 폐업 신청을 접수한 결과 폐업지원 대상인 시설포도와 복숭아를 재배하는 전체 농가 중 각각 23.3%와 25.5%가 과수 농사를 포기하겠다고 나섰다(면적 기준, 222쪽 도표 참조). 한-칠레 FTA 발효 이후 포도와 복숭아 농가의 4분의 1이 더는 농사를 짓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혔다는 이야기다.

    폐업을 신청한 과수농가에게 보상금을 모두 지급하기 위해서는 무려 1800억원이 넘는 재원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는 농림부가 올해 FTA 지원 예산 중 폐업지원용으로 책정한 234억원의 8배 가까운 금액이다.

    과수농가 폐업 신청 러시

    사정이 이렇다 보니 정작 주무부처인 농림부조차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농림부는 경사지 과수원이나 노령층 경작지 등 한계상황에 이른 과수 농가들이 주로 이번 기회에 목돈을 마련할 수 있다는 기대감에 폐업을 신청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그러나 농림부는 폐업을 신청한 과수농가들이 실제로 모두 폐업할 것으로는 보지 않는다고 밝히고 있다. 실제로는 폐업을 망설이면서도 ‘일단 신청해놓고 보자’는 농가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농림부 관계자는 “보상금 지급이 시작되면 폐업 신청을 철회하는 농가도 상당수 나타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관계자는 또 “과수원이 한꺼번에 폐원하게 되면 과일 공급량이 줄어들면서 가격 폭등 등 부작용이 예상되는 만큼 적절한 심사를 거쳐 순차적으로 폐원시키는 방안을 강구하겠다”고 밝혔다. 과수농가의 폐업 러시에 대한 농림부의 고민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한-칠레 FTA 6개월, 불안한 農心

    지난 4월 한·칠레 FTA 발효 이후 칠레산 와인 수입이 3배 이상 늘어나는 등 칠레산 제품이 소비자의 입맛을 유혹하고 있다.

    농림부측이 폐업을 신청한 과수농가 중에는 ‘허수(虛數)’가 적지 않게 포함돼 있다고 주장하는 데 대해 농촌 현장에서는 다른 목소리가 들린다. 농림부의 인식과 현장의 인식 사이에는 온도차가 감지되고 있다.

    국내 최대 복숭아 산지로 꼽히는 경북 청도군 관계자는 “폐업을 신청한 과수농가는 대부분 노년층이 경작하는, 경쟁력을 상실한 곳들이기 때문에 (농림부의 예측과는 달리) 실제로 폐업하는 곳이 대부분일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또하나 관심을 모으는 것은 한-칠레 FTA 결과 관세 철폐 품목으로 분류됐지만 당분간 수입될 가능성이 전혀 없는 복숭아 농가들이 너도나도 폐업을 신청하고 나섰다는 점이다. 복숭아는 한-칠레 FTA 결과 향후 10년간 관세를 철폐하는 데에 합의했으나 포도와 달리 현재 식물검역 규제조치에 걸려 수입되지 않는다. 칠레산 복숭아가 수입되려면 짧아도 4∼5년에 걸친 현지 실사를 통해 위생 검역에 문제가 없음을 우리가 인정해야만 한다. 포도에 비하면 당장의 피해는 모면한 셈이다.

    그런데도 경북 청도, 영천, 경산 등을 중심으로 복숭아 농가들이 과수원을 갈아엎겠다고 나섰다. 국내 최대 복숭아 산지인 경북 청도의 경우 전체 복숭아 생산 농가 4400호 중 1980호가 폐업 신청을 했다. 신청 면적만 197만평으로, 청도 지역 복숭아 과수원 570만평의 34%에 이른다.

    또 경북 경산시 와촌면의 경우 전체 452호의 복숭아 농가 중 160호가 폐업을 신청했다. FTA지원특별법상 복숭아에 대한 폐업 보상금은 평당 1만1000원 수준. 와촌농협 관내 복숭아 생산농가가 450여호인 것을 감안하면 이 지역에서는 대략 농가당 평균 1400만원을 폐업보상금으로 챙길 수 있다는 계산이다. 이러다 보니 너도나도 ‘일단 폐업을 신청하고 보자’는 바람이 불고 있다.

    와촌농협 이창대 조합장은 “복숭아 생산 농가 대부분이 노령자이어서 정부에서 보상금을 준다고하면 일단 받기 위해서라도 폐업 신청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와촌면 복숭아 생산 농민의 평균 연령은 63세이다.

    물론 폐업 농가가 늘어날수록 기존 농가의 수익은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식물검역 규제가 풀려 칠레산 복숭아가 저관세로 수입되기 전까지는 공급 물량 축소로 인해 시장에서 복숭아값이 뛸 것이기 때문이다. 와촌농협 이창대 조합장은 “올해 복숭아값이 최근 10년 이래 가장 높게 형성되었다. 여기에 일부 농가가 폐업을 하게 되면 가격이 좀더 올라가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있는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15만평이나 되는 복숭아 과수원을 갈아엎고나서 그 땅을 무슨 용도로 쓸 것인지, 또 한꺼번에 몇천만원씩의 돈을 손에 쥔 과수농가들이 그 돈을 어디에 쓸 것인지에 대해 얘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일부에서는 “평생 과일농사 지은 노인들이 받은 보상금은 결국 자식들 주머니로 흘러들어가지 않겠느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키위의 성공 사례

    한편 키위 생산농가도 폐업할 경우 복숭아보다 많은 평당 1만4000원 수준의 보상금을 받을 수 있지만 폐업을 신청한 키위 농가는 전체 농가의 10% 정도(면적 기준)밖에 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복숭아나 포도 농가의 폐업 신청 비율에 비하면 절반도 안 되는 수준이다. 국내 키위 농가 역시 한-칠레 FTA에 따라 피해가 예상되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칠레는 키위 수출 세계 3위의 강국이다.

    그러나 국내 키위 농가는 이미 세계적 키위 강국인 뉴질랜드와 전략적 제휴를 맺어 수출길을 열어놓고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느긋한 입장이다. 한국과 뉴질랜드는 계절적 차이로 인해 키위 수확 시기가 서로 다르다. 양국 키위 생산자들간 제휴는 시장개방에 대비해 농민들이 자발적으로 선택한 ‘윈-윈 마케팅’의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한-칠레 FTA의 영향은 과수농가뿐만 아니라 축산농가에도 미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칠레산 삼겹살의 수입 급증 현상. 그러나 칠레산 삼겹살 수입은 지난해부터 꾸준히 늘어난 데다 칠레산 삼겹살이 국내 돼지 사육 농가를 위협하기보다는 이미 국내시장 깊숙이 들어와 있는 벨기에산 삼겹살을 대체하는 데 그칠 것이라는 게 무역업계의 시각이다.

    그렇다면 컬러TV 자동차 휴대전화 등 공산품 수출이 늘어나고 칠레산 저가 과일의 수입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한-칠레 FTA의 대차대조표는 어떨까.



    농촌경제연구원 최세균 선임연구위원은 FTA의 긍정적 효과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칠레 FTA가 노령화하면서 경쟁력을 상실하고 있는 농촌에 구조조정의 계기를 제공했다고 본다. 폐업을 통해 농사를 포기하는 사람도 생기겠지만 젊고 의욕있는 사람들 중에는 경쟁력을 갖춘 대규모 경영을 염두에 두고 기존 과수원을 양도받거나 사들이려는 사람도 생겨날 것이다. 그게 바로 구조조정 아닌가.”

    무역협회 정재화 FTA팀장은 정작 중요한 것은 칠레가 아니라 앞으로 우리가 추가 FTA를 맺어야 할 일본 중국 등이라고 지적한다.

    “칠레측에서 보면 한국과의 FTA 협상은 중국이나 일본과 FTA로 가는 교두보에 불과하기 때문에 총력을 기울였다고 보기는 힘들다. 칠레의 라고스 대통령이 자국에 불리한 조건으로 FTA를 타결짓는 바람에 국내적으로 궁지에 몰렸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만큼 우리에겐 칠레 이후의 FTA가 더욱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아직 구상단계이지만 한-중, 또는 한-중-일 FTA가 구체화할 경우 농촌에 불어닥칠 중국산 저가 농산물의 위력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 분명하다. 농협중앙회 양치대 과수팀장도 “한-칠레 FTA협상 경험을 교훈삼아 중국과의 FTA에 대비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라고 지적했다.

    한중일 FTA 손익계산서

    정부간 협상이 상당히 진행된 한-일 FTA의 경우 이미 국내 제조업체들 사이에서도 반대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일본과 FTA를 체결하게 되면 기계 전자 자동차 등에서 우리보다 월등한 경쟁력을 가진 일본 제품이 밀려들어올 것이므로 이에 대비해 속도조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한-칠레 FTA에 농민들이 반대했던 것처럼 제조업체 노조들이 한-일 FTA에 반대 목소리를 낼 가능성도 있다.

    최근 중국에서 열린 ‘한중일 FTA의 효과’에 관한 3국 공동 세미나에서는 3국간 FTA가 체결될 경우 중국 일본에 비해 한국의 경제적 이득이 가장 작을 것이라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기도 했다.

    한-칠레 FTA의 효과를 천천히 나타날 것이다. 관세 철폐의 예외로 해놓은 품목도 400개나 된다. 그만큼 아직 ‘메이드 인 칠레’의 영향은 국내 시장에서 크게 감지되지 않는다. 그러나 일본이나 중국은 다르다. 앞으로 우리와 FTA를 체결해야 할 대상 국가들은 칠레에 비하면 훨씬 힘겨운 상대가 아닐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익명을 요구한 한 통상전문가의 지적은 의미심장하다.

    “칠레를 첫 번째 FTA 파트너로 삼은 것은 우리 경제에 미치는 충격을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도 국회는 한-칠레 FTA 비준을 세 차례나 무산시키는 무책임의 극치를 보여줬다. 이런 자세로는 일본은 물론 중국과의 FTA도 공염불에 그칠 공산이 크다. 이러다가는 21세기 무역전쟁의 키워드로 떠오른 FTA협상에서 한 발짝도 전진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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