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 봐주기 수사’ 논란에 휩싸인 검찰.
검찰에서 삼성 관련 수사를 맡은 부서는 대검 중수부 1과였다. 당시 중수1과장이던 남기춘 현 서산지청장은 강직한 성품에 우직한 수사를 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안대희 고검장이 원칙주의자라면 남기춘 지청장은 강골이다. 검찰 정보통인 한 변호사는 “삼성은 남기춘 검사를 의식해 이학수 부회장이 조사받으러 갈 때 남 검사의 사시 동기인 김용철 변호사가 수행케 했다. 하지만 김 변호사는 남 검사가 딱딱하게 나오는 바람에 망신을 당했다”고 귀띔했다. 서울중앙지검의 한 간부도 비슷한 얘기를 들려줬다.
김 변호사에게 확인 결과 이는 사실이었다.
“일종의 해프닝이었다. 이학수 부회장이 출두할 때 함께 갔는데, ‘선임계를 안 냈으면 들어오지 말라’고 하더라. 그래서 못 들어갔다. 나는 삼성 소속 변호사일 뿐이지 사건을 수임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남 검사 스타일이 그렇다. 좀 세련되지 못하고 수사방식이 매끄럽지 못해서 그렇지 괜찮은 검사라고 생각한다. 검사가 원칙대로 수사하겠다는 걸 누가 막을 수 있겠나.”
광주일고 출신인 김 변호사는 1997년 8월 삼성에 법무팀 이사로 입사했다. 현직 검사가 삼성 임원이 된 첫 번째 사례다. 1990년대 중반 전두환 비자금 수사에 참여한 특수통으로 쌍용그룹의 ‘사과상자 비자금’을 찾아낸 주인공이기도 하다. 삼성은 김대중 정부 때 그의 호남 인맥을 적극 활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삼성에서는 검찰 조사 문제를 두고 법무팀과 재무팀 사이에 견해 차이가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중앙지검 간부의 전언.
“삼성은 수사 초기 김 변호사를 활용하려다 실패했다. ‘검찰과 잘 얘기해보라’고 김 변호사를 협상 테이블로 내보내면서 그에게 사실관계를 정확히 얘기해주지 않았다. 검찰은 김 변호사에게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왜 나왔느냐’ ‘당신이 대표성이 있냐’고 핀잔을 줬다. 회사로 돌아간 그는 경영진에 ‘사실대로 빨리 털어놓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가 ‘당신은 누구 편이냐’고 공격당했다고 한다. 양쪽에 치인 것이다. 그 사건 이후 삼성 내에서 입지가 크게 좁아졌다고 한다. 지난해 그가 삼성에서 퇴사한 배경엔 그런 사정이 있다.”
실제로 구조본 법무팀장(전무)으로 이학수 부회장의 신임이 두터웠던 김 변호사는 그 일로 ‘조직에 도움이 안 되는 사람’이라는 비판을 받은 후 대선자금 수사와 관련된 업무에서 배제된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사정을 잘 아는 검찰 관계자에 따르면 김 변호사는 ‘검찰 수사에 협조할 건 협조하면서 타협해야 한다’는 유화론을 폈다. 반면 이 사건을 수임한 변호인단은 ‘강공’을 주문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끝까지 버티고 피해야 한다는 것. 결과적으로는 변호인단의 전략이 맞아떨어진 셈이다. 이 부회장이 불구속 기소되는 선에서 수사가 막을 내렸기 때문이다. 외국에 머물던 이 회장은 조사 한번 받지 않았다. 삼성으로서는 선방이었다.
“옷 벗고 외국 나갈 생각도”
이와 관련, 당시 수사팀이 상부에 ‘이학수 구속, 삼성 구조본 압수수색’을 건의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는 얘기가 있어 흥미를 끈다. 검찰 고위관계자는 “수사팀은 상부의 삼성 처리방침에 반발했다”며 “이학수 부회장을 구속하고 삼성(구조본)을 압수수색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으나 위에서 허락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김용철 변호사에게 확인한 결과 이 검찰 간부의 얘기는 대체로 사실인 듯싶었다. 김 변호사는 다른 질문에 대해서는 거의 입을 닫았지만 이 문제만큼은 자신이 아는 대로 설명해줬다.
“남기춘 검사가 밀어붙였던 건 맞다. 그는 끝까지 ‘이학수 구속’을 주장했다. 수사팀이 압수수색을 하려 했다는 것도 사실이다. 남 검사가 강공을 폈던 건 삼성(구조본) 사람들이 다 안다. 그가 사시 동기였기 때문에 그게 나한테는 나쁜 영향을 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