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2월호

대한민국 상류층 사교모임

해외 갤러리서 정기 만남, 와인과 재즈가 ‘교양 척도’

  • 최항섭 정보통신정책연구원 연구위원 jesuishs@kisdi.re.kr

    입력2005-12-01 16:30: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대한민국 상류층 사교모임

    19세기 유럽 상류사회의 모습을 주로 그린 이탈리아 화가 프레데릭 솔라크로이의 ‘티 파티’. 그림 위쪽 사진은 서울 강남 전경.

    상류사회란 무엇인가. 한국에 상류사회는 존재하는가. 존재한다면 그들은 누구인가. 그들의 역할은 무엇인가. 그들은 어떻게 자신들의 지위를 이어가는가. 우리 가운데 상류사회 사람들과 친분이 있는 이는 몇이나 될까. 살아가면서 상류사회의 사람들을 만나보기나 할 수 있을까.

    사실 우리는 상류사회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그저 TV 드라마에 등장하는 재벌 2세의 집과 자동차, 그들이 즐겨 찾는 레스토랑 등을 통해 어렴풋이 짐작할 뿐이지 실제의 모습을 전혀 알지 못한다. 그들이 어떠한 방식으로 생활하는지, 어떠한 방식으로 자신과 다른 계층집단을 분리하는지, 드라마 속의 신데렐라가 실제로 존재하는지 알아볼 길이 없다.

    이렇듯 접근하기 어려운 상류사회는 어느 사회에나 존재하며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재벌을 중심으로 한 상류사회, 고위 공직자를 중심으로 한 상류사회, 공식적 사회활동을 잘 하지 않으면서도 부와 지위를 누리는 상류사회가 존재한다. 이들 상류사회는 규모는 작지만 한 사회의 경제, 정치, 문화 등 주요 영역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면서 지배력을 행사한다. 한 사회가 작동하는 데 핵심적 기능을 갖는 집단이기에 상류사회는 당연히 중요하게 다뤄져야 한다.

    그러나 상류사회에 대해 연구하는 것은 쉽지 않다. 가장 큰 이유는 상류사회를 조사하는 데 필요한 자료들을 구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상류사회는 폐쇄성을 특징으로 하기 때문에 외부로 잘 드러나지 않는다.

    소득도, 공유정보도 비밀



    필자는 2002년부터 한국학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아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팀과 함께 한국사회의 상류사회를 조사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이 시도는 이내 난관에 봉착했다. 필자 주위에 상류층이, 아니 상류층에 근접한 사람조차 거의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무언가 상류사회와 끈이 닿아 있어야 조사를 진행할 터인데, 그러기가 처음부터 쉽지 않았다.

    설령 간신히 찾아냈더라도 대상자를 접촉하는 과정에 조사 의도가 무엇이냐를 설명하다가 인터뷰 자체를 거부당하는 경우도 속출했다. 여러 차례 시행착오 끝에 필자는 20개 정도의 인터뷰 샘플을 얻을 수 있었다. 조사를 시작한 지 거의 6개월 만의 일이었다. 조사하기 위해 인터뷰 대상자들이 사는 곳을 직접 찾아가 몇 시간을 기다리기도 했고, 상류사회 사람들이 드나든다는 레스토랑이나 클럽으로 달려가 무작정 인터뷰를 요청하기도 했다.

    그러나 인터뷰 초반에는 질문에 답을 곧잘 해주다가도, 막상 자신과 관련된 예민한 부분에 대한 질문, 예를 들어 소득이나 모임 안에서 주고받는 정보의 종류 등에 관한 질문에는 제대로 답하는 경우가 드물었다. 특히 자신의 신상을 절대 밝히지 말라고 당부했기에 필자는 이들에 대한 인터뷰 결과를 정리하면서 가명 혹은 이니셜을 사용해야 했다.

    인터뷰는 주로 상류사회의 성원들이 다른 상류사회 성원들과 관계를 맺는 사교모임을 중심으로 이뤄졌다. 사교모임이 유지되는 메커니즘을 밝힘으로써 한국 상류사회가 움직이는 주된 방향을 포착하기 위함이었다. 조사한 인터뷰 샘플 중 몇 가지를 간단히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단, 여기서 제시하는 사교모임의 이름은 필자가 임의로 사용한 것이며, 실제로 대부분의 사교모임은 이름이 없다).

    먼저 대기업을 그만두고 개인사업을 하면서 한 달에 한 번씩 만나 기업정보를 공유하는 ‘대기업 OB 모임’이 있고, 명문대 치의대 출신 중 와인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만든 ‘치과의사 와인동호회’, 서울 K고 시절 고액과외를 함께 받고 같은 명문대에 진학한 남성들이 서울 명문 S여고와 E여대를 졸업한 여성들과 조인트한 일명 ‘KS’회, 아버지의 재산 덕택에 유복한 생활을 누리며 밤에는 남산 등지에서 고급 외제차를 타고 단체 드라이브를 즐기는 고교동창생 모임 ‘드라이버 클럽’ 등이 있다.

    특히 필자의 관심을 끈 세 개의 사교모임이 있다. 대학교수, 큐레이터, 전문직 종사자 등 고전미술을 좋아하는 이들이 비정기적으로 갤러리에서 만나는 ‘고전미술동호회’, 여성 전문직(유명 기업 실장급), 여성 CEO 등이 모여 재즈와 와인을 즐기는 ‘여성재즈와인동호회’, 그리고 강남·서초 지역에서 의사나 변호사로 근무하는 서울 S고 동창생들의 모임인 ‘서울 S고 내 강남·서초 근무자 모임’이 그것이다.

    지식, 경제력 달리면 ‘탈퇴 압박’

    ‘고전미술동호회’는 고전미술에 취미가 있는 상류사회의 멤버들이 고급 갤러리에서 만나 고전미술을 함께 감상하고 친목을 도모하는 모임이다. 구성원은 서울 메이저 대학의 교수(인터뷰 대상자에게 들은 바로는 이들은 부동산 등 상당한 재산을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전문 큐레이터, 기업 CEO급 인사들로 이뤄져 있다. 멤버 중에는 특히 E여대 출신이 많았다. 이는 모임의 회장인 K씨가 E여대 출신으로, 자신의 동창들을 모임에 하나 둘씩 참가시킨 데서 비롯된다. 서울 시내 고급 갤러리를 3개 이상 소유한 K회장은 모임장소와 식사를 제공하는 등 이 모임에서 중추적 역할을 한다.

    이들 멤버의 특징 중 하나는 거의 모두가 서울의 메이저 대학 출신으로 미국 혹은 유럽 국가에서 유학을 했다는 점이다. 이 모임에서는 함께 와인을 마시고, 그림을 감상하기도 하지만 직업 시장과 관련된 정보 교환도 활발히 이뤄진다.

    ‘고전미술동호회’에서 고전미술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회원은 K회장의 눈에 금방 띄게 되고 그에게 외면당해 자연스럽게 모임에서 도태된다. 이 모임은 또한 행사에 얼마나 적극적으로 참여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을 계속 회원으로 인정할 것인지를 결정한다. 형식상으로는 미술에 대한 관심도가 얼마나 높은지 보는 것이지만, 실제로는 행사진행에 필요한 경비를 쉽게 부담할 수 있느냐를 체크해보는 것이다.

    이 모임 멤버들은 1년에 2~3차례 유럽이나 미국에서 열리는 전시회에 참가하는데, 여기에 참가하려면 비즈니스석 항공권 요금, 특급호텔 숙박비, 전시회 행사 참가비 등 1주일쯤 해외에 머무는 비용으로 적어도 1500만원 이상이 든다고 한다. 해외 행사에 참가하는 것이 의무조항은 아니지만, 1년에 적어도 한 번은 참가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회장에게서 ‘탈퇴 압박’ 전화를 받는다.

    이것은 상류 사교모임이 가장 활발한 나라 중 하나인 영국의 ‘런던 시즌 모임’과 유사하다. ‘Doing the Season’이라고도 부르는 이 모임은 특히 상류층과 고위 전문직 여성들에게 중요한 의미가 있다. 이 모임에서 상류층 남성 배우자를 찾거나 더 나은 취업자리를 소개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모임은 연회비가 6000파운드(약 1200만원)에 달한다. 처음 참석하는 여성 회원이라면 모임의 공식 드레스 값으로 최소 5000파운드(약 1000만원)를 지출해야 하고, 댄스파티와 식사비로 4만파운드(약 8000만원)를 별도로 내야 한다. 사교모임에 참석하는 데 9000만원 정도가 드는 것이다. 이렇다 보니 모임에 적합한 사람인가 아닌가는 참가비 지불능력으로 판가름이 난다.

    부모는 대기업 CEO나 부동산 자산가

    ‘여성재즈와인동호회’의 특징은 구성원이 대부분 전문직이나 운영·관리직에 종사하고 있으며, 1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30대 초반의 미혼여성이란 점이다. 이들은 비교적 자유로운 라이프 스타일을 추구하며, 거액의 부동산을 보유하거나 대기업 CEO 출신인 부모를 배경으로 뒀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이 모임은 약 2년 전 청담동의 한 와인카페에서 시작됐다. 처음에는 고교 동창생인 두 여성의 만남에서 출발했다. 이후 사람들을 서로 소개하면서 지금은 멤버가 20명 가까이 늘어났다. 1주일에 한 번 모이거나 한 달에 한 번 모이는 경우도 있는데, 대대적으로 모이는 것은 한 달에 한 번 정도다.

    요즘은 서울 시내에서 소문난 와인카페와 재즈카페를 돌아가면서 방문한다. 특히 고급호텔에서 종종 벌이는 와인축제에는 거의 모든 회원이 참석한다. 유명한 재즈 연주자들을 카페로 초청하기도 한다.

    필자는 이 모임의 한 멤버를 간접적으로 알게 돼 직접 모임에 참가했다. 분위기는 ‘세련’ 그 자체였다. 멤버 전원이 외제 고급 승용차를 몰고 있었고, 옷과 시계 등은 대부분 유명 브랜드였다. 몇 사람에게 물어봤더니 시계는 보통 100만~200만원대라고 했다. 다들 미혼이길래 “가입할 때 기혼이면 안 되냐”고 물었더니 “꼭 그런 건 아니지만 기혼 여성은 아무래도 함께 활동하기가 어렵다”고 했다. 멤버 중 단 한 명이 기혼 여성인데, 남편이 해외로 장기 출장을 떠난 이례적인 경우였다.

    필자는 모임 회장에게서 회원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아냈다. 설문지를 돌린 지 약 2주일 후 16개의 답변서를 회수했다. 이를 분석한 결과 김혜지(가명)씨와 유인주(가명)씨가 모임의 핵심인물임을 알 수 있었다.

    김혜지씨는 이 모임의 현재 회장이자 모임의 창설자. 올해 서른셋인 김씨는 아버지가 학원장이며, 어머니도 다른 학원의 원장이다. 김씨는 전문대에서 유아교육을 전공했고, 졸업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의 도움으로 서울 강남에 유치원을 차려 원장을 맡고 있다. 그는 아버지의 경영 비법을 전수받았고, 아버지의 인맥을 활용해 유치원을 키워나가고 있다. 현재 이 유치원은 강남 일대에서 꽤 이름을 떨치고 있다.

    그는 워낙 성격이 활달하고 사람 모으는 것을 좋아한다. 졸업 후 1년 정도 유럽에서 유학하면서 와인에 흥미를 갖게 됐다. 귀국 후 우연히 여고 동기 중 하나가 와인카페를 운영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돼 그 카페에 자주 드나들었다. 그러다 김씨가 이 카페에 친구를 한두 명씩 데리고 오면서 자연스레 모임이 결성됐다.

    대한민국 상류층 사교모임

    외제 고급 승용차를 소유했느냐, 재즈를 감상하고 즐길 줄 아느냐는 그 사람이 상류층 사교모임의 멤버인지를 가늠하는 중요한 잣대다.

    이 카페의 주인이 유인주씨다. 유씨는 어려서부터 강남구에 거주해 라이프 스타일이 그야말로 귀족적이다. 그의 아버지는 부동산으로 부자가 됐다. 대학에서 불문학을 전공했으나, 공부에 큰 관심은 없었고 빼어난 외모로 주위 남자들에게 인기가 많았다고 한다. 30대가 됐지만 아직 ‘화려한 싱글’을 고집하고 있다. 아버지의 지원으로 강남에 와인카페를 차려 운영하고 있는데, 낭만적인 기대와는 달리 처음에는 무척 힘들어했다. 그러나 김혜지씨 등 상류층 친구들이 손님을 몰아오고 세련된 상류여성들이 즐겨 가는 곳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카페는 안정 궤도에 올랐다.

    그는 약간 오만해 보이긴 하나, 자기 얘기하기를 좋아하는 김혜지씨와 달리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들어주는 편이라 주변에 따르는 사람이 많다. 모임 멤버들 중에는 김씨를 통해 가입했다가 자신의 고민을 잘 들어주는 유씨의 인물됨을 보고 모임에 정착하는 경우도 많다.

    ‘문화취향 고급화’에 몰두

    멤버들 중에는 전문직 여성이 상대적으로 많지만, 이들은 사교모임에서 중심적 역할을 하지 못했다. 반면 이 모임의 핵심인 김씨와 유씨, 그리고 이들보다는 덜하지만 모임의 핵심인물로 활동하는 박아영(가명)씨, 오지연(가명)씨 등은 모두 운영·관리직 종사자다. 오씨는 중소의류업체 사장, 박씨는 레저·스포츠 용품매장 사장이다.

    이들은 다른 구성원에 비해 자신의 업무시간을 통제할 수 있고, 비교적 여가시간이 많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모임의 핵심이 되려면 다른 멤버들과의 연락에 적극적이어야 하며, 모임을 활성화하는 데 필요한 여러 가지 일(모임장소 물색과 예약, 프로그램 만들기 등)을 해야 하므로 여가시간을 내기 편한 운영·관리직 여성이 모임을 주도하기 쉽다.

    전문직 여성들은 대부분 명문대 출신이거나 해외 유학을 다녀왔기에 모임의 핵심에 있는 여성들보다 학력수준이 훨씬 높다. 그런데도 왜 이들은 모임에서 주변 인물에 머물까. 한 멤버에게 물어봤더니 이렇게 답했다.

    “사실 그 멤버들은 좀 잘난 척하는 경향이 있어요. 특히 자존심 강한 인주 언니가 그 멤버들을 별로 안 좋아해요. 그 언니는 전문대를 나왔는데, 그래서 그런지 유독 학력 높은 사람들을 안 좋아하는 것 같더라고요. 혜지 언니는 그런 거 없는데. 어쨌든 이런저런 이유로 내놓고 그러지는 못하지만, 연락해서 맘 터놓고 할 사람들은 아니죠. 또 인주 언니의 눈치도 살피게 되고요.”

    멤버들은 이 모임을 통해 무엇을 얻는가. 물론 인맥을 관리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와인을 마시고 재즈를 감상하며 문화적 취향을 고급화하는 것이다. 특히 최근 우리 사회에 급속하게 확산된 와인 문화는 세련미를 상징한다. 와인 문화에 대해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느냐, 이를 즐기는 방식을 얼마나 정확히 알고 있는가는 그 사람이 얼마나 고급 문화와 가까운 인물인지를 가늠하는 잣대가 된다.

    이와 관련해 필자가 조사한 또 다른 자료를 잠시 인용하고자 한다. 이 자료는 최근 몇 년 동안 고급 호텔 레스토랑의 식사자리를 관찰하면서 얻은 것이다. 식사 시간 동안 가격, 메뉴판, 와인 리스트, 식사 예절 등을 살펴봤다. 특히 와인을 주문하고 테이스팅하고 마시는 과정에 주목했다.

    사람들은 와인에 익숙한 이들과 익숙하지 못한 이들로 확연히 나눠졌다. 이들의 경제적·사회적 지위를 고려할 때, 양쪽 지위가 모두 높은 사람들이 확실히 와인과 친밀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와인에 익숙한 사람들은 와인 메뉴판을 보는 시간이 대단히 짧았다. 와인에 대한 자신의 지식을 참석자들에게 친절히 설명해주기도 했다. 또한 테이스팅 후 와인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바로 교체해달라는 경우가 빈번했다.

    그러나 와인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은 와인 메뉴를 잘 보지 않고, 잘 모르겠으니 웨이터에게 추천해달라고 하는 경우가 많았다. 와인을 테이스팅할 때 대체로 그 와인을 거절하지 않고 “내가 뭘 아나” 하며 겸연쩍은 웃음을 짓기도 했다. 와인뿐만이 아니라 식사 과정 전체를 통틀어봐도 상류사회 성원과 그렇지 않은 이들은 매너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런던 소사이어티’의 매너

    대한민국 상류층 사교모임

    경제적·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일수록 와인과 친밀하며, 고급 호텔 레스토랑에서 세련된 식사 예절을 보인다.

    여기서 매너는 그 사람이 어떤 계층인지를 알 수 있는 중요한 척도가 된다. 영국의 유명한 상류사회 사교모임인 ‘런던 소사이어티’의 매너는 이러하다.

    ▲디너파티 초청장은 여주인과 남자 집사가 초청할 사람의 자택에 일일이 들러 전달한다. 전달할 때 여주인은 마차에서 내리지 않으며, 남자 집사가 초청 대상자 집의 문을 두드려 주인이 있는가를 물어본다. 보통 초청 대상 여주인 앞으로 1장, 남자주인 앞으로 2장의 초청장을 건넨다.

    ▲파티에선 신사가 숙녀에게 자신을 소개하는 것은 허용되나, 면식이 없는 신사들끼리 서로 소개하는 것은 금지된다. 이들을 소개하는 일은 당사자가 아니라 중재자가 해야 한다.

    ▲디너가 시작되면 숙녀들은 동시에 착석해야 하지만, 신사들은 선 채로 약간 대화를 나누는 것이 허용되며 동시에 착석하지 않아도 된다. 모두 착석한 뒤에는 디너를 주최한 집주인이, 파티에 참석한 숙녀 중 가장 높은 지위의 여성과 팔짱을 끼고 파티장으로 입장한다. 그 뒤를 두 번째 지위의 신사가 두 번째 지위의 여성과 함께 같은 방식으로 입장한다.

    골프 치며 부동산 정보 얻어

    ‘S고 동창회 내 강남·서초 근무자 모임.’ 이 모임에 대해 이야기해준 의사 K씨는 45세로 거주지는 서초구이고, 소득은 연 1억~2억원이다(정확하게 밝히진 않았다). K씨가 나가는 주요 사교모임은 본인이 졸업한 강남의 S고 동창회 중 강남·서초 지역 모임이다. 처음부터 의도적으로 만든 모임이 아니라, 주로 강남과 서초 지역에서 일하는 동창들이 자주 모여 점심식사를 하다가 만들어졌다.

    이제는 가입 규칙도 만들어놓았다. 모임에 들어오려면 기존 회원 3인의 추천이 있어야 하고, 회원 전원이 만장일치로 찬성해야 가입이 허가된다. 회원들의 직업은 주로 의사나 기업간부이며 회원수는 10명 정도다. K씨가 이 모임에 나가는 이유는 “대화가 잘 통하며, 직업이나 생활면에서 유익한 정보를 공유할 수 있고, 회원의 학력과 소득수준이 비슷해 편안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회원의 70~80%가 서울 명문대를 나왔으며 이중 40~50%는 해외 유학, 특히 미국 유학을 다녀왔다. 문제는 이 모임이 발전할수록 고교 총동창회에서 곱지 않은 눈길로 바라보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모임에서는 아예 비밀리에 만나자는 의견도 나온다.

    K씨가 이 모임에 가입한 것은 모임이 만들어진 지 1년이 지난 후였다. 모임에 먼저 나가고 있던 동창 L씨를 통해 모임의 존재를 알게 됐다. K씨와 L씨는 동료의사로 의대 동창이다. 출신지역은 같지 않지만 힘겨운 재수생 시절 함께 공부한 친구라서 지금도 절친하다.

    하지만 L씨는 이 모임에 그다지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있는 것 같지 않았다. 오히려 다른 동창 P씨가 K씨에게 가입을 적극 권유했다. L씨는 K씨에게 본인이 들어오고 싶을 때 가입하라고 했지만, P씨는 자주 전화를 걸어 이 모임에 참여할 것을 적극 권장했다. P씨와 K씨도 의대 동창이다. 친하게는 지내고 있으나 대학 때부터 P씨의 가족환경(대대로 의사집안에다 대학 때 이미 고급 승용차를 몰고 다녀 질투를 느꼈다고 한다) 등이 워낙 우월했기에 K씨는 그에 대해 약간의 열등감과 벽을 느끼고 있었다.

    모임에서 K씨는 이 두 사람 외에도 Y씨와 친하게 지낸다. 그는 고등학교 때 잘 모르고 지내던 사이였는데, 이 모임을 통해서 친해졌다. Y씨는 중소기업체 사장. Y씨는 직업이 달라 쉽게 가까워질 것 같지 않았지만, 그의 쾌활한 성격과 골프라는 공통의 취미 덕택에 빨리 친해질 수 있었다. K씨는 상당한 구력의 소유자로, Y씨에게 골프 레슨을 해주고 있다. Y씨가 골프를 배우는 데 강렬한 의욕을 보여 그는 가르치면서도 재미를 느낀다. 한편 부동산업계에 발이 넓은 Y씨는 종종 K씨에게 유용한 부동산 정보를 제공한다. 최근에도 K씨는 Y씨가 귀띔한 정보 덕택에 쏠쏠한 이익을 올렸다.

    동질성 높이는 ‘학교 연결망’

    상류사회의 동질성을 높이는 데 가장 효과적인 것은 아무래도 학연이다. 영국의 사회학자 스콧에 따르면 영국의 정치·경제 엘리트들은 그들의 지위를 공고히 하기 위해서 사교모임을 활발히 결성해 활동하는데, 그중에서 활동성이 가장 높은 모임이 바로 명문 이튼(Eton) 고교 동창회와 해로(Harrow) 고교 동창회다. 이 고교 출신들은 대부분 옥스퍼드나 케임브리지 같은 명문대에 진학하며, 사회 요직으로 진출하는 비율도 대단히 높다.

    이는 프랑스의 경우도 유사하다. 프랑스의 명문 사립고인 앙리4세 고교와 루이그랑 고교 출신은 대부분 최고 명문대인 ENS와 폴리테크닉에 진학하며, 이들이 정부와 대기업의 요직을 독점하고 있다. 그들은 사회로 진출한 뒤 고교와 대학 동창들을 찾아서 사교모임을 만들어 활동하는데, 과거 귀족들의 살롱문화와 비슷하다.



    한국도 이와 사정이 다르지 않을 것이라 보고 한국 메이저 대학 동창 사교모임이 어떻게 연결돼 있는지를 살펴봤다. 이를 위해 온라인 커뮤니티 ‘프리챌’에 등록된,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이화여대’의 검색어로 나타나는 각 대학의 커뮤니티 연결망을 분석했다.

    프리챌에서 제공하는 ‘활동성’ 순위대로 1위에서 300위까지 총 1200개의 커뮤니티를 검색한 후 연계 모임 현황을 분석했다. 그 결과 다른 메이저 대학과 연계활동을 가장 활발하게 펼치고 있는 대학은 이화여대이며, 서울대가 그 절반 정도를 차지했고, 연세대와 고려대는 비슷한 정도의 연계활동을 보였다(표 참조).

    대학간 연계활동을 보면 서울대의 경우 이화여대와의 연계활동이 다른 대학과의 활동에 비해 현저히 높았다. 연세대와 고려대가 1대 1로 연계된 경우는 없었고, 모두 타 대학과 함께하는 공동 연계활동(예: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이화인의 모임’ ‘YESK, 닭살모임’)에 포함돼 있다.

    대한민국 상류층 사교모임
    연세대도 이화여대와의 연계활동이 높게 나타났다. 고려대는 전 대학에 걸쳐 골고루 연계활동을 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화여대와의 연계활동은 서울대, 연세대에 비교해 대단히 낮은 편이다. 이는 대학간의 지리적·전통적 거리에 기인하는 듯하다.

    대학과 대학간의 1대 1 연계활동을 보면(그림 참조) 이화여대의 연계활동은 서울대에 거의 집중돼 있다. 이는 서울대 출신이 사회적 자원을 확보할 수 있고 엘리트 사회로 진입할 수 있는 확률이 가장 높다는 인식을 토대로 잠정적 배우자를 확보하려는 시도로도 해석될 수 있다. 하지만 이 해석은 이화여대만을 대상으로 한 것이어서 일반화 하기엔 한계가 있다. 다른 여대와 서울대의 연결망을 더 분석해봐야 이 해석의 설득력이 높아질 것이다.

    그림을 보면 서울대와 이화여대의 연계활동이 다른 대학과의 연계활동에 비해 두드러진 것으로 나타난다. 반면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간에는 어떠한 1대 1 연계 활동도 나타나지 않았다. 숙명여대는 다른 4개의 대학과 빈번하진 않지만 모두 연계를 맺고 있다. 하지만 서울대와의 연계활동 수치는 이화여대의 8분의1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이화여대와도 연계를 맺고 있는데, 이 연계의 구성요인은 종교(기독교)다.

    고려대는 숙명여대와 2개의 1대 1 연계 커뮤니티만 발견되었을 뿐, 타 대학과는 1대 1 연계 활동이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 그림에서 볼 때 고려대는 1대 1 연결망에서 고립적 위치에 있다.

    베일에 가려진 사회

    이번 상류사회 연구에선 조사대상을 섭외하는 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따라서 상류사회라고 하면 흔히 떠올리는 재벌 총수, 고위공직자, 베일에 가려진 정·재계 실세 인물들이 어떻게 자신들만의 연결망을 만들고 있는가를 찾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앞서 제시한 사례들은 한국의 상류사회가 어떻게 작동되고 있는가를 이해하기 위한 실마리가 될 것이다. 이들은 소위 명문대 출신으로, 외국 특히 미국 유학이라는 공통적 경험을 갖고 있다. 서양의 고전예술이나 음식 등을 접하며 얻은 문화적 취향과 지식을 통해서 자신들만의 동질성을 유지한다. 이에 적합하지 않은 이들은 철저히 배제하고, 성원들끼리는 경제적 도움을 비롯한 실제적인 도움을 주고받는다.

    이러한 특징이 다른 모든 상류사회 성원들의 연결망을 설명해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번 연구가 빙산의 일각을 살피는 데 불과했다면, 앞으로는 상류사회라는 전체 틀을 조망하고 분석하는 작업에 진력할 것이다.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