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2년 9월27일 중국의 선양 네덜란드촌에서 양빈이 한국기자들과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2002년 3월부터 평양-유라시아 합영회사의 온실에서 자란 신선한 야채가 평양의 외국인들과 시민들에게 공급됐다. 이렇게 해서 유라시아그룹과 양빈의 이름이 평양에서 나돌기 시작한 것이다. 북한의 당과 관리들은 양빈을 대단한 인물로 보았을 것이다.
양빈의 유라시아그룹과 북한 원예총사의 합작은 명의상으로는 합영회사였지만 실제로 70%의 지분을 소지한 양빈은 그곳에서 생산된 신선한 야채에 대해 1센트의 수입도 얻지 못했다. 북한에선 야채마저도 정부가 공급하기 때문에 평양-유라시아 합영회사는 생산한 야채를 시민들에게 팔 수가 없었다. 정부가 일부분 비용을 보조해주기는 하지만 평양시 정부는 달러로 이 비용을 지불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그냥 장부상에 기재만 해놓는 것이다. 북한 정부는 양빈에게 농업시범구 사업의 보조금을 지불하고 감사를 표시하기 위해서 다른 방법을 통해 보상하기로 했다.
북한, 양빈에 신의주 경제특구 제안
2002년 1월14일부터 22일까지 양빈은 리강, 볜서우제(邊守捷), 저우샹(周翔) 등 유라시아그룹 사람들과 네덜란드 농업전문가 제크를 데리고 평양을 방문해 농업시범기지의 건설상황을 시찰했다. 이어서 양광온실의 모종 생장상태를 확인하는 한편, 유리온실의 구조 시공에 관한 여러 가지 문제를 북한측과 협의했다.
양광온실 안은 봄처럼 따뜻했다. 유라시아 농업기술자들의 세심한 관리하에 야채모종은 잘 자라고 있었다. 북한 관리들은 양빈과 함께 시찰을 마친 후 대단히 만족해 했다.
1월21일 저녁, 북한 원예총사가 모란봉호텔 1층에서 양빈 일행에게 연회를 베풀었다. 연회가 끝난 뒤, 김동규 사장은 2층 양빈의 응접실에서 대화를 나누었다. 김 사장은 앉자마자 말했다.
“양빈 총재님, 당신은 조선인민의 친구입니다. 당신은 조선을 위해서 아무 대가없이 너무나 큰 공헌을 했습니다. 김정일 장군과 조선 정부를 대표해서 제가 감사를 드립니다.”
양빈은 김의 어깨를 툭툭 치면서 말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중국에서 자랐기 때문에 애국주의와 국제주의 교육을 받았습니다. 얼마 안 되는 돈과 힘을 보태는 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김 사장은 큰소리로 웃으며 말했다.
“양 총재님은 정말 좋은 분이군요. 중조(中朝) 양국 인민들의 우의는 피와 불의 시련을 거친 것이죠. 총재님의 조선인민에 대한 감정 또한 진실한 것이며 시련을 거친 것입니다. 당신은 사업가입니다. 주기만 하고 받지 못해서야 되겠습니까? 그러나 우리 조선은 지금 대단히 빈곤합니다. 그래서 보답할 만한 것이 없습니다. 김장군님도 양 총재에게 무슨 요구사항이 있다면 모두 말씀하게 하라고 지시하셨습니다.”
김 사장은 이 자리에서 북한 정부를 대신해 양빈에게 경악할 만한 제안을 했다. 양빈에게 신의주 지역에 27㎢를 선택해 경제무역구를 만들고 관리를 해달라는 것이었다. 잘되면 더 크게 확장할 수도 있다고 했다.
양빈은 당시에 너무도 놀랐다. 한 번도 생각해본 일이 없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