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0월호

미국 대선 이후 한미관계를 위한 제언

‘과거로부터 자유로운 팀’으로 대미외교 라인 교체하라

  • 글: 모종린 연세대 교수·정치경제학 jrmo@yonsei.ac.kr

    입력2004-09-22 10:3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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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대선 이후 한미관계를 위한 제언

    케리 후보 진영은 부시 진영에 비해 북한과 직접 대화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2004년 미국 대선은 예측 불가능한 접전의 양상을 띠고 있다. 중도주의자가 사라졌다고 할 정도로 미국 국민은 부시 대통령과 케리 후보를 놓고 양분되어 있다. 선거 분위기도 날이 갈수록 혼탁해지고 있다. 양측 모두 상대의 월남전 참전 경력을 문제삼는 부정적 선거방식에 집중하고 있다. 과거사 문제로 온 나라가 들끓는 것은 비단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케리 지지자들의 반(反)부시 정서는 성숙한 민주시민의 자세라고 하기가 무색할 정도로 증오에 차 있다는 인상을 준다. 친(親)민주당 성향을 지닌 미국 명문대의 한 교수는 “이번 선거에서 부시를 끌어내리지 못하면 미국 민주주의는 실패한 것”이라고까지 서슴없이 말한다.

    미국 시민들은 왜 이처럼 2004년 대선에 흥분하고 있는가. 미국 시민들은 1987년 냉전 상황이 종료된 이후 급변하는 국제질서와 그에 따른 미국의 역할 변화에 당황하고 있다. 미국은 2001년 9·11 테러를 겪으면서 국제안보에 대한 운명적 역할을 받아들이기는 했지만, 세계전략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아직 정립하지 못한 상태다. 2004년 대선은 미국이 새로운 국제질서를 어떻게 운영할 것인지를 선택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돌이켜보면 탈(脫)냉전시대의 의미에 대한 논의는 1989년부터 시작되었다. 당시 미국의 정치학자 프란시스 후쿠야마는 역사종말론으로 탈냉전 시대의 성격을 규정했다. 냉전의 종식은 인류가 수많은 전쟁을 겪으면서 추구했던 이념경쟁의 종말을 의미하며 이러한 이념경쟁의 최종 승리자는 서구 자유주의라는 것이다. 사회주의, 파시즘 등 서구 자유주의에 대한 대안이 모두 실패한 마당에 이제 전쟁은 불필요하며 국제사회는 자유주의라는 단일 이념으로 통합되어 평화를 유지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역사종말론이 제시하는 미국의 세계전략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국가적 차원에서 지원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동구권 국가와 제3세계에 대한 최선의 외교정책은 자유민주주의 수출을 통한 장기적인 평화 보장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미국은 1990년대 구(舊)사회주의국가의 시장경제 전환을 지원하고, 중국의 인권 개선과 민주화를 요구하는 등 역사종말론에 입각한 외교정책을 추진했다.

    역사종말론이 제시하는 역사관에 정면으로 맞선 대표적인 학자가 새뮤얼 헌팅턴이다. 1993년 ‘문명의 충돌’이라는 논문에서 헌팅턴은 탈냉전시대의 국가갈등은 문명권 사이의 충돌 형태로 나타날 것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서구 문명에 도전하는 문명으로 이슬람 문명과 유교 문명에 주목했고, 장기적으로 이슬람 문명과 유교 문명의 연대가 서구의 안보를 위협할 것으로 예측했다. 1990년 걸프전쟁, 1990년대 중반 발칸반도의 인종분쟁, 1993년의 북핵 위기, 중국 대량살상무기 기술의 확산, 중국과의 통상마찰 등 1990년대의 국제문제를 문명 충돌로 해석한 것이다.



    한편 1990년대에 세력균형 이론가들은 탈냉전시대에 미국의 안보를 위협하는 국가로 중국을 지목했다. 미어샤이머(Mearshimer) 교수에 따르면 단기적으로 미국이 유럽과 동북아시아에 군대를 주둔할 유인(誘因)은 크지 않다. 이 지역에서 미국을 위협하는 지역 패권국가가 출현할 가능성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볼 때 동북아시아에서는 다자간 균형관계가 유지될 유럽과는 달리 지역 패권국가가 등장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미국이 결국에는 다시 돌아온다는 주장이다. 동북아 지역패권을 도모할 국가는 중국이며 이러한 관점에서 중국의 도전이 미국 안보정책의 가장 큰 숙제라는 것이다.

    ◇ 부시의 일방주의와 케리의 다자주의

    하지만 역사종말론, 문명충돌론, 세력균형이론 모두 2001년 9·11 테러 공격으로 시작된 테러전쟁을 정확하게 예측했다고는 할 수 없다. 이슬람 원리주의 신도들이 반(反)서구 테러리스트 단체의 주축이라는 측면에서 테러전쟁을 서구 문명과 이슬람 문명의 충돌로 해석할 수도 있으나, 헌팅턴이 지적한 대로 테러운동이 반서구적이라기보다는 반문명적인 성격이 강한 데다 이슬람 문명을 대표한다고 볼 수 없는 측면도 있다.

    한 가지 명확한 것은 9·11 테러공격을 계기로 탈냉전시대의 성격과 미국의 세계전략이 구체화되었다는 사실이다. 정파를 떠나 미국 외교의 최우선 과제는 반테러와 반확산이라는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진 것이다. 따라서 2004년 대선은 이미 합의된 세계전략을 달성할 추진 전략을 선택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미국인들은 ‘동맹보다는 미국 안보가 우선’이기 때문에 일방주의 기조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는 부시 대통령과 국제사회의 지원과 지지 없이는 테러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기 때문에 다자주의 외교를 추구해야 한다는 케리 후보 중 한 명을 선택해야 한다. 두 사람은 미국적 가치에 대한 중요도 인식 면에서도 큰 차이를 보인다. 부시 대통령은 미국적 가치를 적극적으로 내세우는 반면 케리 후보는 탈가치적 실용외교를 주장한다. 이러한 접근 방법의 차이는 북핵문제 해결방법의 차이로도 나타난다. 부시 진영은 미국적 도덕기준에 의해 악으로 규정한 김정일 체제와 협상하길 꺼리지만, 케리 진영은 북한과 직접 협상을 회피하지 않겠다는 자세를 보인다.

    미국 대선 이후 한미관계를 위한 제언

    미국 대선에서 누가 당선되든 6자회담의 기본틀은 크게 바뀌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2004년 미국 대선은 또한 미국 시민들이 공화당의 ‘온정적 보수주의’와 민주당의 ‘제3의 길’ 중 승자를 결정한다는 데에서 큰 의미를 찾을 수 있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공화당과 민주당의 이념경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역사적 배경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 미국 정당이 이념적으로 뚜렷하게 나뉘기 시작한 시기는 후버 대통령이 집권한 1930년대 초라고 할 수 있다. 자유방임적 시장중심 정책으로 경제 공황을 극복하려고 했던 후버의 노력이 실패하자 미국 국민들은 새로운 비전을 요구했고, 이때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이끄는 민주당이 대안으로 제시한 것이 뉴딜(New Deal) 진보주의였다. 루스벨트가 대선에서 처음 승리한 1932년부터 레이건 대통령이 승리하는 1980년까지 거의 50년 동안 뉴딜 진보주의는 미국사회 전반에서 정부 역할을 확대시키면서 미국 정치의 지배이념으로 자리잡았다.

    1980년에 작은 정부, 경제자유, 강력한 국방력, 보수적 사회관을 내세워 역전에 성공한 공화당은 그후 두 번 연속 대선에서 승리하였다. 레이건의 신자유주의가 미국정치의 새로운 지배이념으로 정착한 시기가 이때부터 다. 민주당은 레이건의 신자유주의 노선에 대해 초기에는 전통적인 뉴딜 진보주의 노선으로 대응했다. 그러나 1984년 민주당 먼데일 후보가 레이건에게 참패하자 민주당 내부의 중도세력이 전통적 뉴딜 노선에 반발했다. 민주당 중도세력은 레이건의 신자유주의 이념에 대응하려면 민주당도 신자유주의를 일부 수용해서 공화당에 빼앗긴 중도적인 민주당 유권자를 찾아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재정안정, 자유무역, 규제완화 등 경제성장에 도움이 되는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을 일부 수용하되 사회정의 구현과 시장 실패의 보완을 위해서 정부가 시장에 적극 개입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민주당 중도파의 전략은 정치학에서 말하는, 이른바 ‘중도 투표자로의 이동(move toward the center)’ 전략이다. 정당이 선거에서 승리하려면 부동층이 존재하는 이념 스펙트럼의 중도 방향으로 자신의 노선을 옮겨가야 한다는 것이다. 1984년부터 민주당 내부에서 세력을 키워오던 중도파는 1992년 경제침체기에 클린턴을 대선 후보로 내세워 12년 만에 정권을 잡는 데 성공한다. 민주당은 그후 1994년 중간선거에서 고배를 마셨지만 빠르게 세력을 회복해 1996년 대선에서도 승리, 민주당은 루스벨트 이후 처음으로 재집권에 성공했다.

    한편 1992년 이후 반격의 기회를 노리던 공화당에 기회는 의외로 빨리 찾아왔다. 공화당은 1994년 ‘국민과의 계약(contract with America)’이라는 신자유주의적 보수 노선으로 상원에서 우위를 확대하고, 1952년 이후 처음으로 하원에서도 다수를 획득했다. 당시 공화당의 하원 장악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기 때문에 전문가들은 민주당의 1992년 대선 승리에도 불구하고 미국 정치가 공화당 중심으로 재편됐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공화당 보수파는 1994년의 승리에 고무되어 국민 정서와 동떨어진 강경노선을 채택함으로써 대다수 국민의 지지를 잃었다. 특히 사회 분야에서 낙태 금지, 복지예산 삭감 등의 개혁정책을 감행, 진보세력의 기반인 소수민족과 노동계, 그리고 저소득층에 부정적인 이미지를 심었다. 이처럼 클린턴의 중도노선에 대응하는 공화당 보수파의 이념은 급진적이었고, 그 결과 민주당의 방만한 재정 지출, 정부 규제, 관대한 범죄정책에 반발하여 레이건 연합에 합류했던 보수적 민주당원들이 다시 민주당으로 돌아와 1996년 대선에서 민주당에게 승리를 안겨주었다.

    2000년 대선에서 고어는 민주당 중도파의 ‘제3의 길’을 계승했다. 이에 대응하여 공화당도 ‘온정적 보수주의’라는 중도노선을 표방했다. 경제 분야에서 민주당이 이미 기존 공화당 노선을 대폭 수용했기 때문에 부시는 두 당의 견해차이가 상대적으로 컸던 사회와 복지 분야에서 민주당에 가까운 노선을 선택해야 했다. 여성과 소수인종의 공화당 지지도를 떨어뜨렸던 낙태금지, 차별수정계획(affirmative action)에 대한 반대를 완화하여 온건한 입장을 취했다. 또한 부시는 사회보장, 교육, 빈곤문제에서도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을 주장, 공화당도 이러한 문제 해결에 관심이 있음을 보여주려고 했다.

    2004년 대선은 2000년 대선에서 처음으로 나타난 ‘온정적 보수주의’와 ‘제3의 길’의 재대결이라고 할 수 있다. 민주당이 2000년 대선에 패배했지만 진보주의의 승부수인 ‘제3의 길’이 2004년 대선에서도 실패하리라고는 단정할 수 없다. 우선 민주당은 2000년 선거 당시 선거인단 선거에서는 졌지만 유권자의 표는 더 많이 얻었다. 케리 또한 ‘제3의 길’을 선택했다고 보아야 한다. 전통적 진보지역인 매사추세츠주 출신의 진보주의자임에도 이번 선거에서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을 지향하고 외교안보 분야에서도 미국의 강력한 리더십과 군사력을 지지하며 무엇보다도 사회 분야에서 기독교 유권자를 겨냥하여 보수적 가치를 강조하고 있다.

    한편 중도좌파에 대한 공화당의 전략은 2000년과 마찬가지로 ‘온정적 보수주의’라고 할 수 있다. 부시 대통령은 ‘작은정부, 강한 군사력, 국익 우선주의’에 근거한 경제와 안보에서의 보수주의 노선을 유지하고, 사회와 복지 분야에서는 중도노선을 택하고 있다. 낙태, 종교, 인종 문제에서 중도적 입장을 수용하여 보수가 가지고 있는 기존의 통제적이고 권위적인 이미지에서 탈피하여 교육개혁, 환경보호, 교회와 사회단체의 복지사업 지원 등을 통해 삶의 질과 자아성취를 중요시하는 여성과 20~30대 유권자의 지지를 확보한다는 전략이다.

    ◇ ‘온정적 보수주의’와 ‘제3의 길’

    하지만 미국의 중도성향 유권자가 공화당의 공식적인 ‘온정적 보수주의’ 노선을 지지할지는 의문이다. 2001년 집권 후 공화당의 신보수주의 그룹이 행정부를 장악했기 때문에 부시 대통령의 중도 이미지는 상당 부분 훼손된 상태다. 만일 공화당이 2004년 선거에서 패배할 경우, 신보수주의가 급속히 퇴조할 뿐만 아니라 공화당도 상당 기간 대선에서 승리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부시 대통령과 케리 후보의 한판 승부는 케리 후보가 민주당 예비선거에서 승리한 지난 2월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대선 시즌이 노동절(9월 첫째 월요일) 이후에나 시작되는 관례가 깨진 것이다. 선거 초기부터 이라크전쟁이 가장 큰 쟁점이었다. 이라크 전세가 나빠짐에 따라 부시의 인기도는 하락했고, 7월 민주당 전당대회 직후 판세는 케리가 우세한 상황으로 전환되었다.

    그러나 8월 들어 선거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케리 후보의 월남전 경력에 대한 의혹이 제기되고 케리가 부시의 이라크정책을 집중적으로 공격한 것이 오히려 케리에게 불리하게 작용한 것이다. 안보 분야는 공화당이 우세한 분야이기 때문에 선거운동이 안보 이슈 중심으로 전개되면 민주당이 불리하다. 공화당이 뉴욕 전당대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한 데 따른 부시 지지도의 상승도 악재로 작용했다.

    9월 중반 실시된 각종 여론조사에선 부시 후보가 케리 후보를 4~9%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부시의 승리를 낙관하기는 아직 이르다. 많은 변수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특히 16개 경합지역(swing states)에서 케리 후보의 우세가 유지되고 있는 상태라 부시의 승리를 장담하기는 어렵다.

    미국 선거는 선거인단이 대통령을 선출하는 간접선거이기 때문에 유권자 득표수보다 선거인 득표수가 중요하다. 메인과 네브래스카의 2개 주를 제외한 48개 주는 선거인 표를 자신의 주에서 가장 많이 득표한 후보에게 전부 배정하기 때문에 후보자의 입장에서는 득표율보다는 승패 여부가 결정적 변수로 작용한다. 현재 부시와 케리가 10% 이내에서 경합하고 있는 지역은 16개 주. 나머지 34개 주에서는 이미 승패가 판가름난 것으로 보고 있다. 9월 중반 현재 케리 후보는 서부의 캘리포니아, 북동부의 뉴욕, 매사추세츠 등에서 크게 앞서고 있는 반면 부시 후보는 남부와 중북부 지역에서 안정권에 들어 있다.

    ◇ ‘10월 변수’와 TV토론

    9월 중반 현재, 16개 경합지역에서 부시가 우세한 주는 4개 주에 불과하고, 나머지 12개 주에서는 아직도 케리 후보를 추격하고 있다. 이러한 추세가 계속될 경우, 케리 후보가 선거인 수에서 307대 231로 부시 후보를 앞서 승리하게 된다. 남은 선거기간 부시의 승리전략은 2000년 선거에서 이긴 플로리다, 테네시, 오하이오, 아칸소 등 8개 주에서 모두 이기고 여기에 2000년에는 패배했으나 현재 근소한 차로 케리 후보를 추격하고 있는 펜실베이니아를 추가하여 낙승하는 것이다.

    향후 선거 판도에 영향을 미칠 변수로 선거외 변수가 있다. 선거 반전을 위해 양측 후보가 내놓을 수 있는 새로운 정책과 전략, 즉 ‘10월 변수(October surprise)’다. 케리 진영에서는 부시 행정부가 10월에 이란과 북한에 대한 새로운 외교 공세를 취할 것을 우려하고 있고, 부시 진영은 케리 진영이 미국의 적대국과 비밀리에 접촉하는 것을 경계한다. 미국 대선의 결과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알 카에다나 북한이 어떠한 행동을 할 것인지도 큰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선거운동 또한 주요 변수가 된다. 자신에게 유리한 이슈의 쟁점화를 유도하는 이슈 조정 능력, 자금의 원활한 조달, 중도노선을 유지할 수 있는 내부 규율, 그리고 다가오는 TV토론 등이 선거결과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중도성향의 유권자 수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양당은 지지자의 투표율을 높이기 위해서 노력할 것이다. 어느 정당이 자신의 지지자를 투표장으로 더 많이 동원하는지에 따라 이번 선거의 승패가 결정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한국이 미국 대선에 주목하는 가장 큰 이유는 대선이 미국 외교정책에 미치는 영향 때문이다. 북핵문제 해결과 주한미군 재배치, 이라크 파병 등 한미간, 남북간 현안의 상당부분이 미국 대선 결과에 따라 좌우될 것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선거의 중요성을 지나치게 강조할 필요는 없다. 앞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반테러, 반확산 정책으로 대변되는 미국 대외정책의 기조는 대선 결과와 관계없이 유지될 것이다. 대북정책도 케리 정부의 정책이 부시 정부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케리 정부도 6자회담의 틀을 유지할 것이고 1994년 제네바 기본합의서 같은 로드맵 협정을 추진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북한문제를 다자주의로 해결해야 한다는 초당파적인 합의가 이루어져 있고, 민주당 일각에서도 제네바 기본합의가 실패한 것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기본합의로 북핵 위기를 해결하기에는 북한이 신뢰를 너무 많이 잃었고, 테러전쟁을 치르면서 미국 여론도 1992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반확산 입장이 강경해졌다. 주한미군의 재배치 기조도 유지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미국이 범세계방위태세(GPR) 작업 차원에서 추진하고 있는 주한미군의 재배치에 대해 민주당측도 큰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케리 후보가 급격한 정책변화를 시도하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이 가능한 또 하나의 근거는 대북정책이 이번 선거에서 큰 쟁점이 아니라는 것이다. 선거 후 급격히 정책을 바꿀 수 있는 명분 또는 유권자 명령(mandate)을 확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 케리 당선되면 북핵 우선순위 높아질 듯

    그렇다고 케리 후보가 승리할 경우 아무런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부시 행정부에 대한 민주당의 반감을 고려할 때 민주당 행정부가 본능적으로 부시 행정부와의 차별전략(anything but Bush)을 추진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부시 행정부의 반(反)클린턴 정책(anything but Clinton)에 대한 보복이 될 수도 있다. 부시 후보의 일방주의를 신랄하게 비판한 케리 후보가 집권 후 동맹과 협력을 강화하고 이에 따라 주한미군 재배치 및 감축에 속도조절을 시도할 가능성도 있다. 북한과 직접 대화할 것을 주장해온 케리 보좌관들의 성향을 고려할 때 케리 행정부는 부시 행정부보다 적극적으로 대북협상에 임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케리 행정부에서 북핵문제의 우선순위가 올라갈 확률도 높다. 케리 후보측은 부시 행정부가 이라크 전쟁에 몰두함으로써 북핵문제를 상대적으로 소홀하게 다루었다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에 집권 후 북핵문제를 최우선 과제로 삼을 가능성이 있다.

    선거 결과와 관계없이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선거주기로 인해 그동안 소강상태에 빠졌던 북핵협상이 신행정부가 자리를 잡는 2005년 중반부터 급물살을 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미국 대선으로 인해 2004년 중반 이후 북핵외교는 중단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대선을 앞두고 북한뿐만 아니라 미국 정부도 새로운 이니셔티브를 취할 입장이 아니다. 그렇다면 2005년에 새롭게 정비된 미국 외교안보팀이 본격적인 북핵협상을 시작했을 때를 대비해 한국정부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 한미동맹 강화 방안 연구부터 시작하라

    한국정부의 최우선 과제는 북핵문제에 대해 좀더 긴박감을 갖고 대응하는 것이다. 미국 민주당 인사들도 한미간 대북 위협인식의 차이, 한국내 젊은 세대의 반미감정, 한국정부 정책의 일관성 부족을 우려하고 있다. 한국정부가 북핵문제를 미북 양자간 문제로 간주하여 제3자적 입장을 취할 경우, 2005년 이후 발생할 수 있는 북핵위기 상황에서 한국은 완전히 종속변수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 한국정부가 국제사회에서 소외된다면 북핵문제가 협상을 통해 해결된다 해도 한국의 입장과 국익이 반영되지 않을 것이고, 만약 협상 실패로 국제사회가 대북 강경 노선을 선택할 경우 한국은 예기치 않은 전쟁위험 상황에 빠질 것이다.

    미국의 새로운 외교안보팀에 한국정부가 북핵문제 해결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피력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선거 결과에 관계없이 예상되는 미국 외교안보팀의 교체에 맞추어 노무현 정부의 외교안보팀을 교체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것이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는다는 격언도 있듯이, 새로운 대미외교는 과거로부터 자유로운 새로운 진영으로 시작하는 것이 정석이다. 제도적으로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국 중심의 현행 외교안보시스템도 재고할 필요가 있다. NSC를 본연의 목적대로 대통령 업무보좌기관으로 전환하고, 외교통상부와 국방부가 북핵외교와 주한미군 재배치 정책을 각각 주도하도록 외교안보 시스템을 재조정하는 것이다.

    북핵문제 해결에 대한 의지를 새롭게 다지는 동시에 한미관계의 중요성을 재천명하는 기회를 만드는 것이 미국 대선을 앞둔 한국정부의 첫 번째 과제다. 이를 위해 미국정부와 공동으로 동맹강화를 위한 연구를 시작할 것을 제안한다. 양국이 같이 고민해야 할 가장 중요한 문제가 북한정권과 위협의 성격 파악이다. 인류 보편적이고 과학적인 기준으로 북한정권의 성격과 군사적 위협을 평가하는 공동작업을 통해 한미간의 인식차이(perception gap)를 하루빨리 줄여야 한다.

    두 번째는 한미동맹에 대한 새로운 논리와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다. 한국과 미국이 한미동맹에서 무엇을 얻을 수 있을지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을 하는 것이다. 이러한 본질적 토론은 정치적인 환경에서 이루어져서는 안 되고 장기적 안목을 가진 전문가들 중심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노무현 정부는 한미동맹이 주는 국가적 이익에 대한 구체적 설명 없이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선언적으로만 강조하기 때문에 한미동맹에 대한 의지가 없는 것으로 비치고 있다. 한편으로는 한미동맹 유지를 주장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자주국방, 동등한 한미관계를 주장하는 이중적 자세는 한국정부의 의도에 대한 불확실성을 높일 뿐이다.

    ◇ 특정 후보 당선 기대심리는 금물

    세 번째 숙제는 북한체제 붕괴에 대비한 계획을 세우는 일이다. 한국과 미국이 진정한 의미의 동맹국가라면 북한정권이 사라진 후의 한반도 미래에 대해 어느 정도 합의를 이루어야 한다. 북한체제 변화 이후의 인도적 지원, 경제개발 계획, 통치체제, 나아가 남북한 통일방안에 대해 서로 입장을 정리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대선 이후의 미국 외교안보정책 변화에 대한 준비는 철저히 해야 하지만, 대선과정에서는 한국정부가 중립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이다. 대통령뿐만 아니라 고위 정부관계자와 여당 국회의원들 모두 특정 후보를 지지하는 발언은 삼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리고 선거기간 중 양측 후보의 참모진들과 교류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심정적으로 지지하는 후보의 승리를 기대하면서 그 반대 후보진영의 당선 가능성에 대한 준비를 소홀히 하는 잘못을 범해서는 안 된다. 2001년 초기의 서먹서먹한 한미관계를 반복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2001년 초기 부시 대통령이 당선된 후 김대중 정부는 부시 행정부와 협력관계를 구축하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그 원인 중의 하나는 2000년 미국 대선기간 중 김대중 정부가 부시 진영에 대한 연구를 충분히 하지 않은 데에 있다고 본다. 또 미국 대통령으로 누가 당선되더라도 설득할 수 있다는 지나친 자부심도 당시의 준비 부족에 일조한 것으로 보인다.



    2004년 미국 대선은 단순한 정치행사가 아니다. 미국이 주도하는 새로운 국제질서의 방향이 정해지고, 또한 ‘온정적 보수주의’와 ‘제3의 길’로 나누어진 정당이념 경쟁의 새로운 승자를 탄생시키는 중대 선거(critical election)이다. 따라서 한국 정치권에서는 2004년 미국 대선을 좁은 시각으로 관망하기보다 세계사적 시각에서 이해하고 준비하는 작업을 진행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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