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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 시론

노무현 정부 ‘마지막 1년’에 바란다

‘승부수’로 뒤집으려 말고 ‘자연’으로 돌아가라

  • 박효종 서울대 교수·정치학 parkp@snu.ac.kr

노무현 정부 ‘마지막 1년’에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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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정부 ‘마지막 1년’에 바란다

북핵사태는 햇볕정책을 펴온 참여정부를 곤경에 빠뜨렸다. 2006년 11월3일 보수단체 회원들이 서울 종묘공원에 모여 ‘북핵 폐기촉구와 간첩단 수사 확대 국민대회’를 연 후 광화문까지 거리행진을 했다.

굴복이 미덕인 줄 알아야

실패와 변명의 악순환. 그 근원은 무엇인가. ‘아마추어리즘’이 그 핵심일 것이다. 국정 수임에 대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는데, 덜컥 국정을 맡은 것이다. 메뚜기는 겨울을 모른다. 서리도 얼음도 모른다. 가을 한철 뛰놀다가 죽기 때문이다. 이처럼 노 정권과 386 참모들은 권력을 잡기 전 비판과 저항으로만 일관했기 때문에 권력을 잡은 후 국정 어젠다를 어떻게 건설적으로 만들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저 로드맵만 짜면 결실은 저절로 이루어지는 줄 알았다.

그러다보니 개혁을 한다며 기존의 것들을 과감하게 파괴했는데, 결과는 ‘창조적 파괴’가 아니라 ‘파괴적 파괴’였다. 오믈렛을 만든다며 달걀을 수없이 깼는데, 오믈렛은커녕 ‘프라이’조차 만들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국민은 묻는다. “나무는 많이 벴는데, 산림만 황폐해졌을 뿐, 건설하겠다던 집은 어디 있는가” 하고…. 결국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다나오의 딸들’처럼, 노 정권은 ‘깨진 항아리에 물을 붓는’ 벌을 받고 있다. 아무리 힘들여 물을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항아리, 그 비밀은 어디에 있는가.

노 대통령은 이제까지 ‘이기는 법’만 배웠을 뿐 ‘지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대선후보가 될 때도, 탄핵 때도 그랬다. 역전에 역전을 거듭하며 ‘승리의 귀재’가 됐다. 그래서 그런지 노 대통령은 ‘승리의 신화’를 만들고 ‘성공학’을 썼을망정 ‘패배의 미학’을 배울 기회는 갖지 못했다. ‘실패학’을 모르니 지고 나서도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다만 오뚝이처럼 일곱 번 넘어진 다음에 여덟 번째에는 반드시 일어나야 한다는 ‘칠전팔기(七顚八起)의 철학’에만 능했을 뿐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라는 ‘역설의 철학’은 체득하지 못했다. 그토록 많은 재보궐선거에서 졌는데도 “여당은 태생적으로 불리하게 마련”이라며 진 것을 인정하지 않았고, 5·31 지방선거의 참패에 대해서도 “선거에 한두 번 진다고 나라가 망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을 뿐이다.



노 대통령은 ‘당정(黨政)분리’라면서도 열린우리당을 이기려 했고 한나라당은 수구정당이라며 이기려 했다. 또 비판언론은 기득권세력이라며 이기려 했고 국민은 독재시대에 살고 있는 것처럼 산다며 이기려 했다. 또 강남부자들은 부도덕하다며 이기려 했고 시장은 실패하는 법이라며 이기려 했다.

유도를 배우는 사람은 낙법(落法), 즉 떨어지는 법부터 배운다. 낙법을 배우지 못한 사람은 아예 죽거나 중상을 입을 수밖에 없다. 노 대통령은 지는 법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지면 섭섭해하고 비판받으면 열패감을 느꼈고 비난을 받으면 설욕을 다짐했다. ‘지는 것’의 미학, ‘씹히는 것’의 멋, ‘백기를 드는 것’의 묘미를 몰랐던 것이다.

인사 문제에서 지라고 한 국민에 대해 “대통령에게 남은 것은 인사권밖에 없다”고 버틴 것이 어디 한두 번인가. 여론은 읍참마속(泣斬馬謖)처럼 오른팔이든 왼팔이든 잘라내라고 요구하는데, 오른팔은 왼팔로, 왼팔은 오른팔로 바꾸며 ‘돌려막기’를 거듭했을 뿐이다. 외톨이가 되어 슬픔을 가눌 길 없게 된 노 대통령의 비극은 이기려고만 한 ‘승자의 비극’이다.

백조처럼 마지막에 아름다운 춤을

이 비극과 서러움을 끝장내려면 만시지탄의 감은 있지만, 여당에도 지고 야당에도 지며 언론이나 국민에게도 굴복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또 시장이나 강남사람들에게도 지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래야 길이 열릴 것이다. 졌다고 깨끗이 승복하는 것은 결코 운동선수에게만 미덕이 아니다. 대통령에게도 굴복은 미덕이 될 수 있다.

임기말이 다가올수록 노 대통령은 ‘지는 해’의 낙조(落照)를 감상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마지막으로 하늘을 벌겋게 물들이고 싶다는 야망까지 포기할 수는 없겠지만, 민심도 놓치고 개혁 에너지도 소진한 대통령으로서 금의환향한 한(漢)나라의 유방(劉邦)처럼 ‘대풍가(大風歌)’를 부를 수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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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효종 서울대 교수·정치학 parkp@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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