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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UFO 목격자들

현역 공군중령에서 김병현 CF촬영팀까지

  • 맹성렬 영국 케임브리지대 공학박사·한국우주과학회 부회장

한국의 UFO 목격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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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잘 알다시피 1979년은 남한이 정치나 치안에 있어서 매우 불안정한 시기였다. 묘하게도 UFO가 자주 등장하는 때는 정치·군사적으로 긴장돼 있던 시기와 비슷하다는 특징이 있다.

UFO현상이 군사적으로 민감한 지역에 출몰한다는 사실은 6·25전쟁 기간인 1950년부터 1953년 사이에 한반도 전역에서 100여 명의 미 공군 조종사, 육군, 지상 레이더 요원, 해군들에 의해 50여 차례에 걸쳐 UFO가 목격돼 보고되었다는 사실에서도 알 수 있다.

리처드 하인스라는 미국의 UFO연구가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6·25전쟁 중에 주로 원반형·구형·타원형의 UFO가 목격되었고, 약 20%의 사례에서 당시의 항공기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탁월한 비행 성능이 관측되었다고 한다.

한국 상공에서의 UFO 출현은 특히 1952년 5월∼8월에 집중되었다. 그 중 대표적인 사례는 5월26일 북한 상공에서 미 공군기가 UFO에 추적당한 사례일 것이다.

그날 오전 3시 20분경 북한 상공을 비행중이던 F-94 요격기 승무원들은 지상 관제탑으로부터 비행기 뒤쪽에 괴비행체가 따라가고 있다는 교신을 받았다. 이때 요격기의 레이더상에도 후미 7000야드 영역에서 그 물체가 포착됐다. 그 물체와의 거리가 좁혀지면서 승무원들은 백색의 발광체가 그들에게 직선 방향으로 다가오는 것을 목격했다. 이 물체는 어느 시점에서 시속 3000마일이나 되는 고속으로 상승하여 F-94기로부터 멀어졌다. 레이더 상에 그 물체가 포착되었던 시간은 약 15초였다고 한다.



그 밖에도 5월 31일에는 철원 남쪽, 6월6일은 김포, 6월 20일·22일·25일에는 한국과 일본 사이의 해협에서 UFO가 목격됐다. 8월 9일에는 38선 부근에서 해병대 비행단 소속의 한 조종사가 화염을 내뿜는 미확인 비행물체를 목격했고, 8월 23일에는 미 공군 소속 승무원 6명이 북한 상공에서 약 3분간 UFO를 목격했다.

같은해 비슷한 시기에 6·25전쟁의 한쪽 당사자인 미국의 수도 워싱턴에서도 유사한 UFO 소동이 벌어졌다. 1952년 한 해 동안 미국 전역에서 1500여 건의 UFO 목격 보고가 있었는데, 그 중 80%가 6월∼8월 사이에 집중되었던 것이다.

이런 소동은 7월 19일과 26일 워싱턴 상공에 UFO 편대가 출현함으로써 정점을 이루었다. 이때 UFO들은 워싱턴 관제탑 레이더와 육안에 모두 포착되었으며, 출동한 요격기들을 따돌리는 뛰어난 기동력을 보였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요격기가 접근하자 마치 전등을 끈 것처럼 UFO가 조종사의 시야와 레이더 스크린에서 순간적으로 사라져 버렸다는 사실이다.

이 사건으로 미 공군은 7월 하순 제2차 세계대전 이래 미국에서 개최된 가장 큰 규모의 합동기자회견을 열지 않을 수 없었다. 여기서 미 공군은 공식적으로 그 현상이 미국의 국가안보에 전혀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국민들은 이런 주장에 강한 의구심을 나타냈다.

미국의 수도인 워싱턴 상공을 미확인 물체가 침입해 자유자재로 유린했다는 사실은 미 국민들에게 소련의 핵 공격에 대한 공포심과 함께 외계인들의 침략에 대한 공포심을 강하게 불어넣었다.

이와 같은 미 국민들의 UFO에 대한 우려와 관심은, 그해 하반기 동안 148개의 미국내 신문사에서 1만6000여 번에 걸쳐 UFO 기사를 다루었던 당시 매스컴의 반응에서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1995년 이후 한국에서도 UFO 출현이 잦아 사진이나 필름으로 찍어서 매스컴에 자주 보도되는 일이 발생한다. 필자는 요즈음 우리나라에 UFO 출현이 빈발하는 이유도 한반도가 국제 정치·군사적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는 사실과 결부시키고 싶다. 특히 1995년 전후엔 북한의 김일성 사망과 관련해 북한이 붕괴한다는 루머가 공공연히 떠돌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었다.

UFO, 환상인가

“거의 1년 이상 비행접시의 출현이 보고되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미국이나 다른 나라가 소유한 비밀 군사무기라고 말한다. 반면에 또 다른 사람들은 외계인들이 탄 우주선이라고 아주 심각한 어조로 주장하기도 한다.”

1950년 신프로이트 학파의 태두인 에리히 프롬이 그의 저서 ‘정신분석과 종교’에서 당시의 UFO 소동을 묘사한 대목이다. 이 책에서 프롬은 우리 인류가 외면적으로는 풍요한 물질문명 속에서 만족스러운 생활을 영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내적 실체와의 접촉을 상실함에 따라 일종의 정신분열증과 같은 증세를 겪게 되었으며, UFO 현상이 바로 그런 증상의 좋은 예라고 말하고 있다.

당시는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미국을 중심으로 세계 질서가 재편되는 시기로 인류는 물질적인 풍요가 보장된 장밋빛 청사진에 들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정신분석적인 측면에서 프롬의 해석은 매우 그럴 듯해보인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볼 때 초창기의 UFO 현상은 외형적인 안정과 평화의 시대와는 다소 거리가 있었으며, 오히려 정치적·군사적으로 불안하거나 긴장상태에 있던 시기나 장소와 관련이 있었다.

UFO의 최초 출현은 1943년부터 1944년 사이 제2차 세계대전의 전장이던 유럽 서부전선과 태평양 지역에서 보고되었다. 당시 언론에 의해 ‘푸파이터스’라고 불린 공모양의 UFO들은 시속 800km나 되는 고속에서 단속적으로 발광을 하며 마치 춤을 추듯 자유자재로 미군 폭격기들 사이를 날아다녀 비행기 조종사들을 긴장시켰다. 하지만 이런 물체들이 레이더상에는 포착되지 않았기 때문에 군사정보기관에서는 이 현상이 대중환각에 기인한 것으로 결론지었다.

이런 미확인 비행물체의 출현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서도 계속되었는데, 당시 군사적·정치적으로 가장 민감한 지역이었던 북유럽이 그 주무대였다.

1946년부터 1948년까지 스웨덴에 주로 출몰해 매스컴에서 ‘유령 로켓’이라고 불린 미확인물체는 주로 시가 형태로 꼬리에서 오렌지 또는 녹색의 불꽃을 뿜어대며 비행기와 거의 같은 속도로 움직이는 것으로 보고되었다. 영국을 비롯한 유럽의 주요 정보기관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이 개발한 V형 로켓을 소련에서 제작 실험하는 것이 아닌가 의심했다.

UFO 출현 역사에서 최초로 가장 체계적인 조사를 시도한 사람은 당시 그리스에서 정부의 지원 아래 군 전문요원으로 구성된 팀을 이끌고 자국 상공에 출몰하던 유령 로켓을 조사했던 폴 산토리니 교수다.

맨 처음 그가 유령 로켓 조사를 맡은 것은 그것이 소련제 로켓인지 아닌지를 규명하기 위해서였다. 연구 결과 그는 그 물체가 어떤 종류의 로켓도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보다 더 자세한 조사를 하려 했다. 그러나 다른 유럽 국가들과의 정보 교환 후 갑작스런 그리스 정부의 태도 변화로 인해 공식적인 조사를 중단해야 했다.

20년 후 그는 한 우주항공 관련 회의석상에서 유령 로켓은 다름 아닌 UFO이며, 전세계의 정부들이 UFO의 존재를 비밀로 하려는 이유는 각국의 정부가 무방비상태로 미확인물체에 노출되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고 밝혔다.

UFO와 국가 안보

UFO는 미확인비행물체(Unidentified Flying Object)의 약자다. 이 용어가 맨 처음 쓰인 것은 1948년경 미국 공군의 정보부서에서 작성한 한 보고서에서다. 이렇게 군사용어로 시작된 이 용어는 오늘날 ‘외계인의 우주선’을 일컫는 고유명사로 정착되었다.

이 용어가 사용되기 전 미국에서는 비행접시(Flying Saucer)나 비행원반(Flying Disc)라는 용어가 먼저 소개되었다. 1947년 6월 24일 케네스 아놀드라는 미국의 한 민간인 비행사가 9대의 미확인비행물체가 마치 ‘물 위를 튀어가는 접시’처럼 날아가더라고 매스컴에 밝힌 것이 AP통신의 기자에 의해 비행접시라고 조어(造語)되었다.

이 사건이 보도된 지 2주일 후 미국 뉴 멕시코주의 로스웰이라는 곳에 ‘비행원반’이 불시착해 미 공군이 회수했다는 기사가 지역신문에 게재되면서 UFO 외계인 신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그후 미국은 광란적인 UFO 소동에 휩싸이게 되는데, 실제로 1947년 6월∼7월 사이 일반 시민들과 항공기 조종사들이 목격한 UFO가 1000여 건이나 되었고 미국의 주요 신문에 모두 보도됐다.

그해 7월 10일자 ‘뉴타임스’에 실린 한 기사엔 ‘전쟁이 사람들의 정신을 한바탕 휘저어버리는 바람에 모든 사람들이 적대국가에서 미국에 대해 어떤 음모를 꾸미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는 주장이 소개되어 있다. 이는 에리히 프롬의 해석과 정반대인데, 당시의 UFO 목격이 군사 정보나 기밀과 관계없는 일반인들 사이에서 주로 발생한 것이었다면, 이런 정신분석적인 결론이 옳은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최근 미국의 정보 자유화법에 의해 공개된 당시 군사 정보나 기밀 보고서들에 의하면, 이 문제는 미군 정보기관에서조차 매우 심각하게 취급되었다.

로스웰 사건은 최근 50주년을 맞아 매스컴에서 다시 다루면서 미국 국회에서 논란이 되는 등 오늘날 UFO 소동의 핵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UFO의 실체적 존재가 군의 공식경로를 통해 공표되었다는 점과 곧 그 내용이 다시 번복되었다는 사실에서 이 사건은 세인의 지속적인 관심을 끌어왔으며, 추락된 UFO 주변에서 외계인의 시체가 회수되었다는 루머까지 퍼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이 사건이 정말로 외계인과 관련되어 있는지에 대해서만 관심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아마도 이 사건을 조명하는 데에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중요한 사실은, 여기에 관련된 군부대가 원자폭탄 제조 및 운반의 보안에 관련된 ‘509 원자 폭탄 그룹’이라는 점일 것이다.

당시 뉴멕시코주에는 핵무기를 비롯한 많은 비밀무기를 개발하는 연구시설이 밀집되어 있었다. 사실 미 공군이 ‘프로젝트 사인’ 또는 ‘프로젝트 블루북’이라는 이름의 UFO조사전담반을 구성한 것은 UFO의 주요 출몰지역이 군사시설에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1949년에 미 육군 제4군 정보참모가 작성해 미국 원자력위원회에 접수된 다음과 같은 보고서는 당시 UFO가 얼마나 예민한 국가 안보상의 문제로 미 군부에 인식되었는지를 잘 알 수 있게 해준다.

“뉴멕시코 보안당국은 이런 현상 때문에 매우 긴장하고 있다. 그들은 어떤 외부세력이 원자력 시설을 감시하기 위해 녹색 광구를 보내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이것을 적대국이 실험중인 방사능 무기로 보는 견해가 있으며, 혹은 미 군사당국에서 극비리에 실험중인 최신 병기가 아닐까 하는 견해도 있다. …문제지역의 군사적 중요성을 고려할 때, 과학 기술진을 하루속히 이 지역에 파견하여 진상을 규명할 것을 건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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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성렬 영국 케임브리지대 공학박사·한국우주과학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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