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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제역, 살(殺)처분이 능사인가?

  • 이한음|과학칼럼니스트 lmglhu@hanmail.net

구제역, 살(殺)처분이 능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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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제역, 살(殺)처분이 능사인가?

방역 당국 관계자가 1월7일 강원 양구군 방산면 축산농가에서 백신을 접종하고 있다.

정부는 구제역이 경기도와 강원도로 확산된 뒤에야 마지못해 백신 접종을 하겠다고 했다. 구제역이 발생한 지 약 한 달이 지난 뒤였다. 그것도 처음에는 소규모로 실시하려다가 어쩔 수 없이 확대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백신 보유분이 적은 탓도 있었겠지만 말이다.

백신접종 시기 논란은 어느 나라에서든 구제역이 발생할 때마다 제기되는 문제다. 분명한 사실은 어느 나라 정부든 구제역 백신 접종을 꺼린다는 점이다. 가장 큰 이유는 가축 및 육류의 수출에 차질이 빚어지기 때문이다.

1997년 대만에서 돼지 구제역이 대대적으로 발생했다. 대만은 거의 70년 동안 구제역 청정국 지위를 누리던 터라, 상황이 여간 심각하지 않았다. 대만은 살처분 방식을 택했다. 사육 두수의 거의 40%에 달하는 400만 마리가 넘는 돼지가 희생됐다. 그러고도 구제역 확산을 막을 수 없자 마지막 수단으로 백신 접종을 동원했다. 결국 돼지 수출 길이 막혔다.

2001년 영국도 비슷한 상황을 경험했다. 아시아에 퍼져 있던 구제역 균주가 영국을 침략했다. 영국은 살처분 방식의 종주국으로 알려져 있다. 늘 하던 대로 신속하고 과감하게 살처분에 나섰다. 그러나 구제역의 확산세는 좀처럼 멈추지 않았다. 그러자 살처분 방식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백신 접종을 병행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었다. 백신만이 건강한 가축까지 죽이는 비인간적인 행위를 막고 가치 있는 희귀한 품종을 보호하며 축산업을 빠르게 재건할 수 있다는 논리였다. 다른 질병에는 이미 백신을 쓰고 있지 않으냐고도 했다.

살처분이 잘 먹혀들지 않을수록 이런 논쟁이 더 가열된다. 영국 정부는 온갖 비난을 감수하면서, 밤잠을 설치면서, 살처분을 계속 진행했다. 수백만 마리의 양과 소를 죽인 끝에 구제역을 막을 수 있었다.



수출길이 막힘으로써 빚어지는 경제적 손실이 백신 접종을 꺼리는 주된 이유라면, 수백만 마리를 죽임으로써 입는 경제적 손실과 수출길이 막힘에 따른 경제적 손실 중 어느 것이 더 큰 피해인지에 대한 의문이 나올 수 있다. 산술적으로 따지면 청정국 지위를 회복하는 데에 백신 접종 없이 살처분하는 경우와 백신 접종을 하는 경우 사이에는 3개월의 차이가 발생한다. 그렇다면 3개월의 수출 감소액이 수백만 마리를 살처분할 때의 손실액보다 더 큰지에 대한 의문이 나올 수 있다.

그러나 청정국 지위 회복에는 조건이 하나 더 붙는다. 검사를 통해 구제역바이러스가 발견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백신을 맞은 가축과 구제역바이러스를 지닌 가축을 구분하기 어렵다는 데 있다. 양측이 동일한 항체를 지니기 때문이다. 또 다른 문제는 백신을 맞은 가축이 구제역바이러스에 감염되면 보균자 상태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백신 접종을 받은 소는 길면 3.5년까지 보균자 상태로 있을 수 있다.

그러니 각국은 백신 접종을 받은 가축 및 육류를 수입하지 않으려 한다. 따라서 현실적으로 백신을 접종하면 수출길이 더 막히고 경제적 손실이 더 커진다고 보는 것이다. 백신은 즉각 효과를 발휘하는 것도 아니다. 백신을 맞은 뒤 방어력이 생기려면 시간이 걸린다. 긴급하게 확산을 막는 조치를 취해야 하는 단계에서 백신 접종은 한계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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