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별책부록 | 이제는 우주다

우주학과 정치학의 교묘한 만남

우주발사체와 발사장

  • 이정훈 / 신동아 편집위원 hoon@donga.com

우주학과 정치학의 교묘한 만남

3/7
그때도 북한은 한국을 앞서갔다. 한국이 현무-2를 완성하기 전 북한은 현무-2보다 사거리가 긴 ‘노동’을 시작으로 ‘대포동-1호’, ‘대포동-2호’를 개발했다. 현무-2를 개발했어도 한국은 계속 북한의 탄도미사일 위협 아래 놓여 있게 된 것이다. 이 위협을 없애려면 유사시 후방 깊숙한 곳에 있는 북한의 미사일 기지 등 전략거점을 잡아야만 했다. 이를 위해서는 사거리 300km가 넘는 탄도미사일이 있어야 하는데, 한미미사일협정은 한국이 자력으로 사거리 300km 이상의 탄도미사일을 개발하지 못하게 금지한다.

한국에서는 한미미사일협정을 개정해, 한국이 사거리를 1000km나 1500km로 늘인 탄도미사일을 자력으로 개발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견이 터져 나왔다. 이러한 여론을 토대로 정부는 미국과 미사일협정 개정 논의에 들어갔다. 한국의 탄도미사일 사거리를 늘여야 한다는 주장은, 중국이 황해와 동중국해, 남중국해 등을 내수(內水)로 하는 ‘도련(島鍊)’ 정책을 추진한 후 미국에서도 지지를 얻게 되었다.

친미국가이면서도 중국에 가까이 있는 한국의 지정학적 가치는, 미국 턱 밑에 붙어 있는 공산국가 ‘쿠바’에 비교할 수 있다. 소련은 R-7 대륙간탄도미사일을 갖고 있는데, 미국은 중거리탄도미사일만 보유했던 1961년, 미국은 미사일 전력 차이를 메우려 다각도로 시도했다. 사거리가 짧아 미국에서 발사해서는 소련까지 도달하지 못하는 주피터 IRBM을 소련의 발아래인 이탈리아와 터키에 배치한 것.

소련은 그에 맞서 미국의 턱밑인 쿠바에 미국을 공격할 수 있는 ICBM을 배치하려고 했다. 소련의 대응에 깜짝 놀란 미국의 케네디 정부는 소련의 ICBM을 실은 배가 쿠바로 오면 전 함대를 동원해 공격하겠다고 선언했다(1962년). 그로 인해 세계는 ‘핵전쟁을 일으키는 제3차 세계대전으로 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공포에 휩싸였다.

미사일의 정치학



이 절체절명의 위기는 소련이 쿠바에 핵미사일 배치를 포기함으로써 해소됐다. 미국도 양보했다. 이탈리아와 터키에 배치한 IRBM을 철수한 것. 쿠바사태로 명명된 이 사건은 미국에 대한 쿠바의 지정학적 가치가 어떤지를 보여준 대표적 사례다. 한국이 ‘중국의 쿠바’인 셈이다. 한국은 반도 국가이니 ‘플로리다 반도에 자리 잡은 쿠바’라고 하겠다.

소련 붕괴 후 G-2 국가가 된 중국은 A2/AD(Anti Access/Area Denial) 전략을 펼치고 있다. 해상방어선인 도련(島鍊·섬 사슬) 안쪽으로 미국 함정이 들어오면 공격한다는 것이 골자다. 중국은 유사시 도련 안쪽으로 들어온 미국 함정을 공격하겠다며 대함탄도미사일인 ASBM(Anti-Ship Ballistic Missile)을 만들었다. 배는 작은 표적이기에 사격 명중률이 높은 순항미사일로는 맞힐 수 있어도, 속도가 빠른 탄도미사일로는 맞히기 어렵다. 그러나 적지(敵地) 상공에서 터지는 핵탄두를 탑재한 탄도미사일을 만든다면 궤멸시킬 수 있다. 이러한 목적으로 중국이 만든 것이 대함탄도미사일이다.

중국이 이렇게 나오자 미국에서는 ‘그렇다면 북한의 미사일 공격을 억제하기 위해 장거리 탄도미사일 개발을 원하는 한국의 요구를 들어주자. 한국이 개발한 사거리 1500km의 탄도미사일은 유사시 중국을 견제할 수도 있다’는 여론이 형성됐다. 소련은 쿠바에 핵미사일을 배치하려고 했지만, 한국은 스스로 탄도미사일을 개발하려 하니 미국이 손해 볼 것이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다시 초점을 한국의 액체로켓 개발로 옮겨보자. MTCR 가입 이듬해인 2002년 11월 28일 항우연은 1단 액체로켓인 KSR-3를 발사해 고도 42.7km, 지상 기준 비행거리 79.5km를 기록하는 데 성공했다. KSR-3의 추력은 13t이었다. MTCR 가입으로 한국은, 우주발사체용 로켓 기술을 MTCR 회원국으로부터 이전받을 수 있게 되었다.

100kg의 위성(과학기술위성-2호)을 실어 발사하려고 하는 나로호의 무게가 140t이다. 따라서 나로호 발사 추력은150t 이상이어야 한다. 100kg짜리 위성을 올리는 데 150t 추력이 필요하다면 KSR-3는 의미 있는 발사체라 할 수 없다. KSR-3는 대기권 안인 42.7km까지 올라갔으니 만족할 만한 액체로켓이 될 수 없었다. 그러한 한국은 KSLV-1을 개발하기로 했다. 13t에서 150t 이상으로 추력을 높이는 퀀텀 점프를 해보기로 한 것.

러시아 빼고는 협력국가 없어

한국은 미국의 지원을 기대했다. 그러나 미국은 ‘마음씨 좋은’ 엉클 샘이 아니었다. MTCR 회원국 가운데 액체로켓 기술을 가진 나라는 7개 국가 정도였다. 기술을 이전받을 때는 가격도 중요한 검토요인이 되는데, 이 조건까지 만족시키는 나라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러시아만 조건을 충족시켰다. 당시 러시아는 석유 수출이 활기를 띠면서 빠르게 성장했다. 그러나 우주 분야만큼은 여전히 침체 상태라 갖고 있는 기술을 팔려는 의지가 있었다.

우주 개발 의지가 강한 노무현 전 대통령은 적극적으로 러시아를 노크했다. 그리하여 2004년 9월 21일 러시아의 크렘린궁에서 한국의 오명 부총리 겸 과학기술부 장관은 페르미노프 러시아연방우주청장과 노무현 대통령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켜보는 가운데 한러우주기술협력협정을 체결했다. 이 협정은 국회의 비준 동의를 요구하지 않는 것이었기 때문에 항우연은 러시아 최대의 우주 개발 업체인 흐루니체프 사와 계약을 맺어 우주기술을 도입할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제동이 걸렸다. 러시아 의회가 기술 보호를 이유로 브레이크를 걸고 나온 것. 이 시기 미국은 러시아에 ‘왜 한국에 로켓기술을 전해주려고 하느냐’며 시비를 걸었는데 이것도 브레이크를 거는 데 일조했다. 그로 인해 처음부터 다시 관계자를 설득하는 노력을 펼쳐 ‘한국은 러시아가 제공한 우주기술을 제3국에 유출하지 않고 철저히 보호한다’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한러우주기술보호협정’을 국회 비준을 받는 조건으로 만들게 되었다. 2006년 10월 한국의 과기부총리와 러시아 연방우주청장은 서울에서 이 협정에 서명했다. 한국 국회는 바로 비준 동의를 했고 러시아 의회는 조금 늦게 비준 동의해 2007년 7월 이 협정이 발효되었다.

2004년 협정보다는 까다로운 조건이 많이 추가됐지만 한국은 우주 개발에 도전할 기회를 잡은 것이다. 항우연은 즉각 흐루니체프와 계약을 맺고 나로호 개발에 들어갔다. 흐루니체프 사는 액체로켓인 나로호 1단을 개발하고, 항우연은 고체로켓인 2단을 개발하기로 했다.

3/7
이정훈 / 신동아 편집위원 hoon@donga.com

관련기사

목록 닫기

우주학과 정치학의 교묘한 만남

댓글 창 닫기

2020/03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