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6월호

보수, 복지‧정의 옹호 스웨덴 新보수에게 배워라!

스웨덴 정치 전문가 최연혁의 고언

  • 최연혁 스웨덴 린네대 정치학과 교수

    yonhyok.choe@lnu.se

    입력2020-05-27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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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만년 야당’ 몰리자 복지·일자리·안보 담론 재구성

    • 39세 당수 라인펠트, 연합 정당에 ‘통 큰 양보’ 정치력

    • 反부패 및 젊은이와 약자 위한 정당으로 자리매김

    • 외교장관엔 경륜, 재무장관엔 패기 초점 파격 용인술

    • 국가의 명예 위해 ‘난민에 마음 열자’며 국민 설득

    • 청렴, 봉사, 기득권 포기 자세가 韓 보수의 가치여야

    2016년 이후 치러진 네 차례 전국 단위 선거에서 보수는 모두 패했다. 이와 관련해 2000년대 스웨덴 보수정당사(史)는 한국 보수정당에 시사점을 준다. 스웨덴 린네대에 재직 중인 최연혁 교수가 스웨덴 신보수주의 혁신을 소개하며 한국 보수정당에 고언을 던졌다. <편집자 주>

    제21대 총선 이틀 뒤인 4월 17일 심재철 당시 미래통합당 당 대표 권한대행(왼쪽에서 네 번째) 등이 국회에서 중앙선거대책위원회 해단식을 열고 총선 참패에 대해 사과 인사를 하고 있다. [김재명 동아일보 기자]

    제21대 총선 이틀 뒤인 4월 17일 심재철 당시 미래통합당 당 대표 권한대행(왼쪽에서 네 번째) 등이 국회에서 중앙선거대책위원회 해단식을 열고 총선 참패에 대해 사과 인사를 하고 있다. [김재명 동아일보 기자]

    스웨덴 정당사에서 2006년은 중요한 의미로 남아 있다. 같은 해 9월 치러진 총선에서 보수당 등 우파연합이 집권 사민당 중심의 좌파연합에 신승하며 12년 만에 정권을 교체했다. 의석수로는 178대 171, 불과 7석(1.9%) 차이였다. 특히 보수당은 8개 정당이 나선 총선에서 26.13%를 얻어 1928년 선거 이후 가장 높은 지지율을 획득했다. 2002년 선거에 비하면 지지율이 11%포인트나 대폭 상승했다. 

    애초 보수당은 1904년 설립돼 100년 넘는 역사와 전통을 가진 정당이었다. 하지만 1991년 다른 3개 우파 계열 정당과 손잡고 총선에서 승리해 1994년까지 연립정권을 운영한 뒤로는 내리 세 차례나 선거에서 패했다. 보수당 처지에서는 절실하게 변화가 필요한 시기였다. 이에 실패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 당 차원에서 분석을 시작했다. 보수당의 전략팀은 몇 가지 진단을 내놓았다. 2006년 총선 승리는 이와 같은 진단으로부터 비롯했다. 보수당의 진단 결과는 다음과 같았다.

    복지는 축소보다 조정, 노동 의욕은 제고

    첫째, 스웨덴의 사회와 경제가 이미 복지 제도의 틀 속에서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복지 폐지나 축소 메시지로는 선거에서 승리할 수 없다. 스웨덴의 복지는 1932년부터 구축되기 시작해 가족생활과 여성의 노동 활동, 연금, 실업기금, 사회부조, 육아 및 학교정책 등 사회 깊숙이 뿌리내리고 있었다. 복지 제도를 축소하려면 희생할 것이 너무 많았다. 

    둘째, 스웨덴의 높은 세금은 개인의 노동 의욕을 꺾기 때문에 일하는 사람들에게는 소득공제 등을 제시해 사기를 진작시킬 필요가 있었다. 저소득층부터 중위권 소득자에게 가장 큰 혜택을 부여하고, 고소득자에게는 약간의 혜택만 줄 경우 형평성 문제도 해결할 수 있었다. 



    셋째, 일자리는 최고의 복지다.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기업에 최대 인센티브를 주고, 젊은이들이 경제·산업 영역에서 활발히 도전할 수 있도록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전통 제조 산업의 경쟁력 확보를 위해 상속세, 양도세를 폐지하고 법인세 인하를 통해 젊은이들이 적극적으로 창업을 시도하도록 한다. 단, 실패했을 경우 국가가 교육 등을 통해 재도전할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한다. 신진 기업이 계속 나올 수 있도록 중소기업 정책을 펴야 한다. 복지는 기업 활동이 활발할 때 ‘사회적 안전장치 구실을 할 수 있는 제도’라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기업은 복지 유지에 필수 존재라는 점을 강조한다. 

    넷째, 러시아는 언젠가 다시 안보 위협이 될 수 있는 국가이므로 국방에 지속적으로 투자하고 국방산업 수출에 주력해야 한다. 항공우주산업, 국방산업, 통신, 미사일, 전술 및 전략미사일 등 국가의 방어체계를 자주국방(自主國防)으로 해결하되, 지역 안보위협 등은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와 협조해 해결해 나간다. 전통적 중립정책은 폐기하고 나토 중심으로 미국과 긴밀한 관계를 구축한다. 국민에게 안보 정책 강화와 국방산업의 세계적 경쟁력 확보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국방 기술 발전을 위한 과감한 투자, 안보와 외교 등에서는 전략적 동맹을 통해 이웃 강대국의 간섭과 압력을 견제할 수 있어야 한다. 

    다섯째, 젊은 보수를 지향한다. 이를 위해 지도부를 40대로 교체하고 전략적으로 젊은 유권자에게 다가가야 한다. 이를 통해 보수당이 중산층 이상의 고소득자와 기업을 위한 정당에서 젊은 세대가 모험을 통해 자신들의 꿈을 실현할 수 있도록 돕는 정당으로 거듭나야 한다.

    각종 정책 두루 섭렵한 39세 당수의 등장

    프레드릭 라인펠트 전 스웨덴 총리. [동아DB]

    프레드릭 라인펠트 전 스웨덴 총리. [동아DB]

    이 중 가장 먼저 변화를 시도한 것이 지도부 교체다. 보수당은 세 차례 연속으로 정권 창출에 실패한 까닭을 ‘지도부의 실패’로 정의했다. 이에 약관 39세의 프레드릭 라인펠트 (Fredrik Reinfeldt)를 당수로 선출했다. 11세 때 초등학교 학생회장을 거쳐, 18세 때 보수당 청년회에 가입해 정치 수업을 받기 시작한 그는 보수당 청년위원장을 지내고 유럽자유연맹청년위원장을 수행하면서 유럽 청년정치인들과 인맥을 쌓았다. 

    라인펠트는 스톡홀름 외곽 도시인 테뷔(Täby)시 기초의원으로 정치를 시작했다. 나이는 어렸지만 이미 정치에서는 베테랑이었다. 의원 시절 헌법소위상임위원장과 재정위원장직을 거치며 정책을 두루 섭렵했다. 청년, 지방, 중앙, 유럽 등 폭넓은 영역에서 정치 활동를 전개해 국내외에서 인지도가 높았다. 라인펠트는 국회 연설에서 복지재정의 누수와 ‘복지병’ 이슈를 직설 화법으로 지적하면서 사민당의 최저생계비 문제를 공격했다. 청중을 사로잡는 연설과 교감 능력은 당수에 취임하면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라인펠트로 대표되는 신보수의 성공에는 몇 가지 요소가 내재한다. 먼저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대항 세력을 규합하고, 큰 것을 양보하는 전략을 구사했다. 보수당은 자체 힘만으로 막강한 사민당 세력에 대항할 수 없다는 점을 간파하고 있었다. 이에 여타 3개 우파 정당과 제휴를 통한 정권 창출 전략이 필요했다. 이때 만들어낸 개념이 ‘스웨덴을 위한 새로운 얼라이언스(alliance) 전략’이다. 보수당은 각 우파 정당들의 핵심 정책 영역을 보장해 주면서 자당 중심의 연립 정권을 창출하고자 했다. 

    각기 다른 정당 간 연합을 극대화하기 위해 보수당은 가장 중요한 핵심 이익까지 양보하는 전략을 택했다. 이를 위해 연금·의료·보건 등의 정책 영역을 담당하는 복지부와 사회부 등은 기독민주당에, 환경·기술·IT(정보기술), 인프라 건설 등의 정책 영역은 중앙당에, 교육·학교·청소년 등의 정책 영역은 자유당에 주도권을 넘겼다. 대신 보수당은 외교·안보·재정·법무·국방 등의 정책 영역을 택했다. 각 정당들이 잘할 수 있는 분야에 집중하는 식으로 협상 타결을 이끌어낸 셈이다. 

    복지와 사회 정책은 스웨덴 정부 예산의 60%를 차지하는 거대한 분야였다. 교육은 그다음으로 많은 예산이 배정되는 부처였다. 환경 및 기술, 인프라 건설은 세 번째로 많은 예산이 집행되는 분야였다. 어느 국가건 예산을 가장 많이 다루는 정책 부서가 힘이 있는 법이다. 보수당은 이를 모두 상대적으로 세(勢)가 약한 정당에 내주고 자신들은 법질서와 외교·안보 등 전통적 국가 기능의 영역만 챙기는 쪽으로 양보했다. 진정한 협상이 무엇인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4개 정당 플랫폼은 국민의 집중적 관심을 받았다. 총선 2년 전 이미 보수당 중심의 선거 전략이 완성된 것이다.

    젊은이와 약자 위한 정당으로

    실질적 타협을 이끌어낼 수 있도록 협상 기구를 제도화한 점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정권 창출을 위한 4개 정당 당 대표회의, 당 실무자회의, 선거전략 회의 등 실질적 협상 기구를 설치해 각 정당 간 양보와 타협 등을 상시적으로 진행해 나갔다. 만약 보수당이 핵심 정책을 놓치지 않으려고 단기 이익만을 추구하거나, 지도부 중심으로 위계적 결정 방식을 선택했다면 이와 같은 정치적 모험은 실패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보수당은 양보와 수평적 토론 방식으로 의사결정을 하며 궁극에는 선거에서 승리했다. 집권 후에도 우파연합 정부의 정책 결정은 매주 목요일에 진행된 전 각료 내각회의에서 난상 토론과 협의를 거쳐 이뤄졌다. 즉 선거에서 국정 운영에 이르기까지 집단 책임제와 책임 각료제를 결합한 모델을 채택해 성공을 거둔 셈이다. 

    신보수당, 혹은 신보수주의가 성공할 수 있었던 또 다른 핵심 요소로는 쉽고 명료한 선거 전략을 꼽을 수 있다. 라인펠트가 이끈 신보수당은 퇴색한 보수, 늙은 보수로 대표되는 낡은 정치를 청산하기 위해 새로운 가치를 내세웠다. 선거 메시지는 간결했다. “첫째, 일(labor)을 할 가치가 있습니다.” “둘째, 복지 투자·학교·보건·돌봄의 핵심 과제를 책임지겠습니다.” “셋째, 범죄와의 전쟁을 완수하겠습니다.” 

    세 가지 메시지는 보수당의 색깔을 바꿔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해놓았다. 이전까지 보수당의 공약은 주로 ‘법인세 인하를 통해 기업하기 좋은 시장경제를 만들겠다’ 등의 구호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신보수당은 젊은 유권자를 위한 일자리 창출, 사회적 약자를 위한 복지의 집중 투자, 각종 사회 범죄와 부패 등 스웨덴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점을 해결하겠다는 청사진을 내놨다. 

    이와 같은 선거 전략은 치밀하게 준비된 것이었다. 라인펠트는 당 총재직에 오르면서 당시 34세인 페르 쉴링만(Per Schillingman)을 당원 관리, 당 재정 및 선거 전략 등을 책임지는 당 비서에 임명해 신보수당의 전략을 담당토록 했다. 쉴링만과는 청년위원장 시절부터 호흡을 맞춰온 경험이 있어 그의 탁월한 능력을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 이후 당의 모든 전략이 쉴링만에게서 나왔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그의 능력은 신보수당의 가치를 세우는 데 핵심 요소로 작용했다. 

    쉴링만은 독일계 이민자로 중학교 시절부터 보수당 청년 정치 활동을 통해 당의 이념과 가치를 습득했다. 그 뒤 언론대응 팀장을 수행하면서 당 선거전략가로 성장했다. 이해하기 쉬운 메시지로 핵심 지지 세력을 규합하면서 반대 세력까지 끌어안을 수 있는 선거 전략을 수립하는 데 쉴링만의 역할은 절대적이었다. 전략 분야에서 젊은 인재를 등용해 성공한 예시라
    할 수 있다.

    전직 총리 외교장관, 41세 재무장관 파격

    경륜과 패기를 조화한 라인펠트의 용인술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신보수당의 기치를 앞세우면서도 외교, 국방, 법치 등 대내외 현안은 경험과 경륜을 갖춘 정치인이 담당토록 했다. 대신 경제와 재정은 젊은 정치인의 영역으로 분리했다. 1991~1994년 총리를 지낸 칼 빌트(Carl Bildt)를 외교부장관에 임명하고, 41세이던 안데스 보리(Anders Borg)를 재무부 장관으로 등용한 데서 그의 인사 지략을 엿볼 수 있다. 보수당이 새로운 가치를 앞세워 유권자에게 다가가면서도 당내 화합과 입지를 강화해 내부 결속을 다진 셈이다. 라인펠트는 내부의 결속된 힘이 선거에 효율적으로 임할 수 있는 중요한 기반임을 간파하고 있었다. 

    2006년 총리에 취임한 후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라인펠트의 국정 수행 평가는 정점을 찍고 있었다. 2010년 선거 직전 라인펠트의 인기는 상승 곡선을 그리며 지지율이 55%로 치솟아 8개 정당 당수 중 수위를 기록했다.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보여준 위기관리 능력과 경제성장 및 일자리 창출 성과 등이 인기 배경이었다. 

    특히 2010년 선거에서 보수당의 또 다른 지략적 면모를 엿볼 수 있다. 이번에도 당 비서인 쉴링만의 작품이었다. “사민당이 약속하는 복지에 알파를 드리겠습니다.” “보수당은 진정으로 노동자를 위한 정당입니다.” 뭔가 잘못 본 게 아닐까, 다시 읽게 만드는 파격적 선거 전략이었다. 보수당이 인기영합주의로 호소하는 게 아닌가 할 정도로 이루지 못할 것을 약속하거나 기만에 가까운 전략을 내세운 것처럼 보이지만,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복지를 강화하기 위한 방법은 바로 일자리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 ‘복지 플러스 알파’ 약속이었다. 질 좋은 일자리를 창출하고, 일시적으로 시장 기능이 약화돼 일자리를 잃었을 때는 국가가 재활과 교육 등을 제공해 노동자가 노동시장에 복귀할 수 있도록 돕겠다는 내용이 주요 골자였다. 

    ‘노동자를 위한 정당’ 약속 역시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지 않도록 하되, 직장을 잃었을 때 다른 직종에서 일할 수 있도록 직업교육을 강화하겠다는 내용이었다. 보수당은 50대가 넘어도 이직할 수 있도록 직업교육 지원금의 수급 연령 상한을 높이면서 중년층의 일자리 불안을 해소하고자 했다. 이를 통해 ‘일하는 사람을 위한 진정한 정당’을 자처하게 된 셈이다.

    국가 명예, 국제적 위상, 국민의 자긍심

    2006년 보수당 중심의 우파연합이 집권한 뒤 스웨덴 수도 스톡홀름 중심의 금융가(왼쪽) 모습과 국회의사당(오른쪽) 모습. [동아DB]

    2006년 보수당 중심의 우파연합이 집권한 뒤 스웨덴 수도 스톡홀름 중심의 금융가(왼쪽) 모습과 국회의사당(오른쪽) 모습. [동아DB]

    신보수당의 또 다른 성공 요인 중 하나는 국민에게 진정한 보수의 가치를 역설한 점이다. 보수는 국가가 글로벌 사회에서 가진 책임과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는 점을 국민에게 메시지로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마음의 문을 여십시오.” 라인펠트는 2016년 선거가 있기 2개월 전 행한 연설에서 스웨덴의 국가적 책임과 국민의 솔선수범을 강조했다. 이는 난민 문제와 연관돼 있는 메시지였다. 

    앞서 2011년 튀니지에서 시작해 리비아, 이집트 등의 독재 체제가 무너지는 데 기여한 ‘아랍의 봄(Arab Spring)’ 이후 민주화가 더디게 진행되면서 무질서와 고실업 등 사회문제가 심화했다. 이에 정치 난민들이 유럽으로 물밀듯 몰려들어 왔다. 하지만 헝가리, 폴란드, 노르웨이, 덴마크 등의 국가는 국경을 폐쇄했다. 이에 라인펠트는 스웨덴 국민에게 닫힌 마음의 문을 열고 넓은 가슴으로 난민을 맞자는 연설을 한 것이다. 이 연설은 국수적 이기주의에 경종을 울렸다.

    결과적으로 라인펠트의 연설은 10월 선거 패배로 이어졌다. 극우주의가 약진한 탓이다. 하지만 그의 연설은 한 국가의 총리로서 국가의 책임과 성숙한 시민의 의무를 일깨운 사례로 자리매김했다. 한 국가의 보수정당은 비록 인기가 없는 정책이라도 국가의 명예, 국제적 위상, 국민의 자긍심을 키울 수 있는 가치를 지향해야 한다. 단기적 선거 실패를 감수하면서까지 장기적 승리를 택한 라인펠트의 연설은 그래서 더욱 높이 평가받고 있다. 

    스웨덴이 국제사회에서 인권국가, 모범국가, 자유와 평등을 실천하는 민주국가라는 위상을 차지할 수 있던 배경에는 이처럼 역사와 전통을 갖춘 보수정당이 존재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보수정당에 선거 승리와 정권 유지보다 더 중요한 가치는 바로 국가적 자존과 만인을 위한 인권 국가를 천명하는 일이다.

    냉전 시대 명제 갇힌 꼰대 정당은 안 돼

    최근 한국 보수정당에 횡행하는 세대교체론에 대해서도 스웨덴 사례를 통해 보다 깊이 있게 논의할 필요가 있다. 40대 기수론은 정치를 새롭게 바꾸는 대의를 고려할 때 설득력이 높다. 30대는 불확실성으로 인해 불안감을 초래할 수 있다. 50대는 이미 기성세대 정치인으로 분류되곤 한다. 40대는 새로운 변화를 모색할 때 신선함과 기대감을 한 몸에 받을 수 있다. 50대 초반의 경우 기성 정치인이라는 거부감은 그렇게 크지 않겠지만 세대교체 상징성은 떨어질 수 있다. 

    하지만 당 대표가 40대라는 이유만으로 젊은 유권자들의 지지를 기대한다면 그것은 ‘우물에서 숭늉 찾기’와 같은 우둔한 생각에 지나지 않는다. 스웨덴의 사례가 잘 보여주듯 중요한 것은 보수정당의 핵심 가치를 어떻게 가다듬느냐에 있다. 

    국가의 효율적 통치, 솔선수범하는 지도력과 청렴성, 봉사하는 자세, 경제성장과 복지 쌍두마차 간 조화를 이룰 정책집행 능력, 국민의 아픔에 공감하는 능력, 대안 제시, 자유·인권·정의라는 세계 보편 가치를 국민에게 이야기할 수 있는 용기와 설득력, 따뜻한 시장경제를 지향하고 기업가 정신을 함양할 수 있는 능력, 기득권을 버리고 타협하는 자세 등은 한국의 보수가 지향해야 할 가치이자 대한민국이 세계 사회에서 존재감 있는 국가로 발돋움하기 위한 핵심
    요소다. 

    조금 더 추가하자면 라인펠트가 그랬듯 “닫힌 마음의 문을 활짝 여세요”와 같은 표현으로 국가적 메시지를 쉽게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이다. 더불어 보수정치인은 군대, 입시, 취업 과정에서 편법이나 특혜를 받지 않았고 탈법적 재산 증식이나 전관예우 혜택을 받지 않은 인물이어야 한다. 즉 평범하지만 자기가 처한 위치에서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늠름한 모습이 진정한 보수정치인의 모델이다. 

    질서, 안정, 이데올로기, 기업, 시장, 국가, 책임이라는 냉전 시대 명제의 틀 속에 갇힌 채 기득권 유지 및 확대를 위해 활동하는 보수정당은 이제 설 자리가 없다. 꼰대 정당의 모습은 털어버려야 한다. 100년 정당으로서의 역사와 전통을 뒤로한 채 새로운 변화를 시도한 스웨덴 신보수당의 모습에서 한국 보수정당이 걸어가야 할 미래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최연혁
    ● 1960년 출생
    ● 한국외대 스웨덴어과 졸업, 스웨덴 예테보리대 정치학 박사
    ● 스웨덴 쇠데르턴대 교수
    ● 現 스웨덴 린네대 정치학과 교수 및 스톡홀름 소재 스칸디나비아 정책 연구소장
    ● 저서 :‘우리가 만나야 할 미래’ ‘좋은 국가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민주주의가 왜 좋을까’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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