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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평의 ‘풀피리’⑥] “저 놈은 토착왜구요!” 집권세력의 비겁한 ‘저질 선동’

‘빨갱이’와 ‘토착왜구’

  • 신평 변호사·(사)공정세상연구소 이사장 lawshin@naver.com

[신평의 ‘풀피리’⑥] “저 놈은 토착왜구요!” 집권세력의 비겁한 ‘저질 선동’

  • ●‘토착왜구’, 現집권세력의 정치상품
    ●내편 아니면 무자비하게 매도, 저질의 비겁한 선동
    ●기득권 유지 및 반대파 탄압 위해 ‘저 놈 토착왜구’ 외쳐
    ●기나긴 일제 통치, 조선 청년들 별 죄의식 없이 관료 임관
    ●전두환 정권 때 법관으로 일한 추미애와 뭐가 다른가
    ●악랄한 순사보조와 동족에 연민의식 가진 고위관료
    ●일정 직위 이상이면 반민족행위자 분류, 과연 타당한가
    ●일본에 대한 필요 없는 적개심 묻어야
*19대 대선 당시 신평 변호사(64·사법연수원 13기)는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 중앙선대위에서 ‘공익제보 지원위원회’ 위원장과 ‘민주통합포럼’ 상임위원을 지냈다. 그는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뒤 여권을 향해 쓴 소리를 아끼지 않으며 공평무사(公平無私)한 지식인의 본보기 역할을 하고 있다.

김원웅 광복회장이 8월 15일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린 제75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김 회장은 이날 기념사에서 우리 사회가 친일 청산을 완수하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김원웅 광복회장이 8월 15일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린 제75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김 회장은 이날 기념사에서 우리 사회가 친일 청산을 완수하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오래된 샘에서 길어 올리는 유년기의 추억이다. 걸음도 잘 걷지 못하는 아기이던 나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울고 있었다. 옆에 있던 누가 산을 손으로 가리켰다. “저 산에 빨갱이가 지금 이리로 오고 있어! 빨리 뚝 하지 못하겠니?” 나는 숨이 막힐 듯하며 울음을 멈추었다. 1950년대의 일이다. 

‘빨갱이’ 트라우마는 우리 민족의 뇌리에 깊게 파였다. 해방 후 좌우 대립, 6·25 동란을 전후해 벌어진 무자비한 양민 학살, 휴전 후 계속된 남북 대립의 모진 과정을 거치는 동안 우리에게 빨갱이는 마치 흉악한 도깨비와 같았다. 사람 잡아먹은 흔적으로 입에서 뻘건 피를 질질 흘리는 괴물이 바로 ‘빨갱이’였다. 

박정희 정권과 전두환 정권은 국민의 상처를 적절하게 이용했다. 정치적 반대자 누구라도 ‘빨갱이’로 낙인찍으면 그의 삶은 종쳤다. 무소불위의 권력이 가진 힘에 의한 것이었다. ‘빨갱이’는 과거 집권층이 판 가장 효과적인 정치상품이었다.

집권세력의 정치상품이자 고약한 선동

8월 28일 3선의 이개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 [페이스북 캡처]

8월 28일 3선의 이개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 [페이스북 캡처]

민주화됐다고 하는 오늘날, 더 이상 ‘빨갱이’로 낙인찍는 일은 없다. 그렇게 지목돼봤자 대수롭지도 않은 일에 그친다. 그 대신 ‘토착왜구’ 낙인이 횡행한다. 야당 정치인이건 여권에 대한 비판자이건 가리지 않고 그 낙인을 찍는다. ‘토착왜구’는 현 집권세력이 파는, 즉 ‘빨갱이’를 대체하는 가장 효과적인 정치상품이다. 



얼마 전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가 건강상의 이유로 사임한다는 발표가 있었다. 이때 어느 국회의원인가가 낸 논평은 차마 눈 뜨고 보기 어려울 정도였다.(*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을 지낸 3선의 이개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8월 28일 페이스북에 “친일파와 토착왜구들은 아베 총리가 물러나면 그 상실감을 어떻게 회복해야 할까. 아베 총리의 건강이 많이 나쁘다고 한다”고 썼다) 그는 아베 전 총리가 사임한다고 하니 우리 사회의 토착왜구들이 얼마나 슬프겠느냐는 식의 코멘트를 했다. 이런 도착된 인식에 빠져, 기분 내키면 자기편이 아니라고 생각되는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토착왜구로 매도해버리는 것이다. 

아주 고약한 정치선동이다. 끝없는 갈라치기, 상대를 오직 박멸 대상으로만 여기고 달려들어 숨통을 끊어놓겠다는 공격적 성향. 이런 불결한 관념들이 그런 사람들의 머릿속에 꽉 들어찬 모양이다.

추미애의 믿기 힘든 말

‘토착왜구’는 그들의 용어 사용에 따르면 ‘친일파’와 거의 비슷한 것 같다. 친일파를 좀 더 모욕적으로 부르려고 하는 의도에서 사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해방 후 친일파를 제대로 숙청하지 못해 민족정기가 흐려졌고, 이것이 길게 여운을 끌며 사회의 발전을 가로막는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말에는 일리가 있다. 그러나 논의가 피상적으로 진행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면을 꼭 살펴야 한다. 아주 한정된 것이긴 해도 내가 아는 몇 가지 내용을 살펴보자.
일본 식민지 당국이 경술국치 이후에도 조선의 친일파에 대해 ‘긴가 민가’하는 심정으로 불안하게 바라본 기록이 있다. 그 기록의 한구석에 있는 이런 내용을 본 적이 있다. 

“친일파들은 조선반도 통치의 정당성은 이씨 왕조가 아니라 천황가에 있다고 믿는다. 신라와 고려에 이은 이씨 조선이 아니라, 부여, 고구려, 백제 왕실을 이은 천황가가 바로 반도의 적통 지배세력이라는 것이다.” 

물론 친일파들이 그 나름대로 명분을 세워 친일을 한 셈인데, 그렇다고 그들의 죄상이 줄어들지는 않을 것이다. 

일본 통치체제로의 복속을 1905년 을사늑약에서 사실상 시작했다고 본다면 1945년 해방까지 40년이 된다. 거의 두 세대에 걸친 긴 기간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가 나치에 점령된 기간은 불과 몇 년이었다. 장기에 걸친 일제 통치 기간에 이에 항거해 ‘백이숙제’처럼 살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리고 실제 식민지 당국이 하던 많은 일은 조선왕조의 정부에서 하던 일이었다. 조선 백성의 일상적 삶에 관계된 일이었다는 뜻이다. 

많은 조선의 청년들은 별 죄의식 없이 총독부의 관료로 임관하기를 희망했고, 테크노크라트로 활동했다. 이 청년들과 광주항쟁을 잔인하게 진압한 전두환 정권 밑에서 관료로 지낸 사람들과의 본질적인 차이점을 바로 찾을 수 있을까?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전두환 정권에 반발해 법관 임용식에 참석도 하지 않았다고 주장한 바 있는데, 좀 믿기 어려운 말이다. 그럼 왜 법관으로서 직무를 수행했는가?

악랄한 순사보조는 조선인이었다

일제의 테크노크라트로 일했으면서도 민족의식을 갖췄던 이들에 관해 적잖은 흔적이 아직 남아 있다. 그들을 ‘반민족행위자’ 혹은 ‘민족반역자’로 매도하기에는 일제의 강점 기간은 너무나 길었다. 또 당시 조선반도의 사회 분위기를 고려해도 그 매도는 어색할 수 있다. 

얼마 전 일본의 가미카제 특공대를 다룬 프로그램이 방영됐다. 외국 것이다. 잘 알다시피 가미카제는 태평양 전쟁 말기 궁지에 빠진 일본제국의 대본영이 고안해낸 자살특공대다. 비행기에 올라타기 전 ‘천황하사품’으로 건네받는 일본 ‘오사케’(お酒) 한 잔을 마신 뒤 ‘천황폐하 만세’를 부르고, 적인 미국의 항공모함 쪽으로 비행한다. 연료는 그쪽으로 가는 분량만 허용된다. 자신이 조종하는 비행기를 항공모함에 충돌시키는 것이 그들의 임무였다. 당연히 그는 죽는다.
 
아마 지금 토착왜구 낙인을 남발하는 사람들의 인식으로 판단하면, 가미카제에 자원해 죽은 조선인은 당연히 악질의 ‘민족반역자’일 것이다. ‘천황폐하’를 위해 장렬히 전사(戰死)의 길로 걸어간 그들이다. 그러나 그 프로그램에서 조선인 박모 씨가 출정을 앞둔 마지막 밤 일본 출신 동료들 앞에서 아리랑을 부르며 흐느꼈다는 일화를 전해줄 때 가슴이 서늘했다. 과연 그는 민족반역자였을까? 

식민당국에 협조해 조선 민중에게 악랄한 짓을 서슴지 않은 자들도 물론 많다. 가장 흔한 경우는 경찰의 말단 순사 혹은 순사보조들이다. 특히 식민당국에 숱하게 고용된 순사보조들이 가장 악랄했다. 그들은 조선 민중의 목숨을 개 목숨보다도 하찮게 여겼다. 독립 의식을 가진 이들에게 잔인하기 그지없는 고문도 주저하지 않았다. 그들은 모두 조선인들이었다. 

이들의 행패는 만주에서까지 우심(尤甚)했다. 종전 후 만주 거주 중국인들은 일본인은 본국에 가도록 보낼 수 있어도 조선인은 보낼 수 없다고 외쳤다. 이 역시 조선인 순사보조들의 탓이었다. 물론 모두 그런 것은 아니었다. 식민경찰에 소속됐으면서도 남몰래 동족의 조선인을 도우려고 했던 이들도 있었다.

상대편 약점 잡고 “저 놈 토착왜구요!”

말단순사나 순사보조 중 악랄한 이들이 대부분이었던 반면 판사나 검사, 군수 등 총독부의 고위 관료를 지낸 사람들 중에서는 동족에 대한 연민의식으로 업무를 처리한 이들이 적지 않았다. 그러면 식민당국에서 일정 직위나 계급을 갖췄던 사람들을 일률적으로 전부 반민족행위자로 분류한 것이 과연 타당한 것인지 깊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해방이 된 지 벌써 75년의 장구한 세월이 흘렀다. 그럼에도 여전히 길거리에서 “토착왜구를 박멸하자!”는 외침이 들려온다. 그들은 가만히 기회를 엿보다가 눈에 거슬리는 상대편의 약점을 잡고선 “저 놈은 토착왜구요!” 하고 외친다. 그것은 저질의 비겁한 정치선동이다. 그 목적은 단 하나다. 나는 그들의 심중에 ‘민족정기 선양’ 같은 목적이 없다고 본다. 지금 그들이 누리는 기득권을 보호하려고, 또 앞으로도 더 유지하려고 반대쪽에 선 이들을 탄압하려는 것이다. 

많은 독립지사들이 만주벌판, 연해주, 미국, 유럽에서 자주 독립의 꿈을 안고 풍찬노숙했다. 자신이 가진 엄청난 재산을 모두 정리해 바친 분도 있다. 국내에 거주하면서도 독립자금을 바친 많은 우국지사들도 있었다. 그들이 있었기에 민족정기가 훼손되지 않은 채 살아남았고, 지금 떳떳하게 다른 나라와 어깨를 견주며 살고 있다. 오늘날 한국은 작지만 강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일찍이 없었던 경제적 번영을 누리고 있다.

선량한 국민 기만하는 일

이제는 일본에 대한 필요 없는 적개심을 묻어야 할 시점이다. 독립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친 지사들의 고귀한 뜻을 되새기고 선양하며, 새로운 국제질서 속에서 우리가 취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외교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 미국이나 중국과 사이좋게 지내야 한다. 일본과도 이제 구원(舊怨)의 감정을 풀고 공동번영의 토대를 구축해야 할 것이다. 

반일 혹은 토착왜구 덮어씌우기 ‘정치상품’을 이제 그만 팔도록 하자. 이것을 계속 팔려고 하는 것은 선량한 국민을 기만하는 일이다. 기득권 보호 및 유지의 속셈을 숨긴 속임수다. 아무리 그러해도, 민주나 진보를 내건 세력은 ‘빨갱이’를 정치상품으로 팔아 재미를 봤던 세력과 비교해 현저히 도덕적 우위에 서야 하지 않겠는가!

참새 두 마리가 기왓장 위에서 가을 햇볕을 쬔다. 그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신평 제공]

참새 두 마리가 기왓장 위에서 가을 햇볕을 쬔다. 그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신평 제공]

갈색이 늘어난다. 돌담장 담쟁이, 나무들 색깔에 조금씩 갈색이 섞이고 있다. [신평 제공]

갈색이 늘어난다. 돌담장 담쟁이, 나무들 색깔에 조금씩 갈색이 섞이고 있다. [신평 제공]


● 1956년 출생
● 서울대 법학과 졸업
● 제23회 사법시험 합격‧사법연수원 제13기
● 인천지방법원, 서울가정법원, 대구지방법원 판사
●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한국헌법학회 회장 역임
● 저서: ‘법원을 법정에 세우다’ ‘로스쿨 교수를 위한 로스쿨’ ‘들판에 누워’(시집) 外




신동아 2020년 10월호

신평 변호사·(사)공정세상연구소 이사장 lawshi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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