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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74년생이 보수정당 싫어하는 이유[봉달호 편의점 칼럼]

X세대는 어쩌다 ‘갑툭튀’ 진보가 됐을까

  • 봉달호 편의점주

1970~74년생이 보수정당 싫어하는 이유[봉달호 편의점 칼럼]

  • ● 與이면서 野인 민주당의 꽃놀이패
    ● 1970~74년생의 압도적 진보성향
    ● 전체주의·폭력주의의 끝 세대
    ● 주입식으로 배운 주체사상
    ● 약육강식과 야만의 끝자락
    ● ‘환상의 텍’ 자랑하는 무데뽀
    ● 위선의 세대 혹은 꼴불견 꼰대
    ● 한총련 찬가와 ‘난 알아요’ 사이
2020년 4월 9일 이낙연 당시 더불어민주당 종로구 국회의원 후보 선거운동원들이 민주당 기호를 강조하는 손동작을 하고 있다. [김재명 동아일보 기자]

2020년 4월 9일 이낙연 당시 더불어민주당 종로구 국회의원 후보 선거운동원들이 민주당 기호를 강조하는 손동작을 하고 있다. [김재명 동아일보 기자]

최근 우리 사회에서 가장 논쟁적인 정치 이슈를 꼽으라면 30~40대가 흔들림 없이 더불어민주당을 지지하는 현상일 것이다. 거기에 대해서는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원래 청년 세대는 야(野)성이 강하다. 그리고 보수정당과 비교해 민주당을 지지하는 성향도 강하다. 일단 이것이 중첩해 나타나는 현상 아닐까 싶다. 민주당은 이미 집권여당이 됐는데 ‘지난 시절의 잔재(이른바 ‘적폐’)와 맞서 싸운다’는 주장을 내세우며 기득권에 저항하는 이미지 전략을 동시에 구사하는 중이다. 여당이면서 야당이기도 한, 민주당의 꽃놀이패다. 

게다가 지금은 코로나19가 모든 여론의 관심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여 버렸다. 다른 어떤 말도 국민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다. 오로지 이 위기를 탈출했으면 하는 바람뿐이다. 전쟁 중엔 장수를 거둬들이지 않는 법이다. 그런 안정 심리가 여(與)성을 부추겨, 야성은 야성대로, 여성은 여성대로 끌어 모으는 호시절이 민주당 앞에 펼쳐지고 있다.

모든 세대 통틀어 가장 非보수화된 집단

1992년 4월 데뷔한 ‘서태지와 아이들’은 X세대의 아이콘으로 불렸다. [동아DB]

1992년 4월 데뷔한 ‘서태지와 아이들’은 X세대의 아이콘으로 불렸다. [동아DB]

그렇더라도, 코로나19는 모든 세대가 겪는 일인데, 왜 유독 30~40대가 민주당을 지지하는 경향이 강할까. 게다가 흥미로운 현상이 하나 있다. 30~40대 가운데서도 1970~74년생의 민주당 지지가 더욱 도드라져 보이는 것이다. 

최슬기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등의 논문 ‘세대별로 투표하는 정당이나 후보는 달라지는가?’(‘한국사회’, 제20권 제2호)에 따르면 1970~74년생은 우리나라 모든 세대를 통틀어 가장 비(非)보수화된 집단이다. 이들은 이른바 86(80년대 학번·60년대 출생)세대에 속하는 1965~69년생 뿐 아니라 아랫세대인 1975~79년생보다 진보성향이 짙다. 같은 1970년대생 중에서도 6~7% 높은 압도적 진보성향을 보인다. 도대체 왜 그러는 것일까? 그들이 진보라고 믿는 것은 과연 ‘진일보’가 맞을까? 

이에 대해 다양한 해석이 존재한다. 혹자는 “아직 자산(資産)을 형성하지 못함으로써 보수 기득권에 합류하지 못했고,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에 취업을 준비한 세대로서 어려움을 겪으며 생활해 현실 비판적 특성을 유지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자산과 보수화의 상관관계는 일반적으로 이해되지만 1970~74년생이 유독 ‘갖지 못한(혹은 고생한) 세대’라는 해석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소득 규모 등을 면밀히 분석해봐야 알 수 있을 것이다. 또 다른 사람은 학생 운동권과 1970~74년생의 상관관계를 말하기도 하고, 서태지-X세대와 같은 문화적 배경을 거론하기도 하며,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 20대를 보낸 경험과 꿰맞추는 분석도 있다. 다 맞을 것이다. 특정한 하나의 이유만으로 정치·사회 현상을 설명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까라면 까던 폭력의 시절

오늘은 그것을 되짚어보려고 한다. 1970~74년생들. 그들은 어떤 삶을 살았는가. 과거에 별로 주목받지 못했던 이 세대가 최근 갑자기 툭 튀어나와 보이는 ‘갑툭튀’ 세대처럼 됐는데, 어디 있다가 이제야 튀어나온 것인가. 그 ‘5년 동갑’들이 살아온 시대에는 대체 무슨 일이 있었을까? 이들은 앞 5년, 뒤 5년 세대와는 어떻게 다르기에 그럴까? 

다행히(?) 필자는 1974년생이다. 학교를 일찍 들어가 1973년생들과 학창 시절을 함께 보냈다. 대학교 학번으로 따지면 92학번. 좀 특이한 인생 궤적을 갖고 있어 고등학교 1학년이던 1989년부터 학생운동을 시작했는데, 출생연도로 따지자면 1970년생들과 함께 운동했다. 요컨대 1970~74년생을 모두 아울러 회고할 수 있는 아주 작은 자격 요건 하나를 갖추었다는 말이다. 필자가 우리 세대를 대표할 만큼 ‘평균’적인 삶을 살아온 것은 결코 아니라 할지라도, 아예 자격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을 터이다. 

시작부터 화제를 돌려 이야기해 보자. 벌써 1년 넘게 지속되고 있는 코로나19 사태를 대한민국이 비교적 잘 극복하는 저력은 무엇일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혹자는 K-방역이니 ‘민주주의’의 위력이니 하고 말하는데, 과연 그럴까? 오히려 반대 아닐까? 코로나19의 깊은 골을 쭉 거쳐 오면서 필자가 자꾸 떠올리는 과거는 엉뚱하게도 ‘화생방훈련’이다. 

1981년생에게 화생방훈련을 이야기하니 “군대에서 ‘가스 체험’을 말하는 겁니까?”라고 되묻더라. 필자가 초등학교 다니던 시절에는 화생방훈련이라는 것이 있었다. 매월 15일 민방위 훈련을 하던 때에 북한의 생화학전에 대비한다며 화생방 훈련도 실시했는데, 커다란 비닐봉지 같은 것을 준비해 뒤집어쓰고 운동장에 누워있거나 책상 밑에 엎드리곤 했다. 준비물 챙겨 오지 않았다고 선생님에게 혼났던 기억, 장난치며 떠든다고 맞았던 아픔, 뙤약볕 아래 비닐봉지 쓰고 땀을 뻘뻘 흘리던 악몽이 겹친다. 

그런 시절이었다. 전 국민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던 ‘총력 동원’의 시절. 하라면 하고, 까라면 까고, 하지 말라면 안 하던 시절.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렇게 했다. ‘단체 기합’이라는 것도 당연한 듯 횡행했다. 아마도 우리 세대가 그 마지막 세대인 것 같다. 불과 10년 뒤 세대가 화생방 훈련을 모르는 걸 보면. 

폭력의 시절이었다. 내 기억에 트라우마로 남은 사건이 하나 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우리 반 아이 하나가 다른 아이를 죽도록 두들겨 팬 사건이다. 밀걸레 자루를 부러뜨려 개 패듯 패는데도 아무도 말리지 못했다. 교실에서 자율학습 시간에 그런 일이 벌어지는데도 숨죽여 고개 숙이며 아무도 말리지 않았다. 무서워서, 같이 맞을까 봐. 그것이 내 알량하고 비겁한 내면의 상징처럼 다가와 아직도 부끄럽고 끔찍하다. 피해자는 얼굴이 피범벅 됐고, 2~3주가량 학교에 나오지 못한 것으로 기억한다. 가해자는 강간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기도 하는 등 못 말리는 불량 학생이었는데 인근 학교 교사 아들이라는 이유로 이래저래 퇴학은 면했다. 그리고 졸업했다. 학교 축제 때 밴드부 리더로 노래도 불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때는 그런 일이 ‘많은’ 시절이었다. 별로 이상하지 않은 시절이었다. 

지금 우리 사회에 번지는 ‘미투’(Metoo·나도 당했다)니 ‘학폭’(학교 폭력)이니 하는 현상을 보면 때론 식겁한다. 그 잣대를 우리 시대에 갖다 대보면 사회적으로 매장될 사람이 한둘이 아니겠구나 생각하고, 나도 무슨 ‘못된 짓’을 했던가 되돌아 반성하곤 한다. 우리 세대는 세대교체를 넘은 ‘시대 교체’의 한복판에 서 있다.

북한 原典과 주입식 교육

다른 한편으로는 전체주의의 끝 세대였고, 폭력주의의 끝 세대였다. 1970~74년생들의 ‘갑툭튀’ 정치 성향을 학생운동 이력과 결부하는 것은 약간 지나친 감도 있지만 아예 무시하고 넘어갈 수 있는 사항도 아니다. 

1989년부터 학생운동을 시작한 사람으로서 1980년대 학번과 1990년대 학번의 학생운동 경험은 어떻게 다른가 생각해 보면 일단은 ‘주체사상’을 떠올리게 된다. 한국 학생운동권에 주체사상이 보급되기 시작한 때가 1986~87년경이다. 주체사상은 굉장히 빠른 속도로 학원가를 점령하며 1989년쯤이면 이른바 NL(민족 해방) 계열이 거의 모든 대학의 총학생회와 운동권을 장악했다. 역사상 가장 완벽한 ‘이념 마케팅’의 성공 사례 아닐까 싶다. 일사불란한 전도사들의 힘이었다. 

나 개인적으로는 1980년대 학번 선배들이 부러웠는데, 이유 가운데 하나는 어쨌든 그들은 고민과 논쟁 가운데 주체사상을 받아들였다는 사실이다. 1990년대 이후 학번은 그런 것이 없었다. 주입식으로 주체사상을 받아들였다. 북한 원전(原典)은 넘쳤고, “이것 아니면 보지도 말라”는 식으로 선배들에게 교육받았다. 이불 뒤집어쓰고 북한 라디오방송 들으면서 어렵사리 주체사상을 익혔다는 선배, 도서관에 있는 반북(反北) 이념 서적을 짜깁기해서 자신만의 북한 원전을 만들어냈다는 선각자(?), 일본어를 익혀 마르크스주의 원전을 탐독했다는 개척자 정신으로 가득한 무용담을 들을 때마다 솔직히 부러웠다. 그들은 그렇게 ‘자기 머리’로 사고할 수 있는 기회가 어느 정도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그런 것이 없었다. 

학력고사의 끝 세대였다. 지금도 입시 교육은 크게 달라진 것이 없지만, 주면 주는 대로, 가르치면 가르치는 대로, 수걱수걱 믿고 따르던 세대의 끝 세대였다. 반항이란 있을 수 없었다. (그래서 성적 비관 자살이 그렇게 많았던 것 같다. 죽음은 최고의 반항이었으니.) ‘애국조회’라는 게 있어서 월요일 아침마다 운동장에 차렷 자세로 서서 교장선생님의 일장 연설을 한 시간 넘게 들어야 했던 마지막 세대였고, 그러다 실신하는 아이들도 꽤 있었으며, 그렇게 쓰러지는 아이들을 “약해 빠진 녀석들”이라고 욕해도 그런가 보다 했던 세대다. “일부러 저렇게 쓰러지는 것 아니야?”라면서 우리끼리 비웃고 의심하고 수군대는 세대이기도 했다. 

강한 자만 살아남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시대였다. 학력고사 끝나면 학교 교문에 “축, 서울대 3명, 연세대 10명, 고려대 12명 합격”이라고 플래카드가 나붙어도 하등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 시대였고, 그 숫자가 적으면 우리 학교가 창피하게 느껴지던 그런 시대였다. ‘가요톱10’이 있던 시대, ‘미스코리아 대회’가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던 시대였다. 경쟁의 끝 세대, 약육강식의 끝 세대였다. 지금도 경쟁과 약육강식은 계속되고 있지만, 그것이 노골적인 사회 가치로 범람하던 야만의 끝자락을 우리는 거쳐온 것 같다.

피해자이자 가해자의 어떤 僞善

1993년 5월 27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에서 4만여 명의 대학생이 참가한 가운데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 출범식 전야제 행사가 열렸다. [동아DB]

1993년 5월 27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에서 4만여 명의 대학생이 참가한 가운데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 출범식 전야제 행사가 열렸다. [동아DB]

1980년대 운동권과 1990년대 운동권의 차이로 ‘대학생’에 대한 자각의 차이도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1980년대 선배들만 해도 일종의 지사(志士)적 풍모가 있었다. 우리는 대학생, ‘선택받은’ 대학생, 그러니까 사회의 혜택을 받은 만큼 역사와 민중에게 되돌려주어야 한다는 선민(選民) 의식 비슷한 감정마저 1980년대 대학생에겐 남아 있었다. 시민들도 “배운 녀석들이니까 나름대로 생각이 있겠지” 하면서 받아줬다. 1990년대는? 대학 정원이 급격히 늘면서 대학생이 넘쳤다. 대학생이 무슨 특별한 계층이라서 조국과 민족을 위해 보답해야 한다는 그런 역사적 사명감 같은 것은 희박해졌다. 게나 고둥이나 대학생이었다. “나는 대학생”이라고 뻐기면 오히려 놀림감이 되는 시대의 첫 세대, 그러면서 “청년이 서야 조국이 산다”고 주먹을 불끈 쥐던 시대의 끝 세대. 우리는 이래저래 ‘끼인’ 세대였다. 

1989년 학생운동을 회고하면 역시 기억에 남는 장면은 임수경 밀입북(密入北) 사건이다. 그해 7월 서울지하철 뚝섬역에서 한양대역까지 철로 위를 뛰었던 사건을 기억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말 그대로, 지하철 2호선 뚝섬역에서 한양대역까지 점거하고 뛰었다. 경찰이 집회 장소인 한양대 주위를 원천 봉쇄하면서 한양대역을 무정차 통과시키니까 뚝섬역에 집결해 철로로 뛰어 올라가 한양대역까지 수천(혹은 수만) 명이 이동한 사건인데, 지하철 배차 시간 등을 면밀하게 계산했다고는 하지만 지금 같았으면 그러한 시도 자체만으로 엄청난 사회적 비난에 직면했을 사건이다. 사람 생명을 담보로 해, 자칫 대형 재난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었던 사건이다. 그것을 ‘환상의 텍(tac; ‘전술’의 운동권 은어)’이라 자랑하는 무데뽀 시절이었다. 

1990년대 초반에는 열차를 정차시키는 사건도 많았다. 서울에서 집회가 있으면 지방에서 열차와 고속버스로 상경했는데, 경찰이 모든 출발역과 톨게이트를 검문했다. 그러니 철로 주변에 집결했다가, 강제로 열차를 세워 타고 상경했다. 말 그대로 ‘열차 탈취’다. 역시 기차 시간표 등을 검토했다고 하지만, 승차 비용은 지불했다고 자랑하지만, 만에 하나 그때 뒤따르는 열차가 예정에 없이 달려와 전속력으로 부딪혔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 벌어졌을 것이다. 그런 아찔한 시대였다. 우리의 ‘정당한’ 목적을 위해서는 어떤 수단과 방법이든 정당화될 수 있다는, 그런 사고의 끝자락에 있던 세대였다.

여러 장의 셀로판지

최영미의 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왼쪽)와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상실의 시대’(오른쪽)는 1990년대에 큰 인기를 누렸다. [동아DB]

최영미의 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왼쪽)와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상실의 시대’(오른쪽)는 1990년대에 큰 인기를 누렸다. [동아DB]

우리는 그렇게 자랐다. 그것이 알게 모르게 오늘의 사고와 행동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요즘 젊은 세대를 보면, 그리고 지금 우리 사회가 돌아가는 모양을 보면, 마치 천지개벽이라도 하는 듯 세상이 뒤바뀐 것을 느낀다. 그래서 어쩌면 우리는 ‘위선(僞善)의 세대’인지도 모른다. 나쁜 짓을 할 건 다 했으면서, 피해자이자 가해자였으면서, 다음 세대는 그러지 말아야 한다고 말하는 그런 세대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일견 책임감이지만 후배들의 시선으로는 ‘꼰대’처럼 보일 수도 있는 모습이다. “86세대 꼰대보다 97세대(90년대 학번·70년대 출생)세대 꼰대가 더 꼴불견인 것 같아요”라고 말하는 소리를 종종 듣곤 하는데, 어떤 의미인지 대체로 이해가 된다. 

우리는 구(舊)체제의 끝이자 신(新)체제의 시작이기도 했다. 학력고사가 폐지되고 수학능력시험이라는 것이 도입되는 중간에 끼어 있었고, 그래서 재수를 한 녀석들은 학력고사와 수능을 모두 경험하기도 했다. 한총련(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의 첫 세대였다. 전대협(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은 대학 총학생회장들의 협의체 수준이었는데, 한총련은 단과대학 학생회장까지 대의원으로 삼았다. 외견상 내부 민주주의가 실현되는 것처럼 보였지만, 탈퇴하려면 전교생 투표를 거쳐야 하는, 들어가긴 쉬워도 나오긴 어려운 조폭과도 같은 문화가 ‘그러려니’ 받아들여지던 시대였다. 

한쪽에서는 한총련 찬가를 부르는데 다른 한쪽에서는 ‘난 알아요’(‘서태지와 아이들’의 데뷔곡)를 부르고, 한쪽에서는 달리는 열차를 강제로 멈춰 세운 시간에 다른 한쪽 친구들은 건담 프라모델을 색칠하고, 소니 CD플레이어로 X재팬의 음악을 듣고, 퀸과 메탈리카에 열광하고, ‘상실의 시대’(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를 읽고, ‘서른, 잔치는 끝났다’(최영미의 시)고 선언하던 시절이었다. 

PC통신의 첫 세대여서, 밤새도록 가상의 누구와 동질감을 공유하는 첫 세대이기도 했다. 과거 세대가 라디오 프로그램에 사연을 보내면서 ‘수뇌’가 있는 동질감을 공유하는 세대였다면 ― DJ가 선택하지 않으면, 방송국이 송출하지 않으면 공유될 수 없는 동질감이니까 ― 우리 세대는 스스로 사이버 공간에 접속해 동질감의 주인이 되는 세대의 출발점이었다. 그러면서도 “한총련 의장님을 결사 옹위하자”고 다른 한쪽에서는 주먹을 불끈 쥐는, 모든 것이 뒤죽박죽 섞인 그런 세대였다. 누군가는 집회에 가려고 열차를 멈춰 세웠고, 누군가는 서태지 콘서트에 가려고 열차표를 예약했다. 

우리는 여러 장의 셀로판지를 겹쳐 놓은 것 같은 세대였다. 각각의 색깔이 있지만 겹쳐 놓으면 검정이 되는 세대였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세대를 특정한 무엇으로 규정할 수 없는, 알 수 없는 녀석들이란 뜻에서 X세대라고 불렀던 것 같다. ‘알 수 없는’ 세대가 아니라 어쩌면 우리는 ‘모든 것을 다 가진’ 세대라고 볼 수도 있겠다. 대체로 모든 세대는 자기 세대를 역사상 가장 불행한 세대라고 스스로 측은히 여기는 경향이 있지만, 어쩌면 우리 세대는 모든 것의 끝이자 모든 것의 시작으로, 양쪽을 다 겪은 세대라고 자랑(?)할 수 있겠다. “그러니까 뒤죽박죽인 세대”라고 말한다면 역시 반박할 수 없지만, 그래서 어쨌든 구체제에 가장 적대적이면서 신체제는 앞장서 옹호하고 싶은, 그런 야누스 세대인지도 모른다.

과거 ‘의장님’의 꽁무니

현실로 돌아와, 1970~74년생들의 사고와 성향은 바뀔 수 있을까? 바로 내일 벌어질 일조차 가늠할 수 없는 세상이니 앞으로 어떤 돌발 상황이 펼쳐질지 장담할 수 없지만, 그리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특히 보수정당이 1970~74년생들의 지지를 끌어오는 일이란 결코 쉽지 않은 과제다. 

정당이 특정 세대와 집단의 지지를 끌어오는 방법에는 두 가지 방향이 있을 수 있겠다. 하나는 자신만의 색깔을 분명히 하면서, 특정 세대가 지지하든 말든, 혹여 잃더라도, 오로지 집토끼만 지킨다는 생각으로 정공법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상대의 어젠다를 끌어오는 방식이다. 죽도 밥도 아니게 만들어, 도긴개긴, “아무나 선택해도 똑같잖아?”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식이다. 국민의힘은 후자를 택하고 있다. 

정상적 상황에서는 후자가 옳을 테다. 그것이 대중정당으로서 외연을 확대하는,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정당이 발전하고 살아남는 비결이기도 하다. 문제는 지금이 ‘정상과는 다르다’는데 있다. 모든 상황을 코로나19가 접수하고 있고, 백약이 무효일 정도로 야당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문재인 정부 입장에서 보면, 어떻게 저렇게 운이 좋을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단군 이래 최대의 정치적 행운을 누리고 있다. 

거창한 문제 제기에 비해 결론은 시시해졌지만 차분하게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고 본다. “민주당을 수구 보수 집단으로 치부하면서 더욱 진보적인 색채를 띠는 정당이 나오면 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 현실적 주체가 국민의힘이라서 답이 없다고 보아야 한다. 어쨌든 코로나19가 완전히 끝나봐야 진검승부가 시작될 텐데, 약을 대로 약은 정치꾼들로 가득한 민주당 정부는 작금의 상황을 한없이 정치적으로만 활용하면서 선거에 꿰어 맞추고 있다. 1970~74년생들은 과거 ‘의장님’ 꽁무니를 열심히 따라가는 중이다. 이래저래 난세, 즉 답이 없는 시절을 살아가고 있다.



신동아 2021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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