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1월호

대통령이든 민주당이든 ‘패싱’ 계속하면 亡國한다

[백승주 칼럼]

  • 백승주 국민대 석좌교수·前 국회의원

    kidabsj@gmail.com

    입력2022-11-01 1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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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영삼·닉슨 패싱으로 무너진 박정희

    • 김정은에게 철저히 패싱당한 文

    • 망국 초래한 흥선대원군·명성황후 ‘패싱 정치’

    • ‘패싱’보다 ‘패스’ 잘하는 정치인 나와야

    1979년 10월 4일 김영삼 당시 신민당 총재가 의사당 정문을 나서며 악수로 석별의 정을 나누고 있다. 김 총재는 1979년 9월 29일 제명 처분을 받아 의원직을 상실했다. 김 총재 제명을 강행한 유신정권은 불과 한 달도 되지 않아 10·26 사태로 무너진다. [동아DB]

    1979년 10월 4일 김영삼 당시 신민당 총재가 의사당 정문을 나서며 악수로 석별의 정을 나누고 있다. 김 총재는 1979년 9월 29일 제명 처분을 받아 의원직을 상실했다. 김 총재 제명을 강행한 유신정권은 불과 한 달도 되지 않아 10·26 사태로 무너진다. [동아DB]

    패스(pass)는 같은 팀 선수에게 공을 주는 기술이다. 좋은 패스가 많으면 팀의 공 점유율을 높이고 좋은 슈팅 찬스를 만들어 득점의 열쇠가 된다. ‘pass’에 ‘ing’를 붙이면 ‘패싱’이 되는데, 부정적 용어로 변모한다. 정치·외교 부문에선 일방이 다른 한쪽을 무시 내지 투명 인간 취급하는 정치 행태를 일컬을 때 쓰인다. 극단적 기망(欺罔)도 패싱으로 볼 수 있다. 축구에서 좋은 패싱은 승리를 견인하지만 정치에서 패싱은 극단적 당파 정치를 만든다. 피비린내 나는 조선시대의 반복되는 사화(士禍)는 ‘패싱 정치’가 만든 비극의 정수다.

    올해 한반도 정세에서도 패싱 정치가 횡행하고 있다. 북한에선 주민의 인간다운 삶이 패싱당하고 있다. 남북관계에선 김정은의 ‘한국 패싱’이 드러나고 있다. 한국에선 외교부 장관 해임건의안 등 현안이 생생하게 말해주듯이 대의정치가 패싱 정치로 멍들고 있다. 대외관계에서도 ‘코리아 패싱’ ‘펠로시 패싱’ 등 논란이 지속적으로 일고 있다. 패싱 정치는 상호 존중 정치, 성숙된 협치 정치의 죽음을 의미한다. 현대사에 벌어진 패싱 정치의 비극을 직시할 때다. 패싱 정치에서 패싱의 대상은 바로 국민이기 때문이다.

    패싱, 그리고 패망

    1979년 9월 29일 국회는 당시 신민당 총재 김영삼을 제명했다. 민의의 전당이라는 국회의 이름을 빌려 제명했지만 당시 유신체제가 권력의 힘을 이용해 야당 대표에 대한 ‘정치 살인’을 감행한 것이다. 김영삼을 제명한 근거는 외신과의 인터뷰 내용 때문이었다. 김영삼은 1979년 9월 12일 뉴욕타임스 도쿄 지국장 헨리 스톡스와 인터뷰하면서 “미국 카터 행정부가 박정희 정권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고 민주화를 위해 압력을 가해야 한다. 필요할 경우 대한민국에 대한 원조를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신체제 핵심 관계자, 즉 ‘유핵관(維核關)’들은 체제를 호위하고자 김영삼을 패싱했다. 하지만 이는 ‘패망’을 자초한 선택이었다. 여론은 등을 돌렸고 제명 후 불과 17일 만에 부마항쟁이 일어났다. 그로부터 10일 뒤엔 10·26 사태가 일어나 유신체제가 막을 내렸다. 패싱을 기획한 주체는 유신체제의 심장부였지만 이를 집행한 자는 국회의원 159명이었다. 의원들은 이 사실을 살펴야 한다.

    1969년 8월 22일 박정희 당시 대통령이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이동원 전 외교부 장관은 회고록을 통해 박 대통령이 닉슨의 푸대접에 대해 서운함을 드러냈다고 밝혔다. [동아DB]

    1969년 8월 22일 박정희 당시 대통령이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이동원 전 외교부 장관은 회고록을 통해 박 대통령이 닉슨의 푸대접에 대해 서운함을 드러냈다고 밝혔다. [동아DB]

    비극을 초래한 패싱 사례가 더 있다. 고(故) 이동원 전 외교부 장관은 회고록 ‘대통령을 그리며’에 리처드 닉슨이 박정희 전 대통령을 패싱한 과정을 세세히 기록했다. 6·25전쟁 때 아이젠하워 대통령 밑에서 부통령을 지낸 닉슨은 미국의 2인자 자리에서 종전 과정을 똑똑히 지켜봤다. 유엔군에 의존해 겨우 체제를 지킨 신생국 한국의 정치·경제·군사 실상을 명명백백히 알게 됐다.



    닉슨은 1960년 대선에서 존 F 케네디에게 패하고, 1962년 캘리포니아 주지사 선거에서도 고배를 마셨다. 미국 시민은 물론 각국 지도자는 ‘닉슨은 이제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닉슨은 정치를 포기하지 않았고, 1966년 9월 서울을 방문했다. 부통령으로서 6·25전쟁에서 한국을 지원한 바 있기에 박정희 대통령의 환대를 기대했다. 그러나 박정희 대통령은 ‘닉슨 시대가 끝났다’는 세론을 따라 닉슨을 ‘정치 낭인’으로 대접했다. 불과 2년 뒤인 1968년 닉슨은 미국 대통령에 당선했다.

    정치 낭인 시절 냉대를 받은 닉슨의 ‘뒤끝’은 매서웠다. 닉슨은 취임식을 마치자마자 ‘아시아 안보는 아시아에’라는 내용을 골자로 한 ‘닉슨 독트린’을 발표한다. 후속 조치로 주한미군 일부 철수까지 단행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정상회담을 간절히 요청했지만 닉슨은 소극적 태도로 일관했다. 오랜 요청 끝에 1968년 8월 정상회담이 성사됐다. 닉슨은 여름휴가를 이용해 고향 근처 샌프란시스코의 호텔에 박 대통령을 초청했다. 박 대통령의 심경은 비참했다. 이동원 전 장관의 회고록엔 박 대통령이 당시 밝힌 ‘닉슨 패싱’ 회한이 절절히 담겨 있다.

    “비통함의 연속이었소. 약속 시각에 맞춰 차를 타고 호텔로 가면서 나는 닉슨이 최소한 호텔 로비에서 날 맞아주리라 기대했었소. 그러나 호텔 로비에서도,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내릴 때도, 방문을 열고 들어갈 때도 닉슨은 나타나지 않았소. 내가 방에 들어선 후 왼쪽의 큰 문이 열려서 살펴보니 그쪽 방구석에 선 채 날 맞이하는 게 아니겠소. 물론 걸어오지도 않고…. 저녁식사 땐 시시껄렁한 자기 고향 친구들을 불러다 앉혀놓곤 같이 식사하라는 게 아니겠소. 내 아무리 1966년 닉슨이 방문했을 때 섭섭하게 대했기로서니 너무한 게 아니오.”

    닉슨이 한국에서 박 대통령으로부터 받은 푸대접은 ‘오뉴월의 서리’가 돼 박정희 체제를 얼어붙게 했다. ‘그까짓 한국 힘없으면 망하라고 해. 무슨 상관이야. 일본만 자유민주국가로 남아도 충분한데…’가 닉슨의 심정이었을 테다. 닉슨은 박 대통령의 패싱을 패싱으로 갚은 것이다. 닉슨은 7사단 등 주한미군 일부를 철수하는 등 내내 박정희 정부를 냉랭히 대했다. 베트남에서 함께 전쟁을 수행하는 ‘혈맹’ 한국을 철저히 패싱하며 종전 협정을 추진했다.

    닉슨의 이러한 대(對)한반도 정책에 대응해 박 대통령은 새로운 안보정책과 체제 유지 방안을 구상하게 된다. 핵무기 개발을 계획하고 유신체제를 모색했다. 닉슨의 박 대통령 패싱은 박정희 정부뿐만이 아니라 국가의 명운 자체에 중요한 전기가 됐다. 물론 닉슨의 패싱만이 박 대통령의 핵무기에 대한 관심, 유신체제 구상의 원인이 됐다고만은 볼 수 없다. 그러나 닉슨 독트린이 주요 요인으로 작용했음은 ‘유핵관’의 다수 증언으로 뒷받침되고 있다.

    국가 간 패싱은 최고지도자 간 불신·분노로 표출된다. 근래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이 방한했을 때 벌어진 패싱 논란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많다. 닉슨의 ‘박정희 패싱’을 떠올리며 미국의 뒤끝을 생각한 것이다. 필자도 이를 생각하면 정신이 아찔하다. 현재 국가안보실 관계자들은 이러한 걱정과 지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성찰해야 한다.

    文 패싱 白眉, 김정은 친서

    김정은은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이던 시절 그와 27통의 편지를 주고받았다. 편지 내용은 일부 공개된 상태다. 그중 단연 이목을 끄는 것은 2018년 9월 21일 김정은이 트럼프에게 보낸 편지다. 김정은은 “앞으로 한반도 비핵화 이슈는 문재인 대통령이 아닌 당신과 논의하길 희망한다. 본인은 미국과 북한의 문제(우리의 문제)에 문 대통령이 과도하게 관심을 보이는 것은 불필요하다고 생각한다(I hope to discuss the issue of denuclearization of the Korean Peninsula directly with Your Excellency, not with President Moon Jae-in of South Korea, in future and I think the excessive interest President Moon is showing as now in our matter is unnecessary).”

    많은 학자가 북한의 한국 패싱 정치를 ‘통미봉남(通美封南)’ 등의 용어로 걱정해 왔다. 그때마다 한국 정부는 “절대 그렇지 않다. 미국과 긴밀히 공조하고 있다. 특히 미국은 한국을 절대 패싱하지 않는다”는 견해를 밝혔다. 진실일까? 필자가 과거 연구 목적으로 김동진 전 국방부 장관을 만나 연구자문을 한 적이 있다. “1990년대 미국의 북한 영변 폭격 계획을 언제 알았으며 충분히 협의한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쓴웃음을 지었다. 사전에 충분히 협의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미국은 모든 국가에 대해 중요 정책을 ‘국가 기밀’이란 이름으로 패싱하곤 한다.

     2018년 9월 19일 문재인 당시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평양 옥류관에서 식사하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이틀 뒤 김정은 위원장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친서를 보내며 “북·미 문제에 문 대통령이 관심을 보이는 것은 불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썼다. [뉴스1]

    2018년 9월 19일 문재인 당시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평양 옥류관에서 식사하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이틀 뒤 김정은 위원장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친서를 보내며 “북·미 문제에 문 대통령이 관심을 보이는 것은 불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썼다. [뉴스1]

    아울러 트럼프에게 보낸 김정은의 편지 속엔 한국을 패싱하겠다는 의지가 명명백백히 천명돼 있다. 김정은은 한반도 비핵화 문제를 철저히 북·미 사이의 문제로 바라보며 문재인 대통령의 관심조차 거추장스럽게 생각했던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관심은 필요없다”는 김정은의 생각은 소름 끼치는 대목이다. 남베트남 정부를 패싱하고 파리평화협정을 체결한 닉슨과 헨리 키신저가 생각나기 때문이다. ‘베트남 패싱’으로 주월미군 철수와 함께 베트남 공산화가 이뤄진 사실이 뇌리에 스친다.

    亡國으로 향하는 길, 패싱 정치

    파리평화협정 체결 주역인 키신저 당시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1973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파리평화협정 이후 김일성이 남북평화협정 이슈를 제기한 것, 그 후 북한지도자들이 평화협정에 집착한 정치적 배경도 제대로 알아둬야 한다.

    더구나 김정은이 친서를 보낸 시기를 보면 그가 얼마나 문재인 정부를 기망하고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트럼프에게 친서를 보내기 불과 3일 전, 2018년 9월 18일부터 3일간 평양에서 제3차 남북 정상회담이 열렸기 때문이다.

    3차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남북 지도자는 6개 항의 공동 발표문을 밝혔는데, 이 중에서 한반도 비핵화와 관련해 “남과 북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추진해 나가는 과정에서 함께 긴밀히 협력해 나가기로 했다”는 내용이 있다. 이로부터 3일 만에, 공동 발표문에 잉크도 마르기 전 김정은은 친서를 통해 트럼프에게 “문재인을 배제하자”고 제안한 것이다. 기망 정치의 전형이다. 친서 내용 결정은 남북 정상회담 이전부터 준비됐을 것으로 짐작된다.

    기망도 패싱의 한 형태다. 김정은이 문재인 전 대통령을 기망하며 철저히 패싱한 결과를 우리는 지금 목도하고 있다. 김정은은 기세등등해 ‘핵 강대국’의 길을 질주하고 있다. 질주에서 발생한 뽀얀, 방사능 섞인 먼지를 한반도와 동북아가 뒤집어쓰고 있는 형국이다. 남북관계에서 가장 조심해야 할 패싱은 기망이다.

    박진 외교부 장관이 10월 6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열린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9월 29일 더불어민주당은 박 장관 해임 건의안을 의결했고, 다음 날 윤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했다. [뉴스1]

    박진 외교부 장관이 10월 6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열린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9월 29일 더불어민주당은 박 장관 해임 건의안을 의결했고, 다음 날 윤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했다. [뉴스1]

    9월 29일 더불어민주당이 “외교참사”라며 제출한 박진 외교부 장관 해임건의안이 국회에서 통과됐다. 헌법 제63조 1항은 ‘국회는 국무총리 또는 국무위원의 해임을 대통령에게 건의할 수 있다’고만 규정하고 있다. 해임 사유를 구체적으로 명시하진 않았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직무수행이 헌법, 법률을 위반하거나 정책수행에 중요한 과실이 있을 경우에 해임할 수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국무위원 해임 건의 사유는 탄핵과 달리 직무상 위헌·위법행위에 국한되지 않는다. 정치적 배경으로도 가능하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필자는 박 장관 해임 사유에 동의하지 않는다. 외교참사란 무엇인가. 중요한 외교 이익이 ‘죽음과 같은 수준으로’ 망실된 것을 말한다. 윤석열 대통령의 순방외교에서 한국 국민이 통곡할 수준의 외교 손실을 찾을 수 있는가? 장관이 탄핵될 정도의 잘못이 있었는가? 없었다. 9월 30일 윤 대통령은 해임 건의를 수용하지 않을 방침을 밝혔다.

    박 장관 해임건의안 통과는 민주당이 대통령을 패싱하는 압박 정치를 본격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다수당이 해임안 건의를 의결하는 행태로 국회를 운영한다면 제2, 제3의 해임건의안이 나올 수 있다. 무기명 비밀투표로 선출해야 하는 대법원장 등 주요 인사에 대한 임명도 민주당이 사안마다 제동을 걸 수 있다. 반대로 대통령은 거부권 행사를 통해 대항할 수 있다.

    2024년 총선 때까지 이러한 정국이 지속된다면 악몽과도 같다. 양측이 상대방을 ‘투명 인간’처럼 대하는 패싱 정치를 지속할 경우 국회의 입법 추진 동력, 대통령실의 국정 추진 동력은 엄청난 상처를 받게 된다. 금세기 1년은 조선시대 100년과 같은 시간의 가치를 갖고 있다. 변화의 폭과 속도가 그렇다. 윤석열 정부하에서 지금과 같은 패싱 정치가 고착, 장기화한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우리 역사, 우리 국민이 담당하게 될 것이다. 조선 말 양대 집권 세력 흥선대원군과 명성황후의 상호 패싱 정치가 근대화에 장애가 됐고 망국으로 이어졌다. 이를 기억하면서 정치지도자는 조속히 패싱 정치를 중단하고 협력 정치로 나아가야 한다.

    패스 마스터 정치인 나와야

    11월 하순을 기다리는 사람이 많다. 카타르에서 월드컵이 열리기 때문이다. 월드컵은 축구팬뿐만 아니라 세계인 전체를 들썩이게 한다. 경기에서 가장 주목받는 선수는 펠레, 마라도나, 손흥민과 같은 골게터, 슈터다. 골을 넣어야 승리하기 때문이지만 이들을 만드는 선수는 ‘패스 마스터’다. 뛰어난 패스 마스터를 가진 팀이 골 점유율을 높이고, 경기에서 승리할 확률이 절대적으로 높다. 좋은 패스 마스터가 되기 위해서는 넓은 시야와 순발력, 침투력 등이 요구된다.

    한국 국민과 역사는 ‘패스 마스터 정치인’을 필요로 한다. ‘패싱 전사(戰士)’는 역사를 비극으로 이끈 경우가 많다. 흥선대원군과 명성황후, 유핵관, 닉슨, 김정은 등은 패싱 정치의 주장(主將)이다. 물론 관점에 따라 이들에 대한 공과를 다르게 볼 수 있다. 이들은 정치적 카리스마로 정국을 주도해 세력을 결집하는 특장(特長)이 있다. 그러나 모든 구성원을 배려하고, 공동체를 좋은 방향으로 이끄는 데엔 한계가 있다.

    한국 정치지도자들이 패싱 정치의 비극을 성찰하길 바란다. 민주당과 대통령실은 당장 패싱 정치를 중단해야 한다. “정치 원로가 안 보인다”는 세간의 탄식 속에는 패스 마스터 정치인이 보이지 않는다는 뜻이 담겨 있다. 청년 정치도 키워야 하지만 원로 정치인도 필요하다. 역사적 시야가 넓고 통찰력 있으며 긴 시간 존중을 받는 패스 마스터 정치인을 대망(待望)해 본다.

    백승주
    ● 1961년 출생
    ● 부산대 정외과 졸업, 경북대 대학원 정치학 박사
    ● 前 한국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장
    ● 前 한국정치학회 부회장, 중국 베이징대 방문교수
    ● 前 국방부 차관, 20대 국회의원
    ● 現 국민대 석좌교수
    ● 저서 : ‘백승주 박사의 외교이야기’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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