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2월호

사바나

무엇이 ‘공시생’을 불법으로 내모나

돈 없어 불법 강의 공유…공시생 수저계급론

  • 최호진 사바나 객원기자

    patagonistt@gmail.com

    입력2019-12-07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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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바나’는 ‘사회를 바꾸는 나, 청년’의 약칭인 동아일보 출판국의 컨버전스 뉴스랩(News-Lab)입니다. ‘사바나’ 기자들은 모두 밀레니얼 세대에 속합니다. 커보니 ‘취업이 바늘구멍’이 돼버린 경제 현실을 목도했습니다. ‘우리 때만큼 노력 안 한 탓’이라는 윗세대의 ‘꼰대질’도 감내했습니다. 이제는 청년의 삶을 주어(主語) 삼아 윗세대가 ‘불편할 법한 이야기’를 꺼내놓으려 합니다.
    “제 인생에 더 이상 공부는 없어요. 정말 후회 없이 준비했거든요.” 

    동국대에 재학 중인 최모(26·남) 씨는 지난 10월 서울시 7급 공무원 시험을 치렀다. 지난해 이미 서울시 9급 공무원에 합격했지만, 7급 공무원이 되기 위해 1년을 더 투자했다. 최씨는 “1년 만에 9급 공무원에 합격하고, 올해 다시 7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할 수 있었던 건 부모님의 지원 덕분”이라고 말했다. 

    최씨는 2년의 수험 기간에 ▲학원비 360만 원(10개월) ▲교재비 50만 원 ▲매달 식비와 독서실 이용료로 약 65만 원씩 지출했다. 부모님의 경제적 지원 아래, 최씨는 평일과 주말 모두 시험공부에만 매진했다. 최씨는 “자는 시간 빼고는 공부만 했다”며 “후회 없이 노력했기 때문에, 올해 치른 7급 시험에 떨어져도 재도전하지 않고 9급 공무원에 만족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또 다른 ‘공시생’ 김모(27·여) 씨는 “수험생활을 돌이켜보면 아쉬움이 크다”고 말했다. 김씨는 지난 8월 응시한 7급 외무영사직 시험에서 불합격 통보를 받았다. 벌써 3번째 낙방이다. 그는 지난 3년간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벌며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다. 김씨는 “알바 안 하고 공부에만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이었으면 합격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며 이렇게 덧붙였다. 

    “고시원 월세, 학원비, 생활비 등을 전부 부모님께 지원받아 빠른 시일에 합격하는 친구들을 보면 부러워요. 저도 알바 그만두고 부모님께 손을 벌릴까 생각해봤지만 도저히 입이 안 떨어지더라고요. 원래 올해도 안 되면 공무원 시험을 그만둘 생각이었는데 막상 포기가 쉽지 않네요. 알바하느라 시험공부에 100% 노력을 쏟아붓지 못했다는 아쉬움 때문인 것 같아요.”



    가구 소득에 좌우되는 ‘합격’

    취업난 속 ‘기회의 평등’과 ‘공정 경쟁’의 영역으로 여겨지던 공무원 시험도 ‘수저계급론’의 현장이 돼가고 있다. ‘공시판’조차 가구 소득에 따라 ‘기울어진 운동장’이 돼버린 모양새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실과 인사혁신처의 합동 조사 결과, 공무원 시험 합격자의 71.22%(683명)가 수험기간 지출 비용의 주된 조달 방법으로 ‘가족 등의 지원’을 꼽았다. 공무원 시험 합격까지 걸린 준비 기간은 평균 2년 2개월로, 월평균 약 62만 원을 지출한 것으로 나타났다. 

    적잖은 비용이 드는 탓에 경제적 지원 여부에 따라 합격 당락이 갈리는 실정이다. 최근에는 공무원 시험 합격률과 가구 소득이 전반적으로 비례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와 세간의 이목을 끌기도 했다. 

    한국교원대 석사과정 김도영 씨가 발표한 논문 ‘대졸 청년의 공무원 시험 준비 및 합격에 나타난 계층수준과 교육성취의 효과’(경제와 사회 2019년 가을호)에 따르면, 가구 소득이 적은 계층일수록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비율은 높았으나 합격률은 반대로 나타났다. 

    김씨는 고용노동부 한국고용정보원이 제공한 2007∼2016년 대졸자 직업이동경로 조사 자료를 활용해 대졸 청년들의 사회 진출 현황을 분석했다. ‘대학 입학 당시 월평균 가구 소득’에 따라 표본 10분위를 산출해 하층(1∼3분위)·중층(4∼7분위)·상층(8∼10분위)으로 구분한 결과, 5·7·9급 공무원 시험을 합친 계층별 합격률은 하층 17.25%, 중층 19.97%, 상층 22.85%로 소득수준과 정비례했다. 

    김씨는 논문에서 “한국 공무원 시험 제도는 국가 차원의 대규모 입직 절차임에도 그 준비 과정을 전적으로 사적 투자에 의존하게 하고, 교육의 평등화 효과마저 미약한 수준에 그치게 해 계층 재생산의 직접적인 경로로 기능할 수 있다”고 결론지었다.

    목돈 마련 후 뛰어드는 ‘공시판’

    2019년도 지방공무원 9급 공개경쟁 임용시험이 전국 17개 시·도 444개 시험장에서 일제히 실시된 6월 15일 서울 종로구 경복고등학교에서 응시생들이 고사장으로 향하고 있다. [하정민 동아일보 기자]

    2019년도 지방공무원 9급 공개경쟁 임용시험이 전국 17개 시·도 444개 시험장에서 일제히 실시된 6월 15일 서울 종로구 경복고등학교에서 응시생들이 고사장으로 향하고 있다. [하정민 동아일보 기자]

    시험 준비에 상당한 비용이 드는 탓에 미리 목돈을 마련해두는 수험생들도 있다. 9급 경찰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인 이준석(22·남) 씨는 본격적으로 수험생활을 시작하기 전에 500만 원을 모아뒀다. 300만 원은 군복무 중 받은 월급을 저축해 모았다. 나머지 200만 원은 고향인 울산에 있는 건설 현장에서 이른바 ‘막노동’ 일꾼으로 일해 벌충했다. 이후 지난 8월 공무원시험 준비 학원이 대거 밀집해 있는 서울 노량진으로 상경했다. 

    정작 이씨는 “500만 원은 시험 준비하는 데 턱도 없다. 6개월반 학원에 등록하고 나니 벌써 200만 원이 깨졌다. 다행히 부모님께서 고시원 월세는 내주셔서 남은 돈을 교재비와 생활비로 쓸 예정”이라고 말했다. ‘아르바이트와 공부를 병행할 수도 있지 않으냐’고 묻자 이씨가 이렇게 답했다. 

    “알바 하면서 공부하면 능률이 확실히 떨어져요. 공부 시간 뺏기고 체력이 소모되니 공부에 집중도 잘 안 되죠. 제 주위에 먼저 공무원 시험 준비 시작한 선배들만 봐도 알바랑 병행한 경우는 한 10명 중 3명 정도만 붙었어요. 공부만 한 선배들은 6명 정도 붙었고요. 아무래도 알바 하면서 공부하면 합격하기 힘들 것 같아 미리 돈을 벌어두는 쪽으로 결정했어요.” 

    그러다 보니 주머니 가난한 ‘공시생’들이 불법과 탈법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고액의 인터넷 강의를 조금이라도 저렴하게 듣기 위해 ID를 공유하는 것은 공시생 사이에서 흔한 일이다. ID를 공유해 서로 다른 시간대에 각자 강의를 듣고 수강료를 절반씩 분담하는 식이다. 엄연히 저작권법에 저촉되는 행위지만, 당장 주머니 사정이 빠듯한 수험생들은 강의비를 절약할 수 있는 불법 강의 공유에 눈을 돌리고 있다. 

    ‘ㄱㄷㄱ 프리패스 구해요’ ‘프리패스 한 달간 같이 들어요!’ 

    약 83만 명의 회원을 보유한 공무원 시험 준비 카페 ‘9꿈사’의 ‘벼룩시장’ 게시판에는 이와 같이 강의 공유자와 양도·양수자를 찾는 글이 줄을 잇는다. 7·9급 공무원 시험 인터넷 강의로 유명한 A 사이트의 ‘프리패스’ 상품에 대한 글이 대부분이다. ‘프리패스’는 기간과 횟수 제한 없이 A 사이트의 모든 강좌를 무제한으로 수강할 수 있는 상품이다. A 사이트에서 현재 189만9000원에 판매되고 있다. 

    불법 강의 공유·판매 글이 게재된 카페 게시판 상단에는 ‘콘텐츠 부정 거래’에 대한 주의 공고가 올라와 있지만 무용지물이다. ‘콘텐츠 불법 공유/양도를 시도하는 행위에 대해 법적 조치를 더욱 강화할 예정’이라는 공문 내용을 두고 수험생들은 오히려 반발한다. “강의비는 제일 비싸면서, 많아야 3명이 공유하는 것도 아니꼽나” “시장 독점해놓고 슬슬 가격도 올리더니 도둑놈 심보다”라며 인터넷 강의 콘텐츠 회사를 비난하는 댓글이 달렸다.

    고액 수강료 vs 불법 강의 공유

    상급 시험인 5급 공채의 경우 부담은 배가된다. ‘프리패스’ 상품이 주로 판매되는 7·9급 강의 시장과 달리 ‘단과 강의’가 주를 이루는 까닭이다. 5급 행정고시생 사이에서 유명한 3대 학원 중 하나인 B 업체의 ‘행정법 입문’ 강의는 58만8000원에 판매되고 있다. 한 과목을 완전히 공부하는 데 보통 3~4개의 강의를 듣기 때문에, 행정법 공부에만 약 200만 원이 드는 셈이다. 다른 과목까지 공부하려면 강의비 부담은 훌쩍 커진다. 선발 인원이 가장 많은 5급 공채 일반행정직의 경우 2차 시험에서 총 5개 과목에 응시해야 한다. 

    학원비에 비하면 인터넷 강의 수강료는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다. 올해 5급 공채 2차 시험에서 합격생 41명을 배출한 C 학원의 ‘5급 공채 1, 2차 종합반’ 등록비는 월 67만 원이다. 총 18개월 과정으로 약 1200만 원이 드는 셈이다. 

    5년째 5급 일반행정직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송모(28) 씨는 “공시생이 많아지면 경쟁으로 가격이 낮아져야 하는데, 유명 학원 3~4개가 과점하고 있다 보니 오히려 가격이 계속 오른다”며 공무원 시험 학원과 인터넷 강의 회사들의 독과점을 꼬집었다. 

    “저도 제값 다 내고 강의 듣고 싶죠. 그러기엔 가격이 말도 안 되게 비싸요. 독학을 하자니 강의 안 듣고 합격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요. 죄책감을 느껴도 어쩔 수 없이 강의 공유자를 찾게 되는 것 같아요. ‘예비 공무원이 벌써부터 불법이냐’고 하시겠지만, 돈 없으면 도전조차 어려운 구조가 더 문제 아닌가요?”

    “실태 조사, 저소득층 지원 등 대응 필요”

    구정우 성균관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소득수준에 따른 합격 쏠림 현상이 있다면 실태 조사, 저소득층 지원 등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며 “소득수준에 따라 공무원 채용에 쿼터를 두는 것은 세계적인 추세도 아니고, 경쟁 원리에도 어긋나기 때문에 유명 학원의 고급 수험 콘텐츠에 접근할 기회를 만들어주는 등 저소득층 수험생을 선별적으로 지원하는 방향이 적절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블라인드 채용이 여러 논란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상위 독식 패턴을 완화했다는 결과가 나온 것처럼 공무원 시험도 기존 방식을 탈피해 불평등을 완화하는 방향으로 제도 개편을 고려해야 한다”고 부연했다. 

    한편으로 구 교수는 한국 사회의 ‘공무원 쏠림 현상’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역량 있는 청년들이 새로운 기술에 도전하기보다는 안정성을 택해 공공 분야로 빠지고 있는데, 미래 성장의 측면에서 바라보면 굉장히 부정적이다. 경제성장이나 발전 동력은 주로 민간 분야에서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저숙련 일자리를 만드는 방식으로 경제지표를 개선하려 하면 성장 동력을 갉아먹는 결과를 낳을 가능성이 높다.”

    [신동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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