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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건강의학으로 본 ‘총선 블루’ 4大 원인

  • 손석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의학박사 psysohn@chol.com

정신건강의학으로 본 ‘총선 블루’ 4大 원인

  • ● 亡子 관계 특별할수록 ‘애도 반응’ 지속
    ● 나라 살려야 하는데…총선 패배로 ‘희망 없음’
    ● 어떻게 적응해야 하나…부적응 두려움
    ● 타협하는 자세, 마음 연 의사소통 절실한 때
공정선거국민연대 회원들이 4월 28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앞에서 4·15 총선 사전투표 조작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뉴스1]

공정선거국민연대 회원들이 4월 28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앞에서 4·15 총선 사전투표 조작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뉴스1]

4·15 총선이 끝난 지 한 달이 넘었다. 결과는 집권 여당의 대승리, 야당의 참패였다. 보수, 진보 성향 유권자들은 각자의 기준대로 후보를 선택했을 것이다. 선거 결과를 보면, 중도 혹은 부동층 유권자들은 ‘정권 심판’보다 생소한 ‘야당 심판’을 결행했다. 

보수정당이 현 정권의 경제 실정(失政), 오만함, 사회주의화, 청와대 핵심 인사 비리 등을 성토하면서 나라의 미래를 걱정해도 국민 다수의 공감을 얻지 못했다. 보수 우파로서는 충격이 클 수밖에 없다. 정신적 충격을 받거나 집단 우울증을 호소하는 사람도 많다. 뉴스를 외면하고, 문재인 대통령이나 여권 고위층 모습에 반감을 드러내며, 심지어 가족이나 지인이 여권 지지자로 확인되면 대화를 나누려 하지 않는다. 뜻이 맞는 지인과 작금의 현실을 개탄하고, ‘사전투표 조작’을 굳게 믿으면서 무기력감을 호소한다.


애도 반응 계속되면 우울증으로 발전

[GettyImage]

[GettyImage]

이들의 집단 우울증을 정신건강의학적으로 보면 첫째 ‘상실(loss)의 감정’에서 기인한 것이다. 우울증의 주된 심리 및 사회적 요인은 상실이라고 할 수 있다. 예컨대 사랑하는 배우자나 가족 누군가가 사망하면 우리는 큰 슬픔에 잠긴다. 이른바 ‘애도 반응(grief reaction)’이다. 그러한 슬픔을 충분히 느끼고 잘 극복하면 일상생활에 복귀해 다시 행복하게 살아나간다. 그러나 망자(亡子)와의 관계가 매우 특별했고, 나의 삶에 깊은 영향을 줬다면 애도 반응이 계속돼 우울증으로 발전할 것이다. 

상실의 대상은 사람에게만 국한되는 게 아니다. 가치나 직업, 사회적 지위, 경제적 능력 등이 될 수도 있다. 그동안 굳게 믿어온 가치가 사람들에게 더는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그간 열심히 일해온 직장에서 퇴직해 나의 수입과 사회적 지위가 사라진다면 자존감은 한없이 떨어지고 우울해질 것이다. 

보수 우파는 ‘자유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를 만들었고 지켜왔다. 젊은 시절에는 자유 대한민국의 가치를 당연하게 배워왔다. 독재의 시대가 있었으나 산업화의 더 큰 깃발 아래 제한된 인권을 감내해 왔다고 합리화하기도 했다. 어느새 나는 대한민국의 주류 세력을 이루고 있다고 자부했고, 대한민국의 근간을 흔드는 작금의 세력으로부터 나라를 지켜야 한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시대가 바뀌어 자유보다는 평등을 더 강조하고, 개인의 이익보다는 공공 이익을 훨씬 더 중요하게 앞세우며, 시장을 통제하는 사회주의적 경제 정책이 펼쳐지며, 기업 이윤 극대화보다는 노동자에게 배분하기를 지향하는 정권이 등장했다. 그들을 이번 총선에서 심판하고자 했으나 선거를 통해 현 정권을 지지하는 사람이 더 많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이른바 주류 세력의 교체가 일어났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내가 비주류 세력으로 전락했구나!” 하는 상실감이 클 수밖에 없다. 예전 내가 젊었을 때 보던 ‘뒷방 늙은이’가 이제 나의 정체성처럼 다가오는 것 같아 힘들다. 슬프고 허탈하고 화난다.


선거는 싸움, 패배는 괴롭다

또 다른 이유는 ‘패배(defeat)의 괴로움’이다. 선거는 본질적으로 싸움이다. 누군가는 이기고 누군가는 진다. 특히 이번 선거처럼 양대 정당의 싸움이 치열한 경우 운동회 청백전처럼 나의 승리는 너의 패배요, 너의 승리는 나의 패배다. 보수 분열이 없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합리적 보수, 중도 보수, 극우 세력, 태극기 부대 등 여러 명칭으로 나뉜 세력이 ‘우파’에 동의하면서 총선에 임했다. 그러니 이겨야 했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국정 운영 방향이 좌파 정책으로 흘러서는 안 될 것 같다고 생각한 사람들도 야당보다는 여당을 선택했다. 미래통합당은 반대만 일삼고, 기득권을 지키려고 하고, 왠지 나와는 동떨어진 ‘꼰대’ 같은 느낌이 든다는 등 다양한 이유로 선택하지 않았다. 그러니 졌다. 그래서 괴롭다. 이길 줄 알았는데 졌으니 말이다. 

내가 가르치던 자식 세대들이 이제 나에게 “엉뚱하고 틀린 말 그만하세요”라고 말하는 것 같다. 나를 보면서 “어르신들이 염려하는 대한민국의 공산화나 남미 좌파 국가처럼 과도한 복지로 인한 국가부도 사태는 일어나지 않아요. 제발 코미디 같은 말씀하지 마세요”라며 비웃는 것 같다. 

나의 주장은 색깔론으로 매도되고 괜한 공포심을 조장하는 선동으로 치부된다는 생각에 마음이 아프다. ‘나는 그래도 어느 정도 누리고 살았고, 이제 살아야 할 날도 많지 않다. 그러니 이제 대한민국이 망가지고 무너져도 너희들이 감당해야 할 몫이다. 그때 가서 내가 한 얘기가 생각날 거다’라고 마음속으로 되뇔 뿐이다.


대한민국 역주행 생각에 가슴은 먹먹해지고…

21대 총선 투표일인 4월 15일 서울 종로구 경복고에 마련된 개표소에서 개표원들이 비례정당 투표지 수개표를 하고 있다. [뉴스1]

21대 총선 투표일인 4월 15일 서울 종로구 경복고에 마련된 개표소에서 개표원들이 비례정당 투표지 수개표를 하고 있다. [뉴스1]

셋째는 ‘희망 없음(hopelessness)’ 상태다. 과거 산업화 시대에 고도성장을 지속하던 국민들은 지금 당장은 못살아도 미래에는 더 잘살 수 있으리라 여겼다. 열심히 자식을 가르치면 부모인 나보다 더 잘살 것이라는 믿음도 있었다. 현재의 고통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은 긍정적인 미래에 대한 희망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대한민국의 성장 속도는 둔화하고, 일자리가 부족하며, 빈부 격차에 대한 불만이 넘쳐나고 있다. ‘헬 조선’이라며 대한민국을 비하하는 표현도 생겨났다. 이른바 민주화 세력이 산업화 세력을 비난하며 복지 확대를 외치고, 젊은 세대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과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사회 분위기가 바뀌어가고 있다. 따라서 이대로 가면 미래에 희망이 없다고 판단해 총선에 임했다. 다시 한번 힘을 내서 대한민국을 지키고 성장시켜 나가야 한다. 그런데 선거 결과는 참패다. 그러니 이제 희망이 없다. 대한민국의 내리막길이 눈에 선하다. 대한민국이 얼마나 더 역주행을 할지 가슴이 먹먹하다. 적어도 내가 원하는 방향과는 다른 쪽으로 갈 거라는 건 분명해 보인다. 우울해질 수밖에 없다. 

넷째, ‘부적응(maladjustment)에 대한 두려움’ 탓이다. 어쨌든 우리 사회는 또 변화할 것이다. 나는 그것을 ‘퇴보’라고 말하고 있는데, 사람들은 그것을 ‘발전’이라고 말한다. 혼란스럽다. 도대체 어떻게 적응해야 하는가. 이제까지 살아오던 삶의 방식, 가치관, 태도, 해석 등 모든 것을 바꿔야 한단 말인가. 적응할 자신이 없다. 만일 나의 모든 것을 바꾸려고 한다면 나 자신의 주체성에 대한 부정이 아니겠는가. 그것은 싫다. 이대로 죽으면 죽었지 나를 부정할 수 없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지금 당장 죽는 것도 아니다. 어쨌든 남은 삶을 잘 살고 싶다. 그러니 다시 고민이 된다. 어떻게 적응해야 하나. 힘을 내서 다시 대한민국을 지키는 노력을 계속할까. 다음 대통령 선거에서 보수 우파의 정권 획득을 기대하면 좀 나아질까. 아니면 체념하고 달라진 대한민국을 받아들여야 할까. 머릿속이 복잡하다. 정리도 잘 안 된다. 여하튼 앞으로 적응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늘그막에 이게 뭔 고생인가. 

총선 패배 후 우울증에 빠진 사람들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자신의 의견을 표심으로 행사했다. 그런데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은 상당 부분 기성세대, 아니 윗세대들이다. 그래서 더 힘이 든다. 내가 대한민국의 주인이자 충실한 구성원이라는 자부심 속에서 한평생 살아온 사람들이 이제 더는 그것이 아니라는 느낌에 부딪힐 때의 절망감은 이루 헤아리기 어렵다.


총선 우울증에 대한 처방전

그런데 “이제 그만 무대에서 내려오세요, 주인공이 바뀌었으니”라고 말하는 것은 잔인하다. 승자이든 패자이든 우리 모두는 자랑스러운 국민이다. 화합이 절실하게 필요한 시점이다. 

총선 후 우울증에 빠졌다면 이제 화를 가라앉히고 반대 세력의 말에 귀를 기울여보자. 그래도 아니다 싶으면 차분하게 설득해 타협하는 자세를 취하는 게 필요하다. 그것이 나의 자존감을 유지하면서도 달라진 세상에 적응하는 방법이다. 그리고 당분간은 충분한 휴식을 취하기를 바란다. 지나치게 정치적으로 민감해지는 것을 피하자. 그렇다고 아예 무관심해지라는 건 아니다. 앞으로 있을 선거에서 적극적으로 투표권도 행사하고, 정치 집회에도 참가할 수 있어야 한다. 

이들의 목소리가 사라지고 다른 한쪽 목소리만 들리는 세상은 또 다른 독재와 권위주의 시대의 도래를 의미한다. 보수라는 가치 실현을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만학도처럼 처음부터 다시 기초를 다지고, 실력을 키워야 한다. 젊은 인재들을 길러내고, 그들에게 기회와 힘을 줘야 한다. 그래야 그들이 원하는 세상을 이룰 수 있다. 이기고 지는 것은 나를 살리고 상대를 죽이는 게 아니라 나의 생각이 상대 생각보다 우리의 삶에 더 많이 반영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여기자. 그래야 서로 선의의 경쟁을 하게 된다. 시간이 약이다. 이제 서서히 우울증으로부터 벗어나 내가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을 생각하고, 마음을 열어 의사소통을 한다면 과거보다 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




신동아 2020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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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Opinion Leader Maga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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