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호

‘케도아웃’이 ‘韓법원 규탄 광고’ 타임스퀘어에 내건 이유

“사법주권 지키겠다며 사법정의 무너뜨려”

  • 문영훈 기자

    yhmoon93@donga.com

    입력2020-09-07 17:33:42

  • 글자크기 설정 닫기
    • 韓법원 묵묵부답, 세계가 알길 원해

    • 화제성 높아 타임스퀘어 택해

    • 내용 듣고 美대행사도 충격 받아

    • 어머니·언니… 4000명 넘는 연대

    미국 뉴욕 타임스퀘어 전광판에 ‘웰컴 투 비디오’ 운영자 손정우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을 비판하는 내용의 광고가 걸려있다. [케도 아웃 홈페이지]

    미국 뉴욕 타임스퀘어 전광판에 ‘웰컴 투 비디오’ 운영자 손정우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을 비판하는 내용의 광고가 걸려있다. [케도 아웃 홈페이지]

    “세계 최대 아동 성착취물 사이트 운영자 손정우는 한국에서 고작 1년 6개월 형을 받았다. 피해자를 위한 정의를 되찾도록 도와 달라.” 

    미국 뉴욕 타임스퀘어 ‘더 원’(The One)과 ‘톰슨 로이터’(Thomson Reuters) 전광판에 8월 31일 아동 성착취물 사이트 ‘웰컴 투 비디오’ 운영자 손정우의 형량이 내걸렸다. 광고주는 아동 성범죄 실태 공론화 팀 ‘케도 아웃’(KEDO OUT)이다. 케도(KEDO)는 한국을 뜻하는 K와 아동성애를 뜻하는 Pedophile 단어가 조합된 명칭이다. 케도 아웃은 아동 성범죄 가해자에 대한 한국 사법부의 솜방망이 처벌 실태를 고발하고자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서 자발적으로 형성됐다.

    ‘사법주권’ 지키겠다며 ‘사법정의’ 무너뜨려

    손정우는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배포 사이트 ‘웰컴 투 비디오’를 2015년부터 3년간 운영했다. 4세 이하 영아 성폭행 영상, 신체훼손 영상 등이 게시된 이 사이트에 32개국 128만 명이 가입했다. ‘웰컴 투 비디오’ 사건은 미국 법무부가 2019년 10월 손씨의 실명을 포함해 최종 수사결과를 발표하면서 한국에 알려졌다. 

    여론은 들끓었다. 그가 재판에서 받은 형량 때문이다. 2018년 9월 서울중앙지법은 1심에서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과 ‘정보 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기소된 손씨에게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2019년 5월 손씨는 2심에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아 형이 확정됐다. 

    4월 미국 법무부는 국제자금세탁 혐의로 손씨에게 범죄인 인도 영장을 청구했다. 7월 6일 서울고등법원은 이를 불허하는 결정을 내렸다. 법원은 “대한민국이 주권국가로서 범죄인에 대해 주도적으로 형사처벌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근거를 제시했다. 



    이날 케도 아웃이 결성됐다. 케도 아웃 팀원 K씨는 “미국 송환 불허 결정이 난 날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국가가 여성은커녕 아이들조차 보호할 생각이 없다는 사실에 분노했다. 법원은 사법주권을 지키겠다고 하는데 사법정의는 고려하지 않았다. 미국 송환 후 손정우가 높은 형량을 받을 경우 우리나라 사법부가 받을 망신을 우려한 것일 뿐이다”라고 했다. 

    케도 아웃 팀원 전원은 여성이다. 이들은 어떤 활동이 아동 성범죄에 대한 처벌 수위를 높이는데 도움이 될지 SNS에서 논의했다. 한 팀원이 뉴욕 타임스퀘어 광고를 언급했다. K씨는 “‘웰컴 투 비디오’는 32개국 사람들이 이용한 사이트다. 손정우에 대한 한국의 미약한 처벌을 세계가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국민청원과 수차례 집회에도 사법부는 묵묵부답이다. 화제성이 높은 타임스퀘어에 광고하면 성범죄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고 연대도 이끌어낼 수 있으리라고 예상했다”고 말했다.

    어머니·언니… 4586명 연대

    케도 아웃은 7월 두 차례에 걸쳐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 ‘텀블벅’을 통해 광고 자금을 모았다. 4586명이 참여해 기존 목표 금액인 2000만 원을 훌쩍 넘은 9090만 원이 모였다. 한 후원자는 “딸이 안전한 세상에서 자유롭게 살았으면 좋겠다”며 딸 명의로 후원금을 냈다. “오지랖 넓은 언니가 될 필요가 없는 사회를 바란다”는 메시지도 있었다. 케도 아웃 홈페이지에 제시된 후원자 이름 중에는 성 착취 피해자를 향한 것으로 보이는 ‘죽지마 지켜줄게’도 있다. 

    “귀하의 광고 내용에 상사가 큰 충격을 받았다. 광고를 통해 해당 사안을 꼭 알리겠다.” 

    케도 아웃 측은 타임스퀘어 광고를 추진하던 중 광고대행사 담당자로부터 이와 같은 답장을 받았다. 8월 31일 뉴욕 타임스퀘어에 광고가 걸렸다. K씨는 라이브 스트리밍으로 팀원들과 함께 광고가 송출되는 장면을 지켜봤다. 그는 “앞으로도 그 순간이 기억에 선명할 것”이라고 했다.

    법사위 향한 ‘문자 총공’ 주도

    7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 앞에서 손정우의 미국 송환을 거부한 재판부를 규탄하는 집회가 열렸다. [뉴스1]

    7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 앞에서 손정우의 미국 송환을 거부한 재판부를 규탄하는 집회가 열렸다. [뉴스1]

    광고 게시 다음날인 9월 1일 케도 아웃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의원들에게 손정우법(범죄인 인도법 일부 개정 법률안) 본회의 상정을 촉구하는 ‘문자 총공’을 진행했다. ‘총공’은 총공격의 준말로 개인이 힘을 모아 단체로 행동하는 것을 뜻한다. 

    손정우법은 송영길 민주당 의원이 7월 7일 발의한 이후 법사위에 계류 중이다. 법안은 고등법원 단심제로 결정되는 범죄인 인도 결정을 상급심에서 한 번 더 재판받을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이 법안이 위헌이라는 지적도 있다. 손정우법은 2019년 1월 1일부터 소급 적용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법안이 통과되면 손씨 역시 미국 송환 여부를 다시 재판받는다. K씨는 “소급 적용이 위헌이냐 아니냐를 따지기 전에 사법부 판단이 옳았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사법부와 입법부에서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정의를 명확하게 정립하고 미미한 처벌 규정을 보완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케도 아웃 측은 디지털 성범죄 사건인 ‘N번방’에 대한 국민들의 지속적인 관심도 촉구했다. 1일 텔레그램 박사방 주요 피의자인 조주빈은 피의자 한모 씨의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성 착취물을 브랜드화 할 생각이었다”고 말해 공분을 샀다. K씨는 “타임스퀘어 광고 게시를 통해 성범죄에 대한 경각심을 다시 이끌어내고자 했다. N번방 사건 관련 재판이 진행되고 있으니 이에 관심을 가져달라”고 했다. 케도 아웃이 내건 광고는 6일까지 타임스퀘어에 게시됐다.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