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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웅산 사건 당시 담당 서기관 최병효 前대사 증언

최병효 前대사 “전두환 ‘네윈식 상왕정치’ 욕심에 버마 방문” vs 全측근 민정기 “우스꽝스러운 억측”

  • 김우정 기자 friend@donga.com

아웅산 사건 당시 담당 서기관 최병효 前대사 증언

  • ● 당시 외무부 서기관, 버마 등 서남아 순방 실무 도맡아
    ● 순방 계획 없던 버마, 전두환이 막판 추가
    ● 국정자문위원들 네윈 만나 全의향 전했을 것
    ● 당시 국정자문위 관계자 “위원들 네윈 안 만나, 全순방과 무관”
    ● 버마 외상 “사고 당일 韓측이 묘소 지붕 점검”
    ● 아베 신타로 日외상, 테러 후 한국 전방위 지원
    ● 한일관계 지금 같으면 도움 못 받았을 것
    ● 全, 치적 자랑하다 사건 언급하니 ‘침묵’
    ● 아웅산 묘소 테러, ‘독재외교’의 비극
    ● 증언 담은 책 ‘그들은 왜 순국해야 했는가’ 출간 예정


전두환은 네윈이 되고 싶었을까. 

최병효(71) 전 노르웨이 대사는 “전두환 전 대통령은 장기집권을 위해 독재자 네윈의 ‘상왕정치’를 모방하고자 1983년 버마를 방문했다”고 10월 중순 출간될 저서에서 주장했다. 

1983년 10월 8일, 전두환 당시 대통령은 버마(현 국명 미얀마)를 국빈 방문했다. ‘서남아·대양주 5개국(버마·인도·스리랑카·호주·뉴질랜드) 및 브루나이 순방’ 첫 방문지였다. 북한과 체제 대결을 의식한 ‘비동맹권’ 외교와 경제협력이 명목이었다. 도착 이튿날 오전, 전 전 대통령은 버마의 독립영웅 아웅산 장군의 묘소를 방문할 예정이었다. 한국 정부 고위인사로 구성된 수행단이 먼저 도착해 행사장에 도열한 순간, 북한 공작원이 설치한 폭탄이 터졌다. 서석준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이범석 외무부 장관 등 각료와 함병춘 대통령비서실장·이계철 주(駐)버마 대사·이중현 동아일보 기자 등 한국 측 인사 17명이 숨졌다. 

최 전 대사는 1982년 3월~1984년 3월 외무부 서남아시아과 서기관으로 근무하며 당시 대통령 순방 관련 실무를 도맡았다. 순방 계획안 등 중요 공문을 기안했다. 주노르웨이 대사·주로스앤젤레스 총영사 등을 역임하고 2009년 은퇴해 36년 외교관 생활을 마쳤다.



[조영철 기자]

[조영철 기자]

“17명의 영령 왜 순국해야 했는지 기록 남긴 것”

최 전 대사는 자신의 기억과 관계자 증언, 외교문서를 바탕으로 10월 중순 ‘그들은 왜 순국해야 했는가? 버마암살폭발사건의 외교적 성찰’을 출간할 예정이다. 당시 버마 순방이 전 전 대통령의 장기집권 구상과 맞물려 있다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17명의 영령이 왜 순국해야 했는지, 당시 실무를 맡은 공직자로서 역사에 기록을 남기려 한다”는 최 전 대사를 만나 인터뷰했다. 

- 아웅산 묘소 테러 사건에 대해 증언하고 나선 이유는. 

“나는 버마 순방과 관련해 처음부터 끝까지 실무를 맡은 대한민국 유일의 공무원이다. 다만 현직 외교관으로서 기밀을 누설할 수는 없었다. 퇴직 후 2014년부터 관련 외교문서가 조금씩 기밀 해제되기 시작했다. 이를 참고해 역사에 제대로 된 기록을 남기자는 사명감을 느꼈다.” 

- 사건의 역사적 평가는 끝나지 않았나. 

“그렇지 않다. 지금까지 가해자인 북한에만 초점이 맞춰졌다. 북한의 만행을 규명해 책임을 추궁하는 것은 중요한 포인트다. 다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전 전 대통령이 버마에 간 이유를 규명해야 한다. 버마는 당초 대통령의 순방지가 아니었으나 뒤늦게 추가됐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당시 버마의 독재자 네윈 의장을 ‘벤치마킹’하고자 버마를 찾은 것으로 봐야 한다.” 

네윈(1911~2002) 의장은 1962년 쿠데타로 정권을 잡았다. 1982년 대통령 7년 임기를 마치고 측근 우산유를 대통령직에 앉혔다. 1983년 당시에도 집권 사회주의계획당 의장으로서 실권을 유지했다. 네윈 특유의 ‘상왕(上王) 정치’다. 전 전 대통령도 이를 의식했는지 2017년 출간한 ‘전두환 회고록’ 2권(495쪽)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당초 외무부가 준비한 서남아 순방 계획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았던 버마가 추가된 데 대해 훗날 억측이 제기됐다는 보고를 받았다. 버마의 집권당인 사회주의계획당 의장 네윈 장군의 권력 유지 노하우를 배우기 위해 버마 방문이 추가됐다는 것이 억측의 내용이라고 했다. (중략) 외무부의 당초 계획에 버마는 포함돼 있지 않았는데 내가 추가하라고 지시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버마 방문을 추가하게 된 이유가 ‘네윈 운운…’이라는 추측은 그야말로 엉뚱한 상상력으로 지어낸 얘기일 뿐이다.”

“버마, 순방지 검토에 끼지도 못해”

- 전 전 대통령이 ‘상왕정치’ 욕심에 버마를 방문했다는 주장의 근거가 무엇인가. 

“전 전 대통령의 순방 일정과 관련해 외무부가 작성한 ‘서남아·대양주 순방계획안’을 내가 기안했다. 결재란에는 외무부 장관과 국무총리, 대통령 세 사람만 있었다. 장관 결재 후 총리실에 전달했고 김상협 총리 결재도 별 탈 없이 이뤄졌다. 1983년 5월 20일 이범석 장관이 대통령에게 계획안을 들고 갔으나 ‘버마를 추가하라’는 대통령 지시로 반려됐다. 총리까지 결재가 끝났고, 그전 수개월 동안 청와대와 외무부, 안기부가 일정에 대해 협의했다. 이 과정에서 방글라데시·파키스탄 등 다른 나라도 순방지로 검토했으나 버마는 그중에 끼지도 못했다.” 

- 총리까지 결재한 ‘순방계획안’은 지금 어디 있나. 

“외교부 외교사료관에서 찾아봤으나 사라졌다. 전직 외교관들에게 수소문해도 그 문서를 봤다는 사람이 없다. 누군가 고의적으로 없애기라도 한 것인지….” 

전 전 대통령이 당시 버마의 네윈 사회주의계획당 의장을 ‘벤치마킹’하고자 버마를 방문한 것 아니냐는 의혹은 여러 차례 제기됐다. 다만 버마가 순방지에 추가되기 전, 순방 계획이 어떤 절차로 진행됐는지 구체적으로 증언한 것은 최병효 전 대사가 처음이다.

“누군가 고의적으로 없앴는지…”

1983년 10월 9일 아웅산 묘소 테러 사건 직후 전두환 대통령 내외가 부상자가 수용된 버마 육군병원을 찾았다. [동아DB]

1983년 10월 9일 아웅산 묘소 테러 사건 직후 전두환 대통령 내외가 부상자가 수용된 버마 육군병원을 찾았다. [동아DB]

- 대통령 지시 후 외무부 조치는 어땠나. 

“당일 이범석 외무부 장관이 주버마 대사에게 친전을 보냈다. 대통령이 버마 순방을 고려하는데 별문제 없을지 대사 의견을 묻는 내용이었다. 수신자만 읽고 파기해야 하는 친전이기에 난 그 내용을 원래 알 수 없다. 다만 장관 보좌관이던 김성엽 사무관(전 주애틀란타 총영사)이 순방을 준비하는 실무자도 내용을 알아야 한다며 내게 사본을 전달했다. 그런데 하루 만인 5월 21일 저녁, 이계철 대사가 ‘주재국 치안상태는 양호하다. 버마 정부도 대통령 방문을 환영할 것으로 판단된다’고 장관에게 친전을 보냈다. 당시 버마 국내에는 반군의 활동이 활발했다. 네윈이 2인자인 정보부장을 숙청한 지 얼마 안 돼 정국도 불안했다. 이런 상황에서 주재 대사가 그토록 짧은 시간에 긍정적 회신을 보낸 것이 의아했다. 이 대사도 테러로 순국했다. 확인할 길 없지만, 현지 대사에게는 버마 순방과 관련해 외무부가 아닌 별도 라인에서 뭔가 지시가 있었던 것 아닐까.” 

- 버마 방문은 ‘비동맹 외교’ 저변을 넓힌다는 명목으로 추진됐다. 

“근거가 약하다. 버마가 ‘비동맹 그룹’의 창립 멤버이기는 하나 실제 활동은 소극적이었다. 네윈 집권 후 사회주의 체제를 강화하며 외부와 관계를 점차 단절했다. 예외가 북한이었다. ‘동남아의 북한’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북한과 가깝게 지냈다. 경제적으로도 버마는 한국에 매력이 없었다. 당시 아시아 최빈국으로서 한국 기업이 투자할 여지도 없었다. 그 시점에 대한민국 대통령이 버마에 간다는 것은 네윈식 통치 제도를 참고하려는 의도로 읽힐 수밖에 없다.” 

이 대목에서 최 전 대사는 “대통령의 ‘버마 추가’ 지시를 듣고 나니 번뜩 떠오르는 사건이 있었다. 그에 앞서 국정자문회의(1980년 설치된 헌법상 대통령 자문기구로 국가원로자문회의로 개칭 후 1989년 사실상 폐지됐다.) 위원들이 뜬금없이 버마를 방문한다며 외무부에 협조를 요청했다”며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대통령의 ‘버마 추가’ 지시 열흘 전쯤, 국정자문회의가 외무부에 공문을 보냈다. 이영섭 전 대법원장 등 국정자문위원 3명이 버마·인도·스리랑카를 방문하니 외무부가 각국 공관에 협조해 달라는 것이었다. 국정자문위원들이 수교국이지만 사회주의 체제인 버마에 가는 것이 의아했다. 외유성 여행으로 짐작하고 장관 명의의 전문을 기안해 김병연 아주국장(전 주노르웨이 대사) 전결로 주버마 대사에게 보냈다.” 

- 국정자문위원의 버마 방문이 대통령 순방과 무슨 관계인가. 

“놀라운 것은 이들이 버마에 가서 네윈을 만났다는 점이다. 네윈은 원래 다른 국가원수도 잘 안 만나주는 인물이다. 전 전 대통령도 버마 도착 후까지 네윈을 만날 수 있을지 불투명했다. 큰 사고가 나자 네윈 측이 사과 차원에서 전 전 대통령과 만났다. 국정자문위원직은 명예직에 불과했다. 네윈이 만나줄 이유가 없다. 국정자문위원들이 버마의 통치체제를 참고하려는 전 전 대통령의 친서를 소지했던 것 아닌가 의심된다. 당시 주버마 대사관의 송영식 참사관(전 주호주 대사)도 네윈이 국정자문위원들을 만나주는 것을 보고 놀랐다고 하지 않나.” 

송영식(80) 전 대사는 2012년 출간한 회고록(‘나의 이야기-38년 외교 인생 그리고 삶과 가족’)에서 전 전 대통령의 버마 방문이 빠르게 진행된 이유가 “이영섭 전 대법원장을 단장으로 하는 국정자문회의 대표단이 국빈 방문 가능성 타진 훈령 시기와 겹치는 5월 25일부터 5월 28일까지 미얀마를 방문해 네윈 당의장을 비롯한 정부 요로 접촉과 외무장관 만찬 참석 등의 친선외교 활동을 전개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164쪽)고 언급했다. 

송 전 대사는 9월 8일과 14일 두 차례 전화 통화에서 “당시 국정자문위원들이 버마에서 네윈을 만났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면서도 기자가 회고록의 해당 구절을 읽어주니 “내가 기억이 생생할 때 회고록을 썼으니, 그렇게 썼다면 국정자문위원들이 네윈을 면담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당시 국정자문위 관계자 “우산유 만나 ‘88올림픽 지원’ 요청”

최병효 전 대사의 주장과 상충하는 증언도 있다. 1983년 당시 대통령정무비서관으로서 국정자문회의 업무를 봤던 김두영(80) 씨는 “당시 이영섭 전 대법원장(2000년 별세)과 홍승만 전 대한변호사협회장(1986년 별세), 고재필 전 의원(2005년 별세) 등 국정자문위원 3명은 버마·인도·스리랑카를 방문했다. 내가 수행차 동행했다”면서도 “국정자문위원들은 네윈을 만나지 않았다. 내가 배석한 가운데, 우산유 대통령을 만나 ‘88올림픽을 서울에서 개최할 예정이니 지원해 달라’고 얘기했다. 대통령 친서도 없었다”고 말했다. 

국정자문위원들이 버마를 찾은 이유에 대해 묻자 “당시 국정자문위원들이 세 명씩 팀을 이뤄 세계 각국을 친선 방문했다. 전 전 대통령 순방과는 전혀 관계없다”고 답했다. 버마 방문이 ‘네윈식 통치 체제’ 참고와 연관 있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는 “말도 안 된다. 배우려면 한국에서도 연구할 수 있다. 버마 대통령을 만나 논의할 얘기도 아니잖나”라고 말했다. 

최 전 대사는 당시 경호의 허점에 대해서도 새로운 증언을 했다. 그는 “이제까지 버마 측이 한국 경호실의 사전 점검을 막아 폭탄을 미리 탐지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버마 측이 아웅산 묘소가 버마의 ‘성역’이라는 이유를 들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한국 측의 경호 책임을 희석하려는 변명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 자세히 설명해 달라. 

“내가 버마 측의 반론을 직접 들었다. 1983년 10월 13일 서울에서 ‘순국외교사절 합동국민장’이 엄수됐다. 외상을 단장으로 하는 버마 측 조문사절단은 10월 12~14일 2박 3일 일정으로 방한했다. 버마 외상은 14일 신라호텔에서 이원경 체육부 장관(아웅산 묘소 테러 사건 관련 정부특사. 이범석 장관 후임으로 외무부 장관 임명)과 조찬 석상에서 ‘버마 측이 한국 경호원의 아웅산 묘소 사전 조사를 금했다는 한국 언론 보도는 사실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당시 김병연 아주국장과 함께 조찬에 동석한 나는 버마 외상의 발언을 기록해 뒀다. 해당 기록은 지금도 외교부에 ‘버마암살폭발사건 경위 및 처리결과’란 제목으로 보관돼 있다.” 

- 그런 사실이 지금껏 알려지지 않은 이유는. 

“사건 직후 버마 정부의 공식 견해를 확인한 것은 (이원경 장관, 김병연 아주국장과) 내가 처음이다. 버마 측은 한국 언론 보도에 항의했을 뿐, 문제를 더 키우고 싶지 않아 했다. 나도 현직 외교관 시절에는 기밀을 엄수해야 해 밝힐 수 없었다. 이제야 말하는 것이다.” 

최 전 대사는 자신의 증언을 뒷받침할 또 다른 근거가 있다고 말했다. 일본 측이 버마 외상의 주장을 재차 확인해 줬다는 것이다. 최 전 대사는 “버마 대사는 우리와의 조찬 이튿날, 아베 신타로 외상이 도쿄에서 주최한 만찬에서도 ‘한국 언론이 나를 비난하는 태도를 보였다. 버마 측이 성역이라는 이유로 묘소 사전 점검을 거부했다고 허위 보도했다’고 강조했다”고 말했다.

“日, 한국 측 부탁으로 버마 외상 초청”

- 버마 외상이 일본에서 한 발언을 어찌 아나. 

“일본 외무성이 우리 측에 알려줬다. 이 또한 ‘버마암살폭발사건 경위 및 처리결과’에 기록했다. 애초에 아베 외상이 귀국길의 버마 외상을 초청해 만찬을 연 것도 한국 측 부탁에 따른 것이다. 일본이 버마 측에 조속한 진상 규명을 당부해 달라는 부탁이었다.” 

- 일본이 사건 수습과 관련해 한국을 도왔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사실이다. 테러 다음 날(10월 10일) 밤, 우리 외교관들이 묵던 호텔로 주버마 일본 대사대리가 찾아왔다. ‘버마 현지의 한국 외무부 아주국장에게 일본대사관이 파악한 상황을 브리핑하라’는 본국 외무성 지시를 받은 것이다. 방문 몇 시간 전 버마가 ‘코리안’ 용의자를 체포했는데, 북한 공작원이었다. 한국과 일본 모두 아직 이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일본 대사대리는 이미 제반 정보를 분석해 우리에게 북한 소행이 분명하다고 브리핑했다. 그는 12일에도 다시 찾아와 버마 측 사건조사 상황 등 유용한 정보를 제공했다. 

아베 외상은 아들(제90·96~98대 일본 총리 아베 신조)과 달리 자민당 내 친한(親韓) 인사였다. 나카소네 야스히로 당시 총리도 한국에 친화적이었다. 지금 같은 한일관계에서는 일본 측 지원을 기대하기 어렵다. 과거사 문제와 관련해 일본 측에 계속 항의하되 외교적 실리는 챙겨야 한다. 전 전 대통령에게 과오가 많지만 대일외교를 잘했다는 점은 평가해야 한다. 전 전 대통령도 나와 만났을 때 일본과 돈독했던 관계를 치적으로 내세우더라.” 

- 전 전 대통령을 직접 만났나. 

“LA총영사 재직 시절인 2007년 1월, 전 전 대통령이 가족과 LA에 왔다. 전직 대통령으로서 예우는 박탈당했지만 모른 척할 수 없지 않나. 전 전 대통령과 골프와 식사를 하는 등 한나절을 함께 지냈다. 내가 당시 외무부 실무자였다며 아웅산 묘소 테러 사건을 거론했다. 몇 시간 동안 자신의 치적에 대해 얘기하더니 그때부터 한 마디도 하지 않더라.” 

- 아웅산 묘소 테러 사건의 역사적 교훈은. 

“세계 외교사에 전례 없는 참사였다. 그럼에도 한국 정부 차원의 종합적 조사는 현재까지 없었다. 전두환 정권 같은 독재 정부의 외교는 근본적 한계가 있다. 국민이 아닌 독재자의 의향대로 모든 것이 결정된다. 정상적 외교 라인이 아닌 비선이 개입해 의사결정 과정도 비합리적이다. 독재 외교란 토양에 여러 악재가 겹치면 어떤 참사가 일어날까? 1983년 버마 아웅산 묘소 테러는 그 결과를 여실히 보여준다.”

“독재 정부 외교는 근본적 한계”

버마 순방 배경을 둘러싼 의혹에 대해 전 전 대통령의 견해는 어떨까. ‘신동아’는 9월 10일 전 전 대통령에게 우편으로 취재 질의서를 보냈다. 1983년 버마 방문 목적이 버마식 통치 체제에 대한 ‘벤치마킹’이었는지, 국정자문위원들의 앞선 방문과 관련이 있는지 등을 묻고 답변을 요청했다. 이튿날 전 전 대통령 측 경호원은 기자에게 전화해 “질의서가 담긴 우편물을 받았다. 전 전 대통령께 전달하겠다”고 말했다. 9월 15일까지 전 전 대통령 측은 취재 질의서에 답하지 않았다. 

전두환 전 대통령 측근으로 그의 회고록을 정리한 민정기(78) 전 대통령공보비서관은 버마 순방이 ‘네윈식 통치 체제’ 참고와 관련이 있지 않으냐고 묻자 “우스꽝스러운 억측이다. 그와 관련해서는 (전 전 대통령) 회고록 내용을 보면 된다”고 일축했다. 민 전 비서관은 전 전 대통령의 건강 상태에 대해 “알츠하이머라는 것이 병세가 나아지는 법은 없다. (발병 후) 10년 가까이 되므로 병세가 좋지 않다. 방금 전 일도 기억 못 하는 상황”이라며 취재에 응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신동아 2020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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