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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은 잔뜩 화가 나길 원한다” 서른 살 기자의 바디프로필 프로젝트⑧

[사바나] 살은 빠졌건만 부장은 “벌써 매너리즘 왔느냐” 한마디

  • 이현준 여성동아 기자 mrfair30@donga.com

“내 몸은 잔뜩 화가 나길 원한다” 서른 살 기자의 바디프로필 프로젝트⑧

*이현준 기자의 바디프로필 프로젝트는 8월 5일부터 11월 18일까지 매주 수요일 연재됩니다.

8주차 식단.

8주차 식단.

9월 26일 인바디(체성분 분석기)에 올라 키와 체중, 나이를 입력하고 손잡이를 잡았다. 결과가 나오는 데 20여 초의 시간이 걸렸다. 이 시간이 마치 몇 시간처럼 느껴졌다. 다행히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체중은 83.9㎏으로 지난번 결과보다 2.3㎏ 빠졌다. 체지방량은 0.9㎏ 감소했고 체지방률도 0.7% 낮아졌다. 


9월 21일 인바디 측정값(왼쪽)과 9월 26일 측정값(오른쪽).

9월 21일 인바디 측정값(왼쪽)과 9월 26일 측정값(오른쪽).

골격근량은 0.4㎏ 줄었다. 다이어트할 때 근육량이 감소하는 건 불가피하다. 섭취하는 열량보다 소비하는 열량이 많으면 살이 빠진다. 이 과정에서 체내의 지방과 근육으로 부족한 열량을 벌충한다. 즉, 지방도 빠지고 근육도 빠지는 게 정상이다. 충분한 단백질 섭취와 웨이트트레이닝으로 근육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을 뿐이다. 현재로선 추이가 나쁘지 않다.

기자인가 운동선수인가

8주차 운동.

8주차 운동.

프로젝트를 시작한 지 8주. 과정은 고통스러웠지만 보람이 없는 건 아니다. 우선 몸이 가벼워졌다. 이전엔 지하철에서 내려 계단을 오르는 데도 숨이 찼다. 그러다보니 계단보다 에스컬레이터를 애용했다. 이젠 계단을 두 칸씩 뛰어올라도 문제가 없다. 옷도 헐렁해졌다. 살이 쪘을 땐 의도치 않게 쫄티, 쫄바지가 되고 말았던 상하의가 이젠 헐렁하다. 오히려 옷태가 나지 않는다. 줄어든 치수에 맞게 옷을 다시 구입해야 할지 고민이 될 정도다. 

샤워 후 거울을 보는 시간도 꽤나 즐거워졌다. 프로젝트 전엔 거울 보는 걸 즐기지 않았다. 보면서도 ‘이건 내가 아냐’라며 현실을 부정하거나, 할 수 있는 만큼 숨을 참아 배를 집어넣으며 ‘음, 아직은 괜찮아’라고 합리화를 했다. 이젠 점점 선명해지는 근육에 심취해 거울 앞에 있는 시간이 늘었다. 나르시시스트가 따로 없다. 



잃은 것도 있다. 일단 얼굴에서 생기가 사라졌다. “살 빠졌네”라는 말 보단 “아파 보여”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영양 공급이 원활하지 않아서인지,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인지 모르겠지만 머리카락도 급격히 많이 빠진다. 기력이 없다보니 짜증도 늘고 신경질적으로 변했다. 


9월 29일 촬영한 이현준 기자의 몸. [홍중식 기자]

9월 29일 촬영한 이현준 기자의 몸. [홍중식 기자]

딜레마는 ‘일과의 균형’이다. 어쩌면 이것이 직장인으로서 몸을 만드는 데 가장 큰 애로사항일지 모른다. 프로젝트 시작 후 일상은 운동에 초점이 맞춰지게 됐다. ‘오늘은 식단을 어떻게 지킬까’ ‘운동을 얼마나 할까’ ‘특정 시기까진 체지방률이 몇%까진 떨어져야 한다’ 등 바디프로필과 관련한 고민이 머리에 가득하다. 여기에 몸까지 무기력한 상황이니 정작 본업에 충실하지 못했나보다. 부장으로부터 “입사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매너리즘이 온 것이냐”는 한마디를 들었다. 

나 나름 최선을 다한다고 노력했건만 반성하게 됐다. 본업에 대한 강박감보다 운동에 대한 강박감이 더 커진 듯하다. 바디프로필이라는 목표를 반드시 이뤄야 한다는 생각에 운동을 안 하면 큰일이 날 것 같고 죄를 짓는 기분이 든다. 정해진 식단 외에 다른 음식을 먹을 때도 마찬가지다. 근래에 기사에 대해 이렇게 치열하게 고민한 적이 있던가. 당당히 “그렇다”고 얘기할 수가 없다. 

물론 이러한 강박감이 더 치열하게 프로젝트에 임하도록 도와준 부분도 없지 않다. 또 이 프로젝트도 엄연히 일의 일부다. 그럼에도 기자의 본분이 몸 만들기가 아닌 건 분명하기에 운동 중독을 극복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운동 중독 치료에는 ‘야밤 등산’이 최고

9월 27일 오후 10시경 관악산 중턱. 플래시 켜기 전(왼쪽)과 후(오른쪽). 솔직히 너무 무서웠다.

9월 27일 오후 10시경 관악산 중턱. 플래시 켜기 전(왼쪽)과 후(오른쪽). 솔직히 너무 무서웠다.

운동 중독은 생각보다 쉽게 치료가 가능했다. 27일 일요일, 주말이 대개 그렇듯 잠을 몰아 자다보니 어느새 해가 지고 밤이 됐다. ‘치팅 데이’라고 해서 점심을 더 많이 먹은 터라 반드시 고강도 운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관악산 정상을 찍고 오리라고 결심했다. 오후 9시 50분쯤 산에 도착하니 사람은 하나도 없고 적막만이 가득했다. 그래도 중턱 이전엔 가로등이 꽤 많아 올라갈 만했다. 

중턱쯤 다다르니 가로등마저 하나도 없었다. 바로 앞도 안 보일 정도로 어두웠다. 고민에 빠졌지만 그래도 운동해야 한다는 생각에 휴대폰 플래시를 켜고 오르기 시작했다. 잠시뿐이었다. 운동에 대한 강박은 공포를 이기지 못했다. 기자는 사실 겁쟁이다. 플래시를 켜니까 더 무서웠다. 

온 몸의 촉각이 곤두서고 숨이 가빠졌다. 공포에 뇌가 지배됐다. 얄궂게도 왜 이럴 때 공포영화의 장면과 괴담이 생각나는 건지. 저 어둠속에서 갑자기 귀신이 튀어나와 내 앞으로 돌진해 오진 않을까, 혹시 산짐승이라도 튀어나오면 어떡하나, 이런 곳에서 무슨 일이 생기면 도와줄 사람도 없을 텐데 등 별 생각이 들었다. 나중엔 환청까지 들렸다. “아-우-”하는 늑대소리와 누군가 낄낄대는 소리가 들렸다. 결국 100m도 채 가지 못해 등산을 포기했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미친 듯이 뛰어 내려왔다. ‘이렇게까지 운동할 필요가 있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운동 중독엔 야산(夜山)이 특효약이다.

매번 명절 때마다 1.5㎏는 쪘지만

추석 연휴라는 장애물을 또 만났다. 기자는 설과 추석을 보낼 때마다 1.5㎏는 쪘다. 차례를 지내고 나면 어찌나 맛있는 음식이 많던지. 음복(飮福)이라는 말만 놓고 보자면 복을 넘치도록 받은 셈이다. 제사 음식은 대개 고열량이다. 송편, 동그랑땡, 동태전 몇 개 집어먹다보면 섭취 열량이 1000㎉은 쉽게 넘고 만다. 이번 추석연휴는 박복(薄福)해야 한다. 차례음식과 결별을 선언하고 식단을 유지하리라고 다짐해본다.



신동아 2020년 10월호

이현준 여성동아 기자 mrfair3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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