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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은 잔뜩 화가 나길 원한다” 서른 살 기자의 바디프로필 프로젝트⑨

[사바나] 음복(飮福)과 속죄 그리고 멸망

  • 이현준 여성동아 기자 mrfair30@donga.com

“내 몸은 잔뜩 화가 나길 원한다” 서른 살 기자의 바디프로필 프로젝트⑨

  • ●왜 한우를 선물하고 그래요
    ●속죄의 마음을 담아 새벽 등산, 방전
    ●37일간 10㎏ 감량이라니
*이현준 기자의 바디프로필 프로젝트는 8월 5일부터 11월 18일까지 매주 수요일 연재됩니다.

10월 6일 촬영한 이현준 기자의 몸. [홍중식 기자]

10월 6일 촬영한 이현준 기자의 몸. [홍중식 기자]

동태전, 동그랑땡, 송편, 소고기 산적, 새우튀김, 고구마튀김…. 이름만 들어도 군침이 도는 음식이 가득한 명절. 기자는 지금껏 설과 추석을 보낼 때마다 1.5㎏씩 찌며 ‘음복(飮福)’을 제대로 누려왔다. 이번엔 바디프로필 프로젝트 중이기에 차례 음식을 결코 먹지 않으리라 다짐했지만 복병은 생각하지 못한 곳에서 튀어나왔다. 아버지 지인에게서 무려 ‘한우 선물세트’가 들어온 것. ‘아, 왜 하필이면 한우를 선물하고 그런담.’ 먹을지 말지 심각한 내적 갈등에 빠졌지만 그리 오래가진 않았다. ‘한우는 먹어야 해.’

하루에 소고기 한 근 뚝딱… 속죄의 운동

9주차 섭취한 식단.

9주차 섭취한 식단.

한우 선물세트가 들어온 걸 안 때가 9월 29일 밤이다. 먹기로 결심한 이상 미룰 이유가 없었다. 아침에는 고기를 먹지 못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그런 사람들을 한 번도 이해한 적이 없다. 30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소고기 등심을 구웠다. 고소한 육즙과 입에서 살살 녹는 식감, 입안을 따스하게 감싸주는 풍미. 이런 것을 어떻게 먹지 않을 수가 있나. 

한입 두입 먹다 보니 순식간에 400g을 먹어치웠다. 다 먹고 나서야 양심에 가책이 들었다. ‘대신 탄수화물을 먹지 말자. 닭 가슴살 대신 소고기로 단백질을 섭취한 셈 치면 돼’라고 애써 합리화했다. 점심에도 소고기 반 근을 흡입했다. 삼시 세끼 고기를 먹기는 어렵다. 저녁엔 다른 음식을 먹었지만 이날 하루 소고기 700g을 먹었다. 

식신(食神)은 정말 끈질긴 신이다. 아예 강림하지 못하도록 막는 게 차라리 쉽다. 한 번 강림하면 당최 나갈 생각을 안 하니 말이다. ‘소고기 파티’로 식단이 깨지니 명절 때는 좀 먹어도 된다는 악마의 속삭임이 들려왔다. 추석 당일 점심엔 소고기 등심과 송편을 집어먹었다. 이때도 소고기 400g을 너끈히 해치웠다. 송편도 눈 깜짝할 새 5개는 먹었는데, 1개당 칼로리가 30㎉ 정도 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한 끼에 1000㎉를 넘겨버렸다. 




10월 2일 새벽 등산. 속죄의 마음으로 암흑 같은 산을 탔다.

10월 2일 새벽 등산. 속죄의 마음으로 암흑 같은 산을 탔다.

점입가경. 추석 다음날엔 무언가 먹고 싶다는 강렬한 느낌에 이끌려 새벽 4시에 잠이 깼다. 냉장고를 여니 남은 차례 음식이 가득했다. 머리로는 안 된다고 외쳤지만 손은 이미 말을 듣지 않았다.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봉지 안에 있던 동그랑땡 7개, 새우튀김 2개, 동태전 2개가 모두 사라진 뒤였다. 

아차, 지금은 바디프로필 프로젝트 중 아닌가. 먹은 걸 토해낼 수도 없고 어쩐단 말인가. 위기감이 몰려왔다. 운동해야 한다는 마음만 가득해 새벽 5시 산으로 달려 나갔다. 오르다보면 해가 뜨겠거니 싶었지만 계산 착오였다. 어느새 10월, 스마트폰으로 날씨 정보를 확인해보니 일출 시간은 6시 29분으로 한참 뒤였다. 

산은 칠흑같이 컴컴했다. 지난 번 밤 등산 때는 공포를 이기지 못하고 내려왔지만 이번엔 살을 빼야 한다는 의지가 이겼다. 산 주변 농장 닭들의 “꼬끼오-” 하는 소리를 응원 삼아 한 발짝씩 위로 내딛었다. 무섭긴 무서웠던지라 뒤도 안 돌아보고 무엇에 씌인 듯이 산을 올랐다. 우여곡절 끝에 정상을 찍고 내려오니 두 시간 정도가 흘러 있었다. 

뿌듯했지만 새벽에 저지른 일탈을 만회한 것에 불과했다. 점심을 먹고 헬스장에 가서 운동을 한 번 더 했다. 의욕만 앞섰나보다. 주말에는 완전히 방전돼 운동을 하지 못하고 잠만 푹 잤다. 에너지를 돈이라고 친다면 무리하게 빚을 끌어 쓰다 망해버린 셈이다. 이번 연휴 때는 식단을 어기지 않고 운동을 평소보다 두 배로 하려 했건만 용두사미로 끝나버렸다.

아 망했어요…

9주차 운동.

9주차 운동.

좋게 이야기하면 정직하고 나쁘게 이야기하면 가혹하다고 해야 할까. 나 나름대로 운동도 했다. 섭취 열량도 평소보다 그리 높지 않다고 생각했다. 10월 5일 인바디(체성분 분석기)로 몸을 측정해보니 지표가 확실히 나빠졌다. 5일 점심에 취재 및 기사 작성 목적으로 어쩔 수 없이(?) 먹은 호텔 밀키트&간편식(양갈비, 짜장면, 육개장)의 영향도 있어 보인다. 9월 26일 측정값과 비교하면 체지방이 400g 늘었고 체중도 0.6㎏ 증가했다. 골격근량은 500g 줄었다. 자연스레 체지방률도 12.4%에서 12.8%로 높아졌다. 바디프로필 촬영까지 37일밖에 남지 않았는데 더 좋아지기는커녕 나빠지다니. 머릿속에 드는 생각은 딱 하나였다. ‘아, 망했다.’ 


9월 26일 측정한 인바디 결과(왼쪽)와 10월 5일 결과(오른쪽).

9월 26일 측정한 인바디 결과(왼쪽)와 10월 5일 결과(오른쪽).

나를 담당하는 트레이너의 말에 따르면, 체형을 고려할 때 75㎏은 돼야 멋진 바디프로필을 찍을 수 있다고 한다. 그래야 체지방률을 4~5% 수준으로 맞출 수 있기 때문이다. 5일 측정한 체중이 84.5㎏이니, 약 5주간 10㎏ 상당을 감량해야 한다는 뜻인데 가능할지 의문이다. 하루 종일 운동만 하면 못할 일도 아니란 생각이 들긴 하지만 직장인 처지에 그럴 수도 없다. 

부장 한 분이 해준 말씀이 떠올랐다. “네가 바디프로필 도전한다고 했지, 성공한다곤 안 했잖아. 실패할 수도 있지.” 다소 겸연쩍긴 하지만 틀린 말은 아니다. 그래도 이왕 도전했으니 성공하고 싶다. 바디프로필 촬영 전까지 남은 연차를 모두 소진해서라도 최선을 다하려 한다.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썰어야 하는 법이니.



신동아 2020년 10월호

이현준 여성동아 기자 mrfair3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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